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을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예정 밖 한국 방문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난 영화를 잘 알지 못하나 만듦새가 담백하고 묵직하게 느껴졌다. 특히 군상극 형식이 영화를 민주화에 기여한 모든 이들을 향한 헌사로 만들기에 알맞았다고 본다.
91년생인 나는 이 영화가 재현한 풍경을 기억하지 못한다. 현대사 서적과 만화(최규석과 <100℃>에 감사를!) 등을 통해 접한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각별히 마음에 남는다. 가감할 것 없는 내러티브에서 비롯된 흡인력과 지난 겨울 촛불의 기억이 물론 한 이유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내가 우연히 갖게 된 연결고리다.
나는 박종운을 개인적으로 안다. 그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을 테다. 사적 발언 수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그의 언행에서 사람의 자기합리화에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박종철 열사 추모 기간이 돌아올 때면 그는 상태 메시지를 바꾸었다. “그러나 열사의 죽음을 이용하면 안 된다”고도 썼다. 그는 추모, 감사, 이용 등의 단어를 나와 다른 뜻으로 쓰는 듯 했다. 그가 영화를 보았을까? 보았다면 한 마디 스쳐간 자신의 이름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짐작하고 싶지 않다.
김수환 추기경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추기경은 “카인의 대답입니다”(박종철 추모미사), “나를 밟고 가라”(87년 6월 13일, 나흘 전인 6월 9일 이한열 최루탄 피격)”는 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영화는 박종철로 시작해서 이한열로 끝나지 않는가. 다만 지금의 구성에 이 일화가 들어갈 곳이 없다는 것은 알겠다. 모든 것을 한 영화에 욱여넣을 수는 없으니.
말이 길었다. 민주화운동사의 모든 순간이 찬란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영광에 오롯이 집중하는 영화를 하나쯤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