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할당제가 스웨덴 정계에 미친 영향

영어를 못하는 나 자신을 매일 저주하며 ESL을 수강하고 있다. 다음 학기에 다시 듣게 되는 참사를 피하려면(…) 반드시 패스해야 한다. 평가기준은 발표. 학기 중 프레젠테이션을 네 번 시키고 그걸 토대로 TA 수행 가능 여부를 평가한다.

내일 세 번째 프레젠테이션이 있다. 지금까지는 간단한 경제학 개념을 다루었는데, 입문 과목부터 개념의 연결고리가 중요한 경제학 특성상 두 번 만에 밑천이 바닥났다. 대뜸 수요의 가격탄력성 얘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GDP의 측정” 같은 걸 할 수도 없고. 하려면 하는데 당장 나부터 재미가 없다. 하여 실증연구 소개로 방향을 돌리고, 만만한(..) 미국 성별 임금격차 현황을 다룰 예정이다.

모든 발표자는 사전에 강사와 주제 적합성을 상의해야 한다. 주제가 gender wage gap이라고 했더니 강사 曰 “이런 거 보통 여성 학자들이 연구하지 않아? 너 참 신기하단 말이야.” 이쪽 연구자가 여성이거나 부부인 경우가 많긴 하다.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따끈따끈한 실증연구 하나 간단히 소개할까 한다. 여성할당제에 관한 논문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여성할당제는 제도 도입 이래 숱한 논란을 낳았다. “할당제 때문에 더 나은 후보를 뽑지 못한다!”가 가장 흔한 비판이다. 이는 능력주의 및 사중손실deadweight loss 개념에 기반한 전형적인 경제학 논리이기도 하다.

반대 의견도 있다. 여성할당제가 존재할 경우 (여성의 진출이 “보장” 되므로) 여성 집단 내 경쟁이 강화되며, “탈락”의 위기에 처한 남성들 내에서도 경쟁이 강화되어 결과적으로 더 뛰어난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맞을까?

Besley, Folke, Persson, and Rickne (AER 2017)*은 스웨덴 정계에서 여성할당제가 도입된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분석했다. 사민당Social Democratic Party은 1993년 후보자 명부를 남녀교대로 작성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왠지 익숙하다면 맞다. 이 제도는 한국에도 비례대표 남녀교호순번제라는 이름으로 도입되어 있다. 사실상 50:50 할당제인 이 제도는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당제의 효과는 긍정적이었다. 할당제가 바람직한 결과를 낳았다는 경제학 논문, 생소하지 않은가? 여하튼 논문에 따르면 남성 후보군 내 경쟁이 가열되며 “그저그런 남성 정치인mediocre male leaders“들이 무더기로 사퇴했다. 그뿐 아니라 차기 선거에서는 이들이 사퇴한 지역에서 정당 지지율이 가장 크게 상승했으며, 여성 정치인들이 그들을 대체한 지역에서 특히 상승폭이 컸다.

저자들은 “여성할당제는 성별 대표성의 평등이라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그저그런 남성 엘리트층의 자리 보전을 돕는 정치적 힘을 교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라는 문장으로 논문을 끝맺는다. 앞서 언급한 두 주장 중 후자를 지지하는 셈이다. 참고로 논문 공저자 넷 중 여성은 한 명 뿐이다.

다음은 논문 초록 마지막 문장.

Far from being at odds with meritocracy, this quota raised the competence of male politicians where it raised female representation the most. We argue that resignation of mediocre male leaders was a key driver of this effect.

이 결과를 모든 할당제에 대해 일반화할 수는 없다. “적어도 스웨덴에서”, “적어도 대중의 지지율/득표율이 성과의 지표가 되는 정계의 경우”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받아들이는 편이 적절하다. 하지만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능력주의 논증에도 반론과 반증이 존재한다는 사례로도 이해할 수 있다. 아, 경제학계 최고 학술지에 게재되었으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떠올릴 수 있는 반론은 대부분 논파될 것이다.

비단 이 건이 아니더라도 경제학적 사고/연구(의 부산물)를 근거로 본인의 편견을 강화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한다. 일전에 최저임금 건으로도 한 번 썼지만 꽤나 아쉬운 일이다. 이 글은 그렇게 전유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마 지나친 바람일 것이다.

다음은 원문 링크.

 

American Economic Association

Besley, Timothy, Olle Folke, Torsten Persson, and Johanna Rickne. 2017. “Gender Quotas and the Crisis of the Mediocre Man: Theory and Evidence from Sweden.” American Economic Review, 107(8): 2204-42. DOI: 10.1257/aer.20160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