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모리스, 『가치관의 탄생』, 2014.

이언 모리스 (2014), 이재경 역 (2016), 『가치관의 탄생 (Foreagers, Farmers, and Fossil Fuels)』 . 서평과 메모 중간 어디쯤.

이언 모리스, 『가치관의 탄생』, 2014.

“에너지 획득 방식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관을 결정한다”는 간단하지만 논쟁적인 명제를 방대한 리서치에 입각해 논증한 책. 도덕과 윤리의 총체로 여겨지는 “가치관”의 기초에 실상 도덕이 없음을 보이려는 기획이다. 전작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의 확장팩으로도 읽힌다. 저자가 빅 히스토리를 조직하고 전개하는 솜씨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본인 주장 – 논평 – 재반론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구성도 훌륭하다.

내용 요약에는 큰 의미가 없어 생략한다. 이 책의 탁월성은 앞의 두 가지, 방대한 사례를 거시적 안목으로 엮어내어 명제를 뒷받침했다는 점과 비판-반비판을 수록하여 논의의 깊이를 더했다는 점에 있다. 주장 자체가 참신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모든 주장이 새로울 필요는 없다. 논증의 문제는 언제나 근거이지 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 모리스의 주장을 “인류 가치관 변천사를 꿰뚫는 수량적 거시지표가 존재하며 그에 따른 설명은 다음과 같다.” 라고 생각하면 보기에 따라 새로울 수는 있다. 그가 수량경제사(cliometrics)가 아니라 고고학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나는 거시적 시각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거시적 설명에는 환원주의가 불가피하다. 추상이란 으레 그런 법이지만 보통 미시방법론은 그런 경향이 덜하다. 모리스가 채택한 지수화 비교 기법(전작의 사회발전지수, 본작의 에너지 획득량)은 환원 그 자체다. 지수는 현실의 다면성을 체계적으로 사상하는 도구이며 지수화는 필연적으로 논의를 일차원으로 축소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단점이 장점을 능가한다. 따라서 연구자는 먼저 지수의 장점 내지 불가피성을 해명하고, 이어서 지수 산출 메커니즘을 설득해야 한다.

전작에 5점 만점에 5점을 주었지만, 본문에서 저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수중에 책이 없어 확인할 수 없는데, 부록에서 더 궁금한 사람은 자신의 웹페이지를 참고하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서 서두에서 모리스는 “세상의 모든 학자는 환원주의자다”라며 정면승부를 건다. 재반론 섹션에서 지수 도입의 필요성과 산출 메커니즘의 제문제도 간략하나마 해명하며 두 책의 핵심 방법론을 방어해낸다. 이 책이 전작의 확장팩 격으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전작을 낸 뒤 “유물론자이지만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라는 평가를 들었다고 쓴다. 내가 마르크스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과연 그런 것 같다. 이 책의 논지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테제,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토대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구성된다. 마르크스 역사이론에서 생산관계와 계급 분화, 생산력-생산관계의 갈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모리스는 생산력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만 생산관계는 일절 논하지 않는다. 모리스의 논의는 마르크스 테제와 거리가 있는 셈이다.

