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3일차

8월 4일에 미국 입국했으니 오늘로 미국생활 3일차다. 금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제한적이었다. 당일에는 간단히 주말을 보낼 장을 보고 끝. 토요일에 휴대폰(AT&T)과 은행 계좌(Purdue Credit Union)를 만들었다. 토요일 오전에 은행업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토요일 오후에는 Target 들러서 당장 필요한 물품(빨래 바구니, 과도, 도마 등)을 좀 더 구입했다. 정말 많이 걸었다… West Lafayette의 대중교통은 한국 지방 수준이다.

자동차가 없고 당분간 없을 예정인데 장 볼 일이 걱정이다. 수요일에 룸메이트가 들어온다는데 94년생 한국 남학생이다. 이쪽도 자동차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버가 첫 이용시 최대 $15까지 할인해 주는 쿠폰을 준 김에 버스 타고 가서 우버로 돌아와 보았다. 못 할 건 아닌데 개강하면 불가능할 듯. 한국 면허 발급 후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ZipCar류도 사용할 수 없다. 흐음…

학교 보험 관련 업무도 상당히 귀찮아 보인다. SSN Interview가 16일에 잡혀 있는데 SSN이 없으면 Open Enrollment를 할 수 없다. SSN은 신청 후 30일 이내에 발급된다고. 그런데 OE는 9월 8일이 마지막 날이다. SSN 제 때 안 나오면 어떻게 될까? 내일 ISS 방문해서 물어볼 것이 산더미다. ㅠㅠ

첫 학기부터 TA 업무가 주어졌다. 경제학원론과 미시경제학 과목 TA를 해야 한다. 많이 걱정된다. 그래도 한국 대학원과 달리 TA 업무 오리엔테이션이 제대로 되어 있긴 하다. 업무량은 별문제겠지.

집주인 Ed를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외롭다기보다는 심심하다. 오늘 어디든 교회에 가 보았어야 하는 걸까? 한인교회는 꺼려지는데, 달리 가야 할 곳이 마땅치 않다. 김재수 교수님 추천대로 UMC나 UCC로 가야 할까?

여하튼 이방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일상 기록을 멈춘지 꽤 되었는데 이런 계기로 다시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미래의 나를 위해 기록을 남겨 둔다.

최저임금 토막글: 최임결정 메커니즘의 문제

최저임금에 초점을 맞춘 정기 보고서가 두 개 있다.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임금실태 등 분석 보고서>, <최저임금 적용효과에 관한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 이름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 전자는 “객관적” 통계분석이다. 최저임금 영향률, 미만율 등이 이 보고서에서 나온다. 후자는 사업주, 노동자 대상 “주관적” 인식조사다.

전자는 최저임금위원회가 매년 노동연구원에 수탁한다. 경활조사 등 기존 통계 원자료를 이용한 지표 생산 및 분석이 주 내용인 만큼 데이터 연속성이나 신뢰성 문제가 비교적 덜하다.

후자가 문제다. 이 보고서는 매년 시행하는 설문조사에 기초하는데, 조사문항이 2-3년에 한 번은 대규모로 바뀐다. 전자야 어쨌든 객관적 자료지만 이 조사는 주관적 인식 조사이니만큼 문항 포함 여부부터 해석까지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10년 이상 된 연례 정기조사임에도 시계열 연속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단순 문언만 놓고도 노사 위원들이 치열하게 다툰다. 언젠가 “최저임금 준수”에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주체가 누구냐는 문항이 추가되었다. 이듬해에 “준수”가 “정착”으로 바뀌었다. 사측 위원들이 “준수”라는 표현이 암묵적으로 사측을 위법행위자로 간주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제기한 것이 그 이유였다.

