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을 시작하는 후배님들에게 (김승섭)

고려대학교 김승섭 교수님이 박사과정에게 하는 조언 10가지. 교수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다.
원제는 <미국에서 보건학 석/박사 과정을 시작하는 후배님들에게 드리는 10가지 이야기>다. 역시 학문 일반에 적용할 수 있어 담아 둔다.


어느 순간부터 제 자신을 챙기기도 많이 부족한 제가, 제 경험들을 공유하면서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박사를 시작하던 때, 알았으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은 이야기 10개를 골라봤습니다.

1. 모든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세요.

영어가 익숙치 않았던 첫 학기에 수업 중에 질문을 해본 적이 총 5번이 안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족한 영어로 인해 망신당할까봐 걱정이 되고, 궁금한게 있어도 나중에 찾아봐야지 하고 혹은 쉬는 시간에 교수님께 여쭈어봐야지 하고 참았어요. 어느 순간 깨달았던 게, 쉬는 시간에 일대 일로 하는 질문과 수업 중에 학생들 전체 앞에서 하는 질문에 대해 교수님들의 설명과 답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또 무엇보다 질문을 한번이라도 한 수업과 아닌 수업에서 제가 배우는 게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는 것 자체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과도기였던 두번째 학기를 거치고, 세번째 학기부터는 수업 내용을 미리 review를 하고서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 공부를 했어요. 여러 논문들을 읽고서 그 분야에 대해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되는 질문을 영어 문장으로 만들어 준비를 하고, 수업전에 몇 번씩 자연스럽게 말하기 위한 연습을 했어요. 최소한 두 문장짜리 좋은 질문을 해보자. 그게 당시 목표였습니다.

2. 교과서를 읽으세요.

제가 했던 큰 착각 중에 하나가 수업 내용을 듣고 그게 대략 이해가 되면, 그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부분부분 내용들을 알고 있을지언정, 그 내용이 전체 맥락속에서 어디즈음에 위치하고 있고 다른 내용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수업만으로 얻기 힘듭니다. 지식의 integration과 관계된 insight를 갖는 것은 학생 개개인의 몫이예요. 그러니, 적어도 본인 전공과 밀접히 관련된 내용은 꼭 기초 레벨의 교과서를 완독하기 바랍니다. Advanced level의두꺼운 교과서를 처음 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는 건 처음에 쉽지 않으니, introduction레벨의 책을 먼저 읽고 시작을 하세요. Introduction 수준의 교과서 이기 때문에, 70%의 내용은 아마 익숙할 거예요. 공부를 해볼수록,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좀 더 큰 맥락속에서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역학과 통계가 제 기본 분야였구요, 방학 때 한달 정도 시간을 정하고 기초 교과서들을 읽는데 집중하면서 제 분야의 기본 개념들의 definition을 영어로 암기하기 위한 노력을 같이 했었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3. Tool에 최대한 빨리 익숙해지세요.

저는 역학과 통계가 public health라고 하는 도시를 연결하는 metro라고 생각합니다. 역학과 통계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어디로든 가기가 참 어려워지는 거지요. (물론 좋은 metro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이론적인 back ground도 중요하지만, 통계의 경우 특히나 빨리 자신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합니다. SAS, STATA, SPSS, R, METLAB 등등의 프로그램 중 자신이 앞으로 사용해야 하는 통계 프로그램을 하나 고르고 최대한 빨리 그 프로그램과 친숙해지세요. 자신이 원하는 data management와 data analysis를 실제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그 경험이 중요해요. 나중에 논문을 쓰게 될 때, 데이터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야와 상상력이 실은 자신이 통계 프로그램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많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알게 될거예요.

4. 함께 일하고 싶은 존경하는 교수님이 나타나면, 놓치지 말아요.

