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원본 링크)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우리 과에는 수학박사 출신 교수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이 분은 미시 이론 분야를 전공했구요.
제가 다닌 학교가 나름 명문이다보니, 이 정도 학교에 올만한 급은 되는 학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교수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평가는 썩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신랄한 평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 교수는 남들이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의 상황을 놓고 중요한 직관을 도출한 논문을 쓰고 나면, 그것을 N명으로 일반화시키는 논문을 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복잡한 수학이 요구되는 경우가 있다 보니, (경제이론 분야에서 최고 학술지로 치는) 이코노메트리카에 논문을 많이 싣는다. 하지만 그의 논문이 정말로 어떤 부가가치가 있나 보면 거의 0에 가깝다.”
제 생각에 이상의 이야기는 경제학계에서 수학의 위치에 대해 나름 의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수학을 정말 잘 해서 남들이 못 푸는 문제를 잘 풀면 위 교수처럼 명문대 교수가 될 수 있습니다. 현실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아니면 경제학에 중요한 직관을 더하는 것이 크지 않아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연구들을 경제학자들이 높게 평가하는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경제학자들이 높게 평가하는 논문은 좋은 직관을 가급적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화가 중요합니다. 좋은 경제학 이론논문은 복잡한 수학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단순하고 쉽게 중요한 직관을 formalize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경제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수학적 테크닉” 혹은 “수학 지식”이 아닙니다. 복잡한 수학이 필요해서 그런 수학을 쓰는 것은 인정을 하지만 별다른 직관도 담지 않은 내용을 어렵게 수학적으로 쓴다고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복잡한 수학이 필요한 경제이론 분야는 사실 경제학자 전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미국을 기준으로 보면 경제학자 가운데 80% 정도는 실증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나머지 20% 가운데 수학적 재능이 경제학적 직관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들이 좀 있다고 해서 경제학계가 “수학을 너무 많이 쓴다”는 식으로 비난을 하는 것은 별로 의미를 두기 어려운 내용이라는 생각입니다.
PS: 이상은 #홍성욱 선생님의 질문에 대해 드리는 두 번째 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