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만,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2015.

김경만,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2015. 서평은 아니고 메모.

김경만,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2015.

존잘러가 쓴 한국 사회과학계 현실 비판서이자 본인 학술이력 자기민속지. 민속지를 가장한 자기 PR로 읽을 수도 있다. 저자의 의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학문적 진로를 희망하는 학부생을 위한 안내서로도 훌륭하다. 김종영 교수의 <지배받는 지배자>와 함께 읽으면 그 책이 제시한 “Academia Immunda(학문은 더럽다)”는 명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 책 모두 부르디외 이론을 원용한다는 점에서 이들도 “지배받는 지배자”이며 “글로벌 지식장 상징폭력”의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전반부에서 한국 사회과학계(저자가 속한 사회학)를 가차없이 비판하고 후반부에서 본인이 학계 내 상징자본을 획득한 과정을 상술한다. 먼저 김경동, 조한혜정, 강정인, 한완상 등 국내 유명 학자들을 시쳇말로 극딜한다. “서구에 종속되지 않은 한국적 사회과학”, “우리 땅에서 적실성 있는 학문”이라는 무의미한 기치에 매몰되었다고 지적한다. 소위 적실성을 따지기 전에 글로벌 학문 장에 맞는 수준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적실성 구호 자체가 허황되었으며, 이들의 학술적 기여와 교육 모두 엉망이라고 융단폭격을 가한다. 학자들이 “일반인을 위한 OO학” 류 대중서적, 강연 등에 골몰하는 행태도 비판한다.

후반부에서는 본인이 박사과정 시절부터 현재까지 겪은 학계 이야기를 부르디외의 장 이론을 축으로 서술한다. 저자는 학계 컨텍스트를 예로 들어 장 이론의 주요 개념을 설명한다. 학생이 지식 장의 규칙을 체득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아비투스), 학술활동이 유의미하며 일생을 걸 만한 일이라는 공모(일루지오), 축적된 학술활동 성과(상징자본), 상징자본을 가진 선행연구자의 저작을 읽어야 한다는 암묵적 “강요”(상징폭력) 무엇을 읽을지, 무엇이 가치있는 탐구 대상인지 설정하는 권한을 둔 경쟁(상징투쟁). 그리고, 한국 학계에는 상징자본이 될 만한 독창적 이론/이론가가 없으므로 서구 학자들이 행사하는 상징권력에 의해 상징폭력을 겪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뒤에는 논문을 완성하고 투고하는 과정, 학계 내 역학 관계 등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다른 교수에게 논문 논평을 요청했다가 대판 싸운 일화가 아주 흥미롭다. 학자들도 사람이라는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모든 것은 상징투쟁이며, 저자는 그가 상징투쟁을 통해 획득한 상징자본을 전시하며 독자에게 상징폭력을 행사한다. 전반부에 한국 사회과학계를 비판한 것도 상징폭력의 일환이다. (굳이 이런 식으로 쓰는 까닭은 저자 본인이 책에서 이렇게 언급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뛰어난 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 납득할 만한 내용이었는데, 솔직히 “대가”들의 자필 편지를 일일이 사진찍어 실은 걸 보면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어쨌든 국내 석사과정 정도 거치면 이런 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저자처럼 개념화하지는 못하겠지만. 학계에 대한 환상을 가진 학부생이 읽으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나로서는 유학을 앞두고 읽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상징자본은커녕 박사학위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 전에 내게 pacific-wide한 어장관리를 하고 있는 학교들이 과연 최종 어드미션을 줄까. 이러다 보면 저자가 쓰듯 “우리가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한국의 현실은 해외유학의 역사가 반세기를 넘겼지만 아직도 숱한 학생이 박사학위를 받으려 미국과 유럽의 명문대학으로 떠난다는 사실이다. 왜일까?”라는 질문을 부질없이 다시 던져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답은 잘 알고 있다.

덧. 저자는 경제학과 출신이다. 학부생 때 교재며 이론이 모두 영미의 것이었기 때문에 경제학을 때려치우고 사회학을 택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학자와의 서신에서 이렇게 쓴다. “비록 경제학은 과학장의 요건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부르디외가 이상적으로 상정한 자연과학 모형에 가장 가깝지만, 경험적 타당성에서 평가할 때 완벽한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들부들…ㅋㅋㅋㅋㅋ (경제학이 경성과학hard science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고민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RCT 하는 사람들은 – 가령 Duflo – 그렇게들 말하던데, 나는 아직 유보적이다.)

한국의 R&D 생산성이 낮은 이유 (강왕구)

페이스북 원문 링크


우리 연구개발(R&D)은 생산성이 낮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말 그럴까? 내 생각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다. 우리 R&D는 혁신적인 성과를 내는데 실패하고 있다. 이유는 뭘까?