오히려 이 책은 현대 경제학의 시각과 친화적이다. 효용함수, 비용-편익분석 등의 개념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핵심 논지를 조금 옮기면 다음과 같다. “가치관과 물리적 현실은 분리할 수 없다. 물리적 현실은 가치관을 담는 그릇이다.” “문화적 융통성 자체도 우리의 생물학적 본질의 일부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융통성에는 환경 변화에 대응해 우리의 효용을 계속 극대화하기 위한 핵심가치 재해석 능력도 포함된다.” 효용극대화가 제일목적이라니, 역사학자가 쓴 글 맞나 싶을 정도다. 논평자 리처드 시퍼드 교수도 이 부분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환경 변화에 대응한 핵심가치 재해석 능력이 곧 가치관 변형 능력이다. 그러니 가치관이 효용극대화를 위해 변한다는 관점은 지극히 기능주의적이다. 결국 제약하의 최적화를 달성하기 위해 효용함수가 동태적으로 변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좀 우겨 보자면 요소편향적 기술진보를 상정한 경제성장이론과도 통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더하여 저자는 시퍼드 교수의 비판에 이렇게 응수한다. “시퍼드 교수는 해답이 “감성으로 유지되는 가치관”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떤 가치관을 말하는 걸까? 아쉽게도 거기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 시장이 세상의 걱정을 모두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기후문제에는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매우 놀랐다. 과문한 탓인지 인문학 교수가 이런 식의 주장을 펼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가치관이 아니라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 본질이라면 가치관은 더 이상 정오 내지 우열이 아니라 유효성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이 결론은 내 평소 생각과 일치한다. 과거가 되어 버린 세계의 기준으로 쓰여진 기록을 현대의 시각으로 평가·비판하는 행위에는 큰 의미가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보자. 현대기준-과거비판의 대표 주자 중 하나는 PC를 과거(동화 등)에 대입하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과거기준-현대비판의 대표 주자는 기독교다. 기독교의 근간에는 유목사회 가치관이 있으며 이는 야훼와 바알의 대립으로 상징된다. (단, 모리스는 이 책에서 유목사회를 거의 다루지 않았고 그 점을 한계로 인정한다.) 내가 보기에 그 가치관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러면 기독교 역시 기축시대의 종교로 이제 시효를 다했는가? 답은 아직 미지수지만, (적어도 내게는) 중요한 질문이다. 아, 내 질문 방향이 “유효했”음을 확인했다는 덤도 이 책에서 얻은 수확이다.

올해 지금까지 읽은 책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밝혔듯 거시를 덜 선호하는 취향도 깨뜨릴 정도로 괜찮은 책이다. 이 책이 내 올해의 책이 될까? 작년에는 역대급 책인 Goldin & Katz의 『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가 있어 전작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를 2016 올해의 책으로 뽑지 못했다. 올해는 어떨지 궁금하다. 그런데 8월에 박사과정 들어가면 당분간 책을 읽지 못할 테다. 3개월 안에 더 나은 책을 찾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론이 어딘가 우습지만, 기대된다.

Angrist & Pinscke, 『고수들의 계량경제학』, 2014.

Angrist & Pinscke (2014), 강창희 박상곤 역(2017), 『고수들의 계량경제학(Mastering ‘Metrics)』. 서평과 메모 중간 어디쯤.

Angrist & Pinscke, 『고수들의 계량경제학』, 2014.

실용성과 직관적 설명을 모두 갖춘 최신 응용계량경제학 입문서, 또는 학부생 RA 양산 비급.

요새 손에 잡히는 대로 학부 교과서를 읽으며 개념의 흐름을 정리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읽은 책. 원서는 2014년에, 번역서는 두 달 전에 나왔다. 이렇게 좋은 책이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야 나오다니.

저자들의 히트작 “대체로 해롭지 않은 계량경제학(Mostly Harmless Econometrics)”의 학부 버전이다. 내가 알고 있는 계량 교과서 중 가장 친절하다. 평균, 분산(공분산) 개념과 연산법칙을 아는 독자라면 소화할 수 있다. 심지어 저 개념에도 지면을 할애했을 정도로 친절하다. 물론 다른 개념도 쓰이지만 저자들이 때마다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들은 이 책을 철저히 실용서로 기획한 것 같다. 수식을 최소화하고 핵심을 전달하려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정규방정식이니 최량선형불편추정량(BLUE)이니 하는 용어와 수식에 질려 계량 책을 접은 경험이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전혀 나오지 않는다. 부실공사가 의심되는가? 이론적 배경 설명을 덜어냈을 뿐, 저자들은 추정치를 꼼꼼하게 해석하는 시범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최소한의 계량 literacy가 생기고, 역시 최소한의 실증모형 돌리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수퍼바이저가 업무를 정확히 지시해 준다면 프로젝트 즉시전력으로 일할 수 있다. 한계야 있겠지만. (학부생 RA 가르치기 귀찮아서 쓴 책 아닐까?)

