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7-8주차.

– 모듈 3 종료. 마지막 모듈만 남았다. 퀄은 3개월 남았고. 기말고사는 이래저래 쳤다. 계량이 좀 아쉽다. 중간고사는 만점이었는데, 기말고사는 답안을 좀 제멋대로 쓴 것 같다. 계산도 좀 꼬이고. 에라…

– 마지막 모듈은 미시 3, 정보경제학, 계량 2를 수강한다. 게임이론이랑 고급계량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여러 차례 썼듯 게임 이론 강의가 그냥 렉쳐노트 소리내서 읽는 수준이라(…) 독학에 가깝다. 그래서 더 아귀아귀 파고들게 된다. 깊이의 차이야 있겠으나 게임이론은 경제학자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툴박스 아니냔 말이다. 모든 경제학 이론은 게임이론으로 서술 가능하며 아예 경제학은 게임이론의 응용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한 게 Rubinstein이었던가? (그런데 저 말은 Rubinstein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 계속 하는 얘기지만 조금 더 깊이 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 그래서 앞으로 뭐 할까? @.@ 여기저기 자문을 좀 더 구해 봐야겠다.

– 내 어드미션 관련 비화? 를 들었다. 별 얘긴 아니고, 커미티에서는 내가 퍼듀로 올 줄 몰랐다고 한다. 오퍼 억셉해서 커미티 체어가 굉장히 좋아했다고. 그 얘기 듣고 심사가 복잡했다. 지금 와서 아쉬움이건 뭐건 감상에 젖을 건 아니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어디쯤에 위치했을지 궁금할 뿐이다. 미국 대학원 입시에 잔뼈가 굵은 모교 교수님 말씀과 실제 지원 결과를 종합해 보건대 30-50위 사이였을 것 같은데, 퍼듀 커미티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대충 30-40위로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도무지 기준을 알 수가 없다.

– 블로그에 썼었나? 지난 모듈 거시 교수님이 한국 분이었다. 오늘 잠깐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새로 뽑은 거시 교수님도 한국 분이라고 한다. 컬럼비아 박사시라는데 지난 포스팅에 쓴 그 분인가 싶다. 잡 세미나 왔던 분들 중에서 뽑았을 테니까. 이런저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경제학 박사 프로그램을 강화하려고 투자하는 것 같다. 문제는 다른 학교들도 투자한다는 것이다 ㅋㅋ

– 저것 말고도 이런저런 얘기 좀 했다. 교수님들이 나 많이 아끼신단 얘기도 듣고. ㅋㅋ;; 열심히 해서 최대한 지원 받고, 성과 내고 싶다. 전에 한 번 썼지만 내 동기 전원은 최소 한 개 이상의 TOP25 어드미션을 버리고 퍼듀를 택했다(Maryland라거나, UChicago(노펀딩이긴 하지만)라거나). 비지팅 행사 때 너무 좋았다면서… 그 얘기 처음 했을 때는 (솔직히 지금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이제 좀 알 것 같긴 하다. 모든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친절하고 어떻게든 지원해주려고 노력한다. 한 명쯤은 괴팍한 사람이 있어야 경제학과스러운데 그런 교수님이 없다 (음… 한 명 뽑자면 우리 학장님? 읍읍). 그러니 비지팅 행사 분위기는 얼마나 좋았겠는가? 알 만 하다.

– 1학기에 경제수학을 가르쳤던 노교수님이 은퇴한다고 한다. 잘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대단한 분이었다. 70년대 말-80년대 초의 스타였다고. Hugo Sonnenschein의 제자이자 공저자라고 소개하면 충분할 것 같다. 업적 중 하나를 꼽자면 n-firm Cournot equilibrium의 존재증명 정도? 이 분에게 미시를 배운 건 아니지만 티칭 내공은 물론 학자로서의 인사이트도 상당한 듯했다. 요새는 보기 힘든 Old School Theorist 느낌.

– 이 분 박사 하신 이야기도 꽤 드라마틱하다. 원래 U of Iowa에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했는데, 해당 프로그램 미시 교수진에 약간의 문제가 생겨 당장 1년차 코스웍 수업을 담당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학교 교수를 두 명 초빙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당시 Northwestern 교수이던 Sonnenschein이었던 것. 한 학기 수업하면서 Sonnenschein 교수가 이 분을 정말 마음에 들어했고 끝내 자기 프로그램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자기 제자로 들이고 결국 공저자 관계까지 발전한 걸 보면 이 분 포텐셜이나 그걸 알아본 Sonnenschein이나… 그런데 조교수 생활 4-5년차 들어 개인사 등 여러 문제가 심했고, 결국 첫 부임지였던 스탠퍼드를 떠나 퍼듀에 오랫동안 몸담았고 이제 은퇴하시는 것. 다들 아쉬워한다.