우리 연구개발이 혁신적인 결과를 내는데 실패한 이유는 혁신적인 연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뭔 개풀 뜯어 먹는 이야기냐고? 우리 R&D 주제들을 보면,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결과가 나온 주제들의 재탕들이 대부분이다. 처음부터 혁신적인 주제에 도전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 혁신적인 결과가 나오겠는가? 처음부터 등산의 목표를 에베레스트산으로 하지 않고, 백두산이나 한라산으로 잡고는, 세계적인 등산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연구자들은 왜 혁신적인 주제들에 도전하지 않는가? 천성이 게을러서? 노오오력을 안하는 헬조선 인민들의 특성때문에? 난 기본적으로 노오오력 드립치는 인간들은 다 싹 모아서 국외추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대륙이라도 발견되면, 노오오력 드립치는 인간들을 보내, 자기들끼리의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주고 싶다. 그러면 거기서도 서로서로 노오오력 드립치고 있을 듯 하기는 하다만.

우리가 혁신적인 주제에 도전하지 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거나, 생각보다 복잡하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우리 연구개발에 대한 평가가 보상보다는, 체벌 위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혹독한 체벌 위주로. 우리 연구개발에서 가장 확실하게 보장되고 지켜지는 원칙이 하나 있다. 그건 다음과 같다.

“당신이 국가연구개발에 실패하면 당신은 x된다는 것이다.” x되는 정도는 다르지만, 이건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연구팀원, 그리고 당신에게 펀딩한 전담기관과 담당부처 공무원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건 연구개발 규모가 크건 작던 상관이 없다.

연구개발은 (1) 연구개발 주제를 선정하고(기획단계), (2) 연구를 수행할 주체를 선정하고(선정평가), (3) 연구를 수행해서 결과를 산출하고, (4) 이를 평가하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이제부터 우리가 왜 혁신적인 연구에 실패하는 지 단계별로 살펴보자. 먼저 (1)의 단계에서 혁신적인 주제가 선정되지 않는다. 왜나고? 이 단계에서 주도를 하는 주체는, 정부부처 공무원과 전담기관 담당자, 그리고 기획위원으로 추천된 전문가들이다. 요즘은 전담기관에 기간제로 고용된 PD, MD, 단장들이 포함된다. 이 단계에서 기획자들은 결코 혁신적인 주제를 발굴하지 못한다. 혁신적인 연구개발 주제는, 실패확률이 80%이상이 되는 주제를 의미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실패하면 x되는 환경에서 혁신적인 주제를 발굴하는 건, 기획자집단이 그 많큼의 확률로 x될 수 밖에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 단계에서 연구개발 주제는 외부의 비전문가들이 보기에는 혁신적이고, 내부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별로 실패가능성이 없는 주제들만이 선정된다. 우리가 혁신적인 결과를 내 올수 없는 첫번째 이유이다.

(2)의 단계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반복된다. 하나의 연구개발 주제에 대하여 대략 3~4팀이 도전한다. 이중에서 비록 혁신적인 주제가 아니지만, 그래도 혁신적인 방법으로 도전하는 팀이 있다. 당신이 선정평가를 하는 주체라고 생각해 보자. 결코 이 팀을 뽑지 않는다. 왜나고?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혁신성은 태생적으로 그만큼의 높은 실패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니 혁신적인 연구개발 방법을 제안하는 팀은, 그만큼의 실패가능성이 높은 팀이다. 이런 팀 뽑았을 경우에는 당신도 실패에 대해 연대책임을 져야 될 가능성이 크다. 당신같으면 이런 팀을 뽑겠나?

자 이제 (3)의 단계를 살펴보자. 당신이 연구개발 책임자다. 당신은 원래부터 혁신적인 사람이라서, (1)과 (2)의 과정에서 비록 덜 혁신적인 주제와, 당신이 제출한 아주 안전한 방법의 계획서를 무시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지금까지는 훼이크다 이 xx들아. 이제부터는 내 꼴리는대로 연구개발 함 해볼거다.”라고 할 수 있을까? 전혀 불가능하다. 우리 연구개발을 감독하는 전담기관들(연구재단, KEIT, 등등)은 그렇게 핫바지들이 아니다. 연구계획서에 포함되지 않은 장비는 절대 사면안되고, 새로운 세부연구주제도 결코 시작해서는 안된다. 심지어는 계획서에 없는 해외출장 같은건 절대 가면 안된다. 원래 연구개발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뭔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불확실한 현상이 관측되거나, 새로운 이론을 가지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보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 연구개발(R&D)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모든 연구개발은 연구개발계획서에 명확하게 정의된 것만 해야 한다. 불확실한 것에 도전하기 위하여 아주 확실한 방법만을 사용해야 한다. 왜? 연구개발이 실패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연구팀만 지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담기관은 관리감독 책임을 진다. 이때 감사관은 연구방법등에 대해서는 1도 모르기때문에, 구매내역, 출장내역 등만 줄기차게 뒤진다. 뭐 그래도 해외출장건은 좀 심하다. 연구를 진행하다보면, 해외와 다양한 방법으로 교류가 필요해진다. 근데 어떻게 처음에 계획한 해외출장만을 인정해 주는지는 참 어이가 없다.

