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가 디지털 대응에 실패해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고? (Jak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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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에서 꽤 매력적인 기사를 냈다. 세계적인 장난감기업 레고가 디지털의 트랜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잘 안팔린다는 내용이다.

WSJ을 비롯한 외신들은 “디지털이란 거대한 파도 앞에서 레고도 휘청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레고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149억 크로네(2조6960억원)로 지난해 동기 대비 6% 하락했다. 영업이익은 34억 크로네(6150억 원)로 3% 떨어졌다.

이 같은 매출 부진은 레고가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에 빠졌던 2004년 이후 13년 만이다. 매출부진 소식과 함께 레고의 크누드스톱 CEO는 연내 1400여 명 감원 계획을 밝혔다. 덴마크, 영국, 미국, 중국 등지의 전 세계 종업원 약 1만9000명 중 8%에 해당하는 수치다.

WSJ는 레고가 이렇게 부진에 빠진 이유를 디지털에서 찾고 있다. “장난감을 조립하며 상상력을 키우는 창조적인 놀이’가 레고를 상징하는 수식어였지만 더 이상 어린이들은 레고에 열광하지 않는다. 그보다 각종 비디오게임과 유튜브에 흥미를 느끼는 어린이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WSJ은 어린이 장난감 선호 통계를 가져와서 실제 조사결과, 레고처럼 블록 장난감이나 퍼즐 등은 한 물 간 장난감이 돼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난감 조사업체가 2014년 3~12세 자녀를 둔 부모 35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자녀들이 자주 갖고 노는 장난감은 터치스크린 기기가 62%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인형ㆍ로봇 등 장난감(58%), 미술ㆍ공예 만들기(51%), 블록 장난감(49%), 자전거 타기(42%), 보드게임ㆍ퍼즐(38%) 등의 순이었다.

그런데 언뜻 보니 뭔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WSJ기사 제목을 보고 짐작했던 것보다 블록장난감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 어린이들의 거의 절반이 블록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엄청난 비율이다. 장난감 선호도의 시계열 변화에 관한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WSJ이 제시한 통계는 레고가 매출부진에 빠진 것을 설명해주는 자료가 아니다.

다시 한 번 보니 장난감 선호 통계는 2014년 자료다. 2014년이면 어떤 해인가? 레고가 사상최고의 실적을 구가하고 있던 때다. 그 최고의 실적들이 3년 뒤인 2016년까지 이어졌다.

그 자료를 보면서 WSJ의 기사가 엉터리 기사. 즉 현실, 경험을 관찰해서 기사를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 현실, 경험을 보지 않고 처음부터 어떤 방향으로 기사를 쓰겠다는 컨셉을 잡고 그 컨셉에 맞춰서 현실, 경험을 조작하고 꿰맞춘 엉터리 기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레고의 전략과 장난감 업계의 글로벌 트랜드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레고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빠졌던 때가 2003~2004년이다. 그 때는 레고의 경쟁자였던메가 블록스 (Mega Bloks)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던 때였다.

메가 블록스는 레고와 유사한 블록 장난감이지만 레고의 블록보다 블록이 훨씬 크고 통짜블록이 많아서 단순하다. 때문에 유아와 저연령 어린이들이 가지고 놀기에 좋게 나왔다. 메가 블록스는 레고와 유사한 외형을 가졌기 때문에 초반에 다수의 지재권 소송을 벌였는데 레고 블록과 충분히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연달은 소송에 이기게 된다.

또 메가블록스는 캐릭터,게임산업과의 제휴, 플랫폼전략을 더 활발히 추구해왔다. 그래서 피규어, 캐릭터가 레고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다.

반면 레고는 이 당시 아동복 산업과 시계 산업 등으로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해나가면서 수익구조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메가블록스 등의 급성장, 디지털게임 시장의 급성장에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해 레고는 위기에 빠졌다. 유럽지역에서는 그럭저럭 선방했지만 캐릭터가 강하고 게임산업,캐릭터 산업과의 제휴가 튼튼한 메가블록스가 버티는 북미지역에서는 고전했다.

레고 창사이래 처음으로 겪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크느두스눕이 레고의 총사령탑을 맡았다. 크누드스톱이 취한 전략은 선택과집중 전략, 고급화(고가격화)전략, 고연령타겟전략, 플랫폼협업전략, 디지털확장전략이다.

CEO인 크느두스톱과 CFO 예스페르 오베센은 취임하자마자 우선은 신속한 경영, 선택과 집중, 합리적인 재무구조를 갖추는 데 집중했다. 빈사상태에 빠진 조직을 구하기 위해 전략가들이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레고시티의 소방수와 경찰관 등등 기본 캐릭터를 재활용하고 기존 블록의 신제품 재활용도를 높였다. 제품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블록 요소의 수를 줄이는 것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를 개발해 시장에 선보이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절반으로 줄이는 등 비용절감을 추구했다. 또 아이들이 아니라 유통 고객에 집중해서 유통업체의 이익을 늘리고 재고회전율을 높여서 시장 지배력을 키웠다. 또 레고랜드 같은 이익이 낮은 자산과 사업 부분을 매각해서 현금보유를 늘리고 선택과 집중을 강화했다.

경영합리화, 비용절감, 선택과 집중 등으로 빈사상태의 위기에서 벗어난 레고는 2단계 전략으로 스토리텔링마케팅, 협업(콜라보) 및 플랫폼 전략과 함께 고급화, 고연령타겟전략 전략을 추구했다. 또 디지털로 확장했다.

