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업계가 대형 서적 도매상 송인서적 부도 문제로 시끄럽다. 정부도 나섰다. 서울시가 12억원대 서적구매를 조기집행하고, 문체부가 저리 융자를 지원한다고 한다.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사태 직후 간담회에서 “2000년도 이전부터 정부와 정치권은 우리나라 출판 문화산업을 사양 산업으로 인식하고 지원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출판계의 자구 노력을 강조했던 분이 이런 발언을 한 심정은 이해한다. (이분은 2015년 1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출판사가 읽을 만한 책을 만드는 데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느냐 보면 ‘×판’이다. 독자가 안 읽는다고 불평하는 건 양심 없는 짓이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유통위원장은 “정부는 출판계 유통구조 개선을 민간 출판사에게만 맡겨왔다. 그 결과 출혈경쟁이 이어졌다”라며 “정부는 출판계 인프라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했단다.
출판업 경영 및 유통이 매우 낙후되어 있다는 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다. 외환위기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우선 이번 건에서도 보이듯 어음 돌려막기가 만연하다. 소위 위탁판매제에서 나타나는 출판사-도매상-서점 간 거래관계도 심각하다. 서점은 매대를 제공할 뿐 출판사에서 책을 매입하지 않는다. 책이 팔리지 않으면 반품해 버리면 된다. 팔리지 않을 때의 리스크가 출판사에게 지나치게 전가된다.
그러나 출판계 의견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오랫동안 도서정가제 개정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그 노력으로 정부가 유통구조(거래관행)에 개입해 달라는 편이 더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소비자 저항도 훨씬 적었을 것이다. 게다가 도서정가제가 출판업을 구원하리라는 믿음에는 근거가 없었다.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가격규제(재판매가격제한)을 도입하다니, 그야말로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도서정가제가 해법이 아니라고 경고했고, 경고는 현실화되었다.
도서정가제의 경제적 귀결은 처참하다. 도서가격(베스트셀러 및 스테디셀러)이 상승하여 사실상 담합 상태다. 온라인 거래액이 하락했고 가격 상승을 감안하면 거래량 역시 하락했다. 온라인 거래액이 하락한 만큼 오프라인 거래액이 상승했을까? 오프라인 서점 거래액 통계는 없지만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넘어가려면 수요가 가격 변화에 아주 둔감해야 한다. 게다가 서적 구매경로에서 동네서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8.15%에 불과하다.
그런데…정가제 시행 후 송인서적 재무는 약하게나마 호전되었다. 기초적인 재무지표만 살펴보았지만 2013년과 2015년 연말을 비교하면 매출액,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매출액증가율, 영업이익증가율 모두 상승했다(수익성 및 수익성 추이 향상). 자기자본비율은 상승하고 부채비율은 하락했으며(건전성 향상), 유동성 비율은 상승했다(지급여력 향상). 도매상이 열매를 독점했다고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어차피 부도나지 않았나. 정가제가 당초 홍보했던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에 정책을 요구하는 역량은 한정되어 있다. 출판계는 근거 없는 낭만 때문에 역량 배분에 실패했다.
나는 다독가는 못 되지만 애서가를 자처한다. 밥 먹는 것 다음으로 책 사는 데 돈을 많이 쓴다. 책값 오르는 걸 환영하진 않지만 책값 때문에 살 책을 안 사진 않는다. 또한 한국어 화자로서 한국 출판업 성장을 진심으로 소망한다. (물론 정도가 있다. 어제 스티븐 스티글러 <통계학의 역사> 가 품절이고 중고가가 정가의 3배에 육박하는 걸 보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뿐인가?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는 절판 후 정가의 10배 가격에 거래되었다. 아, 한국 출판업 얘기하면서 정작 예시가 둘 다 해외 저자 아니냐는 태클은 사양한다.) 출판업계가 “구조개혁”과 “정부지원”이라는 공허한 구호만 부르짖지 말고 실질적 대책을 찾기를 바란다. 한국 시장은 작다. 이 사실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도서정가제 개정 전 부작용을 경고한 KDI 보고서:
조성익(2014), 유통기업의 가격설정능력과 전자상거래의 효과: 도서유통시장 사례를 중심으로.
도서정가제 개정 후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KDI 보고서:
조성익(2015), 도서정가제의 경제적 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