고전적 가정 하의 선형회귀모형에서 출발하여 가정을 하나씩 완화시키는 방식의 표준 전개와 조금 다르다. 목차 순서가 다음과 같다. 무작위 시행 – 회귀분석 – 도구변수 – 회귀단절법 – 이중차분법 – 교육수익률 추정. 여기서 알 수 있듯, MHE와 마찬가지로 무작위대조실험(RCT) 철학에 기초한다. 1장에서 무작위 시행이라는 발상의 탄생과 필요성을 다룬 뒤, 회귀분석부터 이중차분법까지 계량경제학 도구를 RCT 시각에서 해석하며 설명한다. (그러니 2장에서 Omitted Variable Bias 식을 정확히 이해해야 뒤 논의를 편하게 따라갈 수 있다.)

챕터마다 연구방법론 설명에 적합한 사례를 하나 잡고 그 맥락에 의존해서 설명하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보통 교과서는 추상이론 설명 후 응용사례를 소개한다. 이론 설명에 예시를 동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다. RCT 배경 책인만큼 그 방식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RCT 연구자들은 무작위실험 사례의 특성을 철저하게 파고들어 식별전략(identification strategy)을 찾아내곤 한다.

계량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이 책으로 시작해서 Wooldridge의 학부 교과서 Introductory Econometrics (일명 Baby Wooldridge)로 보완하면 될 듯하다. (번역 소식을 전해 주신 모 페친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가 보기엔 당분간 이 조합보다 나은 입문서 조합이 나올지 의문일 정도로 좋다. 한국어 사용자 입장에서는 두 책 모두 번역된 것도 장점이다. (Baby Wooldridge는 전반부만 번역되었기 때문에, 저 책 대신 역자 한치록 교수님의 <계량경제학 강의>를 써도 좋겠다. 바로 MHE로 넘어가는 것도 물론 괜찮은 옵션이다.)

단, 역서 수식 표기(특히 하첨자)에 더러 오류가 있다. 영어 문장 구조를 그대로 옮긴 듯한 직역도 조금 아쉽다. 그래도 충분히 읽을 만한 번역이고, 멋대로 의역한 것보다 이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구루가 얘기해주는” 컨셉인데 이런 글을 한국식 글쓰기로 옮기기 까다롭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Air), 2016.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 2016.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Air), 2016.

이 책은 젊은 나이에 눈부신 성취를 이룬 저자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기록이다. 저자 폴 칼라니티는 인도계 미국인으로 스탠퍼드, 케임브리지, 예일에서 학위를 받았다.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영문학도로 출발하여 의학과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탐구의 일환으로 신경외과 의사가 되었다. 모교 스탠퍼드대학교 병원 교수직을 제의받기 직전 폐암에 걸려 서른여섯에 사망했다.

저자는 먼저 의사가 되기까지 거친 지적 여정을 회고한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한사코 거부했던 직업을 선택하기까지 돌아온 길을 이야기 형식으로 술회한다. 그리고 암 투병을 겪으며 경험한 지적·생애적 전환을 기술한다.

감정적 반응을 유도하지 않는다. 의사이자 철학자로서의 사유를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어린 딸을 생각할 때를 제외하면 격정적인 대목이 없다. 한창 삶의 의미를 고민할 때, 언젠가 죽음을 대면한다면 쓰고 싶다 생각한 글의 전범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담담하게 글을 남기는 사람은 드물다. 아툴 가완디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가 독립이라면, 그걸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묻는다. 칼라니티가 의사로서 남들보다 오래 독립을 지킬 수 있었기에 이 기록이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몇 주 전, 말기 난소암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여성이 뉴욕타임스에 자기 남편은 좋은 사람이며, 함께 해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기고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녀도 전업 작가였다.

