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 3주차.

매주 하나씩 기록을 남기려 했건만 두 번째 주부터 실패. Labor Day가 낀 휴일이었는데도 숙제하느라 바빴다.

모듈제가 학생들을 계속 몰아붙이는 제도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당장 다음 주가 경제수학 중간고사. 한국 대학생들은 아직 “개강 실화?”를 되뇌고 있는 시점에 중간고사다. 학기 1/4 선이 왔다는 걸 체감하기에는 좋은 듯. 아무튼 저 시험을 시작으로 죽음의 레이스가 시작된다. 경수 중간고사 – 미시숙제 – 경수숙제 – 거시퀴즈 – 미시숙제 – 거시퀴즈 – 거시중간 – 미시중간 – 경수기말 – 거시기말 – 미시기말. 살려주세요 ㅠㅠ

거시가 가장 수학적으로 demanding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경제수학과 미시는 아직 할 만 하다. 거시 교수님은 그냥 너드 수학덕후인 것 같다. 내용 자체는 한국에서 접했던 것들인데 한층 일반화된 환경에서 모형을 푼다. 지금은 Welfare Theorem을 일반적으로 다루는 중. 경제수학은 선형대수가 계속 피곤하게 하는 걸 빼면 괜찮다. 다행히 선형대수가 시험에 빡세게 나오진 않는단다. 미시는 진도가 생각보다 느린데, 다음 주부터 4주 연속으로 숙제가 예정된 걸 보니 이제 슬슬 시동 거는 것 같다.

미시 교수님은 첫 수업이라 솔루션이고 뭐고 없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미시 숙제 중 한 문제가 꽤 tricky했는데 TA 세션 때 보니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왠지 뿌듯했다. (???) 하지만 나올 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분명히 한국 사람들이 처음에는 앞서 나가지만 나중에는 다 역전된다고… 열심히 해야겠다.

ESL과 TA 때문에 시간 빼앗기는 게 아니라면 좀 여유롭게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다. TA야 계속 해야 할 테니 ESL만 없어도 살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럴 여건이 안 된다. 매일 새벽 1시 넘어서 퇴근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직 힘들진 않은데, 장기 레이스를 생각하면 어서 ESL 끝났으면 싶다. 돌아오는 주에 경제학교수법 마지막 수업이 끝나니 그래도 좀 나아질 거라 기대해 본다.

경제학 교과서 전쟁?

평소 학계 동향을 잘 전해주시는 기자님이 이번엔 경제학원론 계의 “대안교과서” 에 관한 기사를 써 주셨다.

“경제학 교과서 낡았다”…불신 커지는 유럽 대학가

경제학만큼 대중의 신뢰와 불신을 동시에 받는 학문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경제학이 많은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현실과 이론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불신을 강화하는 직접적인 계기였다.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학문에 대한 실망이 확산됐다. 선진국과 신흥국을 가리지 않고 성장이 둔화하면서 불평등이 도드라졌다.

기사에서 언급된 <Economy>, 그러니까 Bowles 교수가 이끈 CORE 프로젝트 팀의 새 교과서는 샘플 챕터 몇 개만 읽어보았지만 몇 마디만 보탠다.

이건 주류-비주류 견해차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교육철학(교수법 철학?)의 차이가 아닐까. 경제학을 사회”과학”으로 가르칠 것인지, “사회”과학으로 가르칠 것인지의 문제라는 말이다. 이러한 견해차는 꽤 오래 된 것으로 아는데, CORE 팀 교과서는 후자를 대변하는 최초의 원론 교과서다.

기존 경제학 교과서는 우선 표준모형을 셋업하고 그 가정을 하나씩 완화하며 현실에 접근한다. 과학 과목에서 흔히 택하는 접근이다. 반면 <Economy>는 현실 문제에서 출발한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현실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 경제학과 학부생들에게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다른 사회과학 분과학문의 성과를 좀 더 반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교재로 수업하면서 이론적 기초도 잘 닦는 것은 어지간한 강의력으로 불가능하다. 원론 단계에서 무엇을 더 중시할 것인가? 여기서 다시 교육철학으로 돌아온다.

