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회: 저들은 저들이 하는 말을 알지 못하나이다

사랑의교회 도로점유 건이 파국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오정현 “영적 배수진 쳤다. 도로 점용 포기 못 해” – 뉴스앤조이

“뭐 서울시가 뭐라 하든 누가 뭐라 하든 간에, 우리는 늘 얘기하듯이 세상 사회 법 위에 도덕법 있고 도덕법 위에 영적 제사법이 있다고.”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6월 16일, 사랑의교회갱신위원회(갱신위)가 운영하는 웹 사이트에 동영상 하나가 떴다. 영상은 오정현 목사가 자리에 앉아 사랑의교회 건축에 관해 얘기하는 내용이다. 이 영상은 2012년 8월 말 사랑의교회 안성 수양관에서 열린 교역자 수련회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뭐 서울시가 뭐라 하든 누가 뭐라 하든 간에, 우리는 늘 얘기하듯이 세상 사회 법 위에 도덕법 있고 도덕법 위에 영적 제사법이 있다고.”
“100~200명이 그렇게 난리를 치고 행정소송한다는 것이, 서초구에만 우리 등록 교인이 2만 수천 명인데. 영적 공공재라는 게 있어요.”
“그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잘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설계 변경과 건축 기간 연장 등 수백억의 돈이 더 들어가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황당함이 있기 때문에, 결국 그 말은 건축하지 말자는 말과 같다.”

오정현 목사는 영적 공공재라는 기막힌 표현을 떠올린 자신이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그 한 마디가 한국 기독교의 현주소를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공공재의 정의를 들어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도 그럴 만한 맥락에서나 유효하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자 강제력을 부여한 합의다. 이걸 모르는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소위 영적 제사법이 세속법에 우선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려 경제학 곧 “세속 철학”의 언어를 빌려온 모양새만으로 충분히 우습다.

사회법 < 도덕법(?) < 영적 제사법(??)이라는 도식이 맞다고 하자. 그런데 교계가 사회 평균보다 도덕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던가. 개별 목회자나 개별 교회, 개별 단체를 넘어 교계가 그랬던 일은 사실상 없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위대한 인물이라도 있었다. 이제 문익환 박형규 김수환은 떠났고 조용기 김홍도가 원로로 군림한다. 옥한흠이 떠난 자리를 오정현이 차지했고 가장 잘 알려진 기독교 기업은 이랜드다. 도덕법 위에 있다는 영적 제사법까지 갈 필요도 없다.

하지만 도덕적 우월성 상실은 문제의 원인보다는 결과다. 기독교는 도덕률을 신봉하지 않는다. 모든 그리스도교 윤리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명령에서 파생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따를 것인가? 오늘날 기독교는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있고, 윤리적 우월성의 기초가 될 고유성singularity을 찾지 못하고 있다. 종교규범이 타협불가능한 진리라고 믿는 기독교 우파, 성서가 쓰인 역사적 맥락context의 휘장 뒤로 돌아가 텍스트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현대적 맥락에 적용해야 한다고 믿는 기독교 좌파 모두 다르지 않다.

성서가 일점 일획도 틀리지 않다고 믿는 기독교 우파는 종교 규범을 사회 규범으로 격상시키려 한다. 술담배, 혼전순결, 동성애 문제를 두고 사회와 불화한다. 기독교 좌파는 윤리적 이슈에 관대하다. 이들에게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일 뿐 아니라 세상을 뒤집고[modern_footnote]복음주의 좌파 계열에서 자주 읽히는 도널드 크레이빌의 <예수가 바라본 하나님 나라> 첫 구절이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은 이미 뒤집어진 것이다.” 특별히 급진적인 텍스트에서 인용한 것이 아님을 밝힌다.[/modern_footnote] 소수자minority를 껴안은 인물이다. 하느님이 세상의 왕으로서 모든 영역에 관여한다고 선언하고, 그 연장선에서 세속 진보 담론의 “성서적 토대”를 찾아낸다. 악성부채탕감을 모토로 내세운 주빌리은행이 대표적 사례로, 구약성서 희년법이 이 운동의 사상적 배경이다. 또는 성서가 가진 차별적 요소를 찾아내 해명하거나 아예 전복적 해석을 내놓는다. 이런 접근은 전통적 접근과 달리 성소수자 문제에 개입할 여지를 만든다.