읽기 힘들었다. 늘상 들여다보는 책과 달리 수식은커녕 도표 하나 없었고 문장도 평이했다. 분량도 적었다. 그럼에도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평소보다 반 이상 느렸다. 어머니를 떠올린 까닭이다.

나는 어머니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정리하길 바랐다. 어머니는 간호사, 종교인이자 “똑똑한 셋째 누나”였다. 글도 잘 쓰셔서 학부모 글쓰기 대회에서 입상도 몇 차례 하셨다. 어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간호사로서 가진 난소암에 대한 지식과 경험, 살고 싶다는 소망, 목회자로서 의연하게 하느님 뜻을 따라야 한다는 당위 사이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해하지는 못했다. 어째서 병증에 대한 지식이 공포로만 귀결되는가.

길을 찾기 위해 나는 몇 권의 책을 읽었다. 싯다르타 무케르지가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에 “암 환자는 생의 새로운 정상상태(new normal)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쓴 말을 옮긴 날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 말은 뒷전이고 내가 상황을 파악하려 그 두꺼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더 기뻐했다. 답답했다.

칼라니티의 수려한 문장을 빌려 그런 어머니를 조금 이해했다. 그는 어린 딸 케이디에게 짧은 편지를 남긴다.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생애사 정리를 권할 게 아니라 내가 귀 기울였어야, 길 잃은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갔어야 했다.

톨스토이는 죽어가는 인물의 심리를 충격적인 묘사로 정리한 바 있다. “아무도 그를 그가 원하는 만큼 동정하지 않았다.” 이 무심한 자는 그 대목을 읊조리면서도 어머니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인텔리의 언어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귀가 없단 말인가.

책을 다 읽고 며칠 뒤 꿈을 꾸었다. 얄궂은 꿈이었다. 초기 갑상선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다. 재활 중 눈 뒤에 악성 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시간이 교묘히 뒤틀려, 첫 수술 때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 재활을 다짐하며 같이 잘 해보자고 말할 때 어머니는 돌아보지 않았다. 의사는 두 번째 종양 소견을 내놓으며 리스크가 크니 선택은 본인의 몫이라고 말했다. 말의 심연 속에서 한참 헤매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났다. 돌아보지 않던 얼굴이었다. 한참 울다 깨어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목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구약성서 창세기가 연상되는 표현이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보다 세련된 언어로 나를 일깨워 주어 감사하다. 바람 된 그의 숨결이 안식하기를 빈다.

“나는 스탠퍼드에서 영문학을, 케임브리지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하며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그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 나는 죽음의 두 가지 수수께끼인 경험적인 징후와 생물학적인 징후, 즉 아주 인격적이면서도 철저히 비인격적인 측면들을† 파헤치기 위해 의학을 탐구했다.”

“폐암 진단은 확정되었다. 내가 신중하게 계획하고 힘겹게 성취한 미래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무척 익숙했던 죽음이 이제 내게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죽음과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지만, 아직 죽음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치료했던 수많은 환자들이 남긴 발자국을 보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기로에 선 내 앞에 보이는 거라곤 텅 비고, 냉혹하고, 공허하고, 하얗게 빛나는 사막뿐이었다.”

“모든 사람이 유한성에 굴복한다. 이런 과거 완료 상태에 도달한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대부분의 야망은 성취되거나 버려졌다. (..) 돈, 지위, <전도서>의 설교자가 설명한 그 모든 허영이 시시해 보인다. 바람을 좇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 : 역자는 “personal and impersonal”을 “개인적이면서도 비개인적인”이라고 옮겼다. 문맥상 “인격적이면서도 비인격적인”이 맞다고 생각한다.

김경만,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2015.

김경만,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2015. 서평은 아니고 메모.

김경만,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2015.

