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6주차.

– 역시 비슷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드디어 운동을 시작했다. 퍼듀 체육관은 전미 최고 수준이라던데 과연 어마어마하다. 유지비가 얼마나 들지… 한편으로는 미국 대학들이 교육/연구보다 스포츠에 투자하는 현실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시설 이용하는 거야 다른 문제지만.

– 월요일에 Job Seminar로 컬럼비아 대학교의 한국인 박사과정 학생이 온다.개인적인 친분은 물론 없음. 전공은 거시. CV를 살펴보니 AER forthcoming을 하나 들고 있다. 세상에… 나도 실질적으로는 3년 정도 쓸 수 있는 건데 이 안에 결판을 지어야 한다. 눈앞이 깜깜하다. 당장 3개월 반 앞으로 다가온 퀄부터 좀 막고 ;;

– 여름 한국행 비행기표가 고민이다. 퀄을 한 번에 붙는다고 가정하면 지금 발권해야 한다. 아직은 국적기 1stop을 1200불 정도로 막을 수 있는데, 6월 가서 발권하려고 들면 저 돈으론 동방항공 2stop도 끊을 수 있을까말까일 게다. 변경/취소 수수료 및 변경 가능한 날짜 범위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아야겠다.

– 재연재 중인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보고 있다. 원 연재가 6-7년 전이었다고 기억한다. 아무튼 줄거리를 다 잊어버려서 새로운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이번 회차에서 문석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반전이 공개되었다. 6년 전에는 마음이 움직인 정도였다면, 지금은… 그래,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2학기, 1-3주차.

휴가 후 시차적응하고 정신이 없어서 블로그건 뭐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모듈 3 중간고사가 다가와서, 간단히 남긴다.

– 방학 때 했던 RA job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교수는 코멘트를 마음에 들어 했고, 결과적으로 페이도 100% 넘게 늘어났다. 페이퍼가 어서 게재되어야 할 텐데.

– 이번 모듈엔 게임이론, 거시 3, 계량 1을 듣는다. 지난 학기 미시 2 수업을 담당했던 분이 게임이론도 담당하는데, 강의력은 여전하지만(…) 본인 전공이라 그런지 훨씬 낫다. 이번 학기에 12년 간 사용한 강의노트를 전부 갈아엎었다고 한다. ㅠㅠ

– 거시 3 담당교수는 한국인으로 학부-대학원 모두 미국에서 나온 분이다. 웬만한 미국인보다 말이 빠르고, 한국인 특유의 족집게스러움이 있어서 마치 입시학원 강사 느낌. Dirk Krueger 강의노트 그대로 수업이 진행된다. 아직 개인적으로 얘기를 나눠 본 적은 없다.

– 계량 1은 OLS부터 시작한 대신 진도가 광속이다. 대신 담당교수 강의력은 내가 여기 와서 만난 분 중 가장 좋은 듯. 아주 친절하게 수업한다. 직관을 대단히 강조하는 편. 마음에 든다. 이 분 수업 때문에 계량을 전공하기로 한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 없지만.

– 동문회에 갔다가 에너지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박사과정 4년차 선배를 만났다. 지난 placement record를 보고 현실적인 목표 바운더리를 잡되, 지금부터 잘 하면 그 upper bound까지는 못 갈 이유가 없다… 뭐 그런 얘기를 주로 했다. 써 놓고 보면 노오오오력! 같지만 그렇진 않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 최근 5년 내 졸업자들 내지 잡 마켓 경험자들과 대화를 많이 하라는 조언은 당장의 행동지침으로 유용하다고 본다. 중간고사 끝나면 바로 연락할 예정.

– 전공을 계속 고민 중이다. behavioral/expermental labor/IO 이 정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지 아닐까? 이 분야 교수진은 상당히 괜찮다. Int’l Econ을 하려면, 우리 학장님께서 제자를 받을 생각이 좀 드셔야 할 텐데. ㅠ

– 보험사를 바꾸고, 메이저 회사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은행 계좌를 한두 개 더 열 생각이다. 하루빨리 면허를 따야 할 텐데… 한편 자동차 에어백 리콜(Takata Case) 건으로 에어백을 교체받고, 간 김에 다른 문제도 좀 처리했다. 자동차 오너가 되는 게 이렇게 귀찮은 일이었다니.