이제 어찌어찌 (4)의 최종평가 단계에 왔다고 보자. 당신이 평가받는 항목은 어이없게도 연구결과가 아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면, 연구결과는 세계 최초나 2~3번째 연구성과로 포장되어 있다. 평가는 결과에 집중되지 않는다. 평가는 당신이 사용한 연구비에 집중된다. 연구결과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연구수행 과정에 대한 감사다. 혁신성은 꿈도 꾸지 말라. 혁신적인 것을 추구하다가는 결과도 엉망이고, 그 과정에서 이러저런 꼬투리만 쌓인다. 그리고 한번 찍히면 다시는 국가연구개발 과제와는 바이바이다.

사실, 이런 감사와 체벌위주의 시스템은 연구개발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국가원리쯤 된다. 공무원이나, 전담기관의 담당자나,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연구원이나 모두 관심사는 체벌을 받지 않는 것에 있다. 왜나고? 그 체벌의 강도가 너무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엄한 부모밑에서 훈육되는 아이들과 같다. 먹는것, 입는것, 사귀는 친구, 컴퓨터게임, 읽는 책들에 대해서 일일이 감시하고 잔소리하고, 때로는 귓방망이도 올려붙이는 아주 엄격한 부모다. 이런데 자라서 피카소가 되라고? 택도 없는 이야기다.

최소주의-반지성주의 혼종

나는 미니멀리즘(또는 최소주의)과 반지성주의를 제 편한 대로 뒤섞는 부류를 매우 싫어한다. 이런 부류가 입에 달고 사는 대사가 있으니 “말이 너무 어렵다.”

저 태도의 정체는 “나는 좀 비뚜로 본다”는 자의식과잉이다. 저런 부류는 타인에게 입증/설득의무를 부과하지만, 이해할 의사가 별로 없다. 실상 설득이 아니라 자의식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볼썽사나운 것도 드물다. 모르면 모른다, 공부할 생각이 없으면 없다고 말해야 한다.

저런 태도는 알을 깨고 나오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다. 생각이란 걸 하고 있다는 착각이야 개인의 자유다. 영원히 알 속에 갇혀 있겠다는 자유도 자유니까. 뭐, 그 안에서 관점놀음으로 세상을 다 이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래된 생각이다. 확실히 대선공약 갑론을박의 계절이 왔는지 저런 글이 타임라인에 몇 올라와서 써 보았다. 한 줄만 보태자면, 경험상 교회가 저런 태도가 싹트는 토양 중 가장 비옥한 축에 속한다. 대단히 유감이다.

3월 둘째 주 NBER (2017-03-06)

총 13편. 한 편 빼고 전부 흥미로웠다. 석사과정 학생일 때 이렇게 읽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ㅠㅠ


– 어떻게 “틀린 게 맞게 되는”가? 마술적 전쟁기술과 잘못된 믿음의 지속성 (Why Being Wrong can be Right: Magical Warfare Technologies and the Persistence of False Beliefs)
= 과학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믿음이 어째서 소멸하지 않는지를 이론적으로 밝힌 논문. 이런 믿음은 1) 관찰하기 어려운 제약이 있어 반박하기 어렵고 2)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내부경쟁을 촉진할 때 유지된다.

어떤 고대 부족 전사들이 샤먼의 축복을 받으면 칼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고 믿는다고 하자. 단, 남의 것을 훔치거나, 여성과 잠자리를 갖거나, 사과를 먹으면 안 된다. 이 경우 전사가 죽더라도 샤먼의 축복이 무효인지 축복이 유효했으나 어젯밤 실수로 음식에 든 사과를 먹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절도나 성관계가 금지당하므로 무력집단이 평판과 기강을 잃는 최대 요인 중 두 개가 원천차단된다. 이러면 전사집단의 행태가 사회적 최적에 가까워지고, 유지될 조건을 만족한다. 대충 이런 얘기. 논문은 아프리카 사례를 가져왔는데 꽤 재미있다. 예시가 논문의 절반이고 엄청 흥미롭다.

그냥 학부 게임이론만 알면 이해할 수 있다. 다 해서 13페이지니 그냥 심심풀이로 읽어 볼 수 있을 정도. 처음 읽었을 때는 뭐 이런 게 NBER까지 가나 싶었는데 생각할수록 뻗어나갈 여지가 많은 것 같다.

– 도구변수와 인과메커니즘: 무역이 노동자들과 유권자들에게 미치는 영향 Instrumental Variables and Causal Mechanisms: Unpacking The Effect of Trade on Workers and Voters
= 계량방법론을 확장해서(식별문제 해결) 최근의 “포퓰리즘 반동(populist backlash)”과 국제무역의 관계를 세 단계로 나누어 분석한다. 아주 시사적인 페이퍼. 가설은 쉽다. 어떤 국가가 저임금 제조업 국가들과의 무역에 “노출”됨 – 노동시장에 영향 – 투표행태에 영향.

여기서는 먼저 무역 “노출”이 투표행태에 미치는 영향의 인과관계를 확립한다. 그리고 무역에 따른 노동시장 교란의 인과관계를 정립한다. 마지막으로 이 두 효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도출한다.

독일 데이터를 이용해 실증분석한 결과, 수입경쟁은 극우정당 지지율을 상승시켰다. 이 상승분을 (무역의) “직접효과” 와 노동시장을 거친 “간접효과(mediated effect)”로 분해한 결과, 간접효과가 더 컸다. 직접효과는 비교적 작았고 방향이 달랐다. 즉, 간접효과를 상쇄했다는 것.