크느두스톱 이후로 레고는 “마음껏 조립하는 완구”로서의 정체성보다 “완성도 높은 재현품으로서 수집욕을 불러일으키는 완구”로 변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가격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구글 검색창에서 why lego is 라는 문장을 치면 “why lego is so expensive?”라는 완성형 문장이 나타난다. 그만큼 레고 장난감의 높은 가격은 악명(?)이 높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테마에 맞춰서 특별 제작 판매하는 맞춤형 레고도 이 때 나왔다.

유럽시장과 달리 미국시장에서 고전했던 이유가 유럽에서는 특정 테마에 따른 레고 상품을 조립설명서대로 맞춰나가면 그걸로 끝이었다. 아이가 만든 레고를 어머니가 칭찬하며 진열장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또 다른 테마가 나오면 또 다른 테마의 레고를 사서 또 조립설명서 대로 레고를 맞춰나가는 것이 유럽 소비자들의 패턴이다. 그러나 북미지역은 다르다. 조립설명서는 보는 듯 마는 듯 던져버리고 어린이들이 자기 마음대로 레고를 조립한다. 그리고는 부수고 또 다시 조립하고 부수고 또 다시 조립한다. 이러니 레고는 북미지역에서 많이 팔리지 않고 고전하게 된다는 것이 ‘컬처 코드(The Culture Code)’의 저자 클로테르 라파이유 ADW 회장의 분석이다.

그런데 캐릭터가 강하고 영화, 게임 등과 제휴가 활발한 메가블록스는 북미지역에서 선전한다. 캐릭터가 강하니 계속 시리즈물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메가블록스를 벤치마킹해야 했다.

레고도 캐릭터를 강화하고 영화, 게임 등과의 플랫폼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갔다. 경영합리화로 빈사상태에서 다시 체력을 챙긴 레고는 메가블럭스를 벤치마킹해 영화,캐릭터, 게임 산업과의 협업을 강화해나가기 시작한다. 스타워즈, 어벤저스 등의 라이센스를 받으며 영화, 캐릭터 산업과의 플랫폼 제휴를 강화해나가더니 이제는 애니매이션과 게임을 제작하기까지 한다. 레고 최초의 디지털, 비디오게임이 2005년부터 나왔다. 스타워즈의 라이센를 받은 게임이다.

블록 수는 줄이고 캐릭터와 콜라보는 늘리고 여기에 디지털까지 진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4년 파산위기에 빠졌던 레고는 가족경영체제를 버리고 전략가인 크누드스톱을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한 이후 2016년까지 13년동안 초고속 성장하게 된다. 13년동안 전세계 레고 직원 수는 두배로 늘었다. 그러나 2017년 상반기 성장세가 둔화됐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6%, 3%씩 하락했다. 13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무엇 때문에 갑자기 성장세가 꺾였을까? WSJ이 주장하는대로 디지털 트랜드에 제대로 대응을 못해서였을까? 그렇지 않다.

디지털 트랜드에 대응을 하지 못해서 위기에 빠진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크누드스톱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게임 분야로 진출하는 등 레고는 그 어떤 장난감 업체들 못지 않게 디지털 부분이 튼튼한 기업이다. 레고의 디지털 비디오 게임 라인업을 보시라 엄청나다.

레고가 디지털 대응에 실패해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고? (Jake Lee)

게다가 디지털 비디오 게임 기업이 아닌 전통적인 장난감 기업들이 다 같이 몰락했다면 몰라도 레고의 경쟁자였던 해즈브로는 2017년에 급성장했다. 해즈브로가 디지털 비디오 게임에서도 선방하고 있지만 그다지 강한 회사가 아니다.

블룸버그 등 외신보도를 종합해서 분석해보니 해즈브로가 2017년 급성장한 배경은 ‘미녀와 야수’ ‘겨울왕국’등 디즈니 영화 캐릭터의 라이센스를 획득한 것이 결정적이다.

미녀와 야수, 겨울왕국 엘사 캐릭터들이 해즈브로의 급성장을 이끌어 글로벌 장난감 시장에서 만년 2위 기업이었던 해즈브로는 1위기업 마텔, 메가블록스를 제치고 2017년 상반기에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해즈브로의 지난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 증가한 8억4900만 달러(약 9600억 원)로 전문가들의 예상을 넘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6860만 달러(주당 54센트)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880만 달러(주당 38센트)에서 늘어났다. 전문가들의 예상은 주당 32센트 순익이었다.

반면 1위기업 마텔의 주 캐릭터인 바비와 주된 라이센스 제휴 캐릭터인 트랜스포머 등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마텔은 1분기 매출이 7억3500만 달러로, 전년보다 15% 감소했으며 최종 손익은 1억2300만 달러 순손실로 적자폭이 1년 전보다 55% 확대됐다.

레고가 디지털 대응에 실패해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고? (Jake Lee)

필자가 보기에 2000년대 이후 스타워즈, 트랜스포머, 어벤저스, 미녀와 야수, 겨울왕국 엘사 등등 영화와 캐릭터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완구업계의 트랜드과 완전히 바뀌었다고 본다.

