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역습 (theBaldFace 블로그)

ISIS 발흥 관련 읽어볼 법한 글. (원문 링크)

(역사의 진보)

나는 보수주의자다. 쓰던 것을 좀처럼 버리거나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문화의 포근한 힘을 사랑하고, 배타적이고 특이한 인간사의 모든 사투리들을 소중히 여긴다. 나는 진보주의자다. 인간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문명의 힘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진보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은, 어떤 의미에서는 회의론이다. 언제나 내일보다 못한 오늘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의 오늘은 언제나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고달프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나무 위에 살던 유인원이 초원으로 내려와 직립보행을 시작한 이래, 인류의 삶은 전체적으로 꾸준한 향상을 경험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가르침은 위대하지만, 고대의 삶으로 돌아가 행복을 느낄 현대인은 없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에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중세 유럽의 암흑기다. 찬란한 로마 제국의 전성기가 지나간 후, 인류 역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퇴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를 거쳤다. 인류의 문명이 유래 없이 가파른 성장을 성취했던 20세기 말부터, 세계사는 일종의 변곡점을 지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는 빅뱅 직후의 우주처럼 팽창했고 기술은 10년 전의 SF 영화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속도로 발전했다. 그것을 뒷받침하던 질서가 수명을 다해 가면서, 도처에서 중세적 특징이 또다시 눈에 띠고 있다. 우리는 암흑시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슬람주의의 확산)

인간은 언제나 세속적인 삶을 누릴 태세가 되어 있다. 그것을 뒷받침해 줄 사상적 근거가 있는 한은. 그것을 가장 웅변적으로 증명한 사상가는 막스 베버였다. 현대 서구의 세속적 삶은 종교개혁을 통해 비로소 문이 열렸다. 그리고 세속적인 삶을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좋다는 사상체계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베버였다. 불행히도, 7세기에 탄생한 종교 이슬람은 자신만의 존 캘빈도, 마틴 루터도 가지지 못했고, 막스 베버는 더더욱 가져보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날의 무슬림들은 현대문명 속에서 살면서도 중세적 사상체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현대 무슬림들이 겪고 있는 진정한 싸움은 어쩌면 스스로의 현대와 중세가 벌이고 있는 내부의 싸움인지도 모른다.

비교적 최근까지 중동지역에서 종교적 삶의 원리와 현대적 생활방식을 한 곳에 붙들어 매 주고 있던 힘은 권위주의적인 정치체계였다.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터키 같은 곳에서, 그것은 군부의 힘으로 유지되었다. 왕정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산유국들은 원유 수입을 국민에게 뇌물로 제공함으로써 안정을 유지한다. 중세 유럽처럼 닫힌 세계에서였다면, 사상적 도전이 먼저 일어나고, 그것이 사회 구성의 원리를 변화시켰을 터이다. 그러나 2011년 ‘아랍의 봄’을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공화정을 채택하고 있던 아랍 국가의 인민들은 서구적 혁명을 벤치마킹 했고, 줄줄이 독재정권을 퇴출시켰다. 그러므로, 이것을 ‘봄’에 비교하는 수사는 서구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었다.

독재가 사라진 아랍 국가에서 커다란 정치적 공백을 메운 것은 이슬람주의였다. 테러단체처럼 취급되던 무슬림 형제단이 온건파로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이슬람주의의 승리를 선언하고, 그 원인을 여러 곳에서 찾는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의 대약진처럼 보이는 현상은, 실상은 새로 생긴 진공의 공간을 공기가 채운 것과도 같은 현상이다. 길이 패이면 빗물이 고이는 것과 같이.

