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가 신작을 내니 기사가 좀 나오는 모양. 첫 기사에 대한 지인의 물음에 답한 댓글을 옮겨 놓는다. 이제 자본주의의 중간 관리자, 꼴통 경제학도 취급 신세만 남았나?
두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겠습니다.
1)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하여
2) 장하준 교수의 주장(의 흐름)에 대하여
2)의 경우 그의 제도주의 스탠스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출판물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1. ‘기존 경제학자’들은 장하준 교수의 주장을 외면했는가?
그의 저작 중 가장 큰 파장을 몰고 왔던 건 사다리 걷어차기(2004)이고, 이에 대해서 ‘기존 경제학자’들도 평한 바 있습니다. 개발경제학의 대가 William Easterly 같은 사람이 서평을 남겼고, 요약하자면 그가 던지는 질문들 자체는 좋지만 backup이 튼실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었죠. 그는 너무 쉽게 상관관계에서 인과관계로 옮아갑니다. 그는 독일 역사학파의 지적 전통에 서서 보호주의 경제정책을 옹호하지만 그 근거는 박약합니다. 보호주의 경제정책을 펴서 성공한 나라들을 예시로 들지만, 실패한 나라가 더 많다는 것을 언급하진 않는다는 거죠. 실증연구도 아니며 사례로 든 표본도 편향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더 물으신다면 부연하겠고, 넘어가겠습니다.
2. 장하준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는가? 혹은, ‘기존 경제학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는가?
금융위기가 그의 세계적 지명도를 급상승시켰지만 그의 저작을 어떻게 살펴보아도 금융위기를 예측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댓글 마지막에서 제가 읽어본 저작의 리스트를 남기지요.) 형이 LG팬이니까 하는 말인데(ㅋㅋㅋ), DTD는 과학인가요? (ㅋㅋㅋㅋㅋ) DTD는 과학이 아니지요. ‘자유 시장 근본주의’에 대한 그의 주장 역시 (방법론적 의미에서)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죽는다는 말에 동어반복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금융위기 이후 영국 여왕이 “지금까지 당신들은 무엇을 했지요?”라고 묻자 아무도 대답하지 못헀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지만, 경제학자들은 금융위기를 예측했습니다. 그를 2014 World Thinkers Ranking 9위로 선정했다는 <Prospect> 지는(이 순위는 그닥 믿을 게 못되어 보이지만) 2위에 라구암 라잔 인도중앙은행 총재를 놓았습니다. 라잔은 이미 2005년에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예측하였습니다. 그의 유명한 저서인 『Fault Lines』가 그에 관한 내용이지요. 예측을 내놓으면 뭐 합니까?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연구자지 실제 투자자가 아닙니다.
3.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실패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는가?
기사에서 이런 대목이 있는데.
“2008년 금융위기 직전까지도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시장은 실패가 없고, 그나마 존재하는 사소한 결함은 현대경제학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설파했었다. 199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루카스는 2003년 ‘공황을 예상하는 문제는 이제 해결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중략)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경제학은 심각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자기 분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마당에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바로 그 루카스가 도입한 <합리적 기대> 라는 개념은 매우 오도되고 있습니다. 합리적 기대는 무슨 초합리적 인간, 예언가를 상정하는 게 아닙니다. 사당 집에서 연구실까지 딱 한 시간 걸리는데, 그에 바탕해서 10시에 도착할 작정으로 움직였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날 2호선에 문제가 발생해서 30분 지체되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제 예측은 잘못되었나요? 결과적으로는 잘못되었죠. 하지만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이 해당 시점에 주어진 정보를 모두 이용하여 할 수 있는 예측이라는 의미에서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합리적 기대는 이런 예측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비되는 개념은 비합리적 기대irrational expectation이 아니라 적응적 기대adaptive expectation로, 과거의 정보만을 이용하여 예측한다는 개념입니다.
‘시장이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유진 파마가 제창한 시장효율성가설에 대한 오해입니다. 시장효율성가설은 주식시장에 대한 내용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주식 가격에 반영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합리적 기대와 통하는 측면이 있죠. 이것 역시, 정보교란이 발생할 경우 가격에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 시장이 실패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는 말입니까.