굳이 한쪽을 택하라면, 나는 기존 방식으로 교육받은 사람이라 그런지 이론적 기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경제학원론 교과서가 현실과 멀다고 생각해서 학부 때 주화입마를 오래 겪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학의 가치는 다양한 이슈를 관통하는 이론에 있다. “경제학자처럼 생각하는 법”을 익히려면 이론체계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한쪽을 굳이 폄하할 이유는 없다. 교육에 관한 관점 차이일 뿐이고,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두 책을 상보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어느 한 쪽이 주류경제학 교과서, 다른 쪽이 비주류경제학 교과서가 아니다. <Economy> 참고문헌 목록에는 최신 경제학 논문이 즐비하다.

하여 불필요한 대립 구도를 피했으면 한다. 기사에 이런 문장이 있다. “무엇보다 《경제》가 담고 있는 정치적 함의에 대한 경계심이 크다. 볼스 교수 등은 훔볼트대 학생을 상대로 한 설문 결과 등을 들어 현재 경제학자들이 반드시 파헤쳐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로 ‘불평등’이 꼽히고 있음을 역설한다. 불평등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기존 분위기와는 사뭇 톤이 다르다.” 불평등 연구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경제학자가 과연 있을까? 불평등의 존재를 용인해야 한다는 것과, 그것을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부유해 보이는 고급 아파트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허름한 판자촌이 형성된 모습을 담은 표지”는, 주류경제학계의 논문공장장 Daron Acemoglu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첫 장에서 소개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학 교과서 전쟁?

경제학 교과서 전쟁?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첫 장에 등장하는 노갈레스(Nogales) 시. 이 도시의 북쪽(위 사진)은 미국 애리조나 주, 남쪽(아래 사진)은 멕시코에 속해 있다. 문자 그대로 벽 하나를 두고 소속 국가가 달라지는 것.

 

한편 이런 문장도 있다. “이들은 (..)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관계나 가격 설정 과정도 현실의 복잡함과 달리 매우 도식화돼 있다고 했다. (..) 또 현대 경제학의 기틀을 세운 이론 중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이론이나 존 내시의 게임이론 등 핵심적인 부분을 홀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부분은 Bowles 교수의 기고문을 그대로 옮겨온 것인데, 솔직히 그에게 묻고 싶다. 원론에서 이걸 다 다룰 수 있나?

기사에 언급된 폴 새뮤얼슨 경제학원론은 인간적으로 너무 낡은 게 맞다. 그 책 초판이 1948년에 나왔는데 지금은 2017년이다. 맨큐나 크루그먼 교과서도 수 차례 개정된 시점이다. 그렇다고 새 교과서가 나오지 않느냐? 아니다. Acemoglu-Leibson-List, Cowen-Tabarrok 등 젊은 저자들은 이론적 토대를 중심에 두면서 최대한 현실 문제를 다루려 애쓴다. 이들 교재는 특히 현대 경제학의 최대 성과인 실험과 실증을 책 구상 단계에서부터 고려하여, 2000년대 초중반 이전에 쓰인 교과서들과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실증과 실험을 염두에 두고 이론 설명을 전개하려면 그 전에 쓰인 책에 두어 장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나보고 원론 수업 하라고 하면 A-L-L 공저를 주교재로 쓰고 <Economy>를 읽기 자료로 쓸 듯.

레고가 디지털 대응에 실패해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고? (Jak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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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에서 꽤 매력적인 기사를 냈다. 세계적인 장난감기업 레고가 디지털의 트랜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잘 안팔린다는 내용이다.

WSJ을 비롯한 외신들은 “디지털이란 거대한 파도 앞에서 레고도 휘청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레고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149억 크로네(2조6960억원)로 지난해 동기 대비 6% 하락했다. 영업이익은 34억 크로네(6150억 원)로 3% 떨어졌다.

이 같은 매출 부진은 레고가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에 빠졌던 2004년 이후 13년 만이다. 매출부진 소식과 함께 레고의 크누드스톱 CEO는 연내 1400여 명 감원 계획을 밝혔다. 덴마크, 영국, 미국, 중국 등지의 전 세계 종업원 약 1만9000명 중 8%에 해당하는 수치다.

