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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에서 꽤 매력적인 기사를 냈다. 세계적인 장난감기업 레고가 디지털의 트랜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잘 안팔린다는 내용이다.
WSJ을 비롯한 외신들은 “디지털이란 거대한 파도 앞에서 레고도 휘청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레고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149억 크로네(2조6960억원)로 지난해 동기 대비 6% 하락했다. 영업이익은 34억 크로네(6150억 원)로 3% 떨어졌다.
이 같은 매출 부진은 레고가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에 빠졌던 2004년 이후 13년 만이다. 매출부진 소식과 함께 레고의 크누드스톱 CEO는 연내 1400여 명 감원 계획을 밝혔다. 덴마크, 영국, 미국, 중국 등지의 전 세계 종업원 약 1만9000명 중 8%에 해당하는 수치다.
WSJ는 레고가 이렇게 부진에 빠진 이유를 디지털에서 찾고 있다. “장난감을 조립하며 상상력을 키우는 창조적인 놀이’가 레고를 상징하는 수식어였지만 더 이상 어린이들은 레고에 열광하지 않는다. 그보다 각종 비디오게임과 유튜브에 흥미를 느끼는 어린이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WSJ은 어린이 장난감 선호 통계를 가져와서 실제 조사결과, 레고처럼 블록 장난감이나 퍼즐 등은 한 물 간 장난감이 돼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난감 조사업체가 2014년 3~12세 자녀를 둔 부모 35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자녀들이 자주 갖고 노는 장난감은 터치스크린 기기가 62%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인형ㆍ로봇 등 장난감(58%), 미술ㆍ공예 만들기(51%), 블록 장난감(49%), 자전거 타기(42%), 보드게임ㆍ퍼즐(38%) 등의 순이었다.
그런데 언뜻 보니 뭔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WSJ기사 제목을 보고 짐작했던 것보다 블록장난감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 어린이들의 거의 절반이 블록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엄청난 비율이다. 장난감 선호도의 시계열 변화에 관한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WSJ이 제시한 통계는 레고가 매출부진에 빠진 것을 설명해주는 자료가 아니다.
다시 한 번 보니 장난감 선호 통계는 2014년 자료다. 2014년이면 어떤 해인가? 레고가 사상최고의 실적을 구가하고 있던 때다. 그 최고의 실적들이 3년 뒤인 2016년까지 이어졌다.
그 자료를 보면서 WSJ의 기사가 엉터리 기사. 즉 현실, 경험을 관찰해서 기사를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 현실, 경험을 보지 않고 처음부터 어떤 방향으로 기사를 쓰겠다는 컨셉을 잡고 그 컨셉에 맞춰서 현실, 경험을 조작하고 꿰맞춘 엉터리 기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레고의 전략과 장난감 업계의 글로벌 트랜드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레고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빠졌던 때가 2003~2004년이다. 그 때는 레고의 경쟁자였던메가 블록스 (Mega Bloks)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던 때였다.
메가 블록스는 레고와 유사한 블록 장난감이지만 레고의 블록보다 블록이 훨씬 크고 통짜블록이 많아서 단순하다. 때문에 유아와 저연령 어린이들이 가지고 놀기에 좋게 나왔다. 메가 블록스는 레고와 유사한 외형을 가졌기 때문에 초반에 다수의 지재권 소송을 벌였는데 레고 블록과 충분히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연달은 소송에 이기게 된다.
또 메가블록스는 캐릭터,게임산업과의 제휴, 플랫폼전략을 더 활발히 추구해왔다. 그래서 피규어, 캐릭터가 레고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다.
반면 레고는 이 당시 아동복 산업과 시계 산업 등으로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해나가면서 수익구조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메가블록스 등의 급성장, 디지털게임 시장의 급성장에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해 레고는 위기에 빠졌다. 유럽지역에서는 그럭저럭 선방했지만 캐릭터가 강하고 게임산업,캐릭터 산업과의 제휴가 튼튼한 메가블록스가 버티는 북미지역에서는 고전했다.
레고 창사이래 처음으로 겪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크느두스눕이 레고의 총사령탑을 맡았다. 크누드스톱이 취한 전략은 선택과집중 전략, 고급화(고가격화)전략, 고연령타겟전략, 플랫폼협업전략, 디지털확장전략이다.