4. 경제학설사의 논쟁들에 대하여
신고전학파 -정확히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 가 역사상 명멸한 경제학파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사실입니다.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문제는 경제학의 논쟁이 학문 내 권력 싸움으로 묘사된다는 것입니다. 보기에는 재미있겠지요. 하지만 현대 경제학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위에 언급한 라잔은 2005년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 총재의 퇴임식에서 금융위기를 예측했고 자리가 자리인지라 욕을 좀 먹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측은 사실로 드러났고 현재 그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미시분석의 팔 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임이론은 본디 신제도학파의 것입니다. 행태경제학 역시 충분히 수용되고 있습니다. 논쟁의 문제는 여느 논쟁이 그렇듯 ‘그 주장이 내적으로 정합하며 실증적으로 충실히 뒷받침되는가?’의 문제이지 권력 다툼이 아닙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도 헛소리 하면 deadwood라고 까이는 곳이 경제학계입니다. 대중들에게 장하준보다도 더 유명한 폴 크루그먼도 무지 까입니다. 자기 전공 분야 아닌 것을 많이 말하면서 틀리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진짜 폴 크루그먼은 98년에 죽었다는 농담도 있다는…) 학계에 대한 오해를 숱하게 양산해 내기도 했고. 민물경제학 vs 짠물경제학의 구도는 사실상 사라졌건만 그의 저작은 최근까지도 그런 대립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죠. 이럴 때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및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라는 권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서 무슨 권력 다툼을 논한다는 말입니까? 1. 에서 말했지만 그의 논증 자체는 너무 빈약합니다. 권력 드립은 말이 안 됩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노벨경제학상 수상하며 했다는 말을 옮기지요.
“노벨상은 경제학계의 개인이 가져서는 안되는 권력을 개인에게 수여한다. (..) 이는 자연과학에서는 상관이 없다. 여기서 개인이 휘두르는 영향력은 그의 동료 전문가들에게 휘두르는 영향력이다; 그리고 그가 분수에 안 맞는 짓을 하면 그의 동료 전문가들이 그를 찍어내릴 수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는 다르다. 경제학자들은 일반인들, 그러니까 정치인, 언론인들, 공무원, 그리고 시민들에게까지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악의 화신이라는 하이에크가 상 받으면서 이런 소리 했습니다. 노벨경제학상 반대하는 의도에서 한 말입니다. 이런데도 권력 소리가 나옵니까? 학계에서의 영향력을 ‘권력’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엉망진창이 되는 것쯤은 잘 아시겠죠.
돌아와서, 현대 경제학의 논리체계 역시 치열한 논쟁을 거쳐 구축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겠지요. 경제학이 과학적 방법론을 가장 잘 수용했다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현대 경제학의 논쟁점 중 하나는 Structural vs. Reduced-form approach으로 계량분석의 접근법에 관한 것입니다. 학자마다 선호가 다르고 상당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결론은 어찌 될지 모르죠. 하지만, 더 robust한 결론을 내놓을 수 있는 접근법이 승리하리라는 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무슨 학계의 기존 권력에 의해서 결정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5. 결론
저도 배우고 있는 입장입니다만, 경제학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학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슨 우파에 경도된 학문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접근하는 순간 경제학을 이해할 기회를 반은 잃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던 아마티아 센은 사회선택이론에서의 업적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악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밀턴 프리드먼은 징병제를 반대했으며, 공공부조정책을 위해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개념을 제시하였습니다.
어떤 학문/주장에 대해서든 그 이해가 최우선이라는 것을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헛발질만 하게 됩니다. 장하준 교수의 책을 많이 읽었지만, 그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로 돌아선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논증의 빈약성은 둘째 치고, 케임브리지의 권위를 빌려 너무 많은 오해와 신화를 전파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제가 읽어 본 장하준의 저작은 아래와 같습니다.<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국가의 역할>, <쾌도난마 한국경제> 이 정도면 그의 입장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읽어본 입장에서, 앞의 두 권만 읽어도 충분하다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