자신의 분야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존경하는 교수님을 만날 기회는 있지만, 생각보다 그 분들과 함께 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너무 바쁘시니까요. 많이들 그래서 실은 포기를 하곤 하는데요, 그렇지 말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절박하게 그 분들의 손이든 발이든 붙잡고 놓지 마세요. 제 경우는 박사과정 중에 7편의 논문을lead author로 썼는데, 그 중 6편의 senior author가 다른 과의 교수님이셨습니다. 관심사가 비슷하고 제가 너무 함께 일하고 싶은데, required coursework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들이 있어서 그 분들 수업을 들을 수는 없는데 그 분들과 함께 일하면 관점과 내용면에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게 분명했거든요. 6편 논문의 senior author인 3분의 교수님들과 함께 일하게 되는 과정이 달랐어요. 한 분은 너무 바쁘셔서 이메일로는 시간 약속을 잡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첫 만남 이후로 계속 그자리에서 다음 약속을 잡아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우연히 약속이 취소되고 미팅이 계속 미뤄지자,수업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는 교수님을 따라가며 미팅을 잡아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허허’ 하는 웃음을 지으시더니, 그러자고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게 1년뒤 저희 과 소속도, 박사논문 committee의 member도 아닌 교수님과 2편의 논문을 출판하게 된 시작이었습니다.

또 다른 교수님은 주기적으로 만나기 위해 independent study를 신청을 하고, 그 교수님의 프로젝트 들어가있는 연구원과의 만남에서 현재 프로젝트에서 어떤 게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 연구원의 말이 프로젝트에서 사용하는 중요한 설문지가 있는데, 그 설문지에 대해 다들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교수님을 만나 제 학점으로 하는 independent study를 하면서, 제가 그 설문지의 역사와 사용 사례에대한 review 리포트를 쓰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시작을 해서, 교수님들과 연구원들로 이루어진 프로젝트에 유일한 박사과정 학생으로 참여를 할 수 있었어요. 실은 그 report를 열심히 만들고도 , 제가 잘 쓴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요. 두 가지 일 때문에, 그 report로 인해 제가 프로젝트에 들어가 그 데이터로 3편의 논문을 publish할 수 있었던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첫번째는, 몇 달뒤 그 프로젝트 팀의 박사후과정 연구원이 연락이 와서 제가 만든 report에 대해서 사람들이 칭찬하는 것을 들었다며 받아볼 수 있냐고 했던 거구요, 둘째는 그 프로젝트의 다른 교수님께서 그 리포트를 보고서 제게 비슷한 일을 시키기 위해 저를 고용하고 싶다면서 연락이 왔던 것입니다. 그 일이 제가 미국에서 처음 돈을 받고 일해본 제 job 이었습니다.

5. 미팅을 빈 손으로 가지 마세요.

제 경우에는 항상 미팅 페이퍼를 hardcopy로 준비해서 들고 갔습니다. 처음에는 부족한 영어로 인해 중요한 이야기가 전달이 안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또 함께 연구를 하고 싶은 교수님을 처음 만날 때는, 노트북에 혼자서 powerpoint presentation을 준비해서 들고가 시키지도 않은 발표를 하기도 했어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또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귀한 시간을 미팅으로 쓰게 된 만큼 그 시간들에 대해 그만큼 appreciation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제 나름의 방법이었습니다. 항상 이게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meeting paper를 작성하며 적어도 미팅에서 무엇을 논해야 하는지 스스로 정리하고 말하는 것을 연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버드에서 박사를 마칠무렵, 다른 학교 학과장으로 가게 된 교수님 한 분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박사가 끝나고 어디로 갈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자, 그 분이 제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를 연구원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데, 조건이 뭐니?” 결국 그 분과 함께 너무 감사한 조건으로 박사후 과정을 하게 되었는데, 박사논문 자격시험 심사위원이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제가 그 분 수업을 들은 적도 없고, 제 박사논문 committee member 도 아니셨던 그 분이 어떻게 저에 대한 신뢰가 있으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언제인가 흘리듯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RA로 일하며 리뷰 리포트를 썼던 내용에 대해 궁금하셔서 저와 미팅을 했을 때 제가 노트북을 들고와 교수님 사무실에서 발표를 했던 것과 박사논문 자격시험에서 발표 슬라이드가 40장인데, 질문에 대비한 백업 슬라이드를 80장가량 만들어갔던 걸 말씀하시더라구요. 인상적이었다구요.