마텔 (메가블록스는 2014년 마텔에 인수됐다)의 성공기, 해즈브로의 역전극, 레고의 부활극을 봐도 공통적으로 영화 캐릭터 산업과의 협업, 즉 플랫폼 전략이 회사의 성패를 좌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레고가 2017년 매출과 순이익이 감소세로 돌아선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레고가 작년 말, 올해 초 야심차게 기획했던 배트맨 시리즈가 참패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레고의 CEO 크누드스톱은 2016년 언론보도에서 레고 배트맨 세트가 새로운 영화 덕분에 2017 년에 큰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레고가 기대하고 역량을 집중했던 베트맨은 실패했다. 2017년 상반기 ‘레고 무비 배트맨’ 영화는 3년 전에 흥행했던 ‘레고 무비’의 절반을 좀 넘는 수준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역시 레고 배트맨 세트도 참패했다. 크누드스톱처럼 제 아무리 뛰어난 전략가라도 콘텐츠(캐릭터)에 대한 감각은 갖추지 못한 듯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 장난감 업계의 트랜드가 영화 등 캐릭터 산업과의 플랫폼 전략이 중요해지면서 플랫폼전략, 즉 플랫폼리더 전략과 플랫폼컴플리멘터 전략을 어떻게 구성해나갈 것인지가 회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돼 버렸다. 그 플랫폼에 참여한 뒤에 디지털 비디오 게임을 결합시켜서 이익을 확대해나가는 것이 최근 장난감 업계의 트랜드다.

이에 따라 스타워즈, 어벤저스, 트랜스포머나 미녀와야수, 겨울왕국 등 뛰어난 영화 캐릭터의 라이센스를 받아 협업, 제휴를 하면 크게 성장하고 마텔(메가블록스)처럼 제휴 라이선스 캐릭터의 ‘약발’이 떨어지면 곧바로 회사가 추락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레고? 당연히 레고 배트맨의 실패가 2017년의 실패이고 플랫폼 전략의 실패가 2017년의 실패다.

13년만의 갑작스런 매출 및 순익 감소이지만 직원 8%, 1400명을 감원하기로 한 크누드스톱의 결정은 바람직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매출, 순익이 감소하면 바로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것은 전략과 기업경영의 기본이다.

일단 전보다 캐릭터 라이센스 제휴, 플랫폼 전략이 중요해지니 인원이 전처럼 많이 필요하지 않다. 블록 요소의 수를 줄이고 경영합리화로 비용을 줄이는 등의 조치는 이미 시행됐다. 더 이상은 경영효율화로 반전을 꾀할 수는 없고 아이디어와 플랫폼전략이 중요해졌다.

크누드스톱은 뉴미디어 콘텐츠 및 플랫폼전략에 정통한 핵심직원들을 보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지금의 잠깐의 추락을 극복하고 세계1위 장난감기업을 넘볼 수 있다.

‘Apple Way’ 와 재벌개혁의 역설 (김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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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자본주의’ 와 ‘재벌개혁’ 이라는 두 가지의 의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를 오랫 동안 지배해 온 것이었다. 또한 이 두 가지의 의제가 지향하는 목표 또한 뚜렷하다. 공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확립을 통한 부의 재분배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의제는 현재 한국 경제에 과연 얼마나 유효할 것인가?

먼저 주주자본주의부터 생각해 보자. KRX와 금융투자협회가 발간하는 주식투자인구통계와 자본시장 Factbook에 따르면, 한국의 주식투자인구 비중은 경제활동인구의 20% 남짓이다. 그런데 문제는 보유금액별 비중이다. 2012년 기준으로 전체투자자 중 기관/외국인을 제외한 개인투자자 중 1.0%가 시가총액의 60%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기업의 개인 대주주들이다. 5년 전의 자료이지만 자본집중도 자체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도 비슷하리라 본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보도가 되고 있는 내용처럼 대기업들이 ‘Apple Way’ 를 따른다고 가정해 보자.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실현되고 배당수익률은 고공행진을 지속하며 주가는 상승할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자본시장을 통한 공정한 부의 재분배로 이어질 것인가? 유가증권 자본집중도가 극히 높은 한국에서는 결국 이 과실이 시총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상위 1.0%에게 돌아갈 것이며,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은 ROE를 최대한 높여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고용을 줄이고 생산 아웃소싱의 비중을 늘려 나갈 것이다. 주주자본주의 의제의 실현과 공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꼭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벌들을 을러메어 정부의 주도로 중소기업으로 부를 재분배하는 방법은 또 어떠한가? 우리나라에서는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 꼭 ‘독일’ 을 언급한다. 그러나 정작 독일 중소기업의 수출참여도가 10%에 이르는 반면, 한국 중소기업의 수출참여도는 독일의 1/4 수준인 2.6%에 머무르며, 국내 중소기업의 96.1%가 해외진출 계획이 없다는 사실은 항상 제외된다. (2017.2.27 산업통상자원부) 결국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 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도는 중소기업의 대다수가 내수시장인 대기업에 매달려 있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재벌개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악의 제국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가 매년 중소 협력업체에게 강요한다고 전해지는 CR(Cost Reduction)을 중지하고 협력업체와 상생을 추구하면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독일처럼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를 잡아야 하는데 닭을 잡는 칼을 쓰는 격이다. 중소기업 육성과 재벌개혁은 관련성도 없거니와, 관련이 없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는 의제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문제를 바라보아야만 해결할 수 있다. 현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생각하는 방향이 아직까지 틀리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제정책에서의 실패를 면하기 위해서는 정책수석과 공정위, 기재부와 경제수석의 합이 잘 맞아야 하는 점도 있다는 것에서 불안한 점이 있는 것이다.

