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그니지 & 존 리스트,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The Why Axis: Hidden Motives and the Undiscovered Economics of Everyday Life), 2013.
무엇이 서평쓰게 하는가?
읽는 재미가 있는 실험경제학 교양서. 최전방 연구자들이 2013년에 출간한 만큼 최근 연구 사례가 잘 정리되어 있다. 전반적 톤이 유쾌하다. 이런 농담도 던진다. “전통적 경제학에서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로 추구하므로 기부를 부탁하는 다이렉트메일을 그저 씩 웃으며 던져버리리라 추측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전부 이기적인 것은 아니고 심지어 경제학자들 중에도 친절한 행동에 친절하게 보답하고 싶어하는 좋은 사람이 있다.”
저자들은 화려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입담으로 자신들의 연구 분야를 세일즈한다. “사람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가 통상 경제학의 금과옥조다. 이 책은 한 걸음 나아가 사람이 ‘어떤’ 인센티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경우에 따라 비금전적 인센티브가 금전적 인센티브만큼 중요하며, 무작위대조실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이 인센티브의 종류와 정도를 식별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설파한다.
성 격차(2, 3장), 교육과 불평등(4, 5장), 차별(6, 7장), 공공정책(8장), 자선사업(9, 10장), 기업활동(11장) 등 다양한 사례가 근거로 동원된다. 내용을 떠나 글에 흡인력이 있다. 만만치 않은 액수의 실험연구 예산을 확보한 비결을 알 법하다. 읽다 보면 우울한 과학에 오염된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 읽을 때쯤 서평 많지 않으니 하나 쓰는 게 어떠냐고 쿡쿡 찌른다. 관심 있게 읽은 대목 위주로 정리했다.
성 격차(gender gap)의 원인은 무엇인가? 노동경제학자들은 이 주제를 오랫동안 탐구해 왔다. 최근 성별 교육수준 균등화에 따라 학력의 영향이 줄어들자 연구자들은 인적자본이론 바깥에서 원인을 찾는다. 저자들은 성별 경쟁심리 차이를 든다. 여성이 남성보다 경쟁적 환경을 덜 선호하며, 근로계약조건을 협상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도 더 많다는 것이다. 군인은 남성, 간호사는 여성 식의 성별 직종분리(occupational segregation) 현상도 경쟁심 차이로 설명한다.
문제는 본성과 사회적 학습 중 경쟁심 차이의 원인이 무엇이냐는 것이다(“nature vs. nurture”). 이 문제는 단순히 계량경제학을 적용하기 어렵다. 경쟁심 측정이 어렵다는 점을 둘째 치더라도, 기존 데이터가 문화적 요인에서 자유롭지 않다. 서구사회에서의 실험 역시 무의미하다. 저자들은 실험을 위해 부계•모계사회로 떠난다. 실험 결과를 토대로 이들은 사회적 학습이 경쟁심리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문화적 요인에 따라 여성은 남성만큼, 혹은 그보다 더 경쟁심이 강할 수 있다 (Gneezy, Leonard, List 2009, Econometrica).
이는 성 담론뿐 아니라 정책에도 시사점을 갖는다. 생물학적 요인의 영향이 지배적이라면 남성에게 유리한 교육환경이나 노동시장 관행 개선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청(소)년-성인 타겟팅). 사회적 요인의 영향이 크다면 여자아이들이 조기에 경쟁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아동 타겟팅). 저자들은 후자의 손을 들어 주면서 성별 사회화 양상을 바꾸기 위해 “남학교와 여학교를 분리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한다. 다른 실험에서 모계사회 구성원들에게서 이기심이 덜 나타났다고 보고하며, 저자들은 “여성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 라고 ‘경제학스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학교 성별 분리 주장은 일견 당황스럽지만 논리적이다. 똑같이 시험 만점 받아도 여학생은 별 말 없이 넘어가고 남학생은 칭찬한다면 경쟁심은 다르게 발달할 것이다. 남자 형제를 둔 여성에게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들이 인용하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교사들이 평균적으로 남학생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인다. 성별을 분리하면 그런 요인이 원천차단된다.