– 집중을 잘 못 하고 있다. 보험, 카드, 자동차 문제로 주의가 분산된 것도 있지만, 좀 더 의식적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 퀄 붙고 여름에 한국 가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퀄을 붙어야 연구를 시작한다!

영화 <1987>.

<1987>을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예정 밖 한국 방문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난 영화를 잘 알지 못하나 만듦새가 담백하고 묵직하게 느껴졌다. 특히 군상극 형식이 영화를 민주화에 기여한 모든 이들을 향한 헌사로 만들기에 알맞았다고 본다.

91년생인 나는 이 영화가 재현한 풍경을 기억하지 못한다. 현대사 서적과 만화(최규석과 <100℃>에 감사를!) 등을 통해 접한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각별히 마음에 남는다. 가감할 것 없는 내러티브에서 비롯된 흡인력과 지난 겨울 촛불의 기억이 물론 한 이유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내가 우연히 갖게 된 연결고리다.

나는 박종운을 개인적으로 안다. 그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을 테다. 사적 발언 수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그의 언행에서 사람의 자기합리화에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박종철 열사 추모 기간이 돌아올 때면 그는 상태 메시지를 바꾸었다. “그러나 열사의 죽음을 이용하면 안 된다”고도 썼다. 그는 추모, 감사, 이용 등의 단어를 나와 다른 뜻으로 쓰는 듯 했다. 그가 영화를 보았을까? 보았다면 한 마디 스쳐간 자신의 이름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짐작하고 싶지 않다.

김수환 추기경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추기경은 “카인의 대답입니다”(박종철 추모미사), “나를 밟고 가라”(87년 6월 13일, 나흘 전인 6월 9일 이한열 최루탄 피격)”는 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영화는 박종철로 시작해서 이한열로 끝나지 않는가. 다만 지금의 구성에 이 일화가 들어갈 곳이 없다는 것은 알겠다. 모든 것을 한 영화에 욱여넣을 수는 없으니.

말이 길었다. 민주화운동사의 모든 순간이 찬란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영광에 오롯이 집중하는 영화를 하나쯤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2017 독서 Best 3

2017년에는 박사과정 시작하면서 독서량이 급감해 23권 정도 읽는 데 그쳤다. 세 권만 뽑아 보면 다음과 같다.

1.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죽음을 앞둔 의사가 기록한 자전적 생애사. 유려한 문장, 분명한 사유,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개인적 경험을 정리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2. 로버트 고든,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2017 최고의 경제서. 생산성 회의론의 대표 주자인 저자가 어마어마한 내공을 선보인다. 2016 최고의 책이었던 『교육과 기술의 경주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와 함께 읽으면 최근의 성장 담론을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3.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미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니 설명은 불필요하다. 한 마디만 보태자면, 내가 고등학생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사회역학자를 꿈꾸었을 것 같다.

Honorable Mention: 상반기만 해도 이언 모리스의 『가치관의 탄생』이 꽤 높은 순위를 차지했지만 결국 2, 3에 밀렸다. 내가 빅 히스토리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것도 한 이유겠다.

최저임금 상승 관련 기사 비판

중앙일보가 이런 기사를 냈다.

숙박·식당 직원 이미 짐 싸고, 중기 43% “고용 줄일 것”

이 회사 대표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는 취업하려는 사람이 적다 보니 인건비 오른다고 무턱대고 직원을 내보낼 수도 없다”며 “최저임금이 정부 계획대로 2020년 시간당 1만원까지 오른다면 문 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영세 중소기업이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를 많이 고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최

최임 인상 파급효과가 걱정되는 건 이해한다만, 첫 문단의 숫자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경남 창원에서 주물 공장을 운영하는 A사는 내년부터 오르는 최저임금 때문에 연간 10억원의 추가 인건비를 부담해야 한다.”