미국이 지난 금융위기 기간 동안 ‘GATFA’ 를 통해 IT 르네상스를 경험한 것처럼 보이지만, 왜 8년 간의 르네상스 이후 미국민들은 트럼프를 선택하였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에게 조상은 누구인가? (Eunhe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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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상고사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일련의 역사논쟁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논쟁의 근저에 있는 ‘조상’이라는 문화적 개념이다. 우리 모두 단군이라는 뛰어난 인물의 후손이어서 ‘ 남남’이 아니라 ‘한 핏줄’이며 한 때 북방을 정복했던 ‘우수한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한민족의 기원’이나 비슷한 ‘유사역사학’의 고대사를 향한 열정 밑에 깔려 있다. 또한 지금의 영호남 사람들이 천오백년 쯤 전에 번성했다고 추정되는 가야 왕국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후손들이라는 전제 하에 가야사의 복원은 국가가 주도해야 할 학술연구가 되었다. 가양왕국을 만든 훌륭한 조상의 자손들인데 지금 싸우며 살아야 하겠는가?

자고로 한국 사회에서 조상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극도로 중요했으며 아직도 그러하다. 조선시대 후기부터 조상이 누구인가를 정확히 기록하는족보의 발간이 성행했고 조선이 망한 후에도 인쇄술과 통신, 교통이 발달하면서 족보발간은 오히려 급증했다. 일상생활에서도 본관을 밝히는 관습은 한국사회에서 조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본관은 수 백 년 전에 혹은 천년도 훨씬 전에 살았다고 하는 먼 조상의 본적지가 있는 행정구역의 이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고 가까운 조상이 살았던 곳도 아니다. 그럼에도 21세기를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본관을 알고 있고 호적제도가 폐지된 후에 등장한 가족관계 기록부에도 본관을 기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와 본관이 같은 동성동본이라는 것은 그 사람도 까마득히 오래 전에 살았던 같은 조상의 후손이라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같은 조상의 자손이라는 이유 때문에 얼마 전까지도 동성동본 간의 결혼은 마치 근친상간이나 가까운 혈족 간의 결혼처럼 법으로 금지되었고 도덕적으로도 터부시되었다.

역사학자 송준호는 “조선사회사 연구” 에서 본관제도처럼 적게는 몇 백 년 길게는 천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 먼 조상의 후손임을 확인해주는 제도는 전 세계에서 그리고 역사를 통틀어 조선시대 후기이래 한국에만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고려시대에 본관은 조상이 대대로 살아온 곳, 즉 본적과 같았으며 왕실에서조차 동성동본불혼의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조선시대 초기의 대표적인 가계기록이었던 ‘팔고조도’는 ‘나’를 기점으로 하여 친가와 외가의 조상들을 고조부까지만 기록하였다. 고조의 대에서 모두 16명의 조상이 존재하게 되는데 고조할머니들은 빼고 고조할아버지만 8명이 되기에 ‘팔고조도’라고 불렀다.

동북아의 유교적 문화권에 속한 중국이나 일본에도 우리나라처럼 본관을 따지는 습속은 없다. 대규모 부계친족집단이 존재했던 중국에서도 본관은 송 대 이후로 조상 대대로 살았던 본적지를 가리키며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될 때는 본관을 바꿨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아주 가까운 조상이 같아도 사는 지역이 다르면 본관이 다를 수 있다. 같은 조상의 후손들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지역에서 대대로 눌러 살게 되면 각각 독립된 씨족집단을 이루게 된다. 중국식이라면 남원에서 몇 백년 살아온 전주 이씨들은 아마도 남원 이씨가 되어 있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후손들이 조상대대로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몇 백 년을 살아도 자신들의 출신을 말할 때 몇 백년 전의 조상들이 살았던 행정구역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여 그 조상들의 후손임을 밝혔다. 그래서 동성동본인 사람들은 일정한 지역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분산되어 살았다.

아득히 먼 부계 조상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조선시대 중기부터 사대부 계층에서 시작되었다. (문옥표&김광억의 “조선양반의 생활세계” 참조). 유학자들은 각 집안에 내려오는 여러가지 가계기록들, 호적, 묘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등을 수집하여 보통 사오백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 자신들의 부계 시조를 추적하는 ‘조상찾기’ 사업을 전개하였고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동성동본 전체 혹은 그 분파의 족보를 편찬하고 간행하였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주요 족보에서 계보가 비교적 확실한 실질적인 시조(중시조)는 언제나 고려시대에 중앙의 관계에 진출해 크게 성공하여 가문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린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시조와 명목상의 시조 사이에는 정확한 계보를 알 수 없어 여러 세대가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후손들이 의도적으로 뛰어난 조상을 중시조로 내세웠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슷하게 동성동본 집단이 분파되어가는 과정에서도 높은 관직에 올랐거나 뛰어난 유학자로 이름을 날린 인물의 직계 후손들은 독립된 ‘파’ 를 형성하였고 이 ‘파’를 흔히 문중 혹은 종중이라고 불렀다.