WSJ는 레고가 이렇게 부진에 빠진 이유를 디지털에서 찾고 있다. “장난감을 조립하며 상상력을 키우는 창조적인 놀이’가 레고를 상징하는 수식어였지만 더 이상 어린이들은 레고에 열광하지 않는다. 그보다 각종 비디오게임과 유튜브에 흥미를 느끼는 어린이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WSJ은 어린이 장난감 선호 통계를 가져와서 실제 조사결과, 레고처럼 블록 장난감이나 퍼즐 등은 한 물 간 장난감이 돼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난감 조사업체가 2014년 3~12세 자녀를 둔 부모 35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자녀들이 자주 갖고 노는 장난감은 터치스크린 기기가 62%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인형ㆍ로봇 등 장난감(58%), 미술ㆍ공예 만들기(51%), 블록 장난감(49%), 자전거 타기(42%), 보드게임ㆍ퍼즐(38%) 등의 순이었다.

그런데 언뜻 보니 뭔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WSJ기사 제목을 보고 짐작했던 것보다 블록장난감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 어린이들의 거의 절반이 블록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엄청난 비율이다. 장난감 선호도의 시계열 변화에 관한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WSJ이 제시한 통계는 레고가 매출부진에 빠진 것을 설명해주는 자료가 아니다.

다시 한 번 보니 장난감 선호 통계는 2014년 자료다. 2014년이면 어떤 해인가? 레고가 사상최고의 실적을 구가하고 있던 때다. 그 최고의 실적들이 3년 뒤인 2016년까지 이어졌다.

그 자료를 보면서 WSJ의 기사가 엉터리 기사. 즉 현실, 경험을 관찰해서 기사를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 현실, 경험을 보지 않고 처음부터 어떤 방향으로 기사를 쓰겠다는 컨셉을 잡고 그 컨셉에 맞춰서 현실, 경험을 조작하고 꿰맞춘 엉터리 기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레고의 전략과 장난감 업계의 글로벌 트랜드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레고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빠졌던 때가 2003~2004년이다. 그 때는 레고의 경쟁자였던메가 블록스 (Mega Bloks)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던 때였다.

메가 블록스는 레고와 유사한 블록 장난감이지만 레고의 블록보다 블록이 훨씬 크고 통짜블록이 많아서 단순하다. 때문에 유아와 저연령 어린이들이 가지고 놀기에 좋게 나왔다. 메가 블록스는 레고와 유사한 외형을 가졌기 때문에 초반에 다수의 지재권 소송을 벌였는데 레고 블록과 충분히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연달은 소송에 이기게 된다.

또 메가블록스는 캐릭터,게임산업과의 제휴, 플랫폼전략을 더 활발히 추구해왔다. 그래서 피규어, 캐릭터가 레고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다.

반면 레고는 이 당시 아동복 산업과 시계 산업 등으로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해나가면서 수익구조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메가블록스 등의 급성장, 디지털게임 시장의 급성장에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해 레고는 위기에 빠졌다. 유럽지역에서는 그럭저럭 선방했지만 캐릭터가 강하고 게임산업,캐릭터 산업과의 제휴가 튼튼한 메가블록스가 버티는 북미지역에서는 고전했다.

레고 창사이래 처음으로 겪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크느두스눕이 레고의 총사령탑을 맡았다. 크누드스톱이 취한 전략은 선택과집중 전략, 고급화(고가격화)전략, 고연령타겟전략, 플랫폼협업전략, 디지털확장전략이다.

CEO인 크느두스톱과 CFO 예스페르 오베센은 취임하자마자 우선은 신속한 경영, 선택과 집중, 합리적인 재무구조를 갖추는 데 집중했다. 빈사상태에 빠진 조직을 구하기 위해 전략가들이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레고시티의 소방수와 경찰관 등등 기본 캐릭터를 재활용하고 기존 블록의 신제품 재활용도를 높였다. 제품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블록 요소의 수를 줄이는 것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를 개발해 시장에 선보이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절반으로 줄이는 등 비용절감을 추구했다. 또 아이들이 아니라 유통 고객에 집중해서 유통업체의 이익을 늘리고 재고회전율을 높여서 시장 지배력을 키웠다. 또 레고랜드 같은 이익이 낮은 자산과 사업 부분을 매각해서 현금보유를 늘리고 선택과 집중을 강화했다.

