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야민 아펠바움, 경제학자들의 시간: 거짓 선지자들, 자유시장, 그리고 사회의 분열

빈야민 아펠바움, 경제학자들의 시간: 거짓 선지자들, 자유시장, 그리고 사회의 분열
빈야민 아펠바움 (Binyamin Appelbaum)
경제학자들의 시간: 거짓 선지자들, 자유시장, 그리고 사회의 분열 (The Economists’ Hour: False Prophets, Free Markets, and the Fracture of Society)
 
대부분의 국가에서 1950년대에 비해 의사가 훨씬 많아졌다. 기대수명도 늘어났다. 경제학자도 많아졌다. 그게 우리의 삶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켰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 빈야민 아펠바움이 팟캐스트 대담에서 던진 도발은 경제학과 대학원생을 낚기에 충분했다.
 
2차 세계 대전 후 경제학자들은 공공정책과 공론장, 나아가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이는 정책의 형태와 목표를 바꾸는 데도 일조했지만 무엇보다 정부 개입의 범위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적어도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그들은 모든 전선에서 승전을 거듭했다. 아펠바움은 이들 변화가 일어난 시기를 경제학자들의 시간이라고 명명한다.
 
아펠바움의 입장은 단순하다. “경제학 혁명은 너무 멀리 갔다.” “시장은 위대한 발명품이지만 모든 사람을 구원하지는 않는다.” “자유시장이 만들어낸 불평등은 오늘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즉, 그는 현대 경제학의 기여와 성과를 인정하나 근본적인 시선은 시장을 사회에 배태된 제도로 본 칼 폴라니에 닿아 있다. 실제 본문에서도 저 유명한 “사회와 경제의 이중운동 (dual movement)”을 인용한다. 그렇게 보면 새로울 것이 없다. 이런 책은 2008년 이후 무수히 많이 나오지 않았던가. 자유시장 정책 패키지를 가장 충실히 따른 국가들의 실패를 조망하며 칠레, 피노체트, 아옌데 얘기를 또 꺼내는 대목은 진부하다 못해 고루했다. 그러니 현대 경제학의 모순을 꿰뚫는 통찰이나 통렬한 비판을 바라고 이 책을 집어든다면 십중팔구 실망할 것이다.
 
이 책은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정책과 공론장,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바꾸었는지를 추적하는 저널리즘이다. 그러니까 경제학이 아니라 경제학자 이야기다. 짐작하듯 밀튼 프리드먼과 조지 스티글러를 위시한 70년대 시카고 경제학자들이 주연으로 등장하지만, 이들을 악역으로 묘사하는 진부한 전개를 택하지는 않는다. 아펠바움은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여 이들이 정치인과 일반대중에게 자유시장이라는 사상을 세일즈하는 데 성공하는 과정을 재구성한다. 완전변동환율제 같은 과감한 상상, 비용편익분석처럼 생소한 도구가 현실에 자리잡기까지 누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 때로 어떤 은밀한 배경이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경제학 10년 전공하면서도 처음 보는 이야기가 즐비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답게 글빨 하나는 확실하다. “거짓 선지자” 라는 어그로부터 범상치 않다. 제목의 의미를 넘겨짚자면, 저자는 이름에서 짐작하다시피 유태인이며 거짓 선지자라는 표현-메타포는 성서에서 유래한다. 구약성서가 그리는 거짓 선지자들은 신의 뜻을 사칭하여 임의의 가르침을 전한다. 따라서 자유 시장의 거짓 선지자란 표현은 경제학자들이 자유시장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약속했다고 비판하면서도 자유시장과 경제학을 부정하지는 않는 그의 입장을 썩 적절하게 요약한다. 저자는 “내 책은 90%가 내러티브고 10%가 판단인데, 어딜 가도 할애된 시간의 90%를 책의 10%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시킨다”고 불평하지만, 어느 정도 제목을 그렇게 지은 탓도 있을 테다.
 
주인공들이 경제학자일 뿐 저자가 어디서 학자들 말 한두 줄 읽고 망상을 투영한 무협지 아니냐는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다. 그는 집요할 정도로 꼼꼼하게 대화록을 찾아내 주석을 달고,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존하는 경우에도 출처를 최대한 확실히 명기한다. 경제학자들이 직접 진행하는 유명 팟캐스트 EconTalkCapitalisn’t도 인증했다. 우선 Capitalisn’t 호스트인 루이지 징갈레스는 그 자신 시카고 대학교 교수이다. 전형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진보 게스트 여럿을 혹독하게 보내버린 전력이 있는 EconTalk 호스트 루스 로버츠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펠로우)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그는 책에 등장한 이들이 서사에 극찬을 보냈다고 전한다. 그 역시 시카고 경제학 박사로 책에 등장하는 학자 대부분과 친분이 있다.
 
아펠바움 서사의 가치는 무엇보다 경제학이 세계를 변화시키던 영광의 순간에 혁명가들은 당대의 질서(status quo)에 도전하며 치열하게 논증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어느 학문이 그렇지 않겠느냐만 트루먼의 저 유명한 “외팔이 경제학자는 없느냐?”는 말이 시사하듯 경제학은 유독 따지고 논쟁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 상대는 정부 규제와 케인즈일 수도, 또는 불간섭주의 흐름과 프리드먼일 수도 있다. 2000년대 이후 학계에서는 최저임금제에 대한 적대감이 누그러진 것은 물론, 리카도 이래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자유무역도 도전을 피하지 못하여 무역질서 재편의 희생자들을 위한 재분배정책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같은 선상에서 제대로 훈련받은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알듯 시장도 완전한 자원 배분 메커니즘이 아니다. 하여 래리 서머스의 “불완전한 시장, 불완전한 정부 중에서는 전자를 택하겠다”는 말은 차라리 솔직하다.
 
경제학자들의 악덕이 있(었)다면, 학계 내에서 네 가정 틀렸다며 벌이는 격렬한 토론과 대중-대학교육 수준 커뮤니케이션은 내용뿐 아니라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 공세적 선교의 시대는 끝나고 “공짜 점심은 없다” 류의 경제학 기본 원칙은 상식 수준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어떤 명제가 언제 어떻게 성립하는지 따지는 법을 가르쳐야 하지,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가 <맨큐의 10계명>으로 요약되는 교리문답에 그쳐서는 안 된다. 코로나 초기 마스크 대란에서 보았듯 밑도 끝도 없이 시장 원리 네 글자면 논증이 끝난다고 믿는 경우, 동어반복적 기술통계량 몇 개 들이밀며 경알못들 입 닫으라는 경우를 보면 교리문답의 실패를 통감한다. 한편 하버드 경제학 박사학위에 빛나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반대파가 칠레를 베네수엘라처럼 만들 거라는 프로파간다로(“Chilezuela”) 손쉽게 2017년 선거 승리를 이끌었다는 일화를 보면 그 이상의 악덕을 고발하는 목소리에 대답할 말이 궁색해지곤 한다.
 