– 퀄 시험은… 배수진을 쳤다. 붙지 않으면 안 된다 ㅋㅋ

2학기, 6주차.

– 역시 비슷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드디어 운동을 시작했다. 퍼듀 체육관은 전미 최고 수준이라던데 과연 어마어마하다. 유지비가 얼마나 들지… 한편으로는 미국 대학들이 교육/연구보다 스포츠에 투자하는 현실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시설 이용하는 거야 다른 문제지만.

– 월요일에 Job Seminar로 컬럼비아 대학교의 한국인 박사과정 학생이 온다.개인적인 친분은 물론 없음. 전공은 거시. CV를 살펴보니 AER forthcoming을 하나 들고 있다. 세상에… 나도 실질적으로는 3년 정도 쓸 수 있는 건데 이 안에 결판을 지어야 한다. 눈앞이 깜깜하다. 당장 3개월 반 앞으로 다가온 퀄부터 좀 막고 ;;

– 여름 한국행 비행기표가 고민이다. 퀄을 한 번에 붙는다고 가정하면 지금 발권해야 한다. 아직은 국적기 1stop을 1200불 정도로 막을 수 있는데, 6월 가서 발권하려고 들면 저 돈으론 동방항공 2stop도 끊을 수 있을까말까일 게다. 변경/취소 수수료 및 변경 가능한 날짜 범위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아야겠다.

– 재연재 중인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보고 있다. 원 연재가 6-7년 전이었다고 기억한다. 아무튼 줄거리를 다 잊어버려서 새로운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이번 회차에서 문석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반전이 공개되었다. 6년 전에는 마음이 움직인 정도였다면, 지금은… 그래,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2학기, 4-5주차.

– 중간고사가 끝났다. 무지막지한 분량을 자랑했던 거시는 역시 망했으며, 계량은 쉬웠던 만큼 편한 점수가 나왔고, 게임 이론은 아직 안 나왔다.

– 럿거스에 있는 석사 동기 누나랑 얘기를 좀 했는데 확실히 우리가 1년차 때 거시를 조금 덜 배운다. 지금까지의 진도는 비슷한데, 우리는 1년차 때 Hetero agent를 커버하지 않는다. 우리는 거시를 사실상 1.5학기만 수강하기 때문인 듯. 애초에 거시는 거드는 정도인 프로그램이니까 당연한 일인가? 1년차 때 총 12과목을 듣는데 미시 5+1, 거시 3, 계량 2+1이다. (미시는 미시 1, 2, 3 외에 고급게임이론 / 정보경제학을 아예 따로 빼서 수업하는 정도.)

– 일상이 단조로워 딱히 적을 게 없다. 지난 학기에는 미국이 처음이었으니 이것저것 새로웠는데 이젠 딱히 그렇지도 않다. 아, 퀄 시험 준비 자료가 배부되었다. 그러니까, “이제 슬슬 공부 시작하시지?” 라는 압박이 들어온다는 것. 암암 해야죠. 해야하고 말고요. 그래야 6월에 한국도 가죠.

– 그래서 어서 연구를 시작하고 싶다. 당장 이거다 싶은 주제는 없지만, lit review 하고, 질문을 찾아 머리를 싸매는 그 과정에 어서 돌입하고 싶다. ㅠㅠ

– 가끔 성평등 연재 + 미완 원고를 갈무리해서 단행본으로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없이 많은 연구가 있는데, 우리의 논의는 언제나 제자리를 맴돈다.  목차도 있고 자료도 있고. 퀄 마치고 생각해 봐야겠다. 박사과정의 시간을 여기에 할애하는 게 그리 현명한 생각은 아니지만… 여가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두뇌 스포츠? 쿨럭

– 드디어 이번 주부터는 운동을 시작한다. 몸이 더 썩지 않으려면 이젠 해야지.

2학기, 1-3주차.

휴가 후 시차적응하고 정신이 없어서 블로그건 뭐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모듈 3 중간고사가 다가와서, 간단히 남긴다.

– 방학 때 했던 RA job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교수는 코멘트를 마음에 들어 했고, 결과적으로 페이도 100% 넘게 늘어났다. 페이퍼가 어서 게재되어야 할 텐데.

– 이번 모듈엔 게임이론, 거시 3, 계량 1을 듣는다. 지난 학기 미시 2 수업을 담당했던 분이 게임이론도 담당하는데, 강의력은 여전하지만(…) 본인 전공이라 그런지 훨씬 낫다. 이번 학기에 12년 간 사용한 강의노트를 전부 갈아엎었다고 한다. ㅠㅠ

– 거시 3 담당교수는 한국인으로 학부-대학원 모두 미국에서 나온 분이다. 웬만한 미국인보다 말이 빠르고, 한국인 특유의 족집게스러움이 있어서 마치 입시학원 강사 느낌. Dirk Krueger 강의노트 그대로 수업이 진행된다. 아직 개인적으로 얘기를 나눠 본 적은 없다.