저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차단할 수 있다면 무역이 오히려 정치적으로 “중재적인(moderating)”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시사점을 내놓는다. (미국의 분석결과와는 조금 다르다고 한다.)

– 경제발전과 윤리적으로 민감한 행위 규제의 관계 Economic Development and the Regulation of Morally Contentious Activities
= 저자들은 윤리적으로 첨예한 이슈인 낙태와 성매매, 대리모와 경제발전의 관계를 실증분석하고 간단한 해석 틀을 제공한다. 해당 이슈에 “관대한” 입법이 이루어지려면 관대한 유권자들이 늘어나야 한다.

유권자 수 변화는 크게 1) “관대한” 입법의 경제효과 2) 경제발전이 사람들의 “도덕적 분노”에 미치는 효과 3) 경제발전에 따른 사람들의 가치평가 기준 변화라는 3개 요인에 영향받는다. 요인분해한 항등식을 40년짜리 국가별 데이터로 실증분석한 논문.

결과 자체는 “경제발전도 중요하지만 비경제적 요인이 이만큼이나 중요했다”라서 뻔하다면 뻔한 논문. 최근 실증연구자들이 비경제적 요인으로 계속 눈을 돌리는 것 같다. 종속변수건 독립변수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 보편 프리스쿨 교육은 성공적인가? 프로그램 접근성과 프리스쿨의 효과 (Does Universal Preschool Hit the Target? Program Access and Preschool Impacts)
= 프리스쿨은 불평등으로 직결되는 성취도 격차를 줄일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다양한 프리스쿨 프로그램이 사회적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미친 영향을 비교분석한 연구는 없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선택적 프로그램보다 주 재정지원 보편 프리스쿨 프로그램이 더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이건 제목을 번역할 재간이 없었다. 한국어가 “보편 vs. 선택”인데 비해 영어는 “universal vs. targeted”라서 가능한 제목. 보편적 프로그램이 선택적 프로그램보다 정책효과를 “적중” 시켰다는 본인 주장을 깔끔하게 요약했다. 키야..

– 학교 점심식사 품질과 학업성취도의 관계 (School Lunch Quality and Academic Performance)
= 급식충 헌정 페이퍼(…) 학교 식단의 영향은 오래된 주제다. 식단은 학생들의 육체적 건강(비만)과 정신적 건강(충분한 영양공급과 인지발달의 상관관계) 둘 모두와 연관되어 있다.

캘리포니아 데이터로 분석한 결과 1) 건강한 식단이 비만율을 낮춘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2) 건강한 식단을 공급할수록 시험 점수가 향상되었다. 식단 칼로리 총량보다 식단 영양구성 품질의 영향이었다. 이제 캘리포니아 학생들은 학교 탓을 할 수 있게 됐다. “내가 하버드에 못 간 건 고딩 때 학교 식단이 bullxxxx였기 때문이야.”

– 국가 모델 차이가 지역 내 집합행동과 경제발전에 미치는 영향: 베트남 역사의 사례 The Historical State, Local Collective Action, and Economic Development in Vietnam
= 오래 전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을 지배했던 국가가 각각 중앙집권/지방분권적이었다는 점을 이용한 연구. 국가가 역사적으로 사라지더라도 그 유산은 남아 영향을 미치는가? 즉, 과거의 정치체제 차이는 오늘날의 생활수준과 경제발전 정도에 영향을 주는가? 이 질문을 자연실험/회귀단절법으로 실증분석한 논문.

국경지역에 위치한 탓에 중간에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지배권이 넘어간 지역을 그렇지 않은 지역과 비교했다. 중앙집권형 국가(북베트남)가 멸망하더라도 국가 강제력이 사회적 규범의 형태로 남아 해당 지역의 경제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짓는다. 역사적 데이터 많이 썼다는데, 글쎄… 솔직히 이런 페이퍼 처음 봤을 땐 fancy하다고 생각했지만 요샌 좀 회의적이다. 흠…

여담으로, 본문에서 제임스 스콧의 <농민의 도덕경제 (The Moral Economy of the Peasant)>가 인용되었다. 내가 경제학 논문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이 책 인용 처음 봤다. 어쨌든 정치학 쪽에 더 가까운 페이퍼인 건가 싶다.

=== 이외 논문.

– 최초의 공공보건 캠페인은 성공적이었는가? 결핵운동의 사망률효과 (Was The First Public Health Campaign Successful? The Tuberculosis Movement and Its Effect on Mortality)

– 이스라엘 이민사와 세계화의 교훈 Israel’s Immigration Story: Globalization Lessons
– 브렉시트가 해외투자와 생산에 미친 영향 (The Impact of Brexit on Foreign Investment and Production)

– 충동적 소비와 재무적 웰빙: 술 마시기 쉬워지면 어떻게 될까? Impulsive Consumption and Financial Wellbeing: Evidence from an Increase in the Availability of Alcohol
– 대공황기의 재무마찰과 고용 Financial Frictions and Employment during the Great Depression

