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야민 아펠바움, 경제학자들의 시간: 거짓 선지자들, 자유시장, 그리고 사회의 분열

빈야민 아펠바움, 경제학자들의 시간: 거짓 선지자들, 자유시장, 그리고 사회의 분열
빈야민 아펠바움 (Binyamin Appelbaum)
경제학자들의 시간: 거짓 선지자들, 자유시장, 그리고 사회의 분열 (The Economists’ Hour: False Prophets, Free Markets, and the Fracture of Society)
 
대부분의 국가에서 1950년대에 비해 의사가 훨씬 많아졌다. 기대수명도 늘어났다. 경제학자도 많아졌다. 그게 우리의 삶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켰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 빈야민 아펠바움이 팟캐스트 대담에서 던진 도발은 경제학과 대학원생을 낚기에 충분했다.
 
2차 세계 대전 후 경제학자들은 공공정책과 공론장, 나아가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이는 정책의 형태와 목표를 바꾸는 데도 일조했지만 무엇보다 정부 개입의 범위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적어도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그들은 모든 전선에서 승전을 거듭했다. 아펠바움은 이들 변화가 일어난 시기를 경제학자들의 시간이라고 명명한다.
 
아펠바움의 입장은 단순하다. “경제학 혁명은 너무 멀리 갔다.” “시장은 위대한 발명품이지만 모든 사람을 구원하지는 않는다.” “자유시장이 만들어낸 불평등은 오늘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즉, 그는 현대 경제학의 기여와 성과를 인정하나 근본적인 시선은 시장을 사회에 배태된 제도로 본 칼 폴라니에 닿아 있다. 실제 본문에서도 저 유명한 “사회와 경제의 이중운동 (dual movement)”을 인용한다. 그렇게 보면 새로울 것이 없다. 이런 책은 2008년 이후 무수히 많이 나오지 않았던가. 자유시장 정책 패키지를 가장 충실히 따른 국가들의 실패를 조망하며 칠레, 피노체트, 아옌데 얘기를 또 꺼내는 대목은 진부하다 못해 고루했다. 그러니 현대 경제학의 모순을 꿰뚫는 통찰이나 통렬한 비판을 바라고 이 책을 집어든다면 십중팔구 실망할 것이다.
 
이 책은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정책과 공론장,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바꾸었는지를 추적하는 저널리즘이다. 그러니까 경제학이 아니라 경제학자 이야기다. 짐작하듯 밀튼 프리드먼과 조지 스티글러를 위시한 70년대 시카고 경제학자들이 주연으로 등장하지만, 이들을 악역으로 묘사하는 진부한 전개를 택하지는 않는다. 아펠바움은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여 이들이 정치인과 일반대중에게 자유시장이라는 사상을 세일즈하는 데 성공하는 과정을 재구성한다. 완전변동환율제 같은 과감한 상상, 비용편익분석처럼 생소한 도구가 현실에 자리잡기까지 누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 때로 어떤 은밀한 배경이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경제학 10년 전공하면서도 처음 보는 이야기가 즐비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답게 글빨 하나는 확실하다. “거짓 선지자” 라는 어그로부터 범상치 않다. 제목의 의미를 넘겨짚자면, 저자는 이름에서 짐작하다시피 유태인이며 거짓 선지자라는 표현-메타포는 성서에서 유래한다. 구약성서가 그리는 거짓 선지자들은 신의 뜻을 사칭하여 임의의 가르침을 전한다. 따라서 자유 시장의 거짓 선지자란 표현은 경제학자들이 자유시장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약속했다고 비판하면서도 자유시장과 경제학을 부정하지는 않는 그의 입장을 썩 적절하게 요약한다. 저자는 “내 책은 90%가 내러티브고 10%가 판단인데, 어딜 가도 할애된 시간의 90%를 책의 10%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시킨다”고 불평하지만, 어느 정도 제목을 그렇게 지은 탓도 있을 테다.
 
주인공들이 경제학자일 뿐 저자가 어디서 학자들 말 한두 줄 읽고 망상을 투영한 무협지 아니냐는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다. 그는 집요할 정도로 꼼꼼하게 대화록을 찾아내 주석을 달고,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존하는 경우에도 출처를 최대한 확실히 명기한다. 경제학자들이 직접 진행하는 유명 팟캐스트 EconTalkCapitalisn’t도 인증했다. 우선 Capitalisn’t 호스트인 루이지 징갈레스는 그 자신 시카고 대학교 교수이다. 전형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진보 게스트 여럿을 혹독하게 보내버린 전력이 있는 EconTalk 호스트 루스 로버츠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펠로우)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그는 책에 등장한 이들이 서사에 극찬을 보냈다고 전한다. 그 역시 시카고 경제학 박사로 책에 등장하는 학자 대부분과 친분이 있다.
 
아펠바움 서사의 가치는 무엇보다 경제학이 세계를 변화시키던 영광의 순간에 혁명가들은 당대의 질서(status quo)에 도전하며 치열하게 논증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어느 학문이 그렇지 않겠느냐만 트루먼의 저 유명한 “외팔이 경제학자는 없느냐?”는 말이 시사하듯 경제학은 유독 따지고 논쟁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 상대는 정부 규제와 케인즈일 수도, 또는 불간섭주의 흐름과 프리드먼일 수도 있다. 2000년대 이후 학계에서는 최저임금제에 대한 적대감이 누그러진 것은 물론, 리카도 이래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자유무역도 도전을 피하지 못하여 무역질서 재편의 희생자들을 위한 재분배정책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같은 선상에서 제대로 훈련받은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알듯 시장도 완전한 자원 배분 메커니즘이 아니다. 하여 래리 서머스의 “불완전한 시장, 불완전한 정부 중에서는 전자를 택하겠다”는 말은 차라리 솔직하다.
 
