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장려세제는 최저임금의 대안인가? (이상헌)

ILO 이상헌 박사님의 글. 페이스북 원문 링크


근로장려세제는 최저임금의 대안인가?

(괜한 약속을 해서 쓰는 글. 마감에 걸려 개요만 씀. 길고 조악하니, 관심있는 분만 읽으시길 ^^)

– 근로장려세제 (earned income tax credit, EITC)는 저소득 근로층을 위한 소득 지원 프로그램으로 미국에서 시작. 자녀가 있는 근로가구를 대상으로 하며, 일정 소득 이하를 가진 가구에만 적용. 이것을 굳이 “tax”, “tax credit” 라고 불려서 혼돈을 초래하기도 하는데, 미국의 독특한 정책구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고, 사실상 소득보조금임. 미국에서 가장 큰 예산규모를 가진 빈곤퇴치 정책.

– 그 기원을 엄밀히 따지기는 힘들지만, 존슨 대통령이 “사이버 혁명” 시대를 맞아 미래정책을 구상하도록 한 특별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 Triple Revolution에서 시작했다는 견해가 많음. 1960년대 중반에 발간된 보고서는 기술혁명에 따른 일자리 부족과 소득 불안정성 및 빈곤 퇴치를 위해 기본소득을 제안함. 프리드만을 비롯한 경제학자들이 일부 수용하고 현실 정책으로 적용되면서 negative income tax 개념으로 발전. 일정 소득 이하의 가구에게 부족분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주장.

– 유럽과 달리 별다른 빈곤정책 없었기 때문에 정책적 필요성에 대한 공감은 있었지만, 기본소득안은 격력한 저항에 직면. 존손 대통령도 반대. 청교도적인 노동관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아젠다. 대신, 미국에서 중요한 다른 가치인 “가족”을 중심으로 재구성. 가족지원 프로그램으로 전환이 되었지만, 이것도 반대에 부딪힘. “노동 여부”가 전제되지 않았기 때문. 결국 포드 정부는1970년대 중반에 “노동”과 “가족”에 결합된 빈곤프로그램 도입. 이것이 EITC. 노동하는 가정에 자녀가 있는 경우만 적용. 굳이 말하자면, 기본소득의 “역사적 변용” 인데 **, 1980년대부터 본격 적용되었고, 그 이후로 팽창. 최근에 자녀 없는 저소득 가구에 적용하자는 주장이 대두. 현행 제도는 아래 그림 참조.

– 따라서 EITC는 미국적 제도 및 정책의 산물임. 물론 외국에서도 더러 이용되지만, 상당한 변용을 겪는 것이 일반적.

– 한국에서는 EITC가 2008년에 도입된 후 “저소득층의 노동의욕 고취”를 위해 확대되어 옴. 2011년부터는 무자녀가구에게도 확대. 이런 면에서는 미국보다 앞섬. 물론 한국의 “선진적”인 면모를 보인 장면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같은 정책이라도 맥락이 다르기 때문. 미국에서는 근로가구층을 전제로 한 뒤, 이들의 소득 보전을 돕는 것임. 한국에서는 저소득가구의 노동시장 진출을 유도한다는 측면이 강함. 작은 차이이겠만, 한국에서는 이 때문에 쉽게 무자녀가구에게 EITC 확대된 것으로 보임 (이미 한국적 변용이 이루어진 것)

– 한국에서 EITC의 노동공급 증가 효과는 실증적으로 따져 보아야 할 문제. 개인적으로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봄. 첫째, 한국의 저소득층의 고용율은 상대적으로 높고 (중산층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음), 전체적으로 고용율이 낮은 것은 공급 측면보다는 노동수요적 요인 (일자리의 질)이 더 중요함. 둘째, 현재 EITC는 노동공급 결정을 바꿀 정도로 지원액이 높지 않다. 결국 전체적으로 애매함. 물론 기왕에 일하는 저소득층이 노동공급을 늘리는 효과 (노동시간의 증가)는 있을 듯.

– 이미 언급한 대로, EITC는 영미권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에서 많이 채택하는 정책은 아닌데, 최근 부쩍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일부 경제학자들이 최저임금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

– 표준 경제학 이론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주장임. 최저임금은 기업의 비용에 일차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고용 감소 효과를 배제하기는 힘든데, 그리고 최저임금이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차라리 저소득 가구에게 소득보전해 주는 방식이 낮다. 노동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한다는 것. 이 주장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있어 왔던 주장이고, 실제로 최저임금 반대론으로 사용됨.

– 최저임금에서 보장된 노동자의 후생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EITC를 설계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함. 하지만 두가지가 빠져 있음. EITC는 resource-intensive 하다 (미국에서는 최대규모의 빈곤퇴치 정책). 따라서 재원 조달의 문제를 따져야 하는데, 예컨대 법인세 증가를 통해 조달할 것인가? 이런 일반균형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빠져 있음. 둘째는, 노동시장 교란 효과. EITC는 기업의 비용 효과와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우월하다고 보는데, EITC 대안은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가능성.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보전이 주어진 경우 합리적 기업은 임금을 낮출 유인이 높아진다. 그에 따른 추가적 소득소실분은 EITC에서 추가적 소득 보전을 해 줄 것이기 때문. 임금 하방 압력이 커지고, 비효율적 한계기업을 유지하게 됨으로써 경제 전체적 효율성이 떨어짐. 한때 최저임금을 앞선 이유로 폐지했던 영국이 최저임금을 블레어 정부 때 도입한 이유도 바로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맞고자 한 것임. 최근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

– 핵심: 일을 하는 데도 빈곤한 층을 근로빈곤 (working poverty)라 하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보장 정책의 효과적인 연계가 필요함. 대체 관계가 아님. 최저임금이 할 일은 최저임금이 해야 하고, 소득지원정책이나 기타 사회보장정책이 할 일도 마찬가지. 최저임금을 보완할 사회보장정책은 꼭 EITC일 필요는 없지만, 노동소득을 보전해 주는 소득지원정책이라는 광범한 의미에서의 EITC는 필요하다.

– 유럽 국가에서 EITC 류의 정책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까닭은 이미 사회보장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네델란드, 프랑스, 핀란드에도 EITC 류의 정책이 도입되어 있지만, 제도적 보완물로만 사용되고 주축이 되진 않음. 사각지대를 해결하는 “한가지” 제도 방식이고, EITC를 중심으로 제도 구성하는 경우는 드물다. EITC가 최대의 빈곤정책인 미국과는 다르다.

– 최저임금과 EITC를 유기적 설계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다. 최저임금을 노동자 1인을 두고 설계한 뒤, EITC정책이 저소득 가구의 소득을 지원해 주는 방식도 있고, 최저임금을 평균 가구 방식으로 접근 (평균 가구원 수, 평균 취업자 수, 표준 최저생계비) 한 뒤 부족분을 EITC가 돕는 방식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경우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일정비율 (예를 들자면, 60-65%)에 맞춰 정한 뒤, 저소득 층의 소득부족분을 EITC가 책임지는 방법이 좋을 듯 하다. 하지만, 후자를 위해서 꼭 EITC라는 이름과 방식이 필요한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전체적인 사회복지 제도 틀내에서 유기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근로장려세제는 최저임금의 대안인가?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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