CEO인 크느두스톱과 CFO 예스페르 오베센은 취임하자마자 우선은 신속한 경영, 선택과 집중, 합리적인 재무구조를 갖추는 데 집중했다. 빈사상태에 빠진 조직을 구하기 위해 전략가들이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레고시티의 소방수와 경찰관 등등 기본 캐릭터를 재활용하고 기존 블록의 신제품 재활용도를 높였다. 제품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블록 요소의 수를 줄이는 것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를 개발해 시장에 선보이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절반으로 줄이는 등 비용절감을 추구했다. 또 아이들이 아니라 유통 고객에 집중해서 유통업체의 이익을 늘리고 재고회전율을 높여서 시장 지배력을 키웠다. 또 레고랜드 같은 이익이 낮은 자산과 사업 부분을 매각해서 현금보유를 늘리고 선택과 집중을 강화했다.
경영합리화, 비용절감, 선택과 집중 등으로 빈사상태의 위기에서 벗어난 레고는 2단계 전략으로 스토리텔링마케팅, 협업(콜라보) 및 플랫폼 전략과 함께 고급화, 고연령타겟전략 전략을 추구했다. 또 디지털로 확장했다.
크느두스톱 이후로 레고는 “마음껏 조립하는 완구”로서의 정체성보다 “완성도 높은 재현품으로서 수집욕을 불러일으키는 완구”로 변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가격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구글 검색창에서 why lego is 라는 문장을 치면 “why lego is so expensive?”라는 완성형 문장이 나타난다. 그만큼 레고 장난감의 높은 가격은 악명(?)이 높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테마에 맞춰서 특별 제작 판매하는 맞춤형 레고도 이 때 나왔다.
유럽시장과 달리 미국시장에서 고전했던 이유가 유럽에서는 특정 테마에 따른 레고 상품을 조립설명서대로 맞춰나가면 그걸로 끝이었다. 아이가 만든 레고를 어머니가 칭찬하며 진열장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또 다른 테마가 나오면 또 다른 테마의 레고를 사서 또 조립설명서 대로 레고를 맞춰나가는 것이 유럽 소비자들의 패턴이다. 그러나 북미지역은 다르다. 조립설명서는 보는 듯 마는 듯 던져버리고 어린이들이 자기 마음대로 레고를 조립한다. 그리고는 부수고 또 다시 조립하고 부수고 또 다시 조립한다. 이러니 레고는 북미지역에서 많이 팔리지 않고 고전하게 된다는 것이 ‘컬처 코드(The Culture Code)’의 저자 클로테르 라파이유 ADW 회장의 분석이다.
그런데 캐릭터가 강하고 영화, 게임 등과 제휴가 활발한 메가블록스는 북미지역에서 선전한다. 캐릭터가 강하니 계속 시리즈물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메가블록스를 벤치마킹해야 했다.
레고도 캐릭터를 강화하고 영화, 게임 등과의 플랫폼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갔다. 경영합리화로 빈사상태에서 다시 체력을 챙긴 레고는 메가블럭스를 벤치마킹해 영화,캐릭터, 게임 산업과의 협업을 강화해나가기 시작한다. 스타워즈, 어벤저스 등의 라이센스를 받으며 영화, 캐릭터 산업과의 플랫폼 제휴를 강화해나가더니 이제는 애니매이션과 게임을 제작하기까지 한다. 레고 최초의 디지털, 비디오게임이 2005년부터 나왔다. 스타워즈의 라이센를 받은 게임이다.
블록 수는 줄이고 캐릭터와 콜라보는 늘리고 여기에 디지털까지 진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4년 파산위기에 빠졌던 레고는 가족경영체제를 버리고 전략가인 크누드스톱을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한 이후 2016년까지 13년동안 초고속 성장하게 된다. 13년동안 전세계 레고 직원 수는 두배로 늘었다. 그러나 2017년 상반기 성장세가 둔화됐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6%, 3%씩 하락했다. 13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무엇 때문에 갑자기 성장세가 꺾였을까? WSJ이 주장하는대로 디지털 트랜드에 제대로 대응을 못해서였을까? 그렇지 않다.
디지털 트랜드에 대응을 하지 못해서 위기에 빠진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크누드스톱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게임 분야로 진출하는 등 레고는 그 어떤 장난감 업체들 못지 않게 디지털 부분이 튼튼한 기업이다. 레고의 디지털 비디오 게임 라인업을 보시라 엄청나다.