경제학자들의 악덕이 있(었)다면, 학계 내에서 네 가정 틀렸다며 벌이는 격렬한 토론과 대중-대학교육 수준 커뮤니케이션은 내용뿐 아니라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 공세적 선교의 시대는 끝나고 “공짜 점심은 없다” 류의 경제학 기본 원칙은 상식 수준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어떤 명제가 언제 어떻게 성립하는지 따지는 법을 가르쳐야 하지,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가 <맨큐의 10계명>으로 요약되는 교리문답에 그쳐서는 안 된다. 코로나 초기 마스크 대란에서 보았듯 밑도 끝도 없이 시장 원리 네 글자면 논증이 끝난다고 믿는 경우, 동어반복적 기술통계량 몇 개 들이밀며 경알못들 입 닫으라는 경우를 보면 교리문답의 실패를 통감한다. 한편 하버드 경제학 박사학위에 빛나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반대파가 칠레를 베네수엘라처럼 만들 거라는 프로파간다로(“Chilezuela”) 손쉽게 2017년 선거 승리를 이끌었다는 일화를 보면 그 이상의 악덕을 고발하는 목소리에 대답할 말이 궁색해지곤 한다.
 
그럼에도 늘어난 경제학자 수만큼 세계가 좋아졌냐는 아펠바움의 공박에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지난 20년간 미국 백인 노동자 계층의 자살률, 약물 남용, 알코올 중독이 심각해졌고 그 배후에 장기적인 사회구조 변동이 있음을 체계적으로 보고한 학자들은 프린스턴 경제학자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튼이었다. 금융위기는 물론 코로나바이러스 위기 대응에 있어도 경제학 연구 성과는 분명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거짓 선지자라는 놀림에는 여전히 타당한 구석이 있다. 경제학자들이 선호와 제약을 구분하며 드러난 행동의 동기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작지만 확실한 인과적 경로를 찾아낼 때, 나아가 그런 사고방식 전파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때 비로소 야유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학계의 말석에 끼려는 대학원생이 더 말할 것도 없이, 이미 상당 부분 일어나고 있는 변화라고 믿는다.
 
 
아래는 간단한 요약. 1-7장은 대체로 괜찮은데 8장부터 좀 늘어지기 시작해서 9, 10장 읽다가 때려치울 뻔했다. 좀 익숙한 독자에겐 차라리 2장 케인즈 대 프리드먼이 장벽일 수도 있다. 워낙 여기저기서 다뤄진 내용이라 지루하다. 1장이 워낙 잘 쓰여져서 더욱 비교체험 극과 극이기도 하고.
 
프리드먼이 제안한 징병제 폐지는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을 통해 닉슨 행정부의 승인을 얻었다. 아카데미 경제학이 현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신호탄이었다. (1장)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를 전후해 무기력에 빠진 케인지언 “행동주의 경제학”을 대체할 새 교의로 통화주의가 등장했다. (2장) 인플레이션 – 실업률 관리 목표가 상충할 때 낮은 실업률을 우선하던 정책 당국자들은 실업률을 다소 희생해서라도 인플레이션을 관리해야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고, 볼커 시대 이후 2-30년간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관리를 제1사명으로 삼기에 이른다. (3장)
 
레이건 시대에 이르러 로버트 먼델식 감세론과 아서 래퍼의 공급 중시 경제학은 공화당의 기조를 아이젠하워 식 재정 보수주의에서 감세와 정부지출 삭감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 (4장) 조지 스티글러를 위시한 경제학자들은 반독점 규제의 근간을 공정과 정의 대신 소비자후생과 효율성 보호로 대체하며 법률가들로부터 경쟁법을 빼앗는 데 성공하며, 반독점법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5장) 스티글러의 세례는 공화당과 보수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카터는 탈규제를 밀어붙였고, 그의 단임 임기 중에 규제산업의 대표이던 항공업을 자유화시켰다. (6장) 이 즈음 비용편익분석은 정책평가방법론의 주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래도 생명의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다고 믿던 진보 진영이 추진한 공공 및 직장 내 안전 규제가 번번이 비용편익분석의 벽에 부딪혔을 때, 이들의 제일 조력자는 다름아닌 생명의 가치를 높게 산출한 경제학자 킵 비스쿠시였다. 그렇게 모두가 비용편익분석으로 개종한다. (7장)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언이 불가피했다 해서 그 출구가 반드시 변동환율제가 될 필요는 없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스미소니언 협정). 그러나 프리드먼 등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통화가치의 불안정성을 억제한다는 논리로 변동환율제를 탄생시켰다. 약속했던 통화가치와 무역질서 안정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8장) 자유 시장 경제학의 가장 충실한 학생들은 경제 발전에 실패했다. 시카고 보이들이 경제정책을 주도한 칠레와 공대식 계획경제 타이완의 대조가 이를 보여준다. (9장) 아이슬란드의 이전가능 어업권 쿼터제는 금융화와 맞물려 막대한 경제 붐을 가져왔지만, 잔치가 끝났을 때의 대가도 컸다. (10장)
 
마지막으로. 칼럼니스트라 그런지 챕터 작제 실력이 나쁘지 않다. 단순 패러디가 아니라 챕터 내용도 훌륭하게 요약하는 한편, 생각해 보면 내용 자체가 원 맥락과 적절한 대조를 이룬다.
  • 3장. One Nation, Under Employed (링컨의 One Nation, Under God)
  • 4장. Representation Without Tax (물론 보스턴 티파티의 No Tax Without Representation)
  • 5장. In Corporations We Trust (물론 In God We Trust)
  • 6장. Freedom from Regulation (규제로부터의 자유 – 루스벨트의 4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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