추가 인건비가 10억 원이라면, 최저시급 변화분 * 연간 노동시간 * 피고용인 수 = 10억 이란 얘기다. 다시 말해 이 회사의 피고용인 수는 10억 / (최저시급 변화분 * 연간 노동시간)으로 거칠게 구해 볼 수 있다. (편의상 상여금 등 기본급 외 항목의 영향은 없다고 하자. 분기별로 월 기본급만큼의 상여금이 주어진다고 가정해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최저시급 변화분은 1,060원, 연간 노동시간은 주당 40시간 (52주)로 두면 피고용인 수는 450명이 넘는다. 보통 300인 미만 기업을 중소기업으로 분류한다. 숫자를 바꾸어 주당 60시간 노동한다고 해도 300명이 넘는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책상물림 박사과정 나부랭이가 무언가 빠뜨린 걸까? 내가 계산에 약하긴 하다.

기사에서 인용한 유일한 공식 통계인 고용동향 역시 근거로 활용하기에 다소 부족하다. (댓글 그림 참조) 숙박 및 서비스업 취업자가 2017년 6월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락하여 음으로 돌아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증가율이 하락하기 시작한 시점이 그 이전인 것도 사실이다. 최임 인상이 방아쇠였는지 가속제였는지는 불명확하다.

최저임금 상승 관련 기사 비판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서비스업 종사자 증감률은 꾸준히 하락 중이었다. 2017년 3월에 음의 증가율을 기록한 후 5-9월에 다시 양의 증가율을 회복했다가 10월 이후 다시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진다. 왜 떨어졌다 오르고 다시 떨어진 걸까? 무릎을 꿇어 추진력을 확보했는데 좀 부족했던 걸까? (…) 민주당 집권 후 최임 인상 가능성이 미리 반영된 걸까? 앞으로 대선 전에는 이 지표를 보면 되겠다.

최저임금 상승 관련 기사 비판

무엇보다 특정 산업 종사자가 전체 취업자 집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인 구성비가 두 산업 모두 증감률 변동에 비해 안정적이다. 해당 부문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지 않을까. 더하여 최저임금 10% 인상이 소비자물가를 0.3%p 상승시킨다는 분석 보고서는 인용하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 기사의 논지를 뒷빋침하는 숫자가 아니다.

최임 인상은 고용을 줄일/줄였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인과의 영향력 측정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이 문제는 결론을 정해 두고 자료를 편집하지 않아도 비판할 수 있는 사안이다. 부정확한 비판은 무익하고 부정확한 비판자는 무용하다.

대니 로드릭, 그래도 경제학이다, 2016.

대니 로드릭, 그래도 경제학이다, 2016.

 

경제학을 위한 변명, 경제학을 위한 고언, 경제학 회의론에 대한 진지하고 친절한 응답. 또는 경제학자 사용설명서.

경제학을 변호하려면 경제학을 잘 알아야 한다. 경제학자들에게 고언을 건네려면 경제학을 더욱 잘 알아야 한다. 그러나 경제학 자체를 논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떨어져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이들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저자 대니 로드릭 교수는 이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소수의 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탁월한 연구자로서 학계의 연구 성과는 물론 경제학자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동시에 그는 (그가 본문에서 밝히듯) “비정통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로드릭 교수는 능숙하게 질문을 분류하며 책을 시작한다. 하여 이 책은 다음의 질문과 그 대답으로 요약된다. 경제학자들은 왜 모형을 사용하는가? 완전경쟁시장을 위시한 표준모형은 경제학의 유일한 보편모형인가? 언제 어떤 모형을 사용하는가? 왜 “이론”이 아닌 “모형”인가? 경제학의 실패는 모형의 실패인가? 경제학 비판은 타당한가? 모형으로 시작해서 모형으로 끝난다고 여겨지면 맞다. 경제학 비판이 대부분 (수리)모형과 모형화에 집중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겠다.

이들 질문에 답하며 드러나는 저자의 핵심 주장은 경제학이 모든 환경에 적용되는 일반이론보다는 다양한 모형의 집합이며, 그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이론의 지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론은 본디 보편을 지향한다. 케인스의 저 유명한 저서 제목 역시 <일반이론>이 아닌가? 그는 학계 바깥에 가장 널리 알려진 주제 두 가지를 사례로 든다. 거시경제학 학파 논쟁과 미국 불평등 원인 논쟁이 그것이다.