경영합리화, 비용절감, 선택과 집중 등으로 빈사상태의 위기에서 벗어난 레고는 2단계 전략으로 스토리텔링마케팅, 협업(콜라보) 및 플랫폼 전략과 함께 고급화, 고연령타겟전략 전략을 추구했다. 또 디지털로 확장했다.

크느두스톱 이후로 레고는 “마음껏 조립하는 완구”로서의 정체성보다 “완성도 높은 재현품으로서 수집욕을 불러일으키는 완구”로 변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가격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구글 검색창에서 why lego is 라는 문장을 치면 “why lego is so expensive?”라는 완성형 문장이 나타난다. 그만큼 레고 장난감의 높은 가격은 악명(?)이 높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테마에 맞춰서 특별 제작 판매하는 맞춤형 레고도 이 때 나왔다.

유럽시장과 달리 미국시장에서 고전했던 이유가 유럽에서는 특정 테마에 따른 레고 상품을 조립설명서대로 맞춰나가면 그걸로 끝이었다. 아이가 만든 레고를 어머니가 칭찬하며 진열장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또 다른 테마가 나오면 또 다른 테마의 레고를 사서 또 조립설명서 대로 레고를 맞춰나가는 것이 유럽 소비자들의 패턴이다. 그러나 북미지역은 다르다. 조립설명서는 보는 듯 마는 듯 던져버리고 어린이들이 자기 마음대로 레고를 조립한다. 그리고는 부수고 또 다시 조립하고 부수고 또 다시 조립한다. 이러니 레고는 북미지역에서 많이 팔리지 않고 고전하게 된다는 것이 ‘컬처 코드(The Culture Code)’의 저자 클로테르 라파이유 ADW 회장의 분석이다.

그런데 캐릭터가 강하고 영화, 게임 등과 제휴가 활발한 메가블록스는 북미지역에서 선전한다. 캐릭터가 강하니 계속 시리즈물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메가블록스를 벤치마킹해야 했다.

레고도 캐릭터를 강화하고 영화, 게임 등과의 플랫폼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갔다. 경영합리화로 빈사상태에서 다시 체력을 챙긴 레고는 메가블럭스를 벤치마킹해 영화,캐릭터, 게임 산업과의 협업을 강화해나가기 시작한다. 스타워즈, 어벤저스 등의 라이센스를 받으며 영화, 캐릭터 산업과의 플랫폼 제휴를 강화해나가더니 이제는 애니매이션과 게임을 제작하기까지 한다. 레고 최초의 디지털, 비디오게임이 2005년부터 나왔다. 스타워즈의 라이센를 받은 게임이다.

블록 수는 줄이고 캐릭터와 콜라보는 늘리고 여기에 디지털까지 진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4년 파산위기에 빠졌던 레고는 가족경영체제를 버리고 전략가인 크누드스톱을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한 이후 2016년까지 13년동안 초고속 성장하게 된다. 13년동안 전세계 레고 직원 수는 두배로 늘었다. 그러나 2017년 상반기 성장세가 둔화됐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6%, 3%씩 하락했다. 13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무엇 때문에 갑자기 성장세가 꺾였을까? WSJ이 주장하는대로 디지털 트랜드에 제대로 대응을 못해서였을까? 그렇지 않다.

디지털 트랜드에 대응을 하지 못해서 위기에 빠진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크누드스톱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게임 분야로 진출하는 등 레고는 그 어떤 장난감 업체들 못지 않게 디지털 부분이 튼튼한 기업이다. 레고의 디지털 비디오 게임 라인업을 보시라 엄청나다.

레고가 디지털 대응에 실패해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고? (Jake Lee)

게다가 디지털 비디오 게임 기업이 아닌 전통적인 장난감 기업들이 다 같이 몰락했다면 몰라도 레고의 경쟁자였던 해즈브로는 2017년에 급성장했다. 해즈브로가 디지털 비디오 게임에서도 선방하고 있지만 그다지 강한 회사가 아니다.