– 계량 1은 OLS부터 시작한 대신 진도가 광속이다. 대신 담당교수 강의력은 내가 여기 와서 만난 분 중 가장 좋은 듯. 아주 친절하게 수업한다. 직관을 대단히 강조하는 편. 마음에 든다. 이 분 수업 때문에 계량을 전공하기로 한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없지만.

– 동문회에 갔다가 에너지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박사과정 4년차 선배를 만났다. 지난 placement record를 보고 현실적인 목표 바운더리를 잡되, 지금부터 잘 하면 그 upper bound까지는 못 갈 이유가 없다… 뭐 그런 얘기를 주로 했다. 써 놓고 보면 노오오오력! 같지만 그렇진 않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 최근 5년 내 졸업자들 내지 잡 마켓 경험자들과 대화를 많이 하라는 조언은 당장의 행동지침으로 유용하다고 본다. 중간고사 끝나면 바로 연락할 예정.

– 전공을 계속 고민 중이다. behavioral/expermental labor/IO 이 정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지 아닐까? 이 분야 교수진은 상당히 괜찮다. Int’l Econ을 하려면, 우리 학장님께서 제자를 받을 생각이 좀 드셔야 할 텐데. ㅠ

– 보험사를 바꾸고, 메이저 회사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은행 계좌를 한두 개 더 열 생각이다. 하루빨리 면허를 따야 할 텐데… 한편 자동차 에어백 리콜(Takata Case) 건으로 에어백을 교체받고, 간 김에 다른 문제도 좀 처리했다. 자동차 오너가 되는 게 이렇게 귀찮은 일이었다니.

– 집중을 잘 못 하고 있다. 보험, 카드, 자동차 문제로 주의가 분산된 것도 있지만, 좀 더 의식적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 퀄 붙고 여름에 한국 가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퀄을 붙어야 연구를 시작한다!

영화 <1987>.

<1987>을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예정 밖 한국 방문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난 영화를 잘 알지 못하나 만듦새가 담백하고 묵직하게 느껴졌다. 특히 군상극 형식이 영화를 민주화에 기여한 모든 이들을 향한 헌사로 만들기에 알맞았다고 본다.

91년생인 나는 이 영화가 재현한 풍경을 기억하지 못한다. 현대사 서적과 만화(최규석과 <100℃>에 감사를!) 등을 통해 접한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각별히 마음에 남는다. 가감할 것 없는 내러티브에서 비롯된 흡인력과 지난 겨울 촛불의 기억이 물론 한 이유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내가 우연히 갖게 된 연결고리다.

나는 박종운을 개인적으로 안다. 그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을 테다. 사적 발언 수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그의 언행에서 사람의 자기합리화에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박종철 열사 추모 기간이 돌아올 때면 그는 상태 메시지를 바꾸었다. “그러나 열사의 죽음을 이용하면 안 된다”고도 썼다. 그는 추모, 감사, 이용 등의 단어를 나와 다른 뜻으로 쓰는 듯 했다. 그가 영화를 보았을까? 보았다면 한 마디 스쳐간 자신의 이름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짐작하고 싶지 않다.

김수환 추기경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추기경은 “카인의 대답입니다”(박종철 추모미사), “나를 밟고 가라”(87년 6월 13일, 나흘 전인 6월 9일 이한열 최루탄 피격)”는 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영화는 박종철로 시작해서 이한열로 끝나지 않는가. 다만 지금의 구성에 이 일화가 들어갈 곳이 없다는 것은 알겠다. 모든 것을 한 영화에 욱여넣을 수는 없으니.

말이 길었다. 민주화운동사의 모든 순간이 찬란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영광에 오롯이 집중하는 영화를 하나쯤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2017 독서 Best 3

2017년에는 박사과정 시작하면서 독서량이 급감해 23권 정도 읽는 데 그쳤다. 세 권만 뽑아 보면 다음과 같다.

1.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죽음을 앞둔 의사가 기록한 자전적 생애사. 유려한 문장, 분명한 사유,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개인적 경험을 정리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2. 로버트 고든,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2017 최고의 경제서. 생산성 회의론의 대표 주자인 저자가 어마어마한 내공을 선보인다. 2016 최고의 책이었던 『교육과 기술의 경주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와 함께 읽으면 최근의 성장 담론을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3.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미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니 설명은 불필요하다. 한 마디만 보태자면, 내가 고등학생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사회역학자를 꿈꾸었을 것 같다.

Honorable Mention: 상반기만 해도 이언 모리스의 『가치관의 탄생』이 꽤 높은 순위를 차지했지만 결국 2, 3에 밀렸다. 내가 빅 히스토리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것도 한 이유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