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12주차까지 흘러왔는지, 시간이 빠르다. 이번 학기 일기를 1주차부터 넘겨 보았는데 이게 벌써 이렇게 오래된 일인가 싶다.
– 처음에는 생활하는 이야기도 적고 싶었는데, 생활이란 게 딱히 없다. 한인 커뮤니티는 상당히 큰 편이지만 내가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 굳이 그래야 하나 싶기도 하고.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와도 아직 잘 버티고 있고, 나는 그리 많은 사회적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동기들이랑 잘 지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 그래도 Thanksgiving 때 친구들과 파티를 하기로 했다.
– 유튜브의 클래식 공연실황 감상에 취미를 붙이고 있다. 내 음악적 소양이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음악사 쪽지식이 전부라, 뭘 알고 듣는다고 볼 순 없고… 아무튼 피아노 협주곡 위주로 듣고 있다. 이번 주에는 줄곧 이 연주를 들었다. 박사과정 하면서 영화나 음악 중 하나를 골라서 파 봐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 미시 2 중간고사가 끝났고, 다음 주에는 거시 2 중간고사와 확률통계 중간고사가 있다. 아직까지 공부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문제가 없어서 문제다.
– 배우는 입장에서 말을 아끼고 싶지만, 적어도 이번 모듈까지는 코스웍이 너무 널널하다. 일단은 Math Camp가 없어서 기초 수학과 통계를 정규과목으로 수강하기 때문이다. 박사과정 들어와서 Hogg & Craig 앞부분 수업을 듣고 있는 심정이란. 이번 주에야 이변량분포를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또 시험은 시험이고 내가 수리통계학을 들은 게 벌써 3, 5년 전이니 (각각 대학원, 학부) 문제풀이 감각은 챙겨가야 한다. 공부는 해야 하는데, 옛날에도 숱하게 풀었던 문제들이니, 지루할 수밖에… 다시 공부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는데 슬프게도 머리가 나빠서 문제를 풀려면 다시 좀 보긴 해야 한다.
– 확률통계는 그렇다 치고, 진짜 문제는 미시다. 왜 온통 application 위주로 수업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게 학부 수업도 아니고. 존재증명은 그냥 슬라이드 슥슥 넘기고 끝내기 일쑤. 이제 일반균형 파트가 끝났는데 Debreu-Sonnenschein-Mantel Theorem을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Mas-Colell 기준 15-16장만 했다는 이야기. 아니 무슨 MRS MRT 비교하다가 일반균형이 끝납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얼굴에 침 뱉기지만… 심각한 얘기다. 다음 파트로 넘어갈 때 진심으로 울적했다. 프로그램의 방향은 진작에 알고 있었고, 이 프로그램이 미시이론가를 배출하는 곳은 아니라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적어도 코스웍에서 다루어야 하는 깊이란 게 어느 정도 합의가 되어 있지 않나? 다른 학교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강의노트가 돌아다니니까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ㅠㅠ ㅠㅠ.. 문제는 이분이 남은 미시 시퀀스를 전부 담당한다는 것이다. 미시 1 교수가 그립다. 그런데 이 수업도 시험은 시험대로 봐야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사실 애시당초 1년차 대학원생이 뭘 자기 맘대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어불성설.
– 거시는 그냥저냥. Ljungqvist and Sargent 따라가고 있다. 이것도 진도가 빠르다고 보긴 어렵다. 많이 배우는게 대수냐… 하겠지만… 글쎄……. 지난 모듈 거시 교수 – 그러니까 테뉴어를 못 받은 ㅜㅜ – 가 훨씬 괜찮았다. 연구실적은 이분이 낫지만. 지난 주인가 AER 하나 게재확정되었다고 한다.
– 우연히 Penn 이상목 교수님이 박사과정 때 JPE에 게재한 페이퍼를 보았다. 단독 저자는 아니지만 그게 대수인가? 저 논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은 대학원 미시 첫 시퀀스가 전부다. 와 와… 후… 비교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누구나 자기 길을 걷게 되어 있다.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지 생각할 뿐이다.
– … 보통의 경우는 이런 잡상을 코스웍에 치여서 못 한다고 생각한다. 휴우… 1년차 생활의 지상목표는 퀄 통과다. 당분간 그것만 생각하자. 어쨌든 한국에 가면 상담을 좀 받아봐야겠다. 예상되는 답이야 있지만,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