블룸버그 등 외신보도를 종합해서 분석해보니 해즈브로가 2017년 급성장한 배경은 ‘미녀와 야수’ ‘겨울왕국’등 디즈니 영화 캐릭터의 라이센스를 획득한 것이 결정적이다.

미녀와 야수, 겨울왕국 엘사 캐릭터들이 해즈브로의 급성장을 이끌어 글로벌 장난감 시장에서 만년 2위 기업이었던 해즈브로는 1위기업 마텔, 메가블록스를 제치고 2017년 상반기에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해즈브로의 지난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 증가한 8억4900만 달러(약 9600억 원)로 전문가들의 예상을 넘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6860만 달러(주당 54센트)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880만 달러(주당 38센트)에서 늘어났다. 전문가들의 예상은 주당 32센트 순익이었다.

반면 1위기업 마텔의 주 캐릭터인 바비와 주된 라이센스 제휴 캐릭터인 트랜스포머 등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마텔은 1분기 매출이 7억3500만 달러로, 전년보다 15% 감소했으며 최종 손익은 1억2300만 달러 순손실로 적자폭이 1년 전보다 55% 확대됐다.

레고가 디지털 대응에 실패해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고? (Jake Lee)

필자가 보기에 2000년대 이후 스타워즈, 트랜스포머, 어벤저스, 미녀와 야수, 겨울왕국 엘사 등등 영화와 캐릭터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완구업계의 트랜드과 완전히 바뀌었다고 본다.

마텔 (메가블록스는 2014년 마텔에 인수됐다)의 성공기, 해즈브로의 역전극, 레고의 부활극을 봐도 공통적으로 영화 캐릭터 산업과의 협업, 즉 플랫폼 전략이 회사의 성패를 좌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레고가 2017년 매출과 순이익이 감소세로 돌아선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레고가 작년 말, 올해 초 야심차게 기획했던 배트맨 시리즈가 참패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레고의 CEO 크누드스톱은 2016년 언론보도에서 레고 배트맨 세트가 새로운 영화 덕분에 2017 년에 큰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레고가 기대하고 역량을 집중했던 베트맨은 실패했다. 2017년 상반기 ‘레고 무비 배트맨’ 영화는 3년 전에 흥행했던 ‘레고 무비’의 절반을 좀 넘는 수준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역시 레고 배트맨 세트도 참패했다. 크누드스톱처럼 제 아무리 뛰어난 전략가라도 콘텐츠(캐릭터)에 대한 감각은 갖추지 못한 듯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 장난감 업계의 트랜드가 영화 등 캐릭터 산업과의 플랫폼 전략이 중요해지면서 플랫폼전략, 즉 플랫폼리더 전략과 플랫폼컴플리멘터 전략을 어떻게 구성해나갈 것인지가 회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돼 버렸다. 그 플랫폼에 참여한 뒤에 디지털 비디오 게임을 결합시켜서 이익을 확대해나가는 것이 최근 장난감 업계의 트랜드다.

이에 따라 스타워즈, 어벤저스, 트랜스포머나 미녀와야수, 겨울왕국 등 뛰어난 영화 캐릭터의 라이센스를 받아 협업, 제휴를 하면 크게 성장하고 마텔(메가블록스)처럼 제휴 라이선스 캐릭터의 ‘약발’이 떨어지면 곧바로 회사가 추락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레고? 당연히 레고 배트맨의 실패가 2017년의 실패이고 플랫폼 전략의 실패가 2017년의 실패다.

13년만의 갑작스런 매출 및 순익 감소이지만 직원 8%, 1400명을 감원하기로 한 크누드스톱의 결정은 바람직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매출, 순익이 감소하면 바로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것은 전략과 기업경영의 기본이다.

일단 전보다 캐릭터 라이센스 제휴, 플랫폼 전략이 중요해지니 인원이 전처럼 많이 필요하지 않다. 블록 요소의 수를 줄이고 경영합리화로 비용을 줄이는 등의 조치는 이미 시행됐다. 더 이상은 경영효율화로 반전을 꾀할 수는 없고 아이디어와 플랫폼전략이 중요해졌다.