동성동본집단이 가문의 이름을 빛낸 명망있는 인물 중심으로 분파되어가는 과정은 중국의 친족집단이 공동재산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분파되어가는 과정과 대조적이다. 본관의 개념이 없는 중국에서는 언제나 자손들이 대대로 살아왔던 지역에 처음으로 이주하여 후손들에게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준 입향조가 시조로 받들어진다. 공동재산(corporate property)으로 조묘(신위를 모시는 사당)를 짓고 공동재산의 수익금으로 기제사를 지내며 남는 돈은 자손들이 나누어 갖는다. 입향조보다 앞선 세대의 조상들에 대해선 아무 관심이 없으며 따라서 ‘아무개의 자손’이라는 개념도 없다. 입향조의 한 후손이 많은 공동재산을 남기게 되면 그 후손의 직계 자손들은 분리되어 나간다.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재산을 남기지 못해도 명망높은 사람의 후손들은 지역사회에서 특별히 더 존경받고 대우받게 되면서 자연히 방계 후손들로부터 구분이 되어 ‘파’가 형성된다. 이렇게 조선시대 후기에는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과 지위가 거의 ‘조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결정되었다.

일반 교양인들이 ‘한민족의 기원’이나 ‘단군시대’의 연구에 전폭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16세기, 17세기 유학자들의 조상찾기와 비슷하다. 부계 친족집단이 ‘한민족’으로 확대된 것 만이 다르다. 그들은 1000년, 1500년 이상을 한반도에서 기반을 닦아온 우리들의 입향조가 아니라 한반도로 이주해 들어오기 훨씬 전, 아니 몇 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북방의 광할한 영토를 종횡무진했던 ‘우수한’ 한민족의 조상들을 찾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 당신의 부모는 몇 분인가? 두 분이다. 조부모는 몇 분인가? 네 분이다. 증조부모는? 여덟 분이다. 이렇게 세대를 거듭해 올라갈수록 우리의 생물학적 조상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는 어느 한 개인은 수없이 많은 조상들의 자손이라는 것을 뜻한다. 나보다 20대 위의 조상의 숫자는 104만 8576명이다. 이 중 겹치는 조상들도 있을 것이다. 이를 감안해도 수많은 조상들이 있는 것은 변함없다. 그런데 이 생물학적 현상에 문화가 개입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시대 초기에는 팔고조도에서 볼 수 있듯이 위로 올라갈수록 조상의 숫자가 많아지니까 편의를 위해서 위로 4대 고조할아버지 대까지만 조상으로 인식하고 더 이상 추적하지 않았다. 이러한 조상의 개념에서는 조상은 어디까지나 개인을 중심으로 인식되며 수십대 위로 올라가며 훌륭했던 시조나 파시조를 찾는 것이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개인을 어느 조상 한 사람의 후손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부계로만 조상을 찾아 올라갈 때 아무리 많은 세대를 올라가도 부계 조상 한 사람 만이 인지될 뿐이다. 개인은 ‘우암 자손’ 처럼 ‘아무개의 자손’ 으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부계 조상 한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사람이라 해도 그가 몇 십 만 명의 생물학적 조상 중의 한 사람이라고 인식된다면 그의 후손으로서의 자부심은 없어진다. 가령 덕수 이씨 중에서 지금 살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후손에게 이순신은 그저 그를 낳아준 수 십만 명의 조상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 수많은 조상 중에는 잘난 사람 못지 않게 못난 사람 또한 많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몇 천년 전에 한반도 위의 북방을 호령했던 사람들이 21세기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조상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반만년전에 살았던 수없이 많은 우리의 생물학적 조상들이 중앙아시아와 몽골 뿐만 아니라 동남아에도, 중국에도, 일본에도 살고 있었을 것임을 추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한 그 조상들은 지금의 한국 말고 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조상일 확률도 크다. 한마디로 말해 몇 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조상이다 혹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결론적으로 얘기해서 ‘민족의 기원’이라는 연구주제 자체가 17세기 이래 조선을 지배했던 조상 중심의 문화체계 속에서 뛰어난 조상 한 사람과 그의 남계 후손들을 상정했던 조상의 개념에서 나온 발상이다. 마찬가지로 가야사의 복원 프로젝트 역시 신라와 백제에 버금간다고 하는 1500년 전의 ‘훌륭한’ 조상들의 가야왕국을 보여주고자 하는 족보적 목적의식에서 추진되고 있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것은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현 시대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조상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학문적 가치가 충분하다. 우리가 훌륭했던 조상 만을 찾아 나설 때 한국사 연구는 항상 조상이 얼마나 지혜롭고 훌륭했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족보적 역사연구가 확대된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 몇 백년 전 몇 천년 전 조상이 훌륭하다고 해서 우쭐할 것도 없으며 조상이 못났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다. 조상중심사회에서 탈피하여 과거지향적 조상의 관념에서 벗어나 현재 해결해야 할 문제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경제학은 현상유지편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아니다 (조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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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내가 썼더라면, 싶은 글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제목은 내가 붙인 것이다.

“경제학은 그렇게 협소하지 않다.”


1. 제도적 관점에서 볼 때, 시장은 소유권을 정의하고 보장한 후, 자발적 교환을 통해 자원을 배분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2. 세상에 시장 메커니즘으로 모든 재화의 배분이 이루어지는 경제는 없다. 일례로, 미국에서 신종 플루가 유행해서 사망자들이 발생하는데 막 백신이 생산되면, 그걸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사람에게 파는 식으로 공급하지 않는다. 그 독감이 걸렸을 때, 사망확률이 높은 예컨대 임산부, 노인, 어린이 등에 우선적으로 접종을 한다. ‘필요에 의한 분배’라는 소위 ‘공산주의’적 방식도 자본주의가 크게 발달한 국가의 자원배분 방식에 섞여있다.