그럼에도 늘어난 경제학자 수만큼 세계가 좋아졌냐는 아펠바움의 공박에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지난 20년간 미국 백인 노동자 계층의 자살률, 약물 남용, 알코올 중독이 심각해졌고 그 배후에 장기적인 사회구조 변동이 있음을 체계적으로 보고한 학자들은 프린스턴 경제학자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튼이었다. 금융위기는 물론 코로나바이러스 위기 대응에 있어도 경제학 연구 성과는 분명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거짓 선지자라는 놀림에는 여전히 타당한 구석이 있다. 경제학자들이 선호와 제약을 구분하며 드러난 행동의 동기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작지만 확실한 인과적 경로를 찾아낼 때, 나아가 그런 사고방식 전파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때 비로소 야유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학계의 말석에 끼려는 대학원생이 더 말할 것도 없이, 이미 상당 부분 일어나고 있는 변화라고 믿는다.
 
 
아래는 간단한 요약. 1-7장은 대체로 괜찮은데 8장부터 좀 늘어지기 시작해서 9, 10장 읽다가 때려치울 뻔했다. 좀 익숙한 독자에겐 차라리 2장 케인즈 대 프리드먼이 장벽일 수도 있다. 워낙 여기저기서 다뤄진 내용이라 지루하다. 1장이 워낙 잘 쓰여져서 더욱 비교체험 극과 극이기도 하고.
 
프리드먼이 제안한 징병제 폐지는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을 통해 닉슨 행정부의 승인을 얻었다. 아카데미 경제학이 현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신호탄이었다. (1장)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를 전후해 무기력에 빠진 케인지언 “행동주의 경제학”을 대체할 새 교의로 통화주의가 등장했다. (2장) 인플레이션 – 실업률 관리 목표가 상충할 때 낮은 실업률을 우선하던 정책 당국자들은 실업률을 다소 희생해서라도 인플레이션을 관리해야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고, 볼커 시대 이후 2-30년간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관리를 제1사명으로 삼기에 이른다. (3장)
 
레이건 시대에 이르러 로버트 먼델식 감세론과 아서 래퍼의 공급 중시 경제학은 공화당의 기조를 아이젠하워 식 재정 보수주의에서 감세와 정부지출 삭감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 (4장) 조지 스티글러를 위시한 경제학자들은 반독점 규제의 근간을 공정과 정의 대신 소비자후생과 효율성 보호로 대체하며 법률가들로부터 경쟁법을 빼앗는 데 성공하며, 반독점법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5장) 스티글러의 세례는 공화당과 보수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카터는 탈규제를 밀어붙였고, 그의 단임 임기 중에 규제산업의 대표이던 항공업을 자유화시켰다. (6장) 이 즈음 비용편익분석은 정책평가방법론의 주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래도 생명의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다고 믿던 진보 진영이 추진한 공공 및 직장 내 안전 규제가 번번이 비용편익분석의 벽에 부딪혔을 때, 이들의 제일 조력자는 다름아닌 생명의 가치를 높게 산출한 경제학자 킵 비스쿠시였다. 그렇게 모두가 비용편익분석으로 개종한다. (7장)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언이 불가피했다 해서 그 출구가 반드시 변동환율제가 될 필요는 없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스미소니언 협정). 그러나 프리드먼 등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통화가치의 불안정성을 억제한다는 논리로 변동환율제를 탄생시켰다. 약속했던 통화가치와 무역질서 안정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8장) 자유 시장 경제학의 가장 충실한 학생들은 경제 발전에 실패했다. 시카고 보이들이 경제정책을 주도한 칠레와 공대식 계획경제 타이완의 대조가 이를 보여준다. (9장) 아이슬란드의 이전가능 어업권 쿼터제는 금융화와 맞물려 막대한 경제 붐을 가져왔지만, 잔치가 끝났을 때의 대가도 컸다. (10장)
 
마지막으로. 칼럼니스트라 그런지 챕터 작제 실력이 나쁘지 않다. 단순 패러디가 아니라 챕터 내용도 훌륭하게 요약하는 한편, 생각해 보면 내용 자체가 원 맥락과 적절한 대조를 이룬다.
  • 3장. One Nation, Under Employed (링컨의 One Nation, Under God)
  • 4장. Representation Without Tax (물론 보스턴 티파티의 No Tax Without Representation)
  • 5장. In Corporations We Trust (물론 In God We Trust)
  • 6장. Freedom from Regulation (규제로부터의 자유 – 루스벨트의 4대 자유)

피터 자이한,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2018.

원제는 The Accidental Superpower (2014). 박사과정 시작하고 오랜만에 읽은 책. 꽤 흥미로웠다. 워낙 화제가 되었듯 썰 푸는 솜씨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긍정적인 서평이 숱하게 있으니 굳이 그에 한 마디 거들 필요는 없겠다. 몇 가지 생각만 적어 본다.

교역은 왜 발생하는가? 국가별로 자원이 다르고 기술(생산성)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좀 더 세련되게 말해 국가별로 비교우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부존자원에 중심을 두는 경제모형을 헥셔-오린 모형이라고 한다. 지난 20년간 국제경제학자들은 헥셔-오린 모형이 오늘날의 국제무역 패턴을 거의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 대체로 합의를 보았다. 현실에서, 그리고 이론의 세계에서, 교역의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며, 생산성 높은 기업이 수출기업이 되어 더 넓은 시장을 상대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수확체증이 무역으로부터의 이익을 낳는다.

