피터 자이한,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2018.

원제는 The Accidental Superpower (2014). 박사과정 시작하고 오랜만에 읽은 책. 꽤 흥미로웠다. 워낙 화제가 되었듯 썰 푸는 솜씨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긍정적인 서평이 숱하게 있으니 굳이 그에 한 마디 거들 필요는 없겠다. 몇 가지 생각만 적어 본다.

교역은 왜 발생하는가? 국가별로 자원이 다르고 기술(생산성)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좀 더 세련되게 말해 국가별로 비교우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부존자원에 중심을 두는 경제모형을 헥셔-오린 모형이라고 한다. 지난 20년간 국제경제학자들은 헥셔-오린 모형이 오늘날의 국제무역 패턴을 거의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 대체로 합의를 보았다. 현실에서, 그리고 이론의 세계에서, 교역의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며, 생산성 높은 기업이 수출기업이 되어 더 넓은 시장을 상대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수확체증이 무역으로부터의 이익을 낳는다.

이 책의 주장을 요약하면 결국 이러한 변화가 미국이 세계의 바다를 감시하여 지정학의 작동을 중단시키고, 교역비용을 낮춘 데 기인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감시자 역할을 그만두면 이 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국제 분업은 느슨해지고 세계는 지역화되어, 저자의 용어를 빌리면 홉스적 국제질서가 귀환한다. 여기까지는 흥미롭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저자는 인구구조와 자본, (부활한) 지정학을 이용해 일련의 예측을 전개하는데, 이 모든 내용이 내게는 미국의 퇴장이 경제의 초점을 생산성에서 부존자원으로 옮길 것이라는 주장으로 읽힌다. 이 말은 홉스적 국제질서와 함께 맬서스 트랩이 귀환한다는 것이 아닌가? 이 대목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편 저자는 셰일 혁명과 함께 미국 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점을 들어 미국이 교역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무역이 일국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교역량으로만 측정할 수는 없다. 다국적 기업의 현지생산 등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가격을 통한 일반균형 효과는 간접적이지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과연 찬란한 고립 (splendid isolation) 하에서 “아마존 효과” 가 발생할 수 있었겠는가?
⠀ 
내가 가진 또다른 의문은 미국의 국내정치 동학이다. 세계화는 분명히 일국의 후생, 쉽게 말해 실제로 향유하는 소비수준을 상승시키지만 임금불평등 확대에 기여한다. 이 논리가 역으로 작동한다고 하면 탈-세계화는 임금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대신 실질소득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아주 거칠게 말하면 다 같이 평등하게 못 살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 임금불평등 감소가 먼저 나타나면 그나마 낫다. 불평등은 그대로인데 실질소득만 감소하면 저소득층의 불만이 커지게 된다. 
⠀ 
이상은 그나마 세계화의 파급효과에 대한 이론적 예측이 역으로도 성립하는 경우다. 탈-세계화의 결실이 에너지 기업과 (비교적 교역로 방비 필요성이 덜한) 테크 기업들에게 집중되어 불평등이 확산되면 미국 소비자-유권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이미 경제학자들이 고작 1년 남짓 진행된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가 미국의 물가를 상승시키는 한편 공화당 지지 지역에 더 큰 타격을 입혔다고 추정하고 있다. 다가올 미 대선이 이 동학의 향방을 보여줄 공산이 크니, 굳이 용감하게 예측을 내놓진 않겠다.

간단히 말해 저자는 미국이 경제적 계기로 관조자 내지 은둔자로 돌아서리라 주장하지만, 경제의 내생성에 대해서는 눈감는다. 미국이 “가장 관대한 제국”으로서 세계화의 문을 열고 그 문지기 역할을 해왔지만, 문지기가 높은 통행세를 요구하거나 어느 날 사라진다 해서 문이 닫히거나 그 자리가 무주공산이 될까? 여기서 이 책에 대한 견해가 갈린다고 본다. 정도를 달리할지언정 자유무역이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해) 비가역적인 효과를 낳았다고 믿는다면 비교적 비판적이고, 그렇지 않다면 수용적이겠다. 나는 어쨌든 전자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회의를 거두기 어렵다. 

혹자는 팍스 로마나 시대 로마 지식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비웃을지 모른다. 글쎄, 연료 전망 비관론 (“성장의 한계”), 자원 전망 비관론 (“애그플레이션”)은 어땠나? 교역비용의 비가역적 상승은 자원 부족이 아니라 자원 교환 부족을 의미하므로 결이 다른가? 예언자들은 언제나 이번에는 다르다고 설교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미합중국 군대를 배후에 둔) 미국 군사 기업이 세계 교역로를 경비하며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는 세계를 상상하는 편이 더 쉽다. 우주개발에도 민영자본이 참여하는 세상에 항로 경비라고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물론 다 박사과정 나부랭이의 아무말이다. 나는 지정학도 국제정치학도 알지 못하며, 언제나 그렇듯 이런 거대한 이야기와 상극이고, 거대한 예측과는 더욱 그러하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