– 큰 은행이 고평가되는가? Are Larger Banks Valued More Highly?
– FX 시장의 계량경제학: CLS 은행결제 자료에서 나온 새로운 발견 (FX Market Metrics: New Findings Based on CLS Bank Settlement Data)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 (오욱환)

교육학자의 글이지만 학문 일반에 적용될 수 있는 듯하다. 두고두고 읽을 글이다.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

오욱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인생은 너무나 많은 우연들이 필연적인 조건으로 작용함으로써 다양해집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전공분야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길로 접어든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을 겁니다. 전공이 같았던 동년배 학우들이 각기 다른 진로를 선택함으로써 흩어진 경험도 했을 겁니다. 같은 전공으로 함께 대학원에 진학했는데도 전공 내 하위영역에 따라, 그리고 지도교수의 성향과 영향력에 따라 상당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겁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저는 한국교육학회나 분과학회에 정회원으로 또는 준회원으로 가입한 젊은 학자들에게 학자로서의 삶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합니다. 이 조언은 철칙도 아니고 금언도 아닙니다. 학자로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노하우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읽기를 바랍니다. 이 조언은 제가 젊었을 때 듣고 싶었던 것들입니다. 젊은 교육학도였을 때, 저는 이러한 유형의 안내를 받지 못했습니다. 직업에 따라 상당히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기 때문에, 저는 직업을 생업(生業)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학문은 권력이나 재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학자로서의 성공은 학문적 업적으로만 판가름됩니다. 자신의 직업을 중시한다면, 그 직업을 소득원으로써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치로 받아들여야 맞습니다. 아래에 나열된 조언들은 제가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조언들은 제 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일자리는 있다”고 확신하십시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구직난을 호소하지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구인난으로 애를 태웁니다. 신임교수채용에 응모한 학자들은 채용과정의 까다로움과 편견을 비판합니다만, 공채심사위원들은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합니다. 공정한 선발 과정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기원하면서 요구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는 데에 더 힘쓰십시오.
  • 학문에 몰입하는 학자들을 가까이 하십시오. 젊은 학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모형이 되어줄 스승, 선배, 동료, 후배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에는 따라해 보는 방법이 효율적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스타일을 갖추면 됩니다. 학문에의 오리엔테이션을 누구로부터 받느냐에 따라 학자의 유형이 상당히 좌우됩니다.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반드시 학문에 혼신을 다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존경할 수 없는 학자들을 직면했을 경우에는, 부정적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다시 말해서, 그 사람들과 다르기 위해 노력하면 정도(正道)로 갈 수 있습니다.
  • 시·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위대한 학자보다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은, 그렇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모형으로 삼으십시오. 의식을 해야만 인식되는 사람은 일상적인 모형이 될 수 없습니다. 수시로 접하고 피할 수 없는 주변의 학자들 가운데에서 모형을 찾아야 합니다. 그 모형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에는, 여러분이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그 때, 눈을 들어 조금 더 멀리 있는 모형 학자들을 찾으십시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분이 훌륭한 학자에 가까워집니다.
  • 아직 학문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가능한 조속히 결정해야 합니다.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곧바로 이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학문은 적당히 해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택하지 않은 일에 매진할 리 없고, 매진하지 않는 일이 성공할 리 없습니다. 학계에서의 업적은 창조의 결과입니다. 적당히 공부하는 것은 게으름을 연습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게으른 학자는 학문적으로 성공할 수 없으며, 학계는 지적 업적을 촉구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도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읽고 쓰는 일보다 더 오래 할 수 있고 더 즐거운 일을 가진 사람은 학문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읽었는데도 이해되지 않아서 속이 상하고 글쓰기로 피를 말리는 사태는 학자들에게 예사로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읽고 씁니다. 이 일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일은 어렵고 힘들수록 더 가치 있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읽고 쓰는 일을 피하려고 하면서도 그 일에 다가간다면, 학자로서 적합합니다.
  • 학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부족하다면, 대인관계를 줄여야 합니다. 학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학문에 투입하는 시간은 다른 업무에 할당하는 시간과 영합(zero sum)관계에 있습니다. 학문을 위한 시간을 늘리려면 반드시 다른 일들을 줄여야 합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대인관계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부가 보험설계사의 전화번호부처럼 다양하고 많은 인명들로 채워져 있다면, 학문하는 시간을 늘릴 수 없습니다. 물론 대인관계도 사회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학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학문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불행해집니다.
  • 학문 외적 업무에 동원될 때에는 맡겨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에 헌신하지는 마십시오. 젊은 학자들은 어디에서 근무하든 여러 가지 업무―흔히 잡무로 불리는 일―에 동원됩니다. 선택할 수 있을 때에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는 선택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마련입니다. 그 일을 부탁한 사람들은 젊은 학자들보다 직위가 높고 영향력이 더 큽니다. 그리고 그들은 젊은 학자들이 일하는 자세를 눈여겨봅니다. 잡무를 부탁하는 사람들은 젊은 학자들에게 평생 직업을 제공하거나 추천하거나 소개하는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기 싫지만 피할 수 없을 때에는 성실해야 합니다.
  • 시작하는 절차를 생략하십시오. 논문을 쓸 때 가장 힘든 시기는 시작할 때입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결과가 나올 리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하면 될 일을 시작하는 절차에 구태여 의미를 부여하고 길일(吉日)이나 적일(的日)을 찾다가 실기(失機)합니다. 신학기에, 방학과 함께, 이 과제가 끝나면 시작하려니까 당연히 신학기까지, 방학할 때까지, 과제가 끝날 때까지 미루게 되고 정작 그 때가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새로운 변명꺼리를 만들어 미루게 됩니다. “게으른 사람은 재치 있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답니다(성경 잠언 26:16). 논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즉시 그리고 거침없이 많이 기록해두어야 합니다. 적기를 기다리다가는 아이디어를 놓칩니다. 사라진 아이디어는 천금을 주어도 되찾을 수 없습니다.
  • 표절은 학자에게 치명적인 오명이 됩니다. 표절은 의식적으로도 그리고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납니다. 표절에의 유혹은 게으름과 안일함에서 시작됩니다. 표절을 알고 할 때에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유리한 변명이 충분히 만들어집니다. 표절하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모르고 표절할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발표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글쓰기에 엄격한 사람들을 가까이 해야 하고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발표된 후에 표절로 밝혀지면, 감당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 시간과 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도서구입에 인색하고 음주나 명품구매에 거침없다면 학자로서 문제가 있습니다. 읽을 책이 없으면 읽어야 할 이유까지도 사라집니다. 책을 구입하고 자료를 복사하는 데 주저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면 구입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지를 따지는 것은 책을 사지 않으려는 이유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 문헌들을 읽거나 가까이 두고 보아야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됩니다.
