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만,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2015. 서평은 아니고 메모.
존잘러가 쓴 한국 사회과학계 현실 비판서이자 본인 학술이력 자기민속지. 민속지를 가장한 자기 PR로 읽을 수도 있다. 저자의 의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학문적 진로를 희망하는 학부생을 위한 안내서로도 훌륭하다. 김종영 교수의 <지배받는 지배자>와 함께 읽으면 그 책이 제시한 “Academia Immunda(학문은 더럽다)”는 명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 책 모두 부르디외 이론을 원용한다는 점에서 이들도 “지배받는 지배자”이며 “글로벌 지식장 상징폭력”의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전반부에서 한국 사회과학계(저자가 속한 사회학)를 가차없이 비판하고 후반부에서 본인이 학계 내 상징자본을 획득한 과정을 상술한다. 먼저 김경동, 조한혜정, 강정인, 한완상 등 국내 유명 학자들을 시쳇말로 극딜한다. “서구에 종속되지 않은 한국적 사회과학”, “우리 땅에서 적실성 있는 학문”이라는 무의미한 기치에 매몰되었다고 지적한다. 소위 적실성을 따지기 전에 글로벌 학문 장에 맞는 수준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적실성 구호 자체가 허황되었으며, 이들의 학술적 기여와 교육 모두 엉망이라고 융단폭격을 가한다. 학자들이 “일반인을 위한 OO학” 류 대중서적, 강연 등에 골몰하는 행태도 비판한다.
후반부에서는 본인이 박사과정 시절부터 현재까지 겪은 학계 이야기를 부르디외의 장 이론을 축으로 서술한다. 저자는 학계 컨텍스트를 예로 들어 장 이론의 주요 개념을 설명한다. 학생이 지식 장의 규칙을 체득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아비투스), 학술활동이 유의미하며 일생을 걸 만한 일이라는 공모(일루지오), 축적된 학술활동 성과(상징자본), 상징자본을 가진 선행연구자의 저작을 읽어야 한다는 암묵적 “강요”(상징폭력) 무엇을 읽을지, 무엇이 가치있는 탐구 대상인지 설정하는 권한을 둔 경쟁(상징투쟁). 그리고, 한국 학계에는 상징자본이 될 만한 독창적 이론/이론가가 없으므로 서구 학자들이 행사하는 상징권력에 의해 상징폭력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뒤에는 논문을 완성하고 투고하는 과정, 학계 내 역학 관계 등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다른 교수에게 논문 논평을 요청했다가 대판 싸운 일화가 아주 흥미롭다. 학자들도 사람이라는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모든 것은 상징투쟁이며, 저자는 그가 상징투쟁을 통해 획득한 상징자본을 전시하며 독자에게 상징폭력을 행사한다. 전반부에 한국 사회과학계를 비판한 것도 상징폭력의 일환이다. (굳이 이런 식으로 쓰는 까닭은 저자 본인이 책에서 이렇게 언급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뛰어난 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 납득할 만한 내용이었는데, 솔직히 “대가”들의 자필 편지를 일일이 사진찍어 실은 걸 보면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어쨌든 국내 석사과정 정도 거치면 이런 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저자처럼 개념화하지는 못하겠지만. 학계에 대한 환상을 가진 학부생이 읽으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나로서는 유학을 앞두고 읽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상징자본은커녕 박사학위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 전에 내게 pacific-wide한 어장관리를 하고 있는 학교들이 과연 최종 어드미션을 줄까. 이러다 보면 저자가 쓰듯 “우리가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한국의 현실은 해외유학의 역사가 반세기를 넘겼지만 아직도 숱한 학생이 박사학위를 받으려 미국과 유럽의 명문대학으로 떠난다는 사실이다. 왜일까?”라는 질문을 부질없이 다시 던져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답은 잘 알고 있다.
덧. 저자는 경제학과 출신이다. 학부생 때 교재며 이론이 모두 영미의 것이었기 때문에 경제학을 때려치우고 사회학을 택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학자와의 서신에서 이렇게 쓴다. “비록 경제학은 과학장의 요건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부르디외가 이상적으로 상정한 자연과학 모형에 가장 가깝지만, 경험적 타당성에서 평가할 때 완벽한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들부들…ㅋㅋㅋㅋㅋ (경제학이 경성과학hard science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고민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RCT 하는 사람들은 – 가령 Duflo – 그렇게들 말하던데, 나는 아직 유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