발전된 논의를 접해보지 못한 탓인지, 경제학을 못해서인지 동의하기 어렵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아닐까. 진부한 이야기지만, 이성과 인간 대 인간으로 공존하는 법은 매우 중요하고 조기에 익혀야 한다. 나는 학교가 최소한의 시민윤리 교육의 일환으로 이를 가르쳐야 하며 남녀공학이 그에 알맞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 습득할 수 있다면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1자녀 가구가 늘고 하다못해 교회 출석인구도 줄어드는 마당에 어디서 배우겠는가?
양육이 본성보다 경쟁심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과 여성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 인류를 구원할 여성성이란 무엇인가? 모계 문화에서만 발현된다면 양육의 영향이 큰 것이므로 여성성으로 명명할 수 없다. 게다가 모계문화가 여성 가부장제일 뿐이라면?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는 대답은 유전자를 특정하지 못하는 한 결국 “우리들의 무지(our ignorance)”를 인정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대목이었다고 생각한다. 괴테를 꼭 오마쥬하고 싶었던 걸까
챕터 마지막에서 당혹감이 짙어진다. “끝으로, 효과적으로 경쟁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행복해지는 열쇠는 아니다. 마음의 평정은 자신의 직위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 부모로 이웃으로 살아가면서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세상의 딸들이 이러한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힘빠지는 문장이다. 마음의 평정이라니? 동네 목사님 설교라면 납득할 수 있겠다. 청교도적 발상이 아니라는 학교 성별분리도 의심스러워진다. 페미니즘 찬반여부를 떠나, 경제학자의 글쓰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육과 불평등을 다룬 4-5장은 새롭지 않다. 시카고 교육정책 개혁에 실험적 방법을 응용한 사례를 중심으로 내용을 풀어 간다. 학업성취도 증진을 위해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는가? 저자들은 “공부는 내적 동기에서 비롯되어야 하”고 “일회성 보상이 장기적으로는 악영향을 미친다”는 통설에 근거가 희박하다고 말한다. 일회성 보상엔 분명히 학업성취도 증진 효과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긍정적 효과가 없지만 부정적 효과도 없다. 아동교육정책에 조기개입이 중요하다는 결론은 체티(Chetty), 헤크만(Heckman)의 유명한 연구와 궤를 같이한다. (여담으로 내 부모님께서는 단 한 번도 저런 약속을 하지 않으셨는데,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이 책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전과목 만점을 받은 날 부모님은 탕수육을 하나 시켜 주셨다. 다음날 그 이야기를 들은 담임 선생이 그게 다냐며 어이없어하던 표정이 기억난다. 흑.)
6-7장 차별의 경제학은 교과서적이다. 게리 베커 스타일 선호에 의한 차별(discrimination by preference)과 통계적 차별(statistical discrimniation, 책에서는 경제적 차별이라는 용어 사용)을 설명하고 차별 원인을 식별한 실험사례를 소개한다. 장애인에게 더 비싼 가격을 부르는 자동차 딜러들이 차별주의자인가? 실험 결과는 그들이 합리적 선택을 할 뿐 차별주의자가 아님을 시사한다. 딜러들이 장애인들이 딜러를 여럿 만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한 것. 결국 차별이 타인에 대한 적의에 기반하면 선호에 의한 차별, 불완전정보 하 이윤극대화의 결과라면 통계적 차별이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최근 논란이 된 서강대 쥬시 아르바이트 채용 공고가 전형적인 통계적 차별 사례다.