존잘러가 쓴 한국 사회과학계 현실 비판서이자 본인 학술이력 자기민속지. 민속지를 가장한 자기 PR로 읽을 수도 있다. 저자의 의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학문적 진로를 희망하는 학부생을 위한 안내서로도 훌륭하다. 김종영 교수의 <지배받는 지배자>와 함께 읽으면 그 책이 제시한 “Academia Immunda(학문은 더럽다)”는 명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 책 모두 부르디외 이론을 원용한다는 점에서 이들도 “지배받는 지배자”이며 “글로벌 지식장 상징폭력”의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전반부에서 한국 사회과학계(저자가 속한 사회학)를 가차없이 비판하고 후반부에서 본인이 학계 내 상징자본을 획득한 과정을 상술한다. 먼저 김경동, 조한혜정, 강정인, 한완상 등 국내 유명 학자들을 시쳇말로 극딜한다. “서구에 종속되지 않은 한국적 사회과학”, “우리 땅에서 적실성 있는 학문”이라는 무의미한 기치에 매몰되었다고 지적한다. 소위 적실성을 따지기 전에 글로벌 학문 장에 맞는 수준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적실성 구호 자체가 허황되었으며, 이들의 학술적 기여와 교육 모두 엉망이라고 융단폭격을 가한다. 학자들이 “일반인을 위한 OO학” 류 대중서적, 강연 등에 골몰하는 행태도 비판한다.

후반부에서는 본인이 박사과정 시절부터 현재까지 겪은 학계 이야기를 부르디외의 장 이론을 축으로 서술한다. 저자는 학계 컨텍스트를 예로 들어 장 이론의 주요 개념을 설명한다. 학생이 지식 장의 규칙을 체득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아비투스), 학술활동이 유의미하며 일생을 걸 만한 일이라는 공모(일루지오), 축적된 학술활동 성과(상징자본), 상징자본을 가진 선행연구자의 저작을 읽어야 한다는 암묵적 “강요”(상징폭력) 무엇을 읽을지, 무엇이 가치있는 탐구 대상인지 설정하는 권한을 둔 경쟁(상징투쟁). 그리고, 한국 학계에는 상징자본이 될 만한 독창적 이론/이론가가 없으므로 서구 학자들이 행사하는 상징권력에 의해 상징폭력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뒤에는 논문을 완성하고 투고하는 과정, 학계 내 역학 관계 등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다른 교수에게 논문 논평을 요청했다가 대판 싸운 일화가 아주 흥미롭다. 학자들도 사람이라는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모든 것은 상징투쟁이며, 저자는 그가 상징투쟁을 통해 획득한 상징자본을 전시하며 독자에게 상징폭력을 행사한다. 전반부에 한국 사회과학계를 비판한 것도 상징폭력의 일환이다. (굳이 이런 식으로 쓰는 까닭은 저자 본인이 책에서 이렇게 언급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뛰어난 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 납득할 만한 내용이었는데, 솔직히 “대가”들의 자필 편지를 일일이 사진찍어 실은 걸 보면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어쨌든 국내 석사과정 정도 거치면 이런 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저자처럼 개념화하지는 못하겠지만. 학계에 대한 환상을 가진 학부생이 읽으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나로서는 유학을 앞두고 읽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상징자본은커녕 박사학위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 전에 내게 pacific-wide한 어장관리를 하고 있는 학교들이 과연 최종 어드미션을 줄까. 이러다 보면 저자가 쓰듯 “우리가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한국의 현실은 해외유학의 역사가 반세기를 넘겼지만 아직도 숱한 학생이 박사학위를 받으려 미국과 유럽의 명문대학으로 떠난다는 사실이다. 왜일까?”라는 질문을 부질없이 다시 던져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답은 잘 알고 있다.

덧. 저자는 경제학과 출신이다. 학부생 때 교재며 이론이 모두 영미의 것이었기 때문에 경제학을 때려치우고 사회학을 택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학자와의 서신에서 이렇게 쓴다. “비록 경제학은 과학장의 요건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부르디외가 이상적으로 상정한 자연과학 모형에 가장 가깝지만, 경험적 타당성에서 평가할 때 완벽한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들부들…ㅋㅋㅋㅋㅋ (경제학이 경성과학hard science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고민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RCT 하는 사람들은 – 가령 Duflo – 그렇게들 말하던데, 나는 아직 유보적이다.)