이슬람 세계가 스스로의 막스 베버를 찾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고유의 사상체계 속에서 세속적 삶을 보듬어 줄 열쇠를 찾아내지 못하는 한, 사람들은 익숙한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이 겪던 현대와 중세의 내적 갈등은 정치적 갈등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었다. 제국주의와 독재정권에 의해 유예되었던 이슬람 세계의 자생적 발전과정에 이제야 시동이 걸린 셈이다. 그 과정은 쉬울 리가 없고, 그 종착점은 가까울 턱이 없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는 중동지역에서 중세적 갈등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갈등은 언제나 극단주의와 과격주의의 득세를 야기한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보복행위에 대한 사상적 핑계를 필요로 하므로, 극단주의는 또다른 극단주의의 번성을 돕는다. 이슬람세계의 극단주의가 비이슬람권과 갈등을 일으키면, 비이슬람권에서도 극단주의자들이 더 큰 목소리를 얻는다. 이것이 21세기의 세계를 중세로 데려가줄 지도 모를 공식이다.

(중세적 군인의 탄생)

여러 해 전 이라크에 출장 갔을 때, 우리 일행을 호위해준 것은 미군 병력과 쿠르드족 페쉬메르가 전사들, 그리고 Blackwater Worldwide라는 PMC(Private Military Compay) 업체의 용병들이었다. 이들의 차림새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다양한 국적의 전직 특수부대 출신 이들 용병들은 옷차림새와 개인화기도 제각각이었고, 가벼운 보호장비에 야구모자나 스카프 차림이었다. 살상을 경험해본 사람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는 그들은, 치열한 전투의 한복판에 떨어뜨려 놓아도 제 한 몸 정도는 능히 지켜낼 것처럼 보이는 사내들이었다.

이들은 한무더기의 Rambo들이었다. 만약 PMC에 고용되지 않았더라면, 냉전으로부터 해고된 이들 전사들은 각자 사회에서 부적응 증상을 겪고 있지 않았을까. 따지고 보면 이슬람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고 있는 알카에다를 비롯한 수많은 무자히딘 전사들 역시 냉전으로부터 해고된 실업자들인 셈이다.

냉전이 끝나면서 총을 들고 국가를 위해 싸울 용감한 전사들에 대한 수요는 줄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사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와 기술의 진보 덕분에 핸드폰으로 사제폭탄을 터뜨릴 수 있게 된 신형 전사들은 새로운 형태의 싸움에 개입하고 있다. 이들이 임하는 싸움은 더이상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이 아니라 국가 대 개인 또는 국가 대 집단의 싸움이다. 마치 로마제국 말기의 전쟁이 야만족 부족과 제국의 혼란스러운 전쟁이었던 것처럼.

PMC 용병들과 무자히딘들이 마치 중세의 기사들처럼 각자 자신만의 무기와 복장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불길한 상징처럼 보인다.

(해적의 활동)

로마제국의 진정한 멸망은 내해(mare nostrum)의 상실에서 비롯되었다. 지중해가 해적의 활동무대가 되고, “로마를 통하는” 모든 길 위에 도적과 강도가 들끓게 된 것이 중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중세가 제국의 쇠망과 중앙권력의 약화에서 비롯되었다면, 새로운 중세는 국제질서의 정통성 약화와 개인의 국제정치적 empowerment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말라카 해협에서, 아덴만에서, 기니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해적들의 존재는 그러한 상념을 불러 일으킨다. 오늘날은 질서의 바깥에 존재하는 개인들도 전례 없이 효과적으로 질서를 위협할 폭력수단을 가질 수 있다.

국제질서를 떠받치고 있던 정통성이라는 합의된 틀이 허물어져 가고 있는 오늘, 다가오는 무질서(The Coming Anarchy)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인가. 현명한(worldly wise) 삶이 아닌 현명하게 세속적인(wisely worldly) 삶.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냘프지만 확실한 열쇠가 아닐까.

* 외삽(extrapolation)과 비교정치
* 분석과 종합
* 베스트팔리아 조약의 수명과 비교시점
* 세계화의 역설


이 밈을 삽입하지 않을 수 없다.

중세의 역습 (theBaldFace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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