저자들은 현대 미국에서 선호에 의한 차별보다 통계적 차별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주장은 시사점이 뚜렷하다. 통계적 차별 완화에는 할당제 등 적극적 평등실현조치(affirmative action)보다 경제주체들 간 정보전달(signalling)을 원활하게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장애인 의무고용법보다 비장애인과 생산성 차이가 없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돕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것. 정보경제학의 전형적 결론이다. 소비자가 기업에 정보를 제공하는만큼 기업은 그 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밝혀야 한다는 결론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박사과정 지망생으로서 명문대 교수인 저자들에게 묻고 싶었다. “지원자들이 정보(GPA, SOP, 연구경력, 추천서 등)를 제공하는 만큼, 정보가 심사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8장 공공정책의 경제학은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미국적이지 않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넛지>처럼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실험을 통해 알아낸 사례를 소개한다. 아무런 물음 없이 기본값을 정해 버리는 넛지 방식(별도의 의사 표명 없다면 장기를 기증)에 도덕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과정을 간소화하고 선택의 결과를 알려주는 뉴슨스nuisance 방식(의사 표명할 경우 장기 기증하지 않음)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여기서부터 책이 좀 지루해졌다. 시카고 범죄통계시스템 구축을 오라클에 의뢰하고, 조건으로 전국 경찰서에 DB를 팔아주겠다고 했다는 대목이 가장 흥미로웠다. 한국이라면 경찰청이 통합 DB 사업 발주하고, 사업은 하청에 하청을 거쳐…(이하 생략)
9, 10장 자선사업의 경제학은 기부행위의 동기를 밝히고 기부액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찾는다. 사례 자체는 모두 흥미롭다. 자선단체에 기업경영 방식을 도입한 스마트트레인 소개, 기부 동기의 이중성(자기만족, 이타심)을 분석하며 이기적 이타주의(egoistic altruism)를 말하는 과정은 꽤 읽을 만 하다. 여러 기부 요청 방법 실험을 일일이 소개할 때 조금 호흡이 늘어지지만 능란한 글솜씨 덕분에 무난하게 읽힌다.
내가 이 장에서 특별한 인상을 받지 못한 이유는 이 문제에 관심이 없으며, 기부 문화가 미국보다 덜 활성화된 한국인이기 때문인 것 같다. 경제학의 합리성 가정 비판에 익숙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 장에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 나온다. “인간의 행동이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동기를 이해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각자 충족하려고 애쓰는 서로 다른 욕구와 필요는 전통적이고 제한적인 전제, 고정관념,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방법, 전통적 행동방식에 맞지 않는다.”
저자들은 끝까지 실험의 우월성을 역설한다. 좀 과격한 표현이지만 외팔이 경제학자 – “on the other hand”가 없는 – 느낌. 이 책에서만큼은 균형잡힌 안내자보다 세일즈맨을 자처하는 듯하다. 연구 파트너나 기금 지원자에 대해 후하게 서술할 때면 그런 느낌이 두드러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방법론 홍보를 위해 무리수를 던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실험이 기업활동 혁신을 돕는다는 주장(11장)은 성기고 동어반복적이다. 실험을 종용하는 에필로그도 비슷하다. RCT의 한계와 향후 연구 전망을 정리하며 마무리하는 편이 더 나았으리라 생각한다. 세일즈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다 이해할 수는 있겠다.
짧은 독서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실험경제학이 다른 분야보다 교양서에 적합한 것 같기도 하다. 일화로 각색하기 편하다. 이 책이나, 역시 RCT를 활용한 개발경제학의 간판 스타 에스테르 듀플로의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가 앵거스 디튼의 <위대한 탈출>, 앤서니 앳킨슨의 <불평등을 넘어>보다 재미있었다. 둘 중 관심분야를 뽑으라면 후자인데도 그랬다. (전자 그룹이 20세 이상 젊은 것도 한 이유겠다. 후자 그룹과 동년배인 탈러의 <넛지>는 아주 지루했다.)
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도그마에 빠져 있는가? 이 책은 그러한 비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알리는 훌륭한 전도서다. 쉽게 쓰려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추론을 따라가는 재미도 있다. 베개맡에 두고 가볍게 읽기 좋다. 경제학 연구자들이 인간행동 원리를 밝히기 위해 생각보다 다양한 접근을 시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입문 강의 보충자료로 써도 좋겠다. 여전히 표준 원론 교과서로 군림하는 <맨큐의 경제학>에는 적어도 5판까지 실험경제학 관련 내용이 없다시피하다.
대가의 깊이를 원하는 독자에겐 다른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학술적 토론에서 성공한 논거를 위트 있게 소개하지만, 엄밀한 논리를 전개하지는 않는다. 책의 강점인 다양한 사례 전부가 새롭지도 않다. 1장의 유치원 원장 사례부터 스티븐 레빗이 <괴짜경제학>에서 다룬 에피소드다. 관련 독서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을 찾아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관심 분야만 골라 읽거나 성평등, 자선사업의 경제학 부분만 읽어도 충분하다. 그래도 저자들의 필력을 감상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번역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