이 책의 주장을 요약하면 결국 이러한 변화가 미국이 세계의 바다를 감시하여 지정학의 작동을 중단시키고, 교역비용을 낮춘 데 기인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감시자 역할을 그만두면 이 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국제 분업은 느슨해지고 세계는 지역화되어, 저자의 용어를 빌리면 홉스적 국제질서가 귀환한다. 여기까지는 흥미롭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저자는 인구구조와 자본, (부활한) 지정학을 이용해 일련의 예측을 전개하는데, 이 모든 내용이 내게는 미국의 퇴장이 경제의 초점을 생산성에서 부존자원으로 옮길 것이라는 주장으로 읽힌다. 이 말은 홉스적 국제질서와 함께 맬서스 트랩이 귀환한다는 것이 아닌가? 이 대목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편 저자는 셰일 혁명과 함께 미국 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점을 들어 미국이 교역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무역이 일국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교역량으로만 측정할 수는 없다. 다국적 기업의 현지생산 등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가격을 통한 일반균형 효과는 간접적이지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과연 찬란한 고립 (splendid isolation) 하에서 “아마존 효과” 가 발생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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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또다른 의문은 미국의 국내정치 동학이다. 세계화는 분명히 일국의 후생, 쉽게 말해 실제로 향유하는 소비수준을 상승시키지만 임금불평등 확대에 기여한다. 이 논리가 역으로 작동한다고 하면 탈-세계화는 임금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대신 실질소득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아주 거칠게 말하면 다 같이 평등하게 못 살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 임금불평등 감소가 먼저 나타나면 그나마 낫다. 불평등은 그대로인데 실질소득만 감소하면 저소득층의 불만이 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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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그나마 세계화의 파급효과에 대한 이론적 예측이 역으로도 성립하는 경우다. 탈-세계화의 결실이 에너지 기업과 (비교적 교역로 방비 필요성이 덜한) 테크 기업들에게 집중되어 불평등이 확산되면 미국 소비자-유권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이미 경제학자들이 고작 1년 남짓 진행된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가 미국의 물가를 상승시키는 한편 공화당 지지 지역에 더 큰 타격을 입혔다고 추정하고 있다. 다가올 미 대선이 이 동학의 향방을 보여줄 공산이 크니, 굳이 용감하게 예측을 내놓진 않겠다.

간단히 말해 저자는 미국이 경제적 계기로 관조자 내지 은둔자로 돌아서리라 주장하지만, 경제의 내생성에 대해서는 눈감는다. 미국이 “가장 관대한 제국”으로서 세계화의 문을 열고 그 문지기 역할을 해왔지만, 문지기가 높은 통행세를 요구하거나 어느 날 사라진다 해서 문이 닫히거나 그 자리가 무주공산이 될까? 여기서 이 책에 대한 견해가 갈린다고 본다. 정도를 달리할지언정 자유무역이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해) 비가역적인 효과를 낳았다고 믿는다면 비교적 비판적이고, 그렇지 않다면 수용적이겠다. 나는 어쨌든 전자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회의를 거두기 어렵다. 

혹자는 팍스 로마나 시대 로마 지식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비웃을지 모른다. 글쎄, 연료 전망 비관론 (“성장의 한계”), 자원 전망 비관론 (“애그플레이션”)은 어땠나? 교역비용의 비가역적 상승은 자원 부족이 아니라 자원 교환 부족을 의미하므로 결이 다른가? 예언자들은 언제나 이번에는 다르다고 설교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미합중국 군대를 배후에 둔) 미국 군사 기업이 세계 교역로를 경비하며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는 세계를 상상하는 편이 더 쉽다. 우주개발에도 민영자본이 참여하는 세상에 항로 경비라고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물론 다 박사과정 나부랭이의 아무말이다. 나는 지정학도 국제정치학도 알지 못하며, 언제나 그렇듯 이런 거대한 이야기와 상극이고, 거대한 예측과는 더욱 그러하다.

2017 독서 Best 3

2017년에는 박사과정 시작하면서 독서량이 급감해 23권 정도 읽는 데 그쳤다. 세 권만 뽑아 보면 다음과 같다.

1.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죽음을 앞둔 의사가 기록한 자전적 생애사. 유려한 문장, 분명한 사유,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개인적 경험을 정리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2. 로버트 고든,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2017 최고의 경제서. 생산성 회의론의 대표 주자인 저자가 어마어마한 내공을 선보인다. 2016 최고의 책이었던 『교육과 기술의 경주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와 함께 읽으면 최근의 성장 담론을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3.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미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니 설명은 불필요하다. 한 마디만 보태자면, 내가 고등학생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사회역학자를 꿈꾸었을 것 같다.

Honorable Mention: 상반기만 해도 이언 모리스의 『가치관의 탄생』이 꽤 높은 순위를 차지했지만 결국 2, 3에 밀렸다. 내가 빅 히스토리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것도 한 이유겠다.

대니 로드릭, 그래도 경제학이다, 2016.

대니 로드릭, 그래도 경제학이다, 2016.

 

경제학을 위한 변명, 경제학을 위한 고언, 경제학 회의론에 대한 진지하고 친절한 응답. 또는 경제학자 사용설명서.

경제학을 변호하려면 경제학을 잘 알아야 한다. 경제학자들에게 고언을 건네려면 경제학을 더욱 잘 알아야 한다. 그러나 경제학 자체를 논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떨어져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이들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저자 대니 로드릭 교수는 이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소수의 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탁월한 연구자로서 학계의 연구 성과는 물론 경제학자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동시에 그는 (그가 본문에서 밝히듯) “비정통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로드릭 교수는 능숙하게 질문을 분류하며 책을 시작한다. 하여 이 책은 다음의 질문과 그 대답으로 요약된다. 경제학자들은 왜 모형을 사용하는가? 완전경쟁시장을 위시한 표준모형은 경제학의 유일한 보편모형인가? 언제 어떤 모형을 사용하는가? 왜 “이론”이 아닌 “모형”인가? 경제학의 실패는 모형의 실패인가? 경제학 비판은 타당한가? 모형으로 시작해서 모형으로 끝난다고 여겨지면 맞다. 경제학 비판이 대부분 (수리)모형과 모형화에 집중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겠다.

이들 질문에 답하며 드러나는 저자의 핵심 주장은 경제학이 모든 환경에 적용되는 일반이론보다는 다양한 모형의 집합이며, 그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이론의 지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론은 본디 보편을 지향한다. 케인스의 저 유명한 저서 제목 역시 <일반이론>이 아닌가? 그는 학계 바깥에 가장 널리 알려진 주제 두 가지를 사례로 든다. 거시경제학 학파 논쟁과 미국 불평등 원인 논쟁이 그것이다.

