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연구개발(R&D)은 생산성이 낮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말 그럴까? 내 생각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다. 우리 R&D는 혁신적인 성과를 내는데 실패하고 있다. 이유는 뭘까?
우리 연구개발이 혁신적인 결과를 내는데 실패한 이유는 혁신적인 연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뭔 개풀 뜯어 먹는 이야기냐고? 우리 R&D 주제들을 보면,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결과가 나온 주제들의 재탕들이 대부분이다. 처음부터 혁신적인 주제에 도전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 혁신적인 결과가 나오겠는가? 처음부터 등산의 목표를 에베레스트산으로 하지 않고, 백두산이나 한라산으로 잡고는, 세계적인 등산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연구자들은 왜 혁신적인 주제들에 도전하지 않는가? 천성이 게을러서? 노오오력을 안하는 헬조선 인민들의 특성때문에? 난 기본적으로 노오오력 드립치는 인간들은 다 싹 모아서 국외추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대륙이라도 발견되면, 노오오력 드립치는 인간들을 보내, 자기들끼리의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주고 싶다. 그러면 거기서도 서로서로 노오오력 드립치고 있을 듯 하기는 하다만.
우리가 혁신적인 주제에 도전하지 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거나, 생각보다 복잡하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우리 연구개발에 대한 평가가 보상보다는, 체벌 위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혹독한 체벌 위주로. 우리 연구개발에서 가장 확실하게 보장되고 지켜지는 원칙이 하나 있다. 그건 다음과 같다.
“당신이 국가연구개발에 실패하면 당신은 x된다는 것이다.” x되는 정도는 다르지만, 이건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연구팀원, 그리고 당신에게 펀딩한 전담기관과 담당부처 공무원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건 연구개발 규모가 크건 작던 상관이 없다.
연구개발은 (1) 연구개발 주제를 선정하고(기획단계), (2) 연구를 수행할 주체를 선정하고(선정평가), (3) 연구를 수행해서 결과를 산출하고, (4) 이를 평가하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이제부터 우리가 왜 혁신적인 연구에 실패하는 지 단계별로 살펴보자. 먼저 (1)의 단계에서 혁신적인 주제가 선정되지 않는다. 왜나고? 이 단계에서 주도를 하는 주체는, 정부부처 공무원과 전담기관 담당자, 그리고 기획위원으로 추천된 전문가들이다. 요즘은 전담기관에 기간제로 고용된 PD, MD, 단장들이 포함된다. 이 단계에서 기획자들은 결코 혁신적인 주제를 발굴하지 못한다. 혁신적인 연구개발 주제는, 실패확률이 80%이상이 되는 주제를 의미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실패하면 x되는 환경에서 혁신적인 주제를 발굴하는 건, 기획자집단이 그 많큼의 확률로 x될 수 밖에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 단계에서 연구개발 주제는 외부의 비전문가들이 보기에는 혁신적이고, 내부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별로 실패가능성이 없는 주제들만이 선정된다. 우리가 혁신적인 결과를 내 올수 없는 첫번째 이유이다.
(2)의 단계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반복된다. 하나의 연구개발 주제에 대하여 대략 3~4팀이 도전한다. 이중에서 비록 혁신적인 주제가 아니지만, 그래도 혁신적인 방법으로 도전하는 팀이 있다. 당신이 선정평가를 하는 주체라고 생각해 보자. 결코 이 팀을 뽑지 않는다. 왜나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혁신성은 태생적으로 그만큼의 높은 실패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니 혁신적인 연구개발 방법을 제안하는 팀은, 그만큼의 실패가능성이 높은 팀이다. 이런 팀 뽑았을 경우에는 당신도 실패에 대해 연대책임을 져야 될 가능성이 크다. 당신같으면 이런 팀을 뽑겠나?
자 이제 (3)의 단계를 살펴보자. 당신이 연구개발 책임자다. 당신은 원래부터 혁신적인 사람이라서, (1)과 (2)의 과정에서 비록 덜 혁신적인 주제와, 당신이 제출한 아주 안전한 방법의 계획서를 무시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지금까지는 훼이크다 이 xx들아. 이제부터는 내 꼴리는대로 연구개발 함 해볼거다.”라고 할 수 있을까? 전혀 불가능하다. 우리 연구개발을 감독하는 전담기관들(연구재단, KEIT, 등등)은 그렇게 핫바지들이 아니다. 연구계획서에 포함되지 않은 장비는 절대 사면안되고, 새로운 세부연구주제도 결코 시작해서는 안된다. 심지어는 계획서에 없는 해외출장 같은건 절대 가면 안된다. 원래 연구개발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뭔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불확실한 현상이 관측되거나, 새로운 이론을 가지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보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 연구개발(R&D)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모든 연구개발은 연구개발계획서에 명확하게 정의된 것만 해야 한다. 불확실한 것에 도전하기 위하여 아주 확실한 방법만을 사용해야 한다. 왜? 연구개발이 실패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연구팀만 지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담기관은 관리감독 책임을 진다. 이때 감사관은 연구방법등에 대해서는 1도 모르기때문에, 구매내역, 출장내역 등만 줄기차게 뒤진다. 뭐 그래도 해외출장건은 좀 심하다. 연구를 진행하다보면, 해외와 다양한 방법으로 교류가 필요해진다. 근데 어떻게 처음에 계획한 해외출장만을 인정해 주는지는 참 어이가 없다.
이제 어찌어찌 (4)의 최종평가 단계에 왔다고 보자. 당신이 평가받는 항목은 어이없게도 연구결과가 아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면, 연구결과는 세계 최초나 2~3번째 연구성과로 포장되어 있다. 평가는 결과에 집중되지 않는다. 평가는 당신이 사용한 연구비에 집중된다. 연구결과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연구수행 과정에 대한 감사다. 혁신성은 꿈도 꾸지 말라. 혁신적인 것을 추구하다가는 결과도 엉망이고, 그 과정에서 이러저런 꼬투리만 쌓인다. 그리고 한번 찍히면 다시는 국가연구개발 과제와는 바이바이다.
사실, 이런 감사와 체벌위주의 시스템은 연구개발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국가원리쯤 된다. 공무원이나, 전담기관의 담당자나,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연구원이나 모두 관심사는 체벌을 받지 않는 것에 있다. 왜나고? 그 체벌의 강도가 너무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엄한 부모밑에서 훈육되는 아이들과 같다. 먹는것, 입는것, 사귀는 친구, 컴퓨터게임, 읽는 책들에 대해서 일일이 감시하고 잔소리하고, 때로는 귓방망이도 올려붙이는 아주 엄격한 부모다. 이런데 자라서 피카소가 되라고? 택도 없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