이 둘은 접근법이 다를 뿐 성서의 (무오성과) 권위를 복원한다는 목표를 공유한다. 그에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완전히 같다. 우파식 접근은 기독교를 사회로부터 유리시키며, 좌파식 접근은 기독교를 시민윤리 변동에 종속시킨다. 종교와 정치를 뒤섞어 고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신정법divine law과 현대 민주주의의 정치적 동력을 혼동시킨다는 점에서 좌파 쪽이 어쩌면 더 위험하다[modern_footnote]James Davidson Hunter (2010), 배덕만 역 (2014), <기독교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새물결플러스.[/modern_footnote]. 교계가 문화를 선도해야 한다는 케케묵은 주장을 꺼내 들 생각은 없다. 세상은 변한다. 그렇다면 변화의 물결이 거듭되어도 유효한 질문과 그 답을 찾아내어야 한다. “메마르고 야윈 기독교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것”[modern_footnote]Walter Wink (2003), 한성수 역 (2014), <참사람>, 한국기독교연구소, p. 508.[/modern_footnote] 은 무엇인가?

종교는 믿음을, 믿음은 도약을 요구한다. 믿어야 뛸 수 있고 뛰는 것이 믿음이다. 그러나 도약하려면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무엇을, 왜 믿으라는 말인가. 왜 반드시 기독교여야 하는가. 왜 굳이 초월성이란 요소를 도입해서 인생을 귀찮게 만들어야 하는가. 기독교 우파와 좌파의 접근은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 도덕적, 윤리적 우월성을 확보한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기독교 사상가들이 열심히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가?”, “그리스도의 유일성, 성경의 권위” 에 관해 설명하지만 그들의 말은 동어반복적이다. 복음주의 사상가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한때 복음주의는 학계에서 죽은 것으로 여겨졌다”는 말로 이들 주제를 다루는 대표 저서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을 시작한다. 그 말은 틀렸는데, 신학계를 제외한 학계에서 복음주의가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계열 유명 잡지 <크리스채니티 투데이>가 이 책을 1997년 도서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이 훌륭한 책은 너무나 널리 읽혀 영문판이 구글 스칼라 기준 110번 인용되었다. 늘상 “주류가 나를 무시한다”고 주장하는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2004) 영문판 피인용횟수가 3226회,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이 601회다.

흔히 경제성장이 종교를 위축시킨다고 여긴다. 아니다. 사회학과 경제학 연구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modern_footnote]놀랍게도 종교의 경제학economics of religion이란 분야가 있다. 20-30년 된 “젊은” 응용분과다 (주로 응용산업조직론의 형태. Hotelling, Salop의 공간경쟁모형spatial competition models이 종교시장 분석에 자주 활용된다). 사회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종교현상을 분석해 왔는데, 최근에는 종교사회학-경제사회학-종교의 경제학이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듯하다. 유명한 경제학자들도 관련 논문을 쓴다. 공공경제학 교과서로 잘 알려진 Gruber MIT 교수, 언제나 독창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Zingales 시카고 교수 등등. 이쪽 문헌 중 재미있는 논문으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따위 없다는 실증연구가 있다.
경제성장과 종교, 세속화, 다원주의에 관한 참고문헌. 모두 경제학과 사회학 분야 유명 학술지에 게재된 것들이다.
– Buser (2014), “The Effect of Income on Religiousness.”, American Economic Journal: Applied Economics.
– Hungerman (2013), “Substitution and Stigma: Evidence on Religious Markets from the Catholic Sex Abuse Scandal.”, American Economic Journal: Economic Policy.
– Hungerman (2005), “Are Church and State Substitutes? Evidence from the 1996 Welfare Reform.” Journal of Public Economics.
– McBride (2010), “Religious Market Competition in a Richer World.”, Economica.
– McBride (2008), “Religious Pluralism and Religious Participation: A Game Theoretic Analysis”,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 Montgomery (2003), “A Formalization and Test of the Religious Economies Model.” American Sociological Review.[/modern_footnote][modern_footnote]베버 프로테스탄티즘 윤리 테제를 정면 반박하는 연구는 이거다. 무려 경제학 탑저널 QJE에 실렸다. 제목부터 사회학자들과 한 판 붙어보겠다는 패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초록만 읽어도 재미있다. 1저자 이름이 Sascha다. 캬.. 사스가…
– Sascha O. Becker and Ludger Wößmann (2009), “Was Weber Wrong? A Human Capital Theory of Protestant Economic History.”,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modern_footnote]. 세속화secularization와 다원주의pluralism의 영향은 생각보다 복잡하며 종교가 반드시 쇠락하지는 않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세속화가 사람들을 탈종교화시키리라는 전망은 종교서비스시장에서 공급이 불변이고 (모임 출석 횟수, 출석 시 시간, 기부금 액수 등으로 측정한) 수요만 줄어든다는 말과 같다. 공급도 변한다면, 그러니까 개별 종교의 수요가 줄어들더라도 다양한 종교 내지 교파가 등장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실은 어땠는가? 데이터는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 주지 않는다. 유럽은 분명히 세속화되었다(수요 변화가 지배적). 미국에서는 다양한 교파가 출현하고 개별 종교 내지 종파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수요 공급 모두 변화). 한국 기독교는 종교시장이라는 난장에서 어디에 자리잡을 것인가. 적어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주어야 하고, 주는 방식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신학자가 아니며 저 주제는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다만, 종교시장의 공급자로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공급곡선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한국 교계는 쇠락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쌓아올린 사회적 부를 투자해 정신적 유산을 만들고, 무엇을 믿을지 묻고 답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예배와 모임에서 요구하는 시간을 줄여 기회비용을 낮추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히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는 대형교회, 대형 단체들이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물론 시장지배적 지위를 누리던 자들이 접근성을 높일, 공급곡선을 옮길 리가 없다. 모든 것은 수요 측의 문제니, “불신자들”을 보고 “주님을 모르는 세대”가 오고 있다고 개탄하고, 뜨뜻미지근해 보이는 신자들에게는 “네 돈과 시간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훈계하면 되니까. 믿음대로 될 테니까.