케인지언-새고전학파 논쟁이 일반 대중에 소개될 때면 흡사 무협소설처럼 학파 간 대립과 논쟁의 승패가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로드릭 교수는 다른 관점으로 거시경제학 논쟁사 – 또는 발전사 – 를 요약한다. 그는 한 쪽의 우월성을 역설하기보다 두 학파의 소산을 상황에 따라 꺼내 쓸 수 있는 서로 다른 두 모형으로 소개한다. 황희 정승 식의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먼저 이들 이론이 모든 상황·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일반이론으로 발돋움하는 데 실패하였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방점은 “실패”에 있지 않다. 그는 이들이 특수한 환경 하에서는 여전히 유용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령 케인즈 경제학은 1970년대에 그 한계를 드러냈으나 여전히 유용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새고전파 모형은 거시경제정책 운용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 경제학자들의 소임은 경제의 현 상태가 두 모형의 가정 중 어느 쪽에 들어맞는지 파악하여 더 적절한 쪽을 택하는 것이다. 이 논지는 사회과학으로서 경제학이 탐구하는 대상이 고정불변의 항구적 질서가 아니라는 점에서 거부하기 어렵다. 물론 경제학자들이 늘상 싸우는 모습을 보노라면 아무래도 공자님 말씀처럼 들릴 수는 있겠다. (가령 트럼프 감세안을 두고 Summers-DeLong-Krugman, Mulligan-Mankiw-Cochrane 등이 벌인 키배)

불평등은 어떤가? 여러 학자들이 1970년대 중반부터 심화된 미국 불평등의 원인을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세계화와 국제무역에 의해 비숙련 노동자 임금이 하락했다는 설명이 먼저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숙련 노동자 임금 상승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숙련편향적 기술진보 (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 SBTC) 가설이 제시되었다. 이 이론은 불평등 확산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했으나 역시 전부는 아니었다. 학자들은 정책 및 제도적 요인을 추가로 감안하여 불평등을 설명했다.

즉, 다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론이 아니라 한 번에 하나의 인과 메커니즘을 식별하는 일군의 모형이 동원된 것이다. (로드릭 교수는 “역사를 볼 때, 자본주의의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이론가들은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쓴다.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주의의 제1, 2 기본법칙”을 제시한 토마 피케티 교수를 에둘러 디스한 것일까? 한편 인적자본과 대체탄력성이 최근의 성장-분배 논의에서 그나마 가장 포괄적인 틀로 쓰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이외에도 저자는 지난 30년간 경제학의 변화, 경제학자들이 가진 편향 등을 학계 내 인물로서 정확하고 공평하게 쓰고 있다. 학부생 시절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경제학에 대한 회의가 확신으로 바뀌기까지 나는 숱한 책과 강의 사이에서 헤맸다. 로드릭 교수는 내가 고민했던 문제 대부분을 친절하고 명료하게 설명한다.

경제학의 옹호자들과 비판자들, 또는 경제학자와 비경제학자 모두가 참조할 만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비경제학자들을 위한 책이지만, 경제학을 안다면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에필로그의 <20계명>에는 경제학자 특유의 유머가 살아 있다. 경제학이 비전공자와 대중들에게 지나치게 매도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을 읽으라. 경제학자들이 지나치게 거들먹거린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을 읽으라. 무턱대고 읽으라고 하는 경제학도가 재수없는가? 그럼, 이 책을 읽으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시티즌 경제학』(토머스 소웰Thomas Sowell, 2002),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대니 로드릭, 2011),『99%를 위한 경제학』(김재수, 2016)을 권한다.

덧. 이 책에는 201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장 티롤의 에피소드가 하나 실려 있다. 노벨상 수상자로 지명된 후 티롤 교수에게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그의 기여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티롤의 대답은? “나의 기여를 짧게 요약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로드릭 교수는 이 일화를 경제학 연구 결과가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제시했지만… 박사과정 1년차 학생인 나로서는 티롤의 끝없는 논문 목록이 생각날 뿐이다. 암요, 요약하기 힘들고말고요.

덧2. 사실 경제학이 일반이론을 지향하기보다 모형의 다양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은 수긍이 되면서도 살짝 아쉽다. 우리는 Grand Theory를 안 찾는 것일까? 못 찾는 것일까? 못 찾는다면, 사회과학으로서의 본질적 한계 때문인 것일까? 문득 물리학에도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갭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두서없는 이야기.

덧3. 원제와 역제의 뉘앙스가 상당히 다르다. “Economics Rules”와 “그래도 경제학이다”. 드물게도 둘 다 마음에 든다.

 

배리 아이켄그린, 드와이트 퍼킨스, 신관호, 『기적에서 성숙으로: 한국경제의 성장』 [KDI-Harvard 연구시리즈], 2013.

배리 아이켄그린, 드와이트 퍼킨스, 신관호, 『기적에서 성숙으로: 한국경제의 성장』 [KDI-Harvard 연구시리즈], 2013. 서평은 아니고 메모.

배리 아이켄그린, 드와이트 퍼킨스, 신관호, 『기적에서 성숙으로: 한국경제의 성장』 [KDI-Harvard 연구시리즈], 2013.

한국 경제성장 종합연구. 이런 책을 발간할 수 있는 반추 역량이 성숙도의 지표는 아닐까.

이 책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6년부터 하버드대학교와 공동진행한 연구과제 ‘민주화와 세계화 시대 한국경제의 성과와 과제’의 첫 총서다. 과제명에 걸맞게 과거 성장의 기록을 충실히 검토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서·결론 제외 총 6장 구성으로, 각각 “거시경제의 성장원천”, “성장구조의 변화”, “서비스 부문과 경제성장”, “수출과 경제성장”, “외국인 직접투자와 경제성장”, “위기와 성장”을 다룬다. 저자진이 화려하다. 배리 아이켄그린 버클리대 교수, 드와이트 퍼킨스 하버드대 명예교수, 신관호 고려대 교수 모두 국제금융, 통화정책, 아시아 경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학자들이다.

간단히 정리해 본다.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은 60년간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오늘날 저성장 불안이 만연하나, 저성장은 경제 성숙이 수반하는 “평균으로의 회귀” 다. 1인당 소득 $10,000 – 16,000 구간을 지나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지 않은 국가는 없다. 한국은 오히려 성장 둔화를 오랫동안 억제하는 데 성공한 특이한 국가에 속한다. 이 현상에 관한 우려는 과장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 없는 경제는 없으니, 성장 둔화세가 가파른 건 사실이다. 연구진은 서비스부문 생산성·외국인 직접투자·교육 생산성 부진을 원인으로 꼽고, 이에 대응하는 정책제안을 간략히 내놓는다. 이외에도 “급진적인 제안”으로 해외 노동력 유치, 아시아 역내투자 활성화(=해외 노동력 활용)을 언급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경제성장 조급증을, 한국 정부는 국가주도 성장전략을 내려놓으라고 거듭 당부한다.