게다가 디지털 비디오 게임 기업이 아닌 전통적인 장난감 기업들이 다 같이 몰락했다면 몰라도 레고의 경쟁자였던 해즈브로는 2017년에 급성장했다. 해즈브로가 디지털 비디오 게임에서도 선방하고 있지만 그다지 강한 회사가 아니다.
블룸버그 등 외신보도를 종합해서 분석해보니 해즈브로가 2017년 급성장한 배경은 ‘미녀와 야수’ ‘겨울왕국’등 디즈니 영화 캐릭터의 라이센스를 획득한 것이 결정적이다.
미녀와 야수, 겨울왕국 엘사 캐릭터들이 해즈브로의 급성장을 이끌어 글로벌 장난감 시장에서 만년 2위 기업이었던 해즈브로는 1위기업 마텔, 메가블록스를 제치고 2017년 상반기에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해즈브로의 지난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 증가한 8억4900만 달러(약 9600억 원)로 전문가들의 예상을 넘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6860만 달러(주당 54센트)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880만 달러(주당 38센트)에서 늘어났다. 전문가들의 예상은 주당 32센트 순익이었다.
반면 1위기업 마텔의 주 캐릭터인 바비와 주된 라이센스 제휴 캐릭터인 트랜스포머 등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마텔은 1분기 매출이 7억3500만 달러로, 전년보다 15% 감소했으며 최종 손익은 1억2300만 달러 순손실로 적자폭이 1년 전보다 55% 확대됐다.
필자가 보기에 2000년대 이후 스타워즈, 트랜스포머, 어벤저스, 미녀와 야수, 겨울왕국 엘사 등등 영화와 캐릭터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완구업계의 트랜드과 완전히 바뀌었다고 본다.
마텔 (메가블록스는 2014년 마텔에 인수됐다)의 성공기, 해즈브로의 역전극, 레고의 부활극을 봐도 공통적으로 영화 캐릭터 산업과의 협업, 즉 플랫폼 전략이 회사의 성패를 좌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레고가 2017년 매출과 순이익이 감소세로 돌아선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레고가 작년 말, 올해 초 야심차게 기획했던 배트맨 시리즈가 참패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레고의 CEO 크누드스톱은 2016년 언론보도에서 레고 배트맨 세트가 새로운 영화 덕분에 2017 년에 큰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레고가 기대하고 역량을 집중했던 베트맨은 실패했다. 2017년 상반기 ‘레고 무비 배트맨’ 영화는 3년 전에 흥행했던 ‘레고 무비’의 절반을 좀 넘는 수준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역시 레고 배트맨 세트도 참패했다. 크누드스톱처럼 제 아무리 뛰어난 전략가라도 콘텐츠(캐릭터)에 대한 감각은 갖추지 못한 듯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 장난감 업계의 트랜드가 영화 등 캐릭터 산업과의 플랫폼 전략이 중요해지면서 플랫폼전략, 즉 플랫폼리더 전략과 플랫폼컴플리멘터 전략을 어떻게 구성해나갈 것인지가 회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돼 버렸다. 그 플랫폼에 참여한 뒤에 디지털 비디오 게임을 결합시켜서 이익을 확대해나가는 것이 최근 장난감 업계의 트랜드다.
이에 따라 스타워즈, 어벤저스, 트랜스포머나 미녀와야수, 겨울왕국 등 뛰어난 영화 캐릭터의 라이센스를 받아 협업, 제휴를 하면 크게 성장하고 마텔(메가블록스)처럼 제휴 라이선스 캐릭터의 ‘약발’이 떨어지면 곧바로 회사가 추락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레고? 당연히 레고 배트맨의 실패가 2017년의 실패이고 플랫폼 전략의 실패가 2017년의 실패다.
13년만의 갑작스런 매출 및 순익 감소이지만 직원 8%, 1400명을 감원하기로 한 크누드스톱의 결정은 바람직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매출, 순익이 감소하면 바로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것은 전략과 기업경영의 기본이다.
일단 전보다 캐릭터 라이센스 제휴, 플랫폼 전략이 중요해지니 인원이 전처럼 많이 필요하지 않다. 블록 요소의 수를 줄이고 경영합리화로 비용을 줄이는 등의 조치는 이미 시행됐다. 더 이상은 경영효율화로 반전을 꾀할 수는 없고 아이디어와 플랫폼전략이 중요해졌다.
크누드스톱은 뉴미디어 콘텐츠 및 플랫폼전략에 정통한 핵심직원들을 보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지금의 잠깐의 추락을 극복하고 세계1위 장난감기업을 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