예수는 믿음이 부족했다. 돌을 떡으로 바꾸지도, 성전에서 뛰어내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예수는 모른다 할 것이다. 돌을 떡으로 바꾼 자들, 성전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자랑한 자들, 주님의 이름을 힘입어 불가능하다던 도로 점용허가를 따낸 자들, “그들이 나를 알지 못하듯 나도 그들을 알지 못한다.”

아무런 기대가 없다. 실망도 하지 않는다. 축적된 종교자본이 사라지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어차피 그들에겐 “종교적” 힘이 없다. 길 찾을 능력과 의지가 없으니 긍정적 영향력이 나올 수 없으며, 더 악화시킬 위상이 없으니 부정적 영향력도 나올 수 없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지더라도 놀랍지 않다. 오래 전 길 잃은 무리에게 예정된 파산일 뿐이다.

나는 예수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제도종교와 멀어져 신앙의 변방에서 헤매는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교계가 내 길을 찾아 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헤맬 필요는 없다. 여전히 세상에 예수가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첨탑 세워 십자가 매다는 건 그만두고 사람의 아들을 보는 법을 고민하고 나누어야 한다. 오정현 목사가 공공재 타령을 했으니 그대로 돌려주자면, 교계에서 무엇이, 왜 과소공급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경제학과 수학의 관계 (김두얼)

김두얼 교수님 페이스북에서 옮겨 왔다.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학 연구자의 덕목과 연관해서 생각해 볼 부분도 있다.


1편. (원본 링크)

(거시)경제학과 수학에 대한 제 생각에 대해 #홍성욱 선생님께서 질문을 주셨는데, 그와 관련해서 한 번에 답을 드리기는 어렵고 두 세 차례에 걸쳐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많은 분들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학을 보고 경제학자들이 연구를 하거나 정책을 개발하는데 수학을 많이 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맞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비유를 들어 말씀드린다면, 경제학 교과서는 연습을 하기 위한 책입니다. 피아노로 치면 하논 같은 책이라는 것입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은 손가락 연습을 하기 위해 하논을 치는 것이지, 그 음악이 아름다워서 하논을 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학 교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사고 훈련을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많은 훈련들이 실전보다 높은 강도로 특정 행동을 반복하게 함으로써 몸에 익숙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그런 생각을 하신다면 수학을 안쓰는 교과서를 쓰면 되는 것이지요.

어떤 교과서를 써야 경제학적 사고를 더 잘 함양할 수 있는가는 학자의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고, 교과서 선택이나 강의 내용도 그에 따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훈련을 받은 다음에 실제 논문을 쓸 때 그런 수학을 쓰는지 안 쓰는지는 연구 분야, 연구질문의 내용, 학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저만 하더라도 대학원 수업 때는 온갖 수학적인 내용을 배웠습니다만, 지금까지 수십편의 논문을 쓰면서 수학이라고 부를 만한 내용을 논문에 넣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수식을 간혹 넣긴 하지만 그걸 수학이라고 부르면 수학에게 미안한 수준입니다.