3. 현실의 법, 제도하의 정치경제적 과정에서 어떠한 배분과 분배가 일어나게 되는가하는 문제와 그러한 분배가 그 공동체 성원들의 윤리적 관념에 부합하는지 특히 정의로운 분배인가 하는 문제는 서로 다른 문제다. 독감백신이 임산부, 노인, 어린이에게 먼저 분배되는 방식이 과연 정당한가를 물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시장메커니즘에 의해 배분되고 있는 영역도 그 결과와 과정의 정당성을 물을 수 있다.

4. ‘자본주의 사회니까 당연하다’는 말은 별로다. 첫째, 자본주의라고 해서 시장메커니즘에 의한 배분만 있는게 아니다. 둘째, ‘시장에 의한 배분’ 자체도 하나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소유권을 공동체에서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배분의 결과가 다 다르다. 셋째,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자체도 선택의 산물이지 항구불변의 상수가 아니다.

5. 내가 미시경제학을 가르치며,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경제학적 사고방법의 유용성을 알리는 것이다. 여기서 경제학적 사고방법이란, 개인들의 인센티브와 선택의 총체적 결과로 자원의 배분을 설명함과 동시에, 여러 경제의 과정을 사회전체에서 자원이 배분되고 희소한 가치가 사람들에게 분배되는 방식의 ‘하나’로 바라보고 그 결과를 궁극적으로 사람 개인들의 행복과 불행의 척도로 평가하는 방법을 말한다. 내 미시경제학 수업의 많은 부분은 가격시스템이 돌아가는 방식에 관한 것이고, 또한 시장 메카니즘에 의한 배분이 갖는 고유의 장점을 강조해서 가르친다. 하지만, 학생들이 더 큰 틀에서 자원배분의 방식을 이해하고, 정당하고 실현가능한 배분의 방식들을 부분적이건 전체적이건 스스로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내 능력껏 노력을 한다.

6. ‘전기는 상품인데, 상품은 많이 사면 깎아는 줘도 가격을 올리는 법은 없으니 전기요금 누진제는 잘못되었다’는 주장.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얻는 임대소득이 임대관리로 고용된 노동자의 임금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지 않느냐는 문제제기에, 자본주의니까 자본의 기회비용만큼 얻는게 당연하지 무슨 노동가치론이냐’는 응답

이런 말들의 맞고 틀림과 별도로, 이런게 마치 당연히 ‘경제학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경제학은 그렇게 협소하지 않다.

한국의 R&D 생산성이 낮은 이유 (강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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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구개발(R&D)은 생산성이 낮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말 그럴까? 내 생각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다. 우리 R&D는 혁신적인 성과를 내는데 실패하고 있다. 이유는 뭘까?

우리 연구개발이 혁신적인 결과를 내는데 실패한 이유는 혁신적인 연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뭔 개풀 뜯어 먹는 이야기냐고? 우리 R&D 주제들을 보면,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결과가 나온 주제들의 재탕들이 대부분이다. 처음부터 혁신적인 주제에 도전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 혁신적인 결과가 나오겠는가? 처음부터 등산의 목표를 에베레스트산으로 하지 않고, 백두산이나 한라산으로 잡고는, 세계적인 등산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연구자들은 왜 혁신적인 주제들에 도전하지 않는가? 천성이 게을러서? 노오오력을 안하는 헬조선 인민들의 특성때문에? 난 기본적으로 노오오력 드립치는 인간들은 다 싹 모아서 국외추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대륙이라도 발견되면, 노오오력 드립치는 인간들을 보내, 자기들끼리의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주고 싶다. 그러면 거기서도 서로서로 노오오력 드립치고 있을 듯 하기는 하다만.

우리가 혁신적인 주제에 도전하지 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거나, 생각보다 복잡하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우리 연구개발에 대한 평가가 보상보다는, 체벌 위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혹독한 체벌 위주로. 우리 연구개발에서 가장 확실하게 보장되고 지켜지는 원칙이 하나 있다. 그건 다음과 같다.

“당신이 국가연구개발에 실패하면 당신은 x된다는 것이다.” x되는 정도는 다르지만, 이건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연구팀원, 그리고 당신에게 펀딩한 전담기관과 담당부처 공무원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건 연구개발 규모가 크건 작던 상관이 없다.

연구개발은 (1) 연구개발 주제를 선정하고(기획단계), (2) 연구를 수행할 주체를 선정하고(선정평가), (3) 연구를 수행해서 결과를 산출하고, (4) 이를 평가하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이제부터 우리가 왜 혁신적인 연구에 실패하는 지 단계별로 살펴보자. 먼저 (1)의 단계에서 혁신적인 주제가 선정되지 않는다. 왜나고? 이 단계에서 주도를 하는 주체는, 정부부처 공무원과 전담기관 담당자, 그리고 기획위원으로 추천된 전문가들이다. 요즘은 전담기관에 기간제로 고용된 PD, MD, 단장들이 포함된다. 이 단계에서 기획자들은 결코 혁신적인 주제를 발굴하지 못한다. 혁신적인 연구개발 주제는, 실패확률이 80%이상이 되는 주제를 의미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실패하면 x되는 환경에서 혁신적인 주제를 발굴하는 건, 기획자집단이 그 많큼의 확률로 x될 수 밖에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 단계에서 연구개발 주제는 외부의 비전문가들이 보기에는 혁신적이고, 내부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별로 실패가능성이 없는 주제들만이 선정된다. 우리가 혁신적인 결과를 내 올수 없는 첫번째 이유이다.