케인지언-새고전학파 논쟁이 일반 대중에 소개될 때면 흡사 무협소설처럼 학파 간 대립과 논쟁의 승패가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로드릭 교수는 다른 관점으로 거시경제학 논쟁사 – 또는 발전사 – 를 요약한다. 그는 한 쪽의 우월성을 역설하기보다 두 학파의 소산을 상황에 따라 꺼내 쓸 수 있는 서로 다른 두 모형으로 소개한다. 황희 정승 식의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먼저 이들 이론이 모든 상황·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일반이론으로 발돋움하는 데 실패하였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방점은 “실패”에 있지 않다. 그는 이들이 특수한 환경 하에서는 여전히 유용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령 케인즈 경제학은 1970년대에 그 한계를 드러냈으나 여전히 유용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새고전파 모형은 거시경제정책 운용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 경제학자들의 소임은 경제의 현 상태가 두 모형의 가정 중 어느 쪽에 들어맞는지 파악하여 더 적절한 쪽을 택하는 것이다. 이 논지는 사회과학으로서 경제학이 탐구하는 대상이 고정불변의 항구적 질서가 아니라는 점에서 거부하기 어렵다. 물론 경제학자들이 늘상 싸우는 모습을 보노라면 아무래도 공자님 말씀처럼 들릴 수는 있겠다. (가령 트럼프 감세안을 두고 Summers-DeLong-Krugman, Mulligan-Mankiw-Cochrane 등이 벌인 키배)

불평등은 어떤가? 여러 학자들이 1970년대 중반부터 심화된 미국 불평등의 원인을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세계화와 국제무역에 의해 비숙련 노동자 임금이 하락했다는 설명이 먼저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숙련 노동자 임금 상승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숙련편향적 기술진보 (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 SBTC) 가설이 제시되었다. 이 이론은 불평등 확산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했으나 역시 전부는 아니었다. 학자들은 정책 및 제도적 요인을 추가로 감안하여 불평등을 설명했다.

즉, 다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론이 아니라 한 번에 하나의 인과 메커니즘을 식별하는 일군의 모형이 동원된 것이다. (로드릭 교수는 “역사를 볼 때, 자본주의의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이론가들은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쓴다.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주의의 제1, 2 기본법칙”을 제시한 토마 피케티 교수를 에둘러 디스한 것일까? 한편 인적자본과 대체탄력성이 최근의 성장-분배 논의에서 그나마 가장 포괄적인 틀로 쓰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이외에도 저자는 지난 30년간 경제학의 변화, 경제학자들이 가진 편향 등을 학계 내 인물로서 정확하고 공평하게 쓰고 있다. 학부생 시절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경제학에 대한 회의가 확신으로 바뀌기까지 나는 숱한 책과 강의 사이에서 헤맸다. 로드릭 교수는 내가 고민했던 문제 대부분을 친절하고 명료하게 설명한다.

경제학의 옹호자들과 비판자들, 또는 경제학자와 비경제학자 모두가 참조할 만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비경제학자들을 위한 책이지만, 경제학을 안다면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에필로그의 <20계명>에는 경제학자 특유의 유머가 살아 있다. 경제학이 비전공자와 대중들에게 지나치게 매도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을 읽으라. 경제학자들이 지나치게 거들먹거린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을 읽으라. 무턱대고 읽으라고 하는 경제학도가 재수없는가? 그럼, 이 책을 읽으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시티즌 경제학』(토머스 소웰Thomas Sowell, 2002),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대니 로드릭, 2011),『99%를 위한 경제학』(김재수, 2016)을 권한다.

덧. 이 책에는 201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장 티롤의 에피소드가 하나 실려 있다. 노벨상 수상자로 지명된 후 티롤 교수에게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그의 기여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티롤의 대답은? “나의 기여를 짧게 요약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로드릭 교수는 이 일화를 경제학 연구 결과가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제시했지만… 박사과정 1년차 학생인 나로서는 티롤의 끝없는 논문 목록이 생각날 뿐이다. 암요, 요약하기 힘들고말고요.

덧2. 사실 경제학이 일반이론을 지향하기보다 모형의 다양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은 수긍이 되면서도 살짝 아쉽다. 우리는 Grand Theory를 안 찾는 것일까? 못 찾는 것일까? 못 찾는다면, 사회과학으로서의 본질적 한계 때문인 것일까? 문득 물리학에도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갭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두서없는 이야기.

덧3. 원제와 역제의 뉘앙스가 상당히 다르다. “Economics Rules”와 “그래도 경제학이다”. 드물게도 둘 다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