  • 새 책을 구입했을 때나 새 논문을 복사했을 때에는 즉시 첫 장을 읽어두십시오. 그러면 책과 논문이 생경스럽지 않게 됩니다. 다음에 읽을 때에는, 시작하는 기분이 적게 들어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구입한 책과 복사한 논문을 도서관 자료처럼 대하지 마십시오. 읽은 부분에 흔적을 많이 남겨두십시오.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반론이 생각나면, 그 쪽의 여백에 적어두십시오. 그것이 저자와의 토론입니다. 그 토론은 자신이 쓸 글의 쏘시개가 됩니다.
  • 학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학회의 주체로서 활동하고 손님처럼 처신하지 마십시오. 학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긍정적 모형들과 부정적 모형들을 많이 접해보십시오. 좋은 발표들로 모범 사례들을 만들어가고 실망스러운 발표들을 들을 때에는 그 이유들을 분석해보십시오. 학회에 가면 학문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학회에 가면 필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성적 자극도 받을 수 있습니다.
  • 지도교수나 선배가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해주지 않음을 명심하십시오. 학위논문을 작성할 때 지도교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배의 조언은 학위논문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도와 도움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그들에게 종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홀로서기가 시련이듯이, 학자로서의 독립도 어렵습니다. 은사나 선배에의 종속은 그들의 요구 때문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젊은 학자들이 스스로 안주하려는 자세 때문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 걸작(傑作)이나 대작(大作)보다 습작(習作)에 충실하십시오. 논문을 쓰지 못하는 학자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걸작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들은 다른 학자들의 논문들을 시시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찮게 평가한 논문들과 비슷한 수준의 논문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논문을 쓰는 데 엄청난 압박을 느낍니다. 걸작에 대한 소망은 학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걸작은 쉽게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걸작을 지향한 논문이라고 해서 걸작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논문을 쓸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그 논문들이 쌓여지면서 걸작과 대작이 가능해질 뿐입니다.
  • 학자의 길을 선택한 후에는 곧바로 연구업적에 대한 압박이 시작됩니다. 교수직을 구하려면 반드시 연구업적을 충분히 갖추어야 합니다. 많은 대학에서 연구보고서는 연구업적으로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저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번역서에 대한 평가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낮습니다. 번역보다 창작에 몰두하십시오. 번역은 손쉬워 보이지만 아주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색도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역했을 경우에는 지적 능력을 크게 의심받습니다.
  • 학자가 되고 난 후에는 저서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압박도 만만치 않습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러 책을 찾을 때 다른 학자들이 쓴 책들만 보이면 상당히 우울해집니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동료들이 교과서와 전공서를 출판할 때에는 뒤처지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학자들이 젊었을 때부터 교과서 집필을 서두릅니다. 교과서 집필은 생각과는 다르게 아주 어렵습니다. 교과서에 담길 내용은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쓸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논문과는 다르게, 교과서 집필은 다른 학자들도 알고 있는 내용들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이어서 표절의 가능성도 아주 높고, 오류가 있을 경우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학자로서 최소 10년은 지난 후에 교과서 집필을 고려하십시오.
  • 학회에 투고한 논문이 게재되지 않더라도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학회에서 발행되는 정기학술지에의 게재 가능성은 50퍼센트 수준입니다. 까다로운 학술지의 탈락률은 60퍼센트를 넘습니다. 그리고 학계의 초보인 여러분이 중견·원로 학자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할 리도 없지 않습니까? 아이디어를 짜내어 논문을 작성한 후 발송했더니 투고양식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맞거나,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게재불가 판정을 한 심사평을 받을 수도 있으며, 최신 문헌과 자료를 사용했는데 이에 대해 문외한인 심사자를 만나 거부될 수도 있습니다. 게재불가를 받은 자신의 논문보다 훨씬 못한 논문들이 게재되는 난감한 경우도 겪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투고해야 합니다. 학회에 투고하기 전에 학회 편집위원회보다 더 까다로운 사람들로부터 예비 심사를 받기를 권합니다.
  • 학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학문 활동을 쉽게 생각합니다. “앉아서 책만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은 소일거리처럼 책만 보는 일이 아닙니다. 논문작성은 피를 말리는 작업입니다. 이 일을 오랫동안 해 온 저도 논문을 작성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논문은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글이 아닙니다. 인문사회계에는 깜짝 놀랄 일이 많지 않습니다. 논문의 주제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 찾아야 합니다. 논문은 새로운 것을 밝히는 작업이라는 점에 집착함으로써 낯선 분야에서 주제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 논문을 쓰려면 책상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논문의 아이디어는 직감(hunch)에서 나올지 몰라도 논문 글쓰기는 분명히 인내를 요구하는 노역입니다. 책상에 붙어 있으려면 책상에 소일거리를 준비해 두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십시오. 컴퓨터는 최상의 제품을 구비하십시오. 프린터는 빨리 인쇄되는 제품을 구비하고 자주 인쇄하십시오. 퇴고는 반드시 모니터보다는 인쇄물로 하십시오. 퇴고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논문을 심사하듯 비판적으로 살펴보십시오. 논문의 초고를 작성했을 때쯤이면 내용을 거의 외우게 됩니다. 그래서 오류를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리 세심하게 작성하더라도 초고에는 오류가 아주 많습니다. 이 오류들을 잡아내려면 그 논문을 남의 논문처럼 따져가며 읽어야 합니다. 앞에서부터도 읽고, 뒤에서부터도 읽어야 하며, 중간부터도 읽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오래 묵혔다가 다시 읽어보기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방법은 모두 동원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학회에 투고했을 때 심사위원들이 남의 글을 비판하듯 읽기 때문입니다. 논문심사자들은 심사대상 논문에 대해 호의적이 아닙니다. 이들은 익명이기 때문에 객관적이며 탈락률을 높여달라는 요구를 받을 때에는 아주 냉정해집니다.
  • 학자의 길을 선택한 후에는 반드시 지적 업적을 갖추어야 합니다. 연구업적이 부족하면, 학계에서 설 땅이 별로 없습니다. 부족한 연구업적을 다른 것들로 보완하는 일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떳떳하지도 않습니다. 쫓기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우울해집니다. 자신의 전공영역에서 발간되는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들을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관심이 끌리는 논문들은 복사하여 가까운 데 두십시오. 그 논문들을 끈기 있게 파고들면, 여러분이 써야 할 글의 주제와 소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젊은 교육학자들이 학자로서의 일상을 즐거워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 가지 학술모임에서 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들의 즐거움과 행복으로 한국의 교육학이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한국교육학회 뉴스레터, 45(3), 5-9, 통권260호)

