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6월 초 경향신문에서 노동연구원 자료를 인용하여 “왜 여성 임금은 20대 후반부터 남성보다 떨어질까” 라는 표제의 기사를 냈다. 기사가 정리한 바를 옮겨오면 “남성의 임금은 연령에 따라 꾸준히 증가해 40대 후반에 최고점을 맞고 점차 하락한다. 반면 여성은 20대 중반까지는 남성과 임금 격차가 없지만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남성 대비 상대임금이 감소한다.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에 급격하게 감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금 더 쉽게 풀어쓰면, 성별 임금격차는 노동시장 진입 직후에 발생하며 20대 후반-30대 초반에 급격히 확대된다. 그 후 남성 임금상승률이 여성을 압도하며 고착된다. 

논쟁적인 주제인 만큼 실증의 역할이 크다. 해당 보고서는 성별로 생애주기에 걸친 임금 변동 양상을 추정한 결과를 논거로 제시한다. 이는 통상의 성별-연령별 평균임금 단순비교에 비해 체계적이다. (*연령-소득곡선 추정이라고 한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생애주기 경로를 따르므로 연령별 평균임금 단순비교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비교적 간단한 테크닉이지만, 최근 국내 데이터로 이런 분석을 한 자료는 내가 아는 한 이 보고서 뿐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왜 (여전히) 이런 현상이 관측되느냐는 것이다.

경력단절이 범인인가? 저자들은 경력단절을 겪은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임금 변동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한다. 경력단절이 출산 후 임금격차가 심화되는 현상을 거의 설명하지 못하며, 최근 세대에서 이런 현상이 더욱 뚜렷하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임금 격차 확대가 일자리 지속 여부보다는 결혼·출산이라는 생애사적 사건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맞벌이(였던) 부부들에게는 뻔하다 못해 진부할, 결혼-출산 전후 역할 분담, 그에 따른 부부 시간배분 전략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이야기다. 기실 “M-커브”로 상징되는 한국의 악명 높은 경력단절 현상이 2010년대 후반 들어 서서히 완화 중이기도 하다.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경력단절과 무관하게 임금비 추세선은 하락한다.)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M-커브는 완화되는 중이다.)

한국보다 사정이 낫다는 서구권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측된다. 지난 2월 북유럽 (스웨덴, 덴마크), 독일어권 (독일, 오스트리아), 영미권 (영국, 미국) 6개국 데이터를 동원하여 출산이 성별 임금격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 해당 논문은 첫 출산 전후 성별 임금격차의 변동 양상을 분석한다. 곧, 출산 후 겪는 임금 하락을 “자녀 페널티”로 정의하고 자녀 페널티의 크기를 국제비교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정도를 달리할 뿐 6개국 공히 여성이 더 심한 자녀 페널티를 겪는다.

여러 요인을 통제하고 나면 출산 이전 임금 변동 양상은 성별로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가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한다. 출산 직전 자신의 임금을 기준으로, 남성 임금에는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여성 임금은 출산 즉시 최소 20% (덴마크)에서 최대 90% (오스트리아) 하락하며, 시간이 흘러도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여성이 출산 5년차부터 10년차까지 겪는 남성 대비 손실은 연평균 최소 20-30%에서 (북유럽) 최대 50-60% (독일어권)에 달한다.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현상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여성이 일자리를 잃거나 (약한 형태의 경력단절), 일하는 시간을 줄이거나, 여성의 시간당 임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영미에서는 경력단절이, 독일어권/북유럽에서는 노동시간이나 임금률 하락이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고 보고한다. 세계 최고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작동하는 스칸디나비아에서조차 이런 현상이 관찰된다는 사실은 현상 배후에서 작동하는 사회경제적 힘의 크기를 시사한다. 한국에서 관찰된 현상 역시 유사한 메커니즘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육아부담으로 대표되는 각국의 문화나 젠더 규범이 죽여도 죽지 않는 히드라처럼 수면 밑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그 많은 노동시장 정책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논문에 따르면 육아휴직 확대 내지 육아보조 정책은 장기적으로 자녀 페널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단기에는 정책이 관용적일수록 페널티가 커진다. 가령 스웨덴 여성들이 덴마크 여성들에 비해 더 큰 임금 하락을 겪는 이유가 스웨덴 육아휴직 정책이 덴마크에 비해 “널널하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이 해석이 출산-육아정책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불이익이 가장 적지 않은가? 단지 정책이 만병통치약이 아니었거나 (자녀 페널티를 완화하지 못함), 긍정적 효과가 공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자녀 페널티를 유발). 강고한 시장주의자라면 경제정책은 만능이 아니며, 고용을 규제하면 임금이 반응한다는 단순한 원리가 재확인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한편 스칸디나비아 사례는 저출산-성별 격차라는 동전의 양면을 보다 선명히 드러낸다. 차별이 개입될 여지가 가장 적은 곳에서 나타나는 출산 전후 임금격차에 대해 차별과 직종분리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따라서 스칸디나비아의 자녀 페널티는 논문의 정의처럼 순수한 자녀양육의 비용, 한 명의 아이를 국가공동체에 공급하기 위해 여성들이 치르는 비용일 가능성이 크다. 남성 대비 20-30% 낮은 임금. 출산이 선택이 아니던 시절 저 비용은 청구될 수 없었다. 하여 대부분의 국민경제는 여성의 생산성을 지불하여 미래 세대를 얻는 균형에 머물렀다. 아예 출산아 수가 여성의 생산성을 의미하던 시대 역시 먼 과거가 아니다. 여성이 출산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된 오늘에서야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누가 그 비용을 치를 것인가? 