게다가 이런 주관적 인식조사는 실제 수치와 괴리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업체 및 근로자의 실제 특성과 연계해서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 분석은 기껏해야 매출, 규모, 소득 등을 묻고 조사 대상의 특성 요약통계량을 제시하는 정도다. 국가기관에서 진행하는 연구니 기존 통계와 매칭하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분석 내용 역시 문항 요약 정도다. 범주형자료분석과 회귀분석은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가장 고급 분석이 크로스테이블이다. 결국 큰 돈 들여 한 설문조사가 사업주와 근로자 간 인식 괴리를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친다. 이 문제가 개선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더 암담하다. 문제가 분석자들이 용역비 받아 놀고 먹기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라, 노사위원들이 고급 방법론 활용을 원치 않아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한국은 국가 단위로 최저임금이 결정되어 실험적 계량연구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관의 행정데이터라도 풍부하게 활용해야 생산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하다. 이것이 최저임금 관련 논의가 미만율과 영향률 정도에서 나아가지 않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외 관련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최저임금위원회 인적 구성 내지 최임 결정 메커니즘을 한층 더 회의적으로 보게 된다.

…아무튼 16.4%는 실화다.

Jardim et al. (2017), Minimum Wage Increases, Wages, and Low-Wage Employment: Evidence from Seattle (NBER w23532)

Jardim, Long, Plotnick, van Inwegen, Vigdor, and Wething (2017), “Minimum Wage Increases, Wages, and Low-Wage Employment: Evidence from Seattle”, NBER w23532.

어제 NBER에서 공개한 이 페이퍼가 화제인 모양이다. 이 논문은 시애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실험 삼아 인상의 효과를 실증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최저임금 2년 연속 인상 결과 총 payroll이 통계적-실질적으로 유의하게 줄어들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반대 입장이라면 환영할 만한 결과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헌데 저 유명한 Card & Krueger 이래 대체로 받아들여지는 합의는 1) 완만한 인상은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2) 이론의 예측대로 일률적인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양쪽 입장을 지지하는 논문이 모두 생산되고 있으며, 이 논문을 통해 반대 측의 유력한 증거가 추가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실제로 같은 현상을 두고 UC 버클리 연구진이 분석한 페이퍼는 결과가 달랐다.

이 논문의 차별점은 머릿수로 측정한 고용에는 영향이 미미하나 노동시간으로 측정한 고용에는 영향이 막대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최저임금 인상 시 시간당 임금이 오르지만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 최저임금노동자의 소득이 줄어든다는 것. 한편 Headcount 고용은 영향을 덜 받았고, 첫 인상 때는 부작용이 덜했으나 두 번째 인상 때 커졌다는 점에서는 기존 문헌과 분명히 연속성을 갖는다. 방법론적으로는 이전 연구의 고용변동 측정법이 인상 전 최저임금 이상-인상 후 최저임금 미만 구간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변동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한다. (전에 과외돌이가 짚은 포인트. 과외돌이 경제학과 가라고 할까?)

논문의 기여점은 확실해 보인다. 우리는 조금 더, 아니 조금 많이 더(??)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최저임금 실증논문은 늘상 일반화 가능성이 문제시되는데, 이 논문에서도 레스토랑 산업에서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2년 새 1.53달러가 올랐는데도.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은 부정적이나, 지역 내 산업 구성, 고용비중 등에 따라 정도가 다르다”는 뜨뜻미지근한 결론에 다시금 이르게 된다. 분석 결과가 어느 한쪽에 쐐기를 박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근시일 내에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자는 주장에 극히 회의적이다. 그러나 논문 한 편으로 이 첨예한 이슈가 끝났다는 태도는 곤란하다. 게다가 이 논문은 아직 워킹 페이퍼 아닌가. 논의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이 결과가 후속연구에서 지속적으로 재현되어야 한다. 이 점을 유념하지 않으면 연구를 취사선택할 위험이 있다.

가장 원하던 결과, 가장 그럴 듯한 결과가 나왔을 때를 경계하라. 나는 그렇게 배웠다.


해당 논문 초록.