크누드스톱은 뉴미디어 콘텐츠 및 플랫폼전략에 정통한 핵심직원들을 보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지금의 잠깐의 추락을 극복하고 세계1위 장난감기업을 넘볼 수 있다.

1학기, 1주차

박사과정 첫 학기 첫 주가 끝났다. 사무실을 배정받았고, 시간표가 대략 확정됐고, 할 일도 정해졌다.

퍼듀 대학교는 학기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박사과정의 경우 변형된 학기제를 운영한다. 한 학기를 두 개의 모듈(module)로 나누어 모듈이 바뀌면 수강 과목도 모두 바뀐다. 수업 밀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보인다. 이번 모듈에 수강하는 과목은 총 3+1과목으로 표준 커리큘럼 구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우선 Micro Theory 1, Macro Theory 1, Math for Econ이 있고, P/F 과목인 Teaching Economics(“경제학교수법”)가 있다.

미시 수업은 하루 휴강해서 아직 감이 안 잡힌다. 경제학교수법은 부담이 크지 않다. 첫 주 수업에서는 교수님이 대충 경제학원론 첫 수업에 해당하는 내용을 샘플로 강의해주고 본인 강의를 평가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 샘플 수업의 내공이 어마어마해서 비판할 게 많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원론조차 직관보다 수리적 전개 중심이었다. 그래서 직관적으로 가르치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않았는데, 40분짜리 강의를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무릎을 얼마나 쳤는지 모른다. 하아.

거시는 신고전파 성장이론을 중심으로 거시에서 쓰는 도구(dynamic programming과 그 수리적 배경)를 훈련할 것 같다. 수업이 아주 건조하다. 농담은 커녕 미소조차 짓지 않고 수식을 적어 내려가는 교수님을 보고 있자면 참… 식 전개도 스킵하는 경우가 많아서 진도가 아주 빠르다. 특이한 점은 optimal control을 아예 배제하고 시작했다는 거다. 석사 때 거시에서도 Bellman Equation을 배웠지만, 사실 cake-eating problem 수준에서 끝났고 Ramsey model 등은 전부 optimal control로 간단하게 풀고 넘어갔다. 여기서는 optimal control 따위 언급조차 하지 않고(…) 바로 discrete time model로 시작한다. 아직 별 문제는 없지만 Hamiltonian 사용하는 방법은 언급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경제수학은 최적화이론을 자세히 다룬다. Math Camp 없이 수업을 시작해서, 수강한지 5년 넘은 선형대수 지식을 끌어오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인간적으로 1주일은 math camp 해 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경제수학 가르치는 분은 본인이 쓴 교과서를 갖고 있다. 경제수학의 바이블 Simon & Blume (1994)보다 1년 먼저 나온 책이고 매우 컴팩트하게 쓰인 책이다. 정작 수업은 그냥 강의노트로 한다. 원래 이 분이 작년까지 미시도 담당했는데 올해부터 바뀌었다고 한다. 고년차 학생들 얘기를 들어 보니 일단 바뀐 게 잘 된 것 같긴 한데, 미시 시험을 보면 또 생각이 달라질지 모르겠다만, 수학 수업과 미시 수업 분위기가 같아지는 건 끔찍할 것 같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공부에 전력투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퍼듀는 모든 입학생에게 TA 의무를 부과한다. Fellowship을 받더라도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들 뿐 TA를 해야 한다. 나는 매주 한 시간동안 40명의 학생을 데리고 리뷰 세션을 진행하고, 역시 매주 4시간의 office hour를 운영해야 한다. 끔찍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 TA를 하려면 영어 말하기 능력 시험에 통과해야 하는데, 5점 차이로 떨어져서 ESL를 수강해야 한다. ㅋㅋㅋㅋㅋㅋㅋ… 이 ESL이 매주 4+1+0.5시간을 잡아먹는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견뎌내야 한다.