3월 첫째 주 NBER (2017-02-27)

총 20개. 흥미로운 페이퍼가 많다. 노동/교육경제학이 많고 금융/통화와 경제사 연구도 세 개나 있다.


– 컴퓨터보조학습에서 나타나는 동료효과: 무작위실험의 결과 (Peer Effects in Computer Assisted Learning: Evidence from a Randomized Experiment)
= 동료효과, 우리 식으로 말하면 맹모삼천지교는 교육경제학의 오래된 주제다. 존재하는가?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 저자들은 수학 컴퓨터보조학습(CAL)에서의 동료효과를 측정한다. 중국 시골 초등학교에서 무작위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1) CAL은 학생들의 수학 평균점수를 유의미하게 상승시킨다. 2) 혼자 하건 다른 학생과 짝지어 하건 효과는 유사하다. 3) 못하는 학생은 혼자 할 때보다 잘하는 학생과 짝이 될 때 점수를 더 많이 올린다. 4) 잘하는 학생은 혼자 할 때보다 못하는 학생과 짝이 될 때 점수를 더 많이 올린다. 4) 평균 수준 학생은 누구와 짝이 되어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5) CAL이 학생들 수준을 “수렴”시킨다는 증거가 없다.

우열반 나누는 것보다 섞는 게 낫다는 정책 시사점이 있나 싶었는데, 저자들이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짝짓는 방법을 바꿀 때도 이 결과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학생들이 주고받는 상호영향이 중요하다. 일대일 매칭이 아니라면 학생들은 보다 어울리고 싶은 사람을 찾아갈 수 있고, 그 때는 개선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공군사관학교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최적 동료집단”을 설계하여 동료효과를 측정하였으나 학생들이 “지정된” 동료들과 어울리기를 꺼려하고 동질집단을 형성(endogenous peer group formation)했다는 Carrell, Sacerdote, and West (Econometrica 2013)의 연구 결과를 remind.