유럽 저출산의 원인을 분석한 다른 논문은 출산의 생물학적 주체, 여성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할 것을 주문한다. 해당 연구는 가구 내 육아 분담 양상이 출산 결정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아이는 부부가 상호동의해야 탄생하는데, 육아 부담이 여성에 집중될수록 여성들이 출산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출산 국가에서 남성이 육아부담을 덜 부담했다. 여기서 가구 전체가 아니라 여성의 자녀 양육 부담 경감에 특화하는 정책이 효과적이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역시 국가공동체가 자녀 페널티의 원인을 없앨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개인적으로는 해당 논문의 결론에 동의한다. 생물학적 제약을 완전히 제거하는 <멋진 신세계> 식 중앙보육제도가 도래하지 않는 한 육아부담은 여성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가계가 아이를 공급하는 시스템을 지속하고자 한다면 부담을 경감시켜야 한다. 2018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성 70%가 자녀를 원하지만 미혼 여성들은 50%만이 그렇게 응답했다. 여성들은 자녀를 원치 않는 이유로 자유를 잃으리라는 점을 들었다. 위 논문의 논지에 부합하는 사례다. 그들의 처방을 따르자면 이 수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여성에게 충분한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물론, “10억을 주면서” 육아에 전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없던 설득력이 생겨난다는 밈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효과가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저출산의 청구서로서의 성별 임금격차, 그리고 미래

그런데 2015년만 해도 여성의 70%가 출산 의사를 밝혔다. 3년 동안 전국 가구 내 역할 분담이나 성별 임금격차 양상이 크게 바뀌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국 인식의 문제로 돌아오는데, 3년간 20%p라는 변화 속도는 다소 충격적이다. 더하여 아이를 원하는 미혼 남성의 비중 역시 3년간 10%p 줄어들었다. 이쯤 되면 지속적인 출산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미혼 청년의 7-80%가 자녀를 원했다는 점을 신기해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데이터가 튀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이 급격한 변화를 이끈 요인에 관한 체계적인 분석은 애석하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 이들 연구가 주는 교훈은 답보다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경력단절 문제에 있어 한국의 변화는 긍정적이나, 인구감소와 젠더 갭을 동시에 상대한 해외 국가들이 먼저 도달한 미래가 마냥 장밋빛이 아닌 까닭이다. 한국은 그들의 정책처방을 따라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 서구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녀 페널티를 줄이는 정책을 벤치마킹할 것인가?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국가에서 서구의 질문과 답을 차용해야 하는가? 혹은, 우리는 정말 그런 정책처방으로 저출산을 극복하고자 하는가?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제목 다는 것도 그렇고 쓰는 데 꽤 애먹었다. 이 주제를 오래 고민해 보았지만 내가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은 아직 이 정도로 그치는 듯하다. 단기적인 처방은 그렇다 쳐도 장기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고등교육 (human capital supply = efficiency unit supply) 은 정의 외부성 (positive externality) 의 교과서적 예시다. 교육의 개인적 편익이 사회적 편익에 미치지 못해서 교육(받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보다 적게 공급되며, 따라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 한국은 인구공급 (단순 labor supply) 역시 이런 틀로 논의해야 할 때를 맞은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의심이 있다.

 

학술 저작 레퍼런스:

노동연구원 보고서.

최세림, 방형준. 2018. “생애주기에 따른 성별 임금격차: 결혼과 출산의 영향을 중심으로”. 한국노동연구원.

논문 1. Kleven, Henrik, Camille Landais, Johanna Posch, Andreas Steinhauer, and Josef Zweimüller. 2019. “Child Penalties across Countries: Evidence and Explanations.” AEA Papers and Proceedings, 109 : 122-26.

논문 2. Doepke, Matthias, and Fabian Kindermann. 2019. “Bargaining over Babies: Theory, Evidence, and Policy Implications.” American Economic Review, 109 (9): 3264-3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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