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rist & Pinscke (2014), 강창희 박상곤 역(2017), 『고수들의 계량경제학(Mastering ‘Metrics)』. 서평과 메모 중간 어디쯤.
실용성과 직관적 설명을 모두 갖춘 최신 응용계량경제학 입문서, 또는 학부생 RA 양산 비급.
요새 손에 잡히는 대로 학부 교과서를 읽으며 개념의 흐름을 정리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읽은 책. 원서는 2014년에, 번역서는 두 달 전에 나왔다. 이렇게 좋은 책이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야 나오다니.
저자들의 히트작 “대체로 해롭지 않은 계량경제학(Mostly Harmless Econometrics)”의 학부 버전이다. 내가 알고 있는 계량 교과서 중 가장 친절하다. 평균, 분산(공분산) 개념과 연산법칙을 아는 독자라면 소화할 수 있다. 심지어 저 개념에도 지면을 할애했을 정도로 친절하다. 물론 다른 개념도 쓰이지만 저자들이 때마다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들은 이 책을 철저히 실용서로 기획한 것 같다. 수식을 최소화하고 핵심을 전달하려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정규방정식이니 최량선형불편추정량(BLUE)이니 하는 용어와 수식에 질려 계량 책을 접은 경험이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전혀 나오지 않는다. 부실공사가 의심되는가? 이론적 배경 설명을 덜어냈을 뿐, 저자들은 추정치를 꼼꼼하게 해석하는 시범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최소한의 계량 literacy가 생기고, 역시 최소한의 실증모형 돌리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수퍼바이저가 업무를 정확히 지시해 준다면 프로젝트 즉시전력으로 일할 수 있다. 한계야 있겠지만. (학부생 RA 가르치기 귀찮아서 쓴 책 아닐까?)
고전적 가정 하의 선형회귀모형에서 출발하여 가정을 하나씩 완화시키는 방식의 표준 전개와 조금 다르다. 목차 순서가 다음과 같다. 무작위 시행 – 회귀분석 – 도구변수 – 회귀단절법 – 이중차분법 – 교육수익률 추정. 여기서 알 수 있듯, MHE와 마찬가지로 무작위대조실험(RCT) 철학에 기초한다. 1장에서 무작위 시행이라는 발상의 탄생과 필요성을 다룬 뒤, 회귀분석부터 이중차분법까지 계량경제학 도구를 RCT 시각에서 해석하며 설명한다. (그러니 2장에서 Omitted Variable Bias 식을 정확히 이해해야 뒤 논의를 편하게 따라갈 수 있다.)
챕터마다 연구방법론 설명에 적합한 사례를 하나 잡고 그 맥락에 의존해서 설명하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보통 교과서는 추상이론 설명 후 응용사례를 소개한다. 이론 설명에 예시를 동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다. RCT 배경 책인만큼 그 방식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RCT 연구자들은 무작위실험 사례의 특성을 철저하게 파고들어 식별전략(identification strategy)을 찾아내곤 한다.
계량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이 책으로 시작해서 Wooldridge의 학부 교과서 Introductory Econometrics (일명 Baby Wooldridge)로 보완하면 될 듯하다. (번역 소식을 전해 주신 모 페친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가 보기엔 당분간 이 조합보다 나은 입문서 조합이 나올지 의문일 정도로 좋다. 한국어 사용자 입장에서는 두 책 모두 번역된 것도 장점이다. (Baby Wooldridge는 전반부만 번역되었기 때문에, 저 책 대신 역자 한치록 교수님의 <계량경제학 강의>를 써도 좋겠다. 바로 MHE로 넘어가는 것도 물론 괜찮은 옵션이다.)
단, 역서 수식 표기(특히 하첨자)에 더러 오류가 있다. 영어 문장 구조를 그대로 옮긴 듯한 직역도 조금 아쉽다. 그래도 충분히 읽을 만한 번역이고, 멋대로 의역한 것보다 이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구루가 얘기해주는” 컨셉인데 이런 글을 한국식 글쓰기로 옮기기 까다롭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