This paper evaluates the wage, employment, and hours effects of the first and second phase-in of the Seattle Minimum Wage Ordinance, which raised the minimum wage from $9.47 to $11 per hour in 2015 and to $13 per hour in 2016. Using a variety of methods to analyze employment in all sectors paying below a specified real hourly rate, we conclude that the second wage increase to $13 reduced hours worked in low-wage jobs by around 9 percent, while hourly wages in such jobs increased by around 3 percent. Consequently, total payroll fell for such jobs, implying that the minimum wage ordinance lowered low-wage employees’ earnings by an average of $125 per month in 2016. Evidence attributes more modest effects to the first wage increase. We estimate an effect of zero when analyzing employment in the restaurant industry at all wage levels, comparable to many prior studies.

블라인드채용제 단상

한국 노동시장의 학벌 차별은, 존재하는 경우, 그리고 산업/직종별 차이도 고려해야겠지만, 전체적으로 선호에 따른 차별taste discrimination보다 통계적 차별statistical discrimination인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야 SKY 애들만 뽑아”보다 “야 시켜보면 걔네들이 일도 잘하니까 걔네 뽑자” 에 가까우리라는 것이다. (근거자료 없는 추측이다.)

고용주들은 정보부족 때문에 통계적 차별을 시행한다. 교과서적 예를 들어 보자. 고용주는 구직자를 뽑아 일을 시키기 전에는 생산성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보유한 과거 인사기록을 기초로 구직자가 속한 집단의 평균 생산성을 따져본 뒤 구직자 역시 평균적으로 그 정도일 것이라 예측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과거 인사기록 정보 자체가 특정 집단에 편중되어 있다면? 쉽게 말해 지금까지 100% SKY 출신만 있던 회사에 비SKY 출신이 입사지원을 하는 경우다. 이 때는 비SKY의 성과에 관해 참조할 정보 자체가 없으므로 불확실성이 커진다. 따라서 인사담당자가 학교 서열 등을 전혀 모른다 해도 SKY 출신을 뽑게 된다. 참고로 이 논리는 SKY-비SKY를 바꾸어도 성립한다. “이런 학교 나온 애가 왜 여길 왔지? / 몇 번 뽑아 봤는데 다 금방 그만 두더라.”

이론적으로 통계적 차별은 구직자 생산성 정보가 고용주에게 충분히 제공될 때 사라진다(Phelps 1972).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뽑아 보기 전에는 모르는데, 모르니까 뽑지 않는다. 적극적 조치로 대표되는 소수 집단 우대정책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별을 인지한 소수자(이 예시에서는 비SKY)들이 능력계발을 포기한다면 통계적 차별이 실질적인 격차로 고착되기 때문이다(Arrow 1972, Lundberg and Startz 1982).

대표적 노동시장 차별인 성차별 문제의 경우 여성할당제를 채용하여 정보량을 늘린다. 집단이 둘이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다. 학벌은 집단이 여럿이므로 수량규제인 할당제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 때 블라인드채용제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정책대안이다. 통계적 차별의 근거가 사라지며, 고용주가 구직자 생산성을 예측할 때 사용하는 정보에서 다른 정보 – 가령 인턴십 경험 –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차별의 경우 블라인드 방식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존 방식에 맞추어 준비해 온 구직자들의 손실과 저항이 불가피하다.

통계적 차별이 일반화된 노동시장에서 교육은 역량 증진의 수단이 아니라 신호발송signalling의 수단이 된다. 소위 학교 간판은 “이러이러한 양질의 교육을 받았다”보다 “난 이런 학교 나올 능력을 갖고 있다”를 보여준다는 말이다. 통계적 차별을 없애려는 시도는 개인의 역량(인적자본) 자체를 평가하겠다는 의지로서, 교육을 신호발송의 수단으로 여겼던 집단에게는 불리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들도 주어진 제약 하에서 최적선택을 했던 것이니, 적응기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블라인드채용제 시행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마 정치적인 이유로 불가능하겠지만.