(2)의 단계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반복된다. 하나의 연구개발 주제에 대하여 대략 3~4팀이 도전한다. 이중에서 비록 혁신적인 주제가 아니지만, 그래도 혁신적인 방법으로 도전하는 팀이 있다. 당신이 선정평가를 하는 주체라고 생각해 보자. 결코 이 팀을 뽑지 않는다. 왜나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혁신성은 태생적으로 그만큼의 높은 실패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니 혁신적인 연구개발 방법을 제안하는 팀은, 그만큼의 실패가능성이 높은 팀이다. 이런 팀 뽑았을 경우에는 당신도 실패에 대해 연대책임을 져야 될 가능성이 크다. 당신같으면 이런 팀을 뽑겠나?

자 이제 (3)의 단계를 살펴보자. 당신이 연구개발 책임자다. 당신은 원래부터 혁신적인 사람이라서, (1)과 (2)의 과정에서 비록 덜 혁신적인 주제와, 당신이 제출한 아주 안전한 방법의 계획서를 무시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지금까지는 훼이크다 이 xx들아. 이제부터는 내 꼴리는대로 연구개발 함 해볼거다.”라고 할 수 있을까? 전혀 불가능하다. 우리 연구개발을 감독하는 전담기관들(연구재단, KEIT, 등등)은 그렇게 핫바지들이 아니다. 연구계획서에 포함되지 않은 장비는 절대 사면안되고, 새로운 세부연구주제도 결코 시작해서는 안된다. 심지어는 계획서에 없는 해외출장 같은건 절대 가면 안된다. 원래 연구개발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뭔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불확실한 현상이 관측되거나, 새로운 이론을 가지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보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 연구개발(R&D)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모든 연구개발은 연구개발계획서에 명확하게 정의된 것만 해야 한다. 불확실한 것에 도전하기 위하여 아주 확실한 방법만을 사용해야 한다. 왜? 연구개발이 실패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연구팀만 지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담기관은 관리감독 책임을 진다. 이때 감사관은 연구방법등에 대해서는 1도 모르기때문에, 구매내역, 출장내역 등만 줄기차게 뒤진다. 뭐 그래도 해외출장건은 좀 심하다. 연구를 진행하다보면, 해외와 다양한 방법으로 교류가 필요해진다. 근데 어떻게 처음에 계획한 해외출장만을 인정해 주는지는 참 어이가 없다.

이제 어찌어찌 (4)의 최종평가 단계에 왔다고 보자. 당신이 평가받는 항목은 어이없게도 연구결과가 아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면, 연구결과는 세계 최초나 2~3번째 연구성과로 포장되어 있다. 평가는 결과에 집중되지 않는다. 평가는 당신이 사용한 연구비에 집중된다. 연구결과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연구수행 과정에 대한 감사다. 혁신성은 꿈도 꾸지 말라. 혁신적인 것을 추구하다가는 결과도 엉망이고, 그 과정에서 이러저런 꼬투리만 쌓인다. 그리고 한번 찍히면 다시는 국가연구개발 과제와는 바이바이다.

사실, 이런 감사와 체벌위주의 시스템은 연구개발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국가원리쯤 된다. 공무원이나, 전담기관의 담당자나,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연구원이나 모두 관심사는 체벌을 받지 않는 것에 있다. 왜나고? 그 체벌의 강도가 너무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엄한 부모밑에서 훈육되는 아이들과 같다. 먹는것, 입는것, 사귀는 친구, 컴퓨터게임, 읽는 책들에 대해서 일일이 감시하고 잔소리하고, 때로는 귓방망이도 올려붙이는 아주 엄격한 부모다. 이런데 자라서 피카소가 되라고? 택도 없는 이야기다.

근로장려세제는 최저임금의 대안인가? (이상헌)

ILO 이상헌 박사님의 글. 페이스북 원문 링크


근로장려세제는 최저임금의 대안인가?

(괜한 약속을 해서 쓰는 글. 마감에 걸려 개요만 씀. 길고 조악하니, 관심있는 분만 읽으시길 ^^)

– 근로장려세제 (earned income tax credit, EITC)는 저소득 근로층을 위한 소득 지원 프로그램으로 미국에서 시작. 자녀가 있는 근로가구를 대상으로 하며, 일정 소득 이하를 가진 가구에만 적용. 이것을 굳이 “tax”, “tax credit” 라고 불려서 혼돈을 초래하기도 하는데, 미국의 독특한 정책구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고, 사실상 소득보조금임. 미국에서 가장 큰 예산규모를 가진 빈곤퇴치 정책.

– 그 기원을 엄밀히 따지기는 힘들지만, 존슨 대통령이 “사이버 혁명” 시대를 맞아 미래정책을 구상하도록 한 특별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 Triple Revolution에서 시작했다는 견해가 많음. 1960년대 중반에 발간된 보고서는 기술혁명에 따른 일자리 부족과 소득 불안정성 및 빈곤 퇴치를 위해 기본소득을 제안함. 프리드만을 비롯한 경제학자들이 일부 수용하고 현실 정책으로 적용되면서 negative income tax 개념으로 발전. 일정 소득 이하의 가구에게 부족분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주장.

