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현상유지편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아니다 (조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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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내가 썼더라면, 싶은 글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제목은 내가 붙인 것이다.

“경제학은 그렇게 협소하지 않다.”


1. 제도적 관점에서 볼 때, 시장은 소유권을 정의하고 보장한 후, 자발적 교환을 통해 자원을 배분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2. 세상에 시장 메커니즘으로 모든 재화의 배분이 이루어지는 경제는 없다. 일례로, 미국에서 신종 플루가 유행해서 사망자들이 발생하는데 막 백신이 생산되면, 그걸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사람에게 파는 식으로 공급하지 않는다. 그 독감이 걸렸을 때, 사망확률이 높은 예컨대 임산부, 노인, 어린이 등에 우선적으로 접종을 한다. ‘필요에 의한 분배’라는 소위 ‘공산주의’적 방식도 자본주의가 크게 발달한 국가의 자원배분 방식에 섞여있다.

3. 현실의 법, 제도하의 정치경제적 과정에서 어떠한 배분과 분배가 일어나게 되는가하는 문제와 그러한 분배가 그 공동체 성원들의 윤리적 관념에 부합하는지 특히 정의로운 분배인가 하는 문제는 서로 다른 문제다. 독감백신이 임산부, 노인, 어린이에게 먼저 분배되는 방식이 과연 정당한가를 물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배분되고 있는 영역도 그 결과와 과정의 정당성을 물을 수 있다.

4. ‘자본주의 사회니까 당연하다’는 말은 별로다. 첫째, 자본주의라고 해서 시장메커니즘에 의한 배분만 있는게 아니다. 둘째, ‘시장에 의한 배분’ 자체도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소유권을 공동체에서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배분의 결과가 다 다르다. 셋째,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자체도 선택의 산물이지 항구불변의 상수가 아니다.

5. 내가 미시경제학을 가르치며,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경제학적 사고방법의 유용성을 알리는 것이다. 여기서 경제학적 사고방법이란, 개인들의 인센티브와 선택의 총체적 결과로 자원의 배분을 설명함과 동시에, 여러 경제의 과정을 사회전체에서 자원이 배분되고 희소한 가치가 사람들에게 분배되는 방식의 ‘하나’로 바라보고 그 결과를 궁극적으로 사람 개인들의 행복과 불행의 척도로 평가하는 방법을 말한다. 내 미시경제학 수업의 많은 부분은 가격시스템이 돌아가는 방식에 관한 것이고, 또한 시장 메카니즘에 의한 배분이 갖는 고유의 장점을 강조해서 가르친다. 하지만, 학생들이 더 큰 틀에서 자원배분의 방식을 이해하고, 정당하고 실현가능한 배분의 방식들을 부분적이건 전체적이건 스스로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내 능력껏 노력을 한다.

6. ‘전기는 상품인데, 상품은 많이 사면 깎아는 줘도 가격을 올리는 법은 없으니 전기요금 누진제는 잘못되었다’는 주장.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얻는 임대소득이 임대관리로 고용된 노동자의 임금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지 않느냐는 문제제기에, 자본주의니까 자본의 기회비용만큼 얻는게 당연하지 무슨 노동가치론이냐’는 응답

이런 말들의 맞고 틀림과 별도로, 이런게 마치 당연히 ‘경제학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경제학은 그렇게 협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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