스티븐 스티글러, 『통계학을 떠받치는 일곱 기둥 이야기』, 2017.

스티븐 스티글러, 통계학을 떠받치는 일곱 기둥 이야기, 2017. 서평은 아니고 메모.

스티븐 스티글러, 『통계학을 떠받치는 일곱 기둥 이야기』, 2017.

1. 책 소개에 “이 책은 통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전문적으로 통계를 다루는 사람 모두에게 매력적인 도서로…” 라고 쓰여 있다. 아니다. 기초 통계학을 모르면 읽을 수 없다.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불친절한 저자를 욕하며 책을 덮게 될 거다. 제목만 보면 일곱 기둥을 설명한 뒤 그걸로 통계학이라는 집을 지어 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말하자면 이런 느낌이다. “너 통계학이란 집에 살지? 니네 집 기둥 7개가 요렇게 만들어졌고 조렇게 집을 지탱하고 있음 ㅋ” 일단 그 집에 살아야 한다는 얘기. 문면만 파악하려 해도 조건기대(분포)의 성질과 최소자승추정법, 베이즈 추론의 기본을 알아야 한다.

2. 배경지식을 알면 대단히 재미있다. 현재 배우는 깔끔한 이론이 형성된 과정과 그 과정을 주도한 거인들을 만날 수 있다. 개념을 알기 위해 반드시 개념의 형성사에 달통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형성사를 통해 이해가 깊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동 저자가 쓴 『통계학의 역사』가 두꺼워서 부담스럽다면 이 책만 읽어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듯.
가령 회귀분석의 경우를 보자. 회귀regress가 골턴Galton의 “평균으로의 회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내가 본 교과서 대부분은 저 사실을 언급했다. 간단히만 언급했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이 책은 골턴의 선구적 연구를 인상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내 수준이 그렇고 그렇다는 걸 감안하면 더 알수록 더 재미있지 않을까.

2-1. 골턴도 골턴이지만 2-3장 “정보 측정”, “가능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계량경제학 베이스로 통계학을 공부해선지 2-3장은 주제부터 익숙하지 않다. (1, 4-7장은 그나마 낫다) 당장 최우추정법 배울 때 피셔 정보행렬Fisher Information Matrix이 나오자 모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이름이 왜 ‘정보행렬’인지 묻지 마라. 비생산적이다.” 이게 궁금한 경제학도는 이 책을 보면 된다. 엄연히 의미가 있다.

3. 번역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직역을 넘어 번역기 수준 문장은 그렇다 치자. 역자가 전산통계 전공이라 해서 기대했는데 솔직히 책을 100% 이해했는지 의문이다. 뒤로 갈수록 의혹이 짙어진다.

가령 제5장 “회귀”에 Stein’s Paradox가 나온다. 원저자 설명이 대단히 압축적이긴 하지만 통계 전공자라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나도 아니까). 그런데 역서로는 도무지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다. 당장 수식 하첨자 틀리는 건 차치하더라도, 내용을 이해했다면 나올 수 없는 번역이다. 아는 내용도 더 헷갈리게 하는 마법같은 번역. 어찌어찌 읽다가 여기서 결국 원서를 펼치고 말았다. 경제사상사 명저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섬세한 번역이 떠오르며 아쉬움이 더했다. 사실 책 소개 첫 문장부터 알아봤어야 한다. “통계학에 과학으로서의 독특함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김훈 문장력 바라는 게 아닌데…ㅠㅠ

* 자세히 짚는다. 스티글러 교수는 Stein’s Paradox를 다룰 때 어김없이 나오는 “naive estimator” (혹은 “obvious estimator”)를 말로 풀어 설명한다. “At the time, it was taken as too obvious to require proof that one should estimate each μi by the corresponding Xi.” (여기서 Xi ~ N(μi, 1). i= 1, .. k, 각 Xi는 독립.) 이 문장이 이렇게 번역되었다. “당시에는 해당 X에 따라 각 mu를 추정해야 하는 것을 너무 당연히 여겨 증명이 필요 없었다.”