6. Citation manager를 최대한 많이 사용하세요.

EndNote이나 Refwork 같은 citation manager를 최대한 많이 활용하세요. 논문을 찾게 되면, 반드시 자신의 citation manager에 적절한 folder를 만들어서 그 안에 저장을 하고 가능하면 pdf 파일을 함께 attach 하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양의 논문들을 읽게 되는데, 그런 지식들을 구조적으로 잘 저장하는 게 점점 중요해집니다. 그렇게 저장되지 않은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알고 있는게 아니라고 저는 스스로 생각합니다. 지식을 어떻게 축적하고 organize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가장 좋은 답은 citation manager를 잘 활용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어요.
제 경우에는 EndNote를 쓰는데 논문들 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찾은 좋은 강의 슬라이드나 다른 학교의 lab document 같은 것들도 citation을 짧게라도 만들어 EndNote에 저장을 합니다. 그래야 훗날 필요할 때 찾을 수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citation manager에 저장하지 않은 모든 논문은 제가 읽은 적이 없는 거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7. 전공과 당장 직접적으로 닿아있지는 않는 논문들을 읽는데 시간을 배당하세요.

모두들 학제간 연구의 시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끼리Collaboration 중요하다고 하지요. 그게 가능해질려면, 다른 분야의 언어, 적어도 그 분야의 핵심 아이디어에 대해 익숙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분야를 따로 공부할 시간은 없는 거지요.
제 경우에는 수업을 듣다가 스쳐가듯 인용되는 흥미로운 논문이 있으면, 메모를 하고 citation manager에 great paper라는 폴더를 만들고 그 안에 저자별로 정리를 따로 해서 pdf 파일을 attach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논문 같아서 시간나면 읽어보려고 별다른 의동벗이 시작했는데, 언제인가부터 그게 힘이 되는 순간이 오더라구요. 다른 과의 누군가랑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그 분야의 landmark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면 대화가 훨씬 생산적으로 흘러가고, 거기서 collaboration이 시작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짬짬이 한 시간 정도는 그런 논문들을 읽는데 썼었는데, 그 논문들은 대체로 제가 흥미가 있어 고른 논문들인 만큼, 재미있는게 많아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8. 자신이 주도한 첫 논문을 최대한 빨리 써보세요.

많은 분들이 논문을 기계적으로 찍어낸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그게 어느 정도는 사실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논문을 쓰는 일은 좋은 시나 수필을 쓰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결국은 다 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보니, 새로워야 하고, 이해가 쉬워야 하고, 간결해야 하고, 읽고나서 감흥이 있어야 하구요.
첫번째 논문을 publish하기 전까지는, 연구가설을 설정하고, 데이터를 찾고 (혹은 수집하고), 기존 논문을 검토하고, 데이터를 분석/해석하고, 그 결과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논문을 쓰는 일인 줄 알았어요. Final이라는 이름의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내용의 문서가 한 30개즈음 (끝인 줄 알았는데, 뭐가 더 있는 거지요. 항상 그랬어요.) 쌓여 이제 submit할 수 있다 싶을 때, 이제 첫번째 단계가 끝난 것 뿐이었습니다. 거기서부터 journal의 format에 맞게 논문을 수정하고 submission에 필요한 문서들을 작성하고 reject을 당하면 다시 시작하고 review를 받을 경우에는 comment로 온 의견들에 대해 하나하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서로 설득하고 수정해야 하구요, 실제 논문이 accept되고 나서는 journal에서 요구한proof reading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typo를 수정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었습니다.

첫 논문의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첫 논문을 자신의 힘으로 쓰고나면 다른 사람들이 쓴 논문을 읽는 눈이 훨씬 밝아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논문을 시작할 때, 훨씬 더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쉬워지구요.

9. 통시적인 관점에서 지식를 축적하고 문제를 접근하는 습관을 기르세요.