내게는 이 책을 종합평가할 거시경제 식견이 없다. 언뜻 심심해 보일 수 있으나 광범위한 통계를 기반으로 구축한 논증 탑이 정교하다고만 해 두겠다. 논증 고리가 탄탄하고, 반론을 떠올리면 몇 문단 이내에 다루어진다. (물론 내가 거시를 잘 몰라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 데이터가 아쉬운 측면이 있지만 더 나은 자료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언론과 서점가에 만연한 위기론·비관론도 대부분 논파한다. 일일이 다루진 않지만 더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원서 발간 시점에서 5년, 연구과제 발주 시점에서 10년이 지났다는 점은 아쉽지만 연구 내용과 시사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간 새로운 위기론 분파로 소위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기술발전 담론이 대두하긴 했다. 나는 “로봇과 인간의 경주 시대에도 인간이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을 수 있는 국민경제 균형성장경로가 존재한다”(Acemoglu, Restrepo MIT 교수), “[경제적] 특이점은 멀었다(Singularity is not near)”(Nordhaus 예일대 교수)는 주장을 더 신뢰한다. 기술발전이 찬란해지는 만큼 그림자도 크게 드리울 테지만, 아직 경제전망을 수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구 수행 후 5년간 한국 경제가 연구진 제안을 이행하지는 못했다고 보인다. 올해 초 화제가 된 정혁(2016)[modern_footnote]Jeong Hyeok (2016), “Assessment of Korea’s Economic Growth Experience Through the Lens of Neoclassical Growth Model”, working paper.[/modern_footnote]의 장기 성장회계에 따르면 총요소생산성(TFP)의 1인당 GDP 증가율 기여도는 2010년대 들어 2000년대 대비 4분의 1 미만이다. 연구진은 또한 (고성장기에 도농이동 등으로 확보했던) 유휴노동력이 소진되었으니 여성·고령인구 활용, 해외 노동력 유치, 나아가 자본 해외 진출을 통한 해외인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10년 시차를 둔 연구인 정혁(2016)은 한국 경제가 이들 중 고령인구 활용을 택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게다가 연구진은 노동자 숙련 유지에 초점을 두고 고령인구 활용을 주문했으나, 고령자 고용의 현실은 은퇴·경력단절 후 재취업한 “열화된”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한국경제는 끝장이란 말인가? 일단 작년 말부터 시끄러웠던 위기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성장은 장기 담론이다.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성장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한다. 담고 있는 내용의 수준에 비해 어렵지 않다. 특히 자료 설명이 아주 친절하다. 성장회계 요인분해법 외에는 수식도 나오지 않는다. 회귀분석 결과를 말로 잘 풀어 설명하므로 그것만 보아도 좋다. 단 내용-도표-주석을 오가는 끈기가 필요하며, 원활하게 이해하려면 회귀분석 결과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참고로, 당연하게도, 이 책에는 “성장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식의 멍청한 질문은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대강의 메모. 아래에는 내용 정리 겸 몇 가지 생각을 적어보았다. 정리 수준은 언제나 책보다 독자 수준을 따라가는 법, 한참 부족하지만 기록을 남겨 둔다. 자세히 풀어쓴 책일수록 두 번 읽기 힘들어 적어 두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글 길이와 퀄리티는 무관하다. 그리고 이 책이 선사하는 독서 경험에서 방대한 자료를 빼놓을 수 없다. 요약은 어디까지나 요약이다.

2장에서는 한국 경제성장사를 계량적으로 개관한다. 우선 60년대 이래 경제성장의 역사를 성장회계법으로 분석하고, 국가 간 성장회귀분석으로 국제비교한 후 둘을 교차검증한다. 성장회계 분석 결과는 널리 알려진 시나리오와 대부분 일치한다. 정부주도 개혁 – 총요소생산성 상승 – 자본수익률 상승 – 투자 촉진이 그것이다. 국가 간 회귀분석은 경제개방과 수출지향 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한편 한국 경제성장은 총요소생산성과 자본스톡이 동시에 크게 증가했다는 점에서 개도국과 구분된다. 성장회계에서 인적자본(교육) 기여도가 방법론 문제로 충분히 포착되지 않는데, 저 둘을 동시에 달성하며 경제를 견인할 수 있었던 근저에 높은 교육수준이 있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한국 역시 경제가 선진수준에 근접하며 나타나는 성장둔화 현상의 예외가 아니었다. 1인당 GDP $10,000 – $16,000 (PPP, 2000년 물가 기준) 구간을 지나며 성장속도가 느려지지 않은 경제는 없다. 어떤 알려진 변수도 이 보편적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며 한국 케이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성장 추세가 꺾인 기점이 외환위기는 아니었다. 한국 경제성장 추세는 1997년이 아니라 1989년에 구조적 변화를 겪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투자율과 자본장비율 상승이 성장 둔화를 상쇄하여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 주장은 뒤에서도 계속해서 검증된다. (이 책은 외환위기의 원인과 성격을 경제성장 맥락에서 재평가하는 데에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3장에서는 성장 과정의 경제구조 변천을 다룬다. 먼저 통상의 시나리오를 재확인한다. 제조업 중심 성장 이후 탈산업화, 곧 첨단기술산업 및 서비스 부문으로 이행하는 구조 변화가 일어났다. 이는 현재 고소득 국가들이 모두 겪어온 보편적 성장경로다. 단 연구진은 한국 제조업 고용 감소 시점이 현재 선진국들이 겪었던 시점보다 빨랐다고 지적한다. 제조업 고용 감소로 일자리를 찾지 못한 노동자들은 결국 자영업자 내지 영세업체 노동자가 되었다. 서비스 부문이 고용의 70% 이상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구조변화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지는 못했다. 당장 첨단(ICT) 투자는 해당 산업을 성장시켰으나 경제 전체의 성장을 견인하지는 못했다. 서비스 부문 문제는 4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3장의 또다른 주제는 한국 경제성장 논의의 뜨거운 감자 또는 불화의 사과, 산업정책이다. 산업정책은 구조변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연구진은 관련 자료 및 연구를 폭넓게 들어 시기별 산업정책을 평가한다. 우선 50년대의 경우 소득수준은 낮았으나 개방정책이 총요소생산성을 높였고, 60년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성장 드라이브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쓴다[modern_footnote]이 책보다 더 최근에 나온 논문의 해석과 통한다. 김두얼(2016),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성장의 기원: 1953-1965”, 경제발전연구.[/modern_footnote]. 이어 60년대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한다.