나라면 이렇게 번역한다. “당시에는 μi의 추정량으로 그에 대응하는 X값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증명이 불필요할 정도로 당연하게 여겨졌다.” 더 나은 문장을 찾을 수야 있겠으나, 핵심은 μi hat = Xi 라는 등식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내용을 안다면 이렇게 옮겨야 한다. 그래야 이 뒷 문단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역자가 “the corresponding Xi“를, 나아가 앞뒤 내용 전체를 이해하고 번역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2016년 읽은 책

작년에는 총 30권(시리즈물은 1권으로)의 책을 읽었습니다. 개인사와 학위논문이 겹쳐 책을 많이 읽지 못했네요. 앞으로도 주로 전공서나 논문을 읽을 것 같아서 단행본 독서량은 줄어들 듯… ㅠㅠ 어쨌든 읽은 책을 별점과 함께 소개해 봅니다.
* 5점 만점이지만 인플레를 막으려고 점수를 짜게 매기는 편이라, 사실상 4점 만점으로 보시면 됩니다. 별 4개 반-5개는 최소 “올해의 책”인 것이지요.

 

2016년 읽은 책 (분야, 별점(5점 만점) 순)

I. 교양(인문, 자연)

  1.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언 모리스 ★★★★☆
  2.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김시덕 ★★★★
  3.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
  4.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 아툴 가완디 ★★★★
  5.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박훈 ★★★☆
  6. 노벨상과 수리공, 권오상 ★★★☆
  7. 번역의 탄생 이희재 ★★★☆
  8. 갈등하는 번역, 윤영삼 ★★★☆
  9. 틀리지 않는 법, 조던 엘렌버그 ★★★
  10. 자유를 위한 탄생: 미국 여성의 역사, 사라 에번스 ★★★
  11. 플루토크라트,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
  12. 글쓰기 달인이 되려면 잘못된 문장부터 고쳐라, 박찬영 ☆

 

II. 경제

  1. 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 Goldin & Katz ★★★★★
  2. 환율의 미래, 홍춘욱 ★★★★
  3. 파생금융 사용설명서, 권오상 ★★★★
  4. 기아와 기적의 기원, 차명수 ★★★☆
  5.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 유리 그니지 & 존 리스트 ★★★☆
  6.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아비지트 배너지 & 에스테르 듀플로 ★★★☆
  7. 기업은 투자자의 장난감이 아니다, 권오상 ★★★☆
  8. 부동산은 끝났다, 김수현 ★★★☆

 

III. 소설

  1. 이반 일리치의 죽음, 톨스토이 ★★★★☆
  2. 채식주의자, 한강 ★★★★
  3.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더글러스 애덤스 ★★★☆

 

IV. 종교

  1.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게르트 타이센 ★★★★
  2. 떠나보낸 하느님, 돈 큐피트 ★★★☆
  3. 세속도시, 하비 J. 콕스 ★★★
  4. 종교의 세속화: 사회학적 관점, 이원규 ★★☆
  5.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 톰 라이트 ★☆

 

덧. 2016년 경제학 학술논문 (practical issues) Best 3

  1. Autor (2015), “Why Are There Still So Many Jobs? The History and Future of Workplace Automation”,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 Gentzkow & Shapiro (2014), “Competition and Ideological Diversity: Historical Evidence from US Newspapers”,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3. Gentzkow & Shapiro (2006), “Media Bias and Reputation”,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Autor(2015) 아주 쉽고 분량도 30페이지가 채 안 됩니다. 수식도 하나 없고요. 장담하는데 제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잡서 100권보다 나을 겁니다. 이쪽 관심 있으신 분들 읽어 보세요. Gentzkow & Shapiro(2014)는 저것보단 좀 어려운데 반지성주의와 정치적 양극화 시대의 미디어 산업, 특히 이념적 다양성을 이론적/실증적으로 다루는 멋진 논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