Public health에서 어떤 연구 주제가 있으면, 그 주제 대해 통시적으로 해서 정리를 해보세요. 예를 들어 제 연구 주제 중 하나인 작업장의 safety climate이라는 topic이 있자면, safety climate이라는 개념의 역사에 대해 정리하고 그 개념을 처음 도입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게 어떻게 지난 30여년동안 발전해왔는지 정리하는게 통시적인 관점에서 정리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당장은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친구들이 역학의 많은 개념들이 역사속에서 형성되어 온 것이고 또 변화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교수님들은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는 최선의 레벨에서 명확히 개념들을 설명해주시려고 강의를 하시기 때문에,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할 수 있는 개념의 역사적 형성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쉽사리 보이지 않는 학파들이 있어서 기초적인 연구에 대해 의견을 달리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핀란드 출신의 역학자 Olli Miettinen같은 이는case-control study자체가 confounding과 관련된 오류로 인해 사용하지 말아야 할 디자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역학자들 사이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 역학이 individual level의 risk factor를 밝혀내는데 초점을 맞춰지는 것에 trend 대한, Kenneth Rothman, Neil Pearce, Melvin Susser등의 훌륭한 역학자들 사이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논쟁이 있습니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에서 특히나 중요한 causality에 대한 이론도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에 시작한 Bradford Hill criteria와 1980년대의 Rothman의 Sufficient Component Cause model에 이어서 Counterfactual, marginal structural model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거구요. 수업시간에 이런 이야기들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깊게 다뤄지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Epidemiology(Journal)에서 역사적인 역학자들과의 interview를 계속해서 제공하고 있는데, 그 내용들을 읽고 있으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읽은 수업시간에 배운 확고한 것처럼 보이는 지식들이 실은 변화해왔고 변화해갈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10. 건강을 챙기세요.

20대 초 중반이면 아직 못 느끼실 수도 있지만, 체력이 실력인 순간이 곧 옵니다.
제가 박사과정을 미국에서 시작하던 때, 제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 10개를 정리해봤습니다. 실은 저는 지금도 이 10가지 내용 모두에서 하루하루가 도전과 실패의 연속입니다. 후배님들의 건투를 빕니다.

유학생활의 자세 (김재광)

페이스북 원문 링크


1. 늦깍이로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제자에게 추석 인사 이메일을 받아서 답장을 해 주었다. 간단하게 두가지 정도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는 연구가 생각처럼 진전이 빠르지 않게 되면 조급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조급함이 연구자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것 같다.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하나씩 알아가는 자체를 즐기는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데 좋은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2.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는 좀더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불안한 마음에 밤늦게 비효율적으로 책상에 앉아있으면서 정작 집중하고 생각하는 시간은 짧을수 있기에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것인지 계속 체크해 가면서 스스로의 공부 습관을 계속 업그레이드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마치 구글이 A/B test 를 통해서 계속 학습하고 진화해 나가는 것과 비슷하리라. 생각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은 무식한 것이고 생각만 하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게으른 것이다.

근로장려세제는 최저임금의 대안인가? (이상헌)

ILO 이상헌 박사님의 글. 페이스북 원문 링크


근로장려세제는 최저임금의 대안인가?

(괜한 약속을 해서 쓰는 글. 마감에 걸려 개요만 씀. 길고 조악하니, 관심있는 분만 읽으시길 ^^)

– 근로장려세제 (earned income tax credit, EITC)는 저소득 근로층을 위한 소득 지원 프로그램으로 미국에서 시작. 자녀가 있는 근로가구를 대상으로 하며, 일정 소득 이하를 가진 가구에만 적용. 이것을 굳이 “tax”, “tax credit” 라고 불려서 혼돈을 초래하기도 하는데, 미국의 독특한 정책구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고, 사실상 소득보조금임. 미국에서 가장 큰 예산규모를 가진 빈곤퇴치 정책.

– 그 기원을 엄밀히 따지기는 힘들지만, 존슨 대통령이 “사이버 혁명” 시대를 맞아 미래정책을 구상하도록 한 특별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 Triple Revolution에서 시작했다는 견해가 많음. 1960년대 중반에 발간된 보고서는 기술혁명에 따른 일자리 부족과 소득 불안정성 및 빈곤 퇴치를 위해 기본소득을 제안함. 프리드만을 비롯한 경제학자들이 일부 수용하고 현실 정책으로 적용되면서 negative income tax 개념으로 발전. 일정 소득 이하의 가구에게 부족분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주장.

– 유럽과 달리 별다른 빈곤정책 없었기 때문에 정책적 필요성에 대한 공감은 있었지만, 기본소득안은 격력한 저항에 직면. 존손 대통령도 반대. 청교도적인 노동관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아젠다. 대신, 미국에서 중요한 다른 가치인 “가족”을 중심으로 재구성. 가족지원 프로그램으로 전환이 되었지만, 이것도 반대에 부딪힘. “노동 여부”가 전제되지 않았기 때문. 결국 포드 정부는1970년대 중반에 “노동”과 “가족”에 결합된 빈곤프로그램 도입. 이것이 EITC. 노동하는 가정에 자녀가 있는 경우만 적용. 굳이 말하자면, 기본소득의 “역사적 변용” 인데 **, 1980년대부터 본격 적용되었고, 그 이후로 팽창. 최근에 자녀 없는 저소득 가구에 적용하자는 주장이 대두. 현행 제도는 아래 그림 참조.