 

– 온라인 중등후교육 수익률 연구 (The Returns to Online Postsecondary Education)
= 제목만 봐도 매우 핫한 주제를 건드리는 페이퍼. 퍼미션 문제로 NBER 웹사이트에서 잠시 내려졌다. SSRN에서 초록 볼 수 있었는데 없어졌다. 나도 내용을 보진 못했는데 아마 전형적인 교육수익률 추정 연구일 듯하다. 다른 요약문을 참고해 보니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 중등후교육 수익률이 매우 낮다. 3년 이상 등록한 학생을 기준으로, 완전온라인(exclusively online)은 연평균 853달러, 온라인-대면 병행(partly online and partly in person)은 연평균 1,670달러의 추가 수입을 얻었다. 더 짧은 기간 등록한 학생은 수입 상승률이 더 낮았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 효과성이 낮고, 심지어 교육수익률이 온라인 과정 등록금 대출도 못 갚을 정도라면 간단히 말해 낭비라는 결과. 논쟁을 일으킬 만한 연구다. 역시나 이쪽 업계 종사자들의 십자포화를 맞는 모양이다. 논문을 못 봐서 뭐라 평가는 못 하겠다.

 

– 산업화 초기의 기술-숙련 보완성 (Technology-Skill Complementarity in Early Phases of Industrialization)
= 기술-숙련 보완성이란 기술이 숙련노동을 수요하는 방향으로 진보한다는 것을 말한다. 원본은 Griliches(1969)의 자본-숙련 보완성 가설(Capital-Skill Complemtarity Hypothesis). 대단히 흥미로운 논문. 프랑스 자료를 이용해서 산업화 초기인 19세기에도 기술-숙련 보완성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기존에는 산업화 초기에는 기술-비숙련이 보완적이었고(Mokyr 1993), 차차 기술-숙련이 보완관계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Goldin and Katz QJE 1998). 초기에도 기술-숙련 보완성이 성립했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결국 교육의 산물에 불과했다는 연구 결과(Becker and Wößmann 2009) 와 함께 인적자본이론 1승 추가인가. “인적자본의 세기”를 넘어 “인적자본의 시대” 아닌가.

 

– 진보적 도시와 살기 좋은 도시 중 어디에서 지역 공공부문에 의한 지대추출이 더 큰가? (Is Local Public Sector Rent Extraction Higher in Progressive Cities or High Amenity Cities?)
= 정치인이 주어진 권한을 자신의 이익극대화에 활용하는 것을 지대추출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Public Finance를 잘 모른다) 다른 생활여건이 좋은 도시일수록 사람들이 떠나려 하지 않을 테니(=수요가 비탄력적) 정치인이 지대추출할 여지가 커진다.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납세자들로부터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수 있다는 얘기. Brueckner and Neumark (AEJ 2014) 연구가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내놓았다.
이 연구는 “그렇다면 생활환경이 좋은 도시에 사는 공공부문 종사자들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론한다(보상적 임금격차). 오히려 임금수준은 지역의 정치적 성향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연방 레벨 데이터로 비교하자 깡시골 앨러배마에 비해 캘리포니아 임금프리미엄이 그리 높지 앞다(=보상적 임금격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도시 레벨 데이터로 비교하자, 환경이 좋은 해안 도시들은 공공고용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임금을 많이 지급하진 않았다. 같은 카운티 내에 있더라도 진보적인 도시일수록 공공부문 임금이 높았다. BN2014를 성공적으로 반박하는 듯.

 


그 외 흥미로운 논문.
– 선거 캠페인에서의 페니매칭게임: 상원의원 선거 언론 보도 실증연구 (Matching Pennies on the Campaign Trail: An Empirical Study of Senate Elections and Media Coverage)
– 건강 인센티브의 구조: 현장실험 결과 (The Structure of Health Incentives: Evidence from a Field Experiment)
– 주 의료보험 의무가입과 노동시장 성과의 관계: 오래된 질문, 새로운 증거 (State Health Insurance Mandates and Labor Market Outcomes: New Evidence on Old Questions)

– 브레튼우즈체제의 성립과 종말: 1958-1971 (The Operation and Demise of the Bretton Woods System; 1958 to 1971)
– 1933년 런던 세계경제회의와 대공황의 끝: “체제변화” 분석 (The London Monetary and Economic Conference of 1933 and the End of The Great Depression: A “Change of Regime” Analysis)
– 통화단일화의 여진: 금융시장의 이력현상 (Aftershocks of Monetary Unification: Hysteresis with a Financial Twist)
= 아이켄그린 논문이다. 내가 거시알못이긴 한데, 통상 노동시장이 이력현상 channel이라고 들었다. 여기서는 금융시장도 channel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듯. 서론 결론하고 본론 반쯤 읽었는데 대충 맞는 것 같다.
– 파마를 위한 “버블” ( Bubbles for Fama)
= 제목만 봐도 감이 온다.

– “우리 가족끼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관찰한 혈연조직과 신뢰의 범위 (Keeping It in the Family: Lineage Organization and the Scope of Trust in Sub-Saharan Africa)
– 농업 다양성, 구조적 변화, 그리고 장기 발전: 미국의 증거 (Agricultural Diversity, Structural Change and Long-run Development: Evidence from the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