그래도 공부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앞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장단기 목표도 모두 정해져 있다. 물론 험난한 과정을 마치고 박사를 받는다고 해서 밝은 미래가 보장되진 않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나는 간신히 TOP50 안 프로그램에 들어왔고, 경제학 유학 나오는 사람은 나 내지는 앞뒤 세대가 가장 많을 것이다. 한국 대학 임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정출연들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많이 유지될지도 미지수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고개를 들지만,

안토니오 그람시에게 다시 기대어 보자.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 본시 진지전에 임하는 혁명가의 말이지만 이제는 탈맥락화되어 독자적인 의미를 획득했으니 그냥 내 맘대로 쓰기로 한다. 앞으로 망하기만 하라는 법은 없잖은가. 이 곳에서 내가 어떤 연구자로 준비될 것이고, 어떤 연구를 하게 될 지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다. 여기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다 쓰고 나서 비관해도 늦지 않다. 따지고 보면 유학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생각한 나날도 있었다.

나올 때, 내가 아는 모든 교수님이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말라고 조언하셨다. 특히 1년차 때는 더더욱. 다행히 예전과 달리 잡상에 시달리지 않는다. 얻어맞기 전에는 계획이 그럴 듯 한 법이니, 시험 한 번 말아먹으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차피 퀄 떨어지면 그 뒤의 일은 아예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고, 지금부터 플랜 B를 준비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어리석은 일이다. 다시, 오늘에 집중하면 된다는 결론이다. 20대 초중반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이런 마인드로 지낼 것이다. 당장의 과외 염려는 여자친구와 떨어져 있다는 사실 하나뿐이고, 이 역시 내가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지난 12월에 나는 썼다. “먼 길을 돌아온 미련한 자에게 기회가 허락되기를 빈다.” 기회는 허락되었다.

Massive Paper Release: NBER

이번 주에 릴리즈된 NBER 워킹 페이퍼는 무려 47편이나 된다. 언제나처럼 흥미로운 페이퍼가 많은데 이 페이퍼가 특히 눈길을 끈다. 제목을 옮기면 “재화·노동시장 통합: 유럽연합 확대의 파급효과 양적평가” 정도 된다. 초록만 간단히 읽었는데,

2004년 EU에 10개 국가가 추가로 가입하면서 무역과 노동이동이 활발해졌다. 저자들은 이 역사적 사실로부터 시장개방이 재화시장과 노동시장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일반균형분석했다. 신규 가입국이 통합의 과실을 가장 많이 얻었으며, 그 중에서도 이들 국가의 비숙련 노동자들이 최대 수혜자였다고 한다.

무역과 노동을 묶어서 보는 실증분석 페이퍼가 꽤 나오는 것 같은데, 이 논문은 거시모형 설계 단계부터 요소시장과 재화시장을 묶어서 분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본문은 30페이지 좀 넘는 수준으로 길지 않다. 부록이 30페이지인건 함정. …하지만 경제수학 숙제를 해야 하는 관계로 자세히 읽어 보진 못할 듯 ㅠㅠ

The Uptick in Income Segregation: Real Trend or Random Sampling Variance (NBER w23656)

Logan, J. R., Foster, A., Ke, J., & Li, F. (2017). The Uptick in Income Segregation: Real Trend or Random Sampling Variance (No. w23656).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소득 양극화 심화 추세가 지역 통계 sampling rate 변화(15% → 5%)의 영향일 수 있다는 NBER 워킹 페이퍼. local area의 소득 추정치는 sampling rate의 영향에 민감하다는 점을 기존 추정치들이 간과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과거 인구총조사 자료를 이용해 동일한 모집단에 대해 sampling rate 변동에 따라 소득 양극화 양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였다.

저자들은 양극화 추세가 환상이라고까지는 안 하겠다고 쓴다. 그런데 그 문장을 굳이 쓴 이유가 뭘까? ^^.. 흥미롭게도 저자 네 명 중 한 명만 경제학자다. 한 명은 사회학자, 두 명은 통계학(생물통계학)자다.

보완할 점도 있어 보이지만 생각해 볼 만한 연구다. 특히 통계청이 인구총조사를 전수조사에서 샘플링 방식으로 바꾼 지금, 한국에 시사점이 있는 페이퍼라고 본다. (내가 아는 한 인구총조사 자료로 소득양극화를 계산하지는 않는다. 가계복지금융조사 같은 자료 표본추출률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