– 따라서 EITC는 미국적 제도 및 정책의 산물임. 물론 외국에서도 더러 이용되지만, 상당한 변용을 겪는 것이 일반적.

– 한국에서는 EITC가 2008년에 도입된 후 “저소득층의 노동의욕 고취”를 위해 확대되어 옴. 2011년부터는 무자녀가구에게도 확대. 이런 면에서는 미국보다 앞섬. 물론 한국의 “선진적”인 면모를 보인 장면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같은 정책이라도 맥락이 다르기 때문. 미국에서는 근로가구층을 전제로 한 뒤, 이들의 소득 보전을 돕는 것임. 한국에서는 저소득가구의 노동시장 진출을 유도한다는 측면이 강함. 작은 차이이겠만, 한국에서는 이 때문에 쉽게 무자녀가구에게 EITC 확대된 것으로 보임 (이미 한국적 변용이 이루어진 것)

– 한국에서 EITC의 노동공급 증가 효과는 실증적으로 따져 보아야 할 문제. 개인적으로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봄. 첫째, 한국의 저소득층의 고용율은 상대적으로 높고 (중산층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음), 전체적으로 고용율이 낮은 것은 공급 측면보다는 노동수요적 요인 (일자리의 질)이 더 중요함. 둘째, 현재 EITC는 노동공급 결정을 바꿀 정도로 지원액이 높지 않다. 결국 전체적으로 애매함. 물론 기왕에 일하는 저소득층이 노동공급을 늘리는 효과 (노동시간의 증가)는 있을 듯.

– 이미 언급한 대로, EITC는 영미권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에서 많이 채택하는 정책은 아닌데, 최근 부쩍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일부 경제학자들이 최저임금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

– 표준 경제학 이론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주장임. 최저임금은 기업의 비용에 일차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고용 감소 효과를 배제하기는 힘든데, 그리고 최저임금이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차라리 저소득 가구에게 소득보전해 주는 방식이 낮다. 노동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한다는 것. 이 주장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있어 왔던 주장이고, 실제로 최저임금 반대론으로 사용됨.

– 최저임금에서 보장된 노동자의 후생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EITC를 설계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함. 하지만 두가지가 빠져 있음. EITC는 resource-intensive 하다 (미국에서는 최대규모의 빈곤퇴치 정책). 따라서 재원 조달의 문제를 따져야 하는데, 예컨대 법인세 증가를 통해 조달할 것인가? 이런 일반균형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빠져 있음. 둘째는, 노동시장 교란 효과. EITC는 기업의 비용 효과와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우월하다고 보는데, EITC 대안은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가능성.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보전이 주어진 경우 합리적 기업은 임금을 낮출 유인이 높아진다. 그에 따른 추가적 소득소실분은 EITC에서 추가적 소득 보전을 해 줄 것이기 때문. 임금 하방 압력이 커지고, 비효율적 한계기업을 유지하게 됨으로써 경제 전체적 효율성이 떨어짐. 한때 최저임금을 앞선 이유로 폐지했던 영국이 최저임금을 블레어 정부 때 도입한 이유도 바로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맞고자 한 것임. 최근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

– 핵심: 일을 하는 데도 빈곤한 층을 근로빈곤 (working poverty)라 하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정책과 사회보장 정책의 효과적인 연계가 필요함. 대체 관계가 아님. 최저임금이 할 일은 최저임금이 해야 하고, 소득지원정책이나 기타 사회보장정책이 할 일도 마찬가지. 최저임금을 보완할 사회보장정책은 꼭 EITC일 필요는 없지만, 노동소득을 보전해 주는 소득지원정책이라는 광범한 의미에서의 EITC는 필요하다.

– 유럽 국가에서 EITC 류의 정책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까닭은 이미 사회보장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네델란드, 프랑스, 핀란드에도 EITC 류의 정책이 도입되어 있지만, 제도적 보완물로만 사용되고 주축이 되진 않음. 사각지대를 해결하는 “한가지” 제도 방식이고, EITC를 중심으로 제도 구성하는 경우는 드물다. EITC가 최대의 빈곤정책인 미국과는 다르다.