그러나 70년대 정책 평가는 양가적이다. 박정희 정권이 중화학공업 육성 관련 여러 업종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공업 발전이 없었으리라는 의견(Rodrik 1994)이 지배적이다. 이에 반해 연구진은 모방 대상으로서 일본이 존재했음을 들어 개입이 없었더라도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전환했을 것이며, 정책은 방향이 아니라 속도를 바꾸었으리라고 쓴다. 물론 속도를 높인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재벌의 정치 영향력을 키워 정경유착이 심해졌고, 경제의 차입의존도를 높였으며, 재벌의 확장주의적 성향을 형성했다. 이는 후일 외환위기의 씨앗이 된다. (“외환위기는 한국경제 모순이 복합적으로 표출한 사건” 식 설명 좋아하는 분들이 반길 듯하다. 이 평가는 외환위기 성격 규명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부분은 기존 견해가 더 현실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국제정세가 한국의 중화학공업화에 유리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연구진도 이 사실을 언급하나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고 보는 듯하다.

80년대 이후 정책은 단호하게 부정적으로 평한다. 제5공화국에서 정부는 과거 재벌이 정부를 필요로 했다면 정부도 재벌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정부가 엄격한 성과기준을 적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김재익 수석이 주로 비판받는 대목인 중화학공업 비중 축소가 실현되지 않은 과정이 예시가 될 듯하다.) 90년대에 공업이 고도화되며 발전이 정부 영향을 벗어나자 이 문제가 더욱 심해졌다. 규제는 지대추구를 조장하는 요식행위로 전락했다. 연구진은 60-70년대와 90년대를 비교하며 아예 이렇게 쓰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산업정책이 수출 붐을 일으키고 포항제철과 현대 등의 성공적인 기업을 키워낸 데 반해, 1990년대의 정책은 한보철강과 여타 정치적 특혜를 입은 기업들을 탄생시켰고, 결국 이들의 파산으로 인해 1997~1998년 금융위기의 바탕이 마련된 셈이었다.” 외환위기는 경제의 짐이 되어 버린 과거식 산업정책이 현대화되는 중대 계기였다. 장기 데이터를 활용한 실증연구는 대부분 산업정책이라는 신화를 깨뜨리는 듯하다. 분석 방법은 다르지만 차명수, 김낙년 교수 등의 수량경제사 연구도 산업정책보다는 교육이나 제도에서 원인을 찾는다.

4장에서는 서비스 부문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 서비스산업 생산성은 왜 낮은가? 서비스부문 생산성이 제조업보다 느리게 상승하는 현상은 OECD 국가들이 보여 주는 경험적 사실이다. 제조업보다 노동집약적이므로 혁신이 어렵고, 대부분의 서비스업종이 교역불가능하여 경쟁압력이 낮기 때문이다. 한국의 특수성이라면 제조업 고용비중 하락에 따라 “밀려난” 노동자들이 서비스업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modern_footnote]이 문제는 노동경제학 실증연구의 전통적 주제다(Roy model). 사람들이 비교우위에 따라 직종과 부문을 선택하는가? 아니면 뛰어난 사람은 대기업 가고 못 간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가? 사람마다 제각기 의견이 있겠지만, 아직 국내 문헌에서 합의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자영업에 관한 신뢰할 만한 데이터나 연구가 드물다. 제조업-서비스업 구분과 임노동-자영업 구분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한국 노동시장 특성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일단 “심증”에 얼기설기 붙인 자료로 밀고 나가 보자.[/modern_footnote]. 그러나 이 사실들만로는 한국 서비스부문 부진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연구진은 서비스업 진입규제가 지나치다는 “뻔한” 진단을 증거와 함께 제출한다. 특히 중소기업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비스 부문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1인당 부가가치가 현저히 낮다. 반면 급여-매출비율은 낮지 않고 영업이익률은 높다(’05년 자료). 이는 중소기업들이 지대(rent)를 얻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주장은 익숙하다. 그렇다면 부문 내 업종별 차이와 기업규모별 차이 중 무엇이 더 중요한 요인인가? 다른 자료를 찾아보았다. 2013년 기준 광업·제조업 내 중소기업 비중은 98%, 38%, 71% (각각 기업 수, 출하액, 종사자 수)이며 서비스업 내 비중은 98%, 72%, 83%이다. 서비스 부문에서 비중이 더 높다. 생산성 저해 요인이 여럿 있겠으나, 규모별 차이 역시 생산성 -노동생산성·총요소생산성 모두 – 개선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기업 주도 서비스업인 금융업·통신업은 생산성 및 그 증가율이 다른 업종에 비해 훨씬 높다. 도소매업, 숙박업 등의 생산성 증가율이 음수인 것과 대조적이다.

이렇게 생각해봤으나… 이 자료로부터 결론을 확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는 회의가 자꾸 고개를 든다. 그래서 연구진이 서비스 부문 생산성을 언급할 때마다 개운치 않았다. 우선 서비스 부문은 측정오차(measurement error) 문제가 상시 존재하고 심각하다. 게다가 자영업자 문제가 데이터를 더욱 꼬아버린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교육·의료·금융·법률 분야 생산성 개선 가능성을 언급하는데, 교육과 의료는 시장가격이 존재하지 않는 대표적인 비시장 서비스업이므로 생산성 추계에 문제가 많다. 자료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최근 자료를 이용한 분석을 찾아보았다. 이종화·송철종(2014)[modern_footnote]이종화·송철종(2014), “한국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분석”, 한국경제의 분석.[/modern_footnote]이 비교적 잘 정리된 연구로 보여 해당 논문과 세미나 자료를 읽어 보았다. 그러나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이종화·송철종(2014)에서는 시장-비시장서비스업을 구분하여 분석하는데, 시장서비스업 생산성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 서비스부문 생산성이 낮지 않다고 해석해야 할까? 실제로 TFP와 종종 연관되는 혁신 관련 지수에서 한국은 꽤나 상위권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을 도출하려면 연구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내 공부도 더 필요하고…)

말이 나온 김에 중소기업 얘기를 조금만 더 쓰면, 중소기업은 각종 정책적 배려를 받고 있다. 자본조달, 노동자 채용, 유통 등 다양한 채널에 중소기업 보조정책이 존재한다. 육성·장려·진흥 등의 이름을 갖고 있는 이들 정책은 정권 성향과도 무관하다. 부처로는 중소기업청이 있고, 대통령 산하 동반성장위원회가 또 있다. 입법도 될 것 같다. 지난 정부부터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법제화 움직임이 생겨나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논의가 터져 나오고 있다. 더하여 현재 제조업 위주의 적합업종 제도를 서비스업으로 확대하려는 듯한 모습도 보인 바 있다.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기도 했다.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승격시킨다면 그 기조에 따라 법제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련의 “도그마”를 “유치기업 보호론”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경쟁정책 없는 보호정책은 성장을 저해한다. 경쟁이 심해서 과당경쟁이란 말이 나오는데 무슨 말이냐고? 어제 문 닫은 동네 빵집만 떠올리면 곤란하다.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규모 이상 성장하지 않는 소위 피터팬 증후군 현상이 이 문제의 부산물 중 하나다. 이미 지적된지 오래이며, 염려스럽다.

