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자와 젊은 여자, 한국 뉴스의 클리셰”라는 클리셰 기사 리뷰

최근에 뉴스 진행자 선정의 성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이런 기사가 좀 돌았다.

중년 남자와 젊은 여자, 한국 뉴스의 클리셰

진중한 중년의 기자 출신 남성 앵커가 뉴스의 시작을 알린다. 그 옆에는 젊은 아나운서 출신의 여성이 앉아있다. 분명 남성과 여성이 함께 뉴스를 진행하지만, 시청자에게 둘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지난 2015년, 지상파·종합편성채널·보도 전문채널의 뉴스 프로그램을 조사한 결과 20대 남성 앵커, 50대 여성 앵커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온 문제라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럴 듯한 통계자료를 가져와서 논지를 뒷받침한다는 점이 새로운 기사. 그런데…

그럴듯한 표제를 뽑았으나 완전히 틀린 글이다. 결론을 먼저 정해 두고 통계를 끼워 맞춘 사례다. PC한 결론이라고 해서 논증책임을 면제받지 않는다. 논증 이전에 기본 팩트체크부터 틀렸다. 여성 메인 앵커 1호는 79년 이병혜 KBS 아나운서가 아니다. 박찬숙 전 국회의원(17대)으로 76년부터 KBS 주말 9시 뉴스 앵커를 맡았다. 아마 한국어 위키피디아를 참조했을 텐데 위키를 참고자료 삼는 건 학부 1학년 때로 족하다.

이 글은 방송3사 역대 메인 뉴스 앵커 성별 평균연령을 가지고 “40대 남성, 20대 여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법칙”을 말한다. 결국 문화규범 내지 연령 차별 이야기다. 그런데 논의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명시적 차별일 수도 있으나 다른 문제의 결과일 수도 있다. 달리 말해 저 현상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는 규범의 결과일 수도 있고, 다른 요인에 의해 중년 이상 여성들이 메인 뉴스 앵커를 맡지 못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원인이 외모·연령차별인 경우와 경력단절인 경우는 대응 방안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자료해석도 엉망이다. 필자가 제시한 연도별 추이에는 아예 의미가 없다. 앵커가 연도별로 교체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MBC 뉴스데스크 여성 앵커는 1988년부터 1996년까지 일부 기간을 제외하면 내내 백지연 아나운서였다. 이 기간 동안의 여성 앵커 연령 증가분을 성별 앵커 연령 격차 변화로 해석할 수 있는가? 이건 그저 근속기간 효과다. 당연히 변동폭에도 전혀 의미가 없다. (염두에 두었다는 변명은 미리 기각한다. 전기간 추세선을 그리면 안 된다.) 필자의 주장를 입증/반증하는 근거는 이게 아니다. 평균 앵커 담당 기간과 하차 시점 연령, 앵커 교체 시점의 신규 앵커 연령을 성별로 따져야 한다.

기사에 첨부된 이 도표는 완전히 틀렸다.

현실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먼저 혼성 앵커 페어에서 가능한 성별·연령별 조합을 따져 보자.

여성
중년청년
남성중년12
청년34

현재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조합은 2번이다. 다른 조합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4번 조합은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 문제로 실현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1, 3번 조합이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조합 모두 중년여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인 뉴스 여성 앵커들의 담당 기간과 하차 시점 연령을 살펴보자. 위에서 언급한 백지연 아나운서는 결혼과 함께 9년간 앵커를 맡았던 뉴스데스크에서 하차했다. 최초 메인 뉴스 단독 여성 앵커였던 신은경 아나운서는 87년 2월부터 92년까지 KBS 주말 9시 뉴스를 단독으로 진행했고, 유학을 떠나며 하차했다. 이외에도 과거 기록을 살펴보면 오랫동안 뉴스를 담당한 여성 앵커들이 많다. 담당 기간이 남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 앵커가 얼굴마담에 불과하다면 자주 교체되어도 무관하지 않을까?

정확히 산출한 통계는 없지만 신규 여성 앵커 연령은 대부분 20대 후반이다. 남성은 40대 중후반이다.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40대 중후반 여성을 앵커로 뽑을 수 있는가? 30대 초반에 결혼한 여성이 바로 출산한다고 가정하면 40대 중후반은 육아로 한창 바쁘거나 간신히 육아 부담에서 여유를 찾는 시점이다. 아이를 둘 이상 낳던 과거에는 당연히 한창 바빴을 테다. 간판 프로그램의 업무부담을 소화하기 어렵다. 백지연 아나운서 얘기를 계속 하게 되는데, 출산 직전까지 뉴스데스크 앵커를 담당했던 백 아나운서도 복직 후에는 아침 뉴스를 진행했다. 즉, 40년 넘는 방송뉴스 역사는 차별보다 경력단절 가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초기 여성 앵커들은 보조 역할에 머물렀다. 서두에 언급한 박찬숙 전 의원은 본인이 앵커를 맡게 되리라는 걸 알게 된 남성 앵커들의 반발이 극심했다고 술회했다. 그럼에도 혼성 구도가 도입되었다. 혼성 구도 도입이 여성들에게 악영향을 미쳤을까? 젊은 여성이 전시된다는 결과론적 비판에도 일리가 있으나, 혼성 페어는 일종의 적극적 조치(할당제)와 같다. 오히려 긍정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 최초 동기는 알 수 없으나 젊은 여성들이(나마) 메인 뉴스 앵커를 맡은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었고, 긍정적 파급효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메인 뉴스 단독 여성 앵커는 2006년에야 등장했다. 신은경 아나운서는 87년이었다. 무려 20년 앞선 일이고, 임시 앵커도 아니었다. 연령 불균형을 감내하고서라도 혼성 구도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경력단절이 바람직하거나 정당화되어야 할 현상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앵커 연령 격차를 단순히 명시적 차별과 관행의 결과라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차별과 관행의 문제라면 적극적 조치의 일환으로 연령할당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경력단절이라는 더 큰 문제 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연령할당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이 경우 근무 여건 개선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성평등 관련 문제는 복잡하다. 결론을 정해 두고 사람의 선입견을 재확인 내지 재생산하는 기사는 매우 해롭다. 어설픈 통계를 들어 논증이 객관적인 것인 양 포장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나는 방송사 내부 사정을 알지 못하며 40년간의 변화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 아마 이 글 필자도 그럴 것이다. 그럴수록 자료를 주의깊게 해석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원글 링크는 따봉 1,800여개를 받고 184회 공유되었다. 글 팔기에 성공한 필자가 즐거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성평등 논의 수준을 다시 한 번 정체시켰다. 대체 누가 클리셰인가? 이 점을 지적하려 지금까지 장황하게 썼다. 이제 제자리걸음을 그만둘 때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