– 최저임금과 EITC를 유기적 설계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다. 최저임금을 노동자 1인을 두고 설계한 뒤, EITC정책이 저소득 가구의 소득을 지원해 주는 방식도 있고, 최저임금을 평균 가구 방식으로 접근 (평균 가구원 수, 평균 취업자 수, 표준 최저생계비) 한 뒤 부족분을 EITC가 돕는 방식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경우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일정비율 (예를 들자면, 60-65%)에 맞춰 정한 뒤, 저소득 층의 소득부족분을 EITC가 책임지는 방법이 좋을 듯 하다. 하지만, 후자를 위해서 꼭 EITC라는 이름과 방식이 필요한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전체적인 사회복지 제도 틀내에서 유기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근로장려세제는 최저임금의 대안인가? (이상헌)

중세의 역습 (theBaldFace 블로그)

ISIS 발흥 관련 읽어볼 법한 글. (원문 링크)

(역사의 진보)

나는 보수주의자다. 쓰던 것을 좀처럼 버리거나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문화의 포근한 힘을 사랑하고, 배타적이고 특이한 인간사의 모든 사투리들을 소중히 여긴다. 나는 진보주의자다. 인간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문명의 힘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진보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은, 어떤 의미에서는 회의론이다. 언제나 내일보다 못한 오늘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의 오늘은 언제나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고달프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나무 위에 살던 유인원이 초원으로 내려와 직립보행을 시작한 이래, 인류의 삶은 전체적으로 꾸준한 향상을 경험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가르침은 위대하지만, 고대의 삶으로 돌아가 행복을 느낄 현대인은 없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에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중세 유럽의 암흑기다. 찬란한 로마 제국의 전성기가 지나간 후, 인류 역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퇴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를 거쳤다. 인류의 문명이 유래 없이 가파른 성장을 성취했던 20세기 말부터, 세계사는 일종의 변곡점을 지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는 빅뱅 직후의 우주처럼 팽창했고 기술은 10년 전의 SF 영화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속도로 발전했다. 그것을 뒷받침하던 질서가 수명을 다해 가면서, 도처에서 중세적 특징이 또다시 눈에 띠고 있다. 우리는 암흑시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슬람주의의 확산)

인간은 언제나 세속적인 삶을 누릴 태세가 되어 있다. 그것을 뒷받침해 줄 사상적 근거가 있는 한은. 그것을 가장 웅변적으로 증명한 사상가는 막스 베버였다. 현대 서구의 세속적 삶은 종교개혁을 통해 비로소 문이 열렸다. 그리고 세속적인 삶을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좋다는 사상체계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베버였다. 불행히도, 7세기에 탄생한 종교 이슬람은 자신만의 존 캘빈도, 마틴 루터도 가지지 못했고, 막스 베버는 더더욱 가져보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날의 무슬림들은 현대문명 속에서 살면서도 중세적 사상체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현대 무슬림들이 겪고 있는 진정한 싸움은 어쩌면 스스로의 현대와 중세가 벌이고 있는 내부의 싸움인지도 모른다.

비교적 최근까지 중동지역에서 종교적 삶의 원리와 현대적 생활방식을 한 곳에 붙들어 매 주고 있던 힘은 권위주의적인 정치체계였다.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터키 같은 곳에서, 그것은 군부의 힘으로 유지되었다. 왕정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산유국들은 원유 수입을 국민에게 뇌물로 제공함으로써 안정을 유지한다. 중세 유럽처럼 닫힌 세계에서였다면, 사상적 도전이 먼저 일어나고, 그것이 사회 구성의 원리를 변화시켰을 터이다. 그러나 2011년 ‘아랍의 봄’을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공화정을 채택하고 있던 아랍 국가의 인민들은 서구적 혁명을 벤치마킹 했고, 줄줄이 독재정권을 퇴출시켰다. 그러므로, 이것을 ‘봄’에 비교하는 수사는 서구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었다.

독재가 사라진 아랍 국가에서 커다란 정치적 공백을 메운 것은 이슬람주의였다. 테러단체처럼 취급되던 무슬림 형제단이 온건파로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이슬람주의의 승리를 선언하고, 그 원인을 여러 곳에서 찾는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의 대약진처럼 보이는 현상은, 실상은 새로 생긴 진공의 공간을 공기가 채운 것과도 같은 현상이다. 길이 패이면 빗물이 고이는 것과 같이.