5장에서는 한국경제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출에 대해 논의한다. 경제성장사 내러티브를 조정하며 “위기” 보다는 “수렴”에 초점을 맞추는만큼, 연구진은 수출 관련 위기론을 공들여 논박한다. 앞서와 같이 외환위기 이후 한국 제조업 국제경쟁력이 하락하고 수출부문이 공동화되며 성장률이 하락했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극단적이다. 고성장기 수출성장률을 회복하지 못하고 상품수출 증가율이 부진한 것은 위기의 전조가 아니라 성숙의 징표다. 수출국 다변화, 수출품 다양화, 수출품의 기술수준 모두 한국 수준 국가에 기대되는 정도에 부합한다. 연구진은 유사한 특성을 가진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 수출은 여전히 좋은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대내외 여건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고환율 정책으로 대표되는 수출지향적 산업정책은 더 이상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한국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 중이다. 서비스 국제교역이라는 새로운 경쟁환경 하에서 서비스업 생산성 부진은 미래성장을 좀먹을 수 있다. 중국의 부상도 역시 한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비재 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고, 중간재와 자본재 수출에도 타격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진은 전체 수출품을 종합하면 한국이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가장 적은 피해를 입는 국가일 수 있다고 평가한다. 더 큰 변화는 과거와 달리 수출과 성장의 관계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수출산업이 유발하는 고용 역시 점점 적어지고 있다. 요약하면 수출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으나, 수출과 성장이 과거와 같은 경로로 상호강화하지는 않는다. 이 분석이 “수출 주도 성장의 시대는 끝나고 내수 중심 성장으로 전환할 때가 왔다”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6장에서는 투자, 특히 외국인직접투자(FDI)의 현황과 역할을 짤막하게 다룬다. 우선 연구진은 외국인직접투자 저조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합의된 연구 결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는다. 이에 따라 FDI-성장 관계보다는 한국 성장사에서 FDI의 역할과 향후 FDI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조명한다. (다른 챕터에 조금씩 나누어 실을 수 있는 내용인데 윗선에서 이런 챕터 넣으라는 얘기가 나와서 독립시킨 듯한 인상이다.) 한국은 성장 과정에서 FDI보다 차입과 산업정책을 활용했고 여전히 반FDI 규제 및 사회환경을 갖고 있다. 그 결과 FDI 대상국으로서 그리 매력적이지 않고, 중국의 부상 역시 한국 FDI 증가의 장애물로 작용했다.

반면 FDI 투자국으로서 한국은 비슷한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들에게 기대되는 만큼 투자하고 있다. 결국 유출보다 유입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통념 두 가지를 반박한다. 먼저, 해외투자로 인해 국내 산업 공동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니다. 둘째로 (국내기업의) 국내투자가 해외투자보다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리라는 통념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결국 FDI를 받거나 하면 좋고, 한국은 과다유입·유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진단이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직접투자유입이 늘어나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전망한다(이는 역내 진출을 통해 해외노동력을 활용하라는 제안과 연결된다.)

7장에서는 소국개방경제 한국이 주기적으로 겪는 경제위기와 성장의 관계를 고찰한다. 한국은 지난 50년간 4차례 위기를 겪었다. 60년 수출 드라이브가 낳은 1970-71년 위기(72년 8.3 조치로 이어짐), 80년대 초 중화학공업 육성책이 촉발한 외채 위기, 97년 외환위기, 08년 세계금융위기가 그것이다. 연구진은 위기의 원인, 경과, 파급효과를 나누어 분석한다. 먼저 연구진은 이들 위기가 결국 공격적인 친성장정책을 추구하는 한국 성장모델의 부산물이라고 진단한다. 한국 경제는 높은 수요 압력 하에서 고투자율을 유지하고 과도한 차입금을 사용하며 성장했다. 특히 단기부채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로 인해 자본흐름 역전 리스크에 취약해졌다. 잘 알려졌듯 97년 외환위기 역시 이 문제가 극적으로 터진 사례다.

그러나 앞서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에 겪은 위기의 본질도 동일하다. 세 번 모두 국제통화기금이 개입했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주문받았다. 산업정책 평가에서도 나타났지만 군사독재 시절 경제정책이 경제성장을 낳지 않았으며, 경제가 특별히 안정적으로 운영된 것도 아니다. 당시 경제정책을 신화화하거나, 97년 외환위기를 김영삼 정권 책임으로 돌리는 것 모두 번지수를 잘못 찾는 것이다. 공격적 정책을 펼치며 위기 리스크를 감수한 대가로 성장이라는 열매를 얻었으며 위기는 매번 개혁의 촉매로 작용했다. 97년 외환위기조차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저해하지는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투자율이 감소했으나, 이는 오히려 경제 성숙의 증거다.

08년 금융위기의 경과와 대응은 한국 경제가 분명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 내부에서 비롯되지 않았고, 97년의 교훈으로 충격을 제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전과 구별된다. 당시 한국은 국가 단기부채가 여전히 높았으나 그의 50%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를 유지했으며, 기업 레버리지도 과거에 비해 낮았다. 그렇다면 왜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더 심각한 영향을 받았는가? 역설적으로 한국 금융시장이 국제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렇게 쓴다. “한국이 금융적인 압력에 유난히 취약하다고 입증된 정확한 이유는, 한국이 IMF와 미국 재무성의 권고에 따라 대단히 충실하게 금융 시스템을 국제화했기 때문이다. (..) 금융 발전과 국제화도 나름의 장점이 있겠지만, 세계 금융시장의 혼란기에는 그렇지 않다.” 이 서술을 보면 “외환위기 이후 강제된 신자유주의 워싱턴 컨센서스가 한국 경제를..”을 떠올릴 수 있겠으나, 국제경제학 교과서의 불가능한 삼위일체(impossible trinity)를 풀어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과거와 달리) 금융위기에 비교적 잘 대처했고 위기 후 경제 성과도 우수한 편에 속한다.