블라인드채용제를 성토하는 모교 대나무숲 게시물이 페이스북에서 여러 차례 공유되었다. 지금까지 노력해서 이 학교 들어왔는데 노력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다른 “낮은” 학교 학생들과 동일하게 평가된다는 것이 불만이라는 이야기였다. 전형적인 신호 내러티브다. 한 마디만 얹고 싶다. 소위 명문대는 다른 학교에 비해 자원 규모가 압도적이다. 재학생들이야 언제나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겠으나, 채용설명회라도 한 번 더 있고, 전반적인 정보나 선후배 인맥, 진로상담 등 학교 인프라 자체가 다른 학교보다 우월하다. 학창 시절의 수고와 노력은 이 자원에 접근하는 대가로 지불된 것이지 평생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런 자원을 갖고도 학교 이름 없이는 경쟁력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노력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돌아와서, 그럼에도 “역량중심사회”로 이행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문제가 채용에서 끝나지 않는 까닭이다. 직장 내 평가도 역량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평가 결과에 따라 승진과 해고가 가능한 수준의 노동시장 유연성 역시 필요하다. 그런데 사내 평가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겠는가? 하여 지금으로서는 블라인드채용제가 기폭제가 되기를 희망할 수밖에 없는데,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참고문헌.

Arrow (1972), “Some Mathematical Models of Race in the Labor Market”. AH Pascal (Ed.), Racial discrimination in economic life, Lexington Books.

Lundberg and Startz (1983), Private Discrimination and Social Intervention in Competitive Labor Markets, American Economic Review.

Phelps (1972), The Statistical Theory of Racism and Sexism, American Economic Review.

‘Apple Way’ 와 재벌개혁의 역설 (김현성)

페이스북 원문 링크


‘주주자본주의’ 와 ‘재벌개혁’ 이라는 두 가지의 의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를 오랫 동안 지배해 온 것이었다. 또한 이 두 가지의 의제가 지향하는 목표 또한 뚜렷하다. 공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확립을 통한 부의 재분배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의제는 현재 한국 경제에 과연 얼마나 유효할 것인가?

먼저 주주자본주의부터 생각해 보자. KRX와 금융투자협회가 발간하는 주식투자인구통계와 자본시장 Factbook에 따르면, 한국의 주식투자인구 비중은 경제활동인구의 20% 남짓이다. 그런데 문제는 보유금액별 비중이다. 2012년 기준으로 전체투자자 중 기관/외국인을 제외한 개인투자자 중 1.0%가 시가총액의 60%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기업의 개인 대주주들이다. 5년 전의 자료이지만 자본집중도 자체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도 비슷하리라 본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보도가 되고 있는 내용처럼 대기업들이 ‘Apple Way’ 를 따른다고 가정해 보자.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실현되고 배당수익률은 고공행진을 지속하며 주가는 상승할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자본시장을 통한 공정한 부의 재분배로 이어질 것인가? 유가증권 자본집중도가 극히 높은 한국에서는 결국 이 과실이 시총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상위 1.0%에게 돌아갈 것이며,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은 ROE를 최대한 높여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고용을 줄이고 생산 아웃소싱의 비중을 늘려 나갈 것이다. 주주자본주의 의제의 실현과 공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꼭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벌들을 을러메어 정부의 주도로 중소기업으로 부를 재분배하는 방법은 또 어떠한가? 우리나라에서는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 꼭 ‘독일’ 을 언급한다. 그러나 정작 독일 중소기업의 수출참여도가 10%에 이르는 반면, 한국 중소기업의 수출참여도는 독일의 1/4 수준인 2.6%에 머무르며, 국내 중소기업의 96.1%가 해외진출 계획이 없다는 사실은 항상 제외된다. (2017.2.27 산업통상자원부) 결국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 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도는 중소기업의 대다수가 내수시장인 대기업에 매달려 있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재벌개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악의 제국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가 매년 중소 협력업체에게 강요한다고 전해지는 CR(Cost Reduction)을 중지하고 협력업체와 상생을 추구하면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독일처럼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를 잡아야 하는데 닭을 잡는 칼을 쓰는 격이다. 중소기업 육성과 재벌개혁은 관련성도 없거니와, 관련이 없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는 의제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문제를 바라보아야만 해결할 수 있다. 현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생각하는 방향이 아직까지 틀리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제정책에서의 실패를 면하기 위해서는 정책수석과 공정위, 기재부와 경제수석의 합이 잘 맞아야 하는 점도 있다는 것에서 불안한 점이 있는 것이다.