이슬람 세계가 스스로의 막스 베버를 찾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고유의 사상체계 속에서 세속적 삶을 보듬어 줄 열쇠를 찾아내지 못하는 한, 사람들은 익숙한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이 겪던 현대와 중세의 내적 갈등은 정치적 갈등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었다. 제국주의와 독재정권에 의해 유예되었던 이슬람 세계의 자생적 발전과정에 이제야 시동이 걸린 셈이다. 그 과정은 쉬울 리가 없고, 그 종착점은 가까울 턱이 없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는 중동지역에서 중세적 갈등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갈등은 언제나 극단주의와 과격주의의 득세를 야기한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보복행위에 대한 사상적 핑계를 필요로 하므로, 극단주의는 또다른 극단주의의 번성을 돕는다. 이슬람세계의 극단주의가 비이슬람권과 갈등을 일으키면, 비이슬람권에서도 극단주의자들이 더 큰 목소리를 얻는다. 이것이 21세기의 세계를 중세로 데려가줄 지도 모를 공식이다.

(중세적 군인의 탄생)

여러 해 전 이라크에 출장 갔을 때, 우리 일행을 호위해준 것은 미군 병력과 쿠르드족 페쉬메르가 전사들, 그리고 Blackwater Worldwide라는 PMC(Private Military Compay) 업체의 용병들이었다. 이들의 차림새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다양한 국적의 전직 특수부대 출신 이들 용병들은 옷차림새와 개인화기도 제각각이었고, 가벼운 보호장비에 야구모자나 스카프 차림이었다. 살상을 경험해본 사람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는 그들은, 치열한 전투의 한복판에 떨어뜨려 놓아도 제 한 몸 정도는 능히 지켜낼 것처럼 보이는 사내들이었다.

이들은 한무더기의 Rambo들이었다. 만약 PMC에 고용되지 않았더라면, 냉전으로부터 해고된 이들 전사들은 각자 사회에서 부적응 증상을 겪고 있지 않았을까. 따지고 보면 이슬람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고 있는 알카에다를 비롯한 수많은 무자히딘 전사들 역시 냉전으로부터 해고된 실업자들인 셈이다.

냉전이 끝나면서 총을 들고 국가를 위해 싸울 용감한 전사들에 대한 수요는 줄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사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와 기술의 진보 덕분에 핸드폰으로 사제폭탄을 터뜨릴 수 있게 된 신형 전사들은 새로운 형태의 싸움에 개입하고 있다. 이들이 임하는 싸움은 더이상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이 아니라 국가 대 개인 또는 국가 대 집단의 싸움이다. 마치 로마제국 말기의 전쟁이 야만족 부족과 제국의 혼란스러운 전쟁이었던 것처럼.

PMC 용병들과 무자히딘들이 마치 중세의 기사들처럼 각자 자신만의 무기와 복장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불길한 상징처럼 보인다.

(해적의 활동)

로마제국의 진정한 멸망은 내해(mare nostrum)의 상실에서 비롯되었다. 지중해가 해적의 활동무대가 되고, “로마를 통하는” 모든 길 위에 도적과 강도가 들끓게 된 것이 중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중세가 제국의 쇠망과 중앙권력의 약화에서 비롯되었다면, 새로운 중세는 국제질서의 정통성 약화와 개인의 국제정치적 empowerment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말라카 해협에서, 아덴만에서, 기니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해적들의 존재는 그러한 상념을 불러 일으킨다. 오늘날은 질서의 바깥에 존재하는 개인들도 전례 없이 효과적으로 질서를 위협할 폭력수단을 가질 수 있다.

국제질서를 떠받치고 있던 정통성이라는 합의된 틀이 허물어져 가고 있는 오늘, 다가오는 무질서(The Coming Anarchy)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인가. 현명한(worldly wise) 삶이 아닌 현명하게 세속적인(wisely worldly) 삶.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냘프지만 확실한 열쇠가 아닐까.

* 외삽(extrapolation)과 비교정치
* 분석과 종합
* 베스트팔리아 조약의 수명과 비교시점
* 세계화의 역설


이 밈을 삽입하지 않을 수 없다.

중세의 역습 (theBaldFace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