8장에서는 논의를 종합하여 결론을 내놓는다. 연구진은 앞선 분석을 요약하며 한국이 지나친 불안을 불식시켜야 하며, 한국은 더 이상 모방할 수 있는 역사적 사례가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정책 제안은 앞에서 정리한 대로다. 앞서 교육 관련 정책과제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연구진은 노동의 질 측면에서 대학교육의 양적 확장이 한계에 다다랐고 질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한다. “식상한” 지적이다. 그런데 연구진이 언급하는 세부 사항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먼저 연구진은 산학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지금까지 거둔 소기의 성과로 특허출원이 02년에서 08년 사이 4배로 늘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저 산학협력 결과물의 유용성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연구진의 두 번째 제안은 대가급 연구자를 유치하기 위해 급여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인구조 설계는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학생 신분이라 그런지, 학문후속세대 양성 부진이 한국 대학이 연구기관으로서 겪는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인문사회계열에서 그렇다.

8장 끝에서 연구진은 2장에서 쓰인 성장회계법과 국가간 회귀분석을 이용하여 중기 경제전망을 전망한다. (연구진은 “중기”임을 강조하는데 이는 현실적 의미도 있겠으나 모형의 가정 때문이다.) 즉, 2010-20년과 2020-30년을 나누어 잠재성장률을 산출한다. 연구진이 노동, 자본, 투자, TFP 증가율 등을 조합하여 여러 시나리오를 가정하여 산출한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연 4.5-6%(2010-20), 3.3-4.7%(2020-30)였다.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으나, 2010년대 후반 시점의 독자는 예측 범위가 적절했는지, 틀렸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평가할 수 있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실현된 성장률은 연평균 3.5% 수준으로 이에 비해 낮았다. 우선 확인할 수 있는 문제는 TFP 였다. 연구진 시나리오 중 가장 보수적인 가정은 투자율 30%, TFP 증가율 2%였다. 2010-2015년 사이 실제 투자율은 28~32% 수준으로 비슷했으나 TFP 증가율은 많이 달랐다. 앞서 인용한 정혁(2016)에 따르면 2010-2014년 TFP 성장률은 0.5%에 불과했다. 대내외 여건이 예상과 달라진 측면도 있겠으나 그것까지 알 수는 없다.

그럼 2020-30년 경제성장률은 연구진 전망치인 3.3-4.7%보다 밑에 있을까?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한국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주요국 중 높은 편에 속한다. 연구진은 한국이 성공적인 구조개혁(=TFP 상승)을 해내리라고 가정했다고 한다. 심지어 책 마무리 문장이 “…한국의 이러한 개혁 정신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는 낙관이다. 개혁은 상당 부분 정치의 영역이다. 뜨뜻미지근하지만 새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말을 남길 수밖에 없겠다. 무디스도 새 대통령이 대내외 성장 역풍에 맞서 구조조정을 하리라는 이유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던가. 거시알못 석사 나부랭이보다 무디스가 잘 알 것이다.

늘 버릇처럼 다는 번역과 편집 이야기. 이 책은 하버드대학출판부에서 영문으로 먼저 출판된 뒤 한국어판으로 나왔다. 번역이 애매하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 감수가 필요해 보인다. 전문서적임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읽을 만하지만, 가끔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문장이 출현한다. 다행히 회사 도서관에 원서가 있어 참조할 수 있었다. 최소 두 명 이상의 역자가 따로 작업하고 감수 없이 합친 것으로 보인다. 가령 lag/lagged variable이란 표현의 경우 2장에서는 “지체”라고 옮긴 반면 6장에서는 정확히 “시차변수”로 번역한다. 시차변수라는 용어를 아는 역자가 지체라는 표현을 택할 리 없다. 이런 용어 문제는 주로 1-4장에서 발생한다.

한편 앞 부분 번역에는 정치적인 문제도 있다. 원문은 “the military coup”과 “assassination of President Park”을 각각 5.16 군사정변과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고 있다. 2, 3장 역자는 이를 각각 “5.16 군사혁명”과 “박 대통령 시해”로 옮겼다. coup는 “Coup d’état”(쿠데타의 프랑스식 표현)에서 온 단어로, 혁명이란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대통령은 군주가 아니므로 시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6장 역자는 assassination을 “암살”로 옮겼다. 같은 사람이 “시해”와 “암살”을 혼용할 가능성은 낮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편집상의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표 안의 숫자가 틀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 가령 회귀분석 robustness check 중 결정계수가 0.61에서 0.06으로 튄 사례가 있다. 원서를 보니 원래 숫자는 0.60이다. 표 데이터 없이 수기로 옮기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을 문제다. 좀 이상하다. 이걸 발견하고 나서 표를 좀더 깐깐하게 체크했는데 이런 오기가 너덧 개쯤 더 있다. 다행히(?) 꼼꼼히 읽으면 숫자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이 정도 기획연구시리즈 단행본에는 감수자를 두는 게 어땠을까 싶다.

고지마 히로유키, 『세상에서 가장 쉬운 통계학입문』 & 『베이즈통계학입문』.

고지마 히로유키, 세상에서 가장 쉬운 통계학입문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베이즈통계학입문. 서평에 가까운 메모.

고지마 히로유키, 『세상에서 가장 쉬운 통계학입문』 & 『베이즈통계학입문』.

경제학 교수가 쓴 통계학 입문교양서 시리즈. 제목 값을 한다. 의지만 있다면 중학생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범위를 이보다 더 쉽게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외돌이에게도 읽힐 예정이다.

통계학은 자연언어로 구축된 체계다. 다시 말해 통계학자들은 (논리 전개는 물론) 내용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형식으로 수학을 선택했다. 따라서 형식과 내용이 어느 정도 의존적이다. 수식을 배제하면 직관 묘사도 제한된다.

저자는 이 난점을 꽤 성공적으로 해결한다. 두 책 모두 수리적 접근을 최소화하고 그림과 간단한 산수만 활용했음에도 입문자에게 필요한 핵심이 잘 서술되어 있다. 특히 <베이즈통계>의 면적도 설명법은 가르칠 일이 생기면 유용하게 활용할 것 같다.

중심 개념 설명도 돋보인다. <통계학입문>은 표준편차와 가설검정을, <베이즈통계>는 조건부확률과 베이지안 업데이트를 직관적으로 잘 설명한다. 두 책 모두 후반부에 수식이 조금 나오는데, 전반부에 설명을 워낙 잘 해 두어 따라가기 쉽다. 수학적 배경이 부족한 사람도 한두 번 보고 포기하지 않으면 끝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게다.

요즘 공부할 생각은 안 들어(..) 예전에 본 교과서나 이런 입문서를 들추며 소일하는데 괜찮았다. 일전에 메모 쓴 <통계학을 떠받치는 일곱 기둥 이야기>에 데인 입문자가 있거든 이 두 권을 권한다. “전 통계 하면 평균밖에 모르는 1알못인데 괜찮을까요?” 괜찮다. 이쪽을 잘 알지만 기초를 일별하며 흐름을 챙기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