– 유럽과 달리 별다른 빈곤정책 없었기 때문에 정책적 필요성에 대한 공감은 있었지만, 기본소득안은 격력한 저항에 직면. 존손 대통령도 반대. 청교도적인 노동관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아젠다. 대신, 미국에서 중요한 다른 가치인 “가족”을 중심으로 재구성. 가족지원 프로그램으로 전환이 되었지만, 이것도 반대에 부딪힘. “노동 여부”가 전제되지 않았기 때문. 결국 포드 정부는1970년대 중반에 “노동”과 “가족”에 결합된 빈곤프로그램 도입. 이것이 EITC. 노동하는 가정에 자녀가 있는 경우만 적용. 굳이 말하자면, 기본소득의 “역사적 변용” 인데 **, 1980년대부터 본격 적용되었고, 그 이후로 팽창. 최근에 자녀 없는 저소득 가구에 적용하자는 주장이 대두. 현행 제도는 아래 그림 참조.

– 따라서 EITC는 미국적 제도 및 정책의 산물임. 물론 외국에서도 더러 이용되지만, 상당한 변용을 겪는 것이 일반적.

– 한국에서는 EITC가 2008년에 도입된 후 “저소득층의 노동의욕 고취”를 위해 확대되어 옴. 2011년부터는 무자녀가구에게도 확대. 이런 면에서는 미국보다 앞섬. 물론 한국의 “선진적”인 면모를 보인 장면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같은 정책이라도 맥락이 다르기 때문. 미국에서는 근로가구층을 전제로 한 뒤, 이들의 소득 보전을 돕는 것임. 한국에서는 저소득가구의 노동시장 진출을 유도한다는 측면이 강함. 작은 차이이겠만, 한국에서는 이 때문에 쉽게 무자녀가구에게 EITC 확대된 것으로 보임 (이미 한국적 변용이 이루어진 것)

– 한국에서 EITC의 노동공급 증가 효과는 실증적으로 따져 보아야 할 문제. 개인적으로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봄. 첫째, 한국의 저소득층의 고용율은 상대적으로 높고 (중산층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음), 전체적으로 고용율이 낮은 것은 공급 측면보다는 노동수요적 요인 (일자리의 질)이 더 중요함. 둘째, 현재 EITC는 노동공급 결정을 바꿀 정도로 지원액이 높지 않다. 결국 전체적으로 애매함. 물론 기왕에 일하는 저소득층이 노동공급을 늘리는 효과 (노동시간의 증가)는 있을 듯.

– 이미 언급한 대로, EITC는 영미권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에서 많이 채택하는 정책은 아닌데, 최근 부쩍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일부 경제학자들이 최저임금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

– 표준 경제학 이론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주장임. 최저임금은 기업의 비용에 일차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고용 감소 효과를 배제하기는 힘든데, 그리고 최저임금이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차라리 저소득 가구에게 소득보전해 주는 방식이 낮다. 노동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한다는 것. 이 주장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있어 왔던 주장이고, 실제로 최저임금 반대론으로 사용됨.

– 최저임금에서 보장된 노동자의 후생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EITC를 설계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함. 하지만 두가지가 빠져 있음. EITC는 resource-intensive 하다 (미국에서는 최대규모의 빈곤퇴치 정책). 따라서 재원 조달의 문제를 따져야 하는데, 예컨대 법인세 증가를 통해 조달할 것인가? 이런 일반균형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빠져 있음. 둘째는, 노동시장 교란 효과. EITC는 기업의 비용 효과와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우월하다고 보는데, EITC 대안은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가능성.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보전이 주어진 경우 합리적 기업은 임금을 낮출 유인이 높아진다. 그에 따른 추가적 소득소실분은 EITC에서 추가적 소득 보전을 해 줄 것이기 때문. 임금 하방 압력이 커지고, 비효율적 한계기업을 유지하게 됨으로써 경제 전체적 효율성이 떨어짐. 한때 최저임금을 앞선 이유로 폐지했던 영국이 최저임금을 블레어 정부 때 도입한 이유도 바로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맞고자 한 것임. 최근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

– 핵심: 일을 하는 데도 빈곤한 층을 근로빈곤 (working poverty)라 하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보장 정책의 효과적인 연계가 필요함. 대체 관계가 아님. 최저임금이 할 일은 최저임금이 해야 하고, 소득지원정책이나 기타 사회보장정책이 할 일도 마찬가지. 최저임금을 보완할 사회보장정책은 꼭 EITC일 필요는 없지만, 노동소득을 보전해 주는 소득지원정책이라는 광범한 의미에서의 EITC는 필요하다.

– 유럽 국가에서 EITC 류의 정책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까닭은 이미 사회보장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네델란드, 프랑스, 핀란드에도 EITC 류의 정책이 도입되어 있지만, 제도적 보완물로만 사용되고 주축이 되진 않음. 사각지대를 해결하는 “한가지” 제도 방식이고, EITC를 중심으로 제도 구성하는 경우는 드물다. EITC가 최대의 빈곤정책인 미국과는 다르다.

– 최저임금과 EITC를 유기적 설계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다. 최저임금을 노동자 1인을 두고 설계한 뒤, EITC정책이 저소득 가구의 소득을 지원해 주는 방식도 있고, 최저임금을 평균 가구 방식으로 접근 (평균 가구원 수, 평균 취업자 수, 표준 최저생계비) 한 뒤 부족분을 EITC가 돕는 방식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경우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일정비율 (예를 들자면, 60-65%)에 맞춰 정한 뒤, 저소득 층의 소득부족분을 EITC가 책임지는 방법이 좋을 듯 하다. 하지만, 후자를 위해서 꼭 EITC라는 이름과 방식이 필요한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전체적인 사회복지 제도 틀내에서 유기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근로장려세제는 최저임금의 대안인가? (이상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