미국이 지난 금융위기 기간 동안 ‘GATFA’ 를 통해 IT 르네상스를 경험한 것처럼 보이지만, 왜 8년 간의 르네상스 이후 미국민들은 트럼프를 선택하였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통신사들은 담합이익을 챙기고 있는가?

통신비 인하 대책이 발표되며 또다시 통신시장이 이슈다. 한국 통신시장은 과점시장이 맞지만, 망투자 부담을 생각하면 ‘자연과점’이라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담합은?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훑어보니 마케팅비가 높은 반면 영업이익률은 높다고 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점을 담합의 부재증거로 꼽는 것 같다. 또다른 증거로 상호접속료interconnection charge 고시제가 있다.

상호접속료란 서로 다른 통신사 간 착신 서비스를 구매하는 비용이다. 예를 들어 KT 이용자가 SKT 이용자에게 전화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KT 이용자 → KT 네트워크 → SKT 네트워크 → SKT 이용자.

의 흐름이 발생한다. 여기서 두 번째 화살표의 망접근비용이 접속료다. 첫 번째, 세 번째 화살표는 물론 소매가격.

산업조직론 연구자들은 상호접속료를 통신시장에서 가장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담합 & 후발주자 배제 수단(collusion & market foreclosure device)으로 지목한다. 왜일까?

우선 상대방이 내 망에 접근하는 비용을 높이면 1) 착신 수익이 증가하고 2) 경쟁사업자 비용이 높아진다. 이 때 상호접속료라는 비용을 근거로 소매가격을 산정한다면, 높은 접속료를 ‘핑계 삼아’ 소매가격을 높게 유지하며 경쟁을 회피할 수 있다.

요금제 설정방식이나 통신사 규모, 상호 통화량 격차 등에 따라 이론적 분석 결과가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상호접속료를 기업 간 완전 자유 협상에 맡기면, 담합까지 가지 않더라도 1) 상호접속료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고 2) 높은 상호접속료는 소매요금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상호접속료는 통신시장 경쟁정책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의 통신사 상호접속료는 정부가 고시한다. 게다가 작년까지 후발주자(LGT) 보호를 위해 통신사 간 비대칭 접속료 정책을 유지했다. 이는 노벨상 수상자 장 티롤을 위시한 산업조직 이론가들의 경쟁정책 연구성과를 철저히 따르는 것이다. 더하여 요금인가제도 운영되고 있다. 요금인가제와 상호접속료 고시제가 동시에 작동하는 시장에서 담합이나 진입저지 등 반경쟁적 행태가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국 통신시장의 최대 문제점은 사실상 모든 소비자가 단말기-요금제를 동시에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는 적어도 경쟁에 관한 문제는 없다고 본다. 국가 규모 상 MVNO 외에 여기서 더 나아질 방법도 거의 없을 테다. 외국 통신사 진출 허용으로 경쟁을 촉진한다? 경쟁은 충분하다. 그리고 망 투자가 통신산업의 기본이라는 것을 간과한 주장이다.


다음의 선구적 연구를 참조하라.

Laffont, Rey,& Tirole (1998). Network competition: I & II. RAND Journal of Economics.
___ (1997). Competition between telecommunications operators, European Economic Review.
___ (1998). Creating competition through interconnection: Theory and practice, Journal of Regulatory Economics.
Armstrong (1998). Network interconnection in telecommunications. The Economic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