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은 수학이 아닙니다. 경제학적 사고와 경제학적 직관이지요. 이것을 키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훈련이 필요한데, 수학이 많이 들어 있는 미시, 거시 교과서를 공부하는 것은 바로 그런 훈련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런 훈련용 책을 보고 경제학을 평가하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앞으로는 좀 삼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송인서적 부도에 관한 메모

출판업계가 대형 서적 도매상 송인서적 부도 문제로 시끄럽다. 정부도 나섰다. 서울시가 12억원대 서적구매를 조기집행하고, 문체부가 저리 융자를 지원한다고 한다.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사태 직후 간담회에서 “2000년도 이전부터 정부와 정치권은 우리나라 출판 문화산업을 사양 산업으로 인식하고 지원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출판계의 자구 노력을 강조했던 분이 이런 발언을 한 심정은 이해한다. (이분은 2015년 1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출판사가 읽을 만한 책을 만드는 데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느냐 보면 ‘×판’이다. 독자가 안 읽는다고 불평하는 건 양심 없는 짓이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유통위원장은 “정부는 ​출판계 유통구조 개선을 민간 출판사에게만 맡겨왔다. 그 결과 출혈경쟁이 이어졌다”라며 “정부는 출판계 인프라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했단다.

출판업 경영 및 유통이 매우 낙후되어 있다는 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다. 외환위기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우선 이번 건에서도 보이듯 어음 돌려막기가 만연하다. 소위 위탁판매제에서 나타나는 출판사-도매상-서점 간 거래관계도 심각하다. 서점은 매대를 제공할 뿐 출판사에서 책을 매입하지 않는다. 책이 팔리지 않으면 반품해 버리면 된다. 팔리지 않을 때의 리스크가 출판사에게 지나치게 전가된다.

그러나 출판계 의견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오랫동안 도서정가제 개정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그 노력으로 정부가 유통구조(거래관행)에 개입해 달라는 편이 더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소비자 저항도 훨씬 적었을 것이다. 게다가 도서정가제가 출판업을 구원하리라는 믿음에는 근거가 없었다.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가격규제(재판매가격제한)을 도입하다니, 그야말로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도서정가제가 해법이 아니라고 경고했고, 경고는 현실화되었다.

송인서적 부도에 관한 메모송인서적 부도에 관한 메모

도서정가제의 경제적 귀결은 처참하다. 도서가격(베스트셀러 및 스테디셀러)이 상승하여 사실상 담합 상태다. 온라인 거래액이 하락했고 가격 상승을 감안하면 거래량 역시 하락했다. 온라인 거래액이 하락한 만큼 오프라인 거래액이 상승했을까? 오프라인 서점 거래액 통계는 없지만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넘어가려면 수요가 가격 변화에 아주 둔감해야 한다. 게다가 서적 구매경로에서 동네서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8.15%에 불과하다.

송인서적 부도에 관한 메모

송인서적 부도에 관한 메모송인서적 부도에 관한 메모송인서적 부도에 관한 메모

송인서적 부도에 관한 메모
그런데…정가제 시행 후 송인서적 재무는 약하게나마 호전되었다. 기초적인 재무지표만 살펴보았지만 2013년과 2015년 연말을 비교하면 매출액,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매출액증가율, 영업이익증가율 모두 상승했다(수익성 및 수익성 추이 향상). 자기자본비율은 상승하고 부채비율은 하락했으며(건전성 향상), 유동성 비율은 상승했다(지급여력 향상). 도매상이 열매를 독점했다고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어차피 부도나지 않았나. 정가제가 당초 홍보했던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에 정책을 요구하는 역량은 한정되어 있다. 출판계는 근거 없는 낭만 때문에 역량 배분에 실패했다.

송인서적 부도에 관한 메모

나는 다독가는 못 되지만 애서가를 자처한다. 밥 먹는 것 다음으로 책 사는 데 돈을 많이 쓴다. 책값 오르는 걸 환영하진 않지만 책값 때문에 살 책을 안 사진 않는다. 또한 한국어 화자로서 한국 출판업 성장을 진심으로 소망한다. (물론 정도가 있다. 어제 스티븐 스티글러 <통계학의 역사> 가 품절이고 중고가가 정가의 3배에 육박하는 걸 보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뿐인가?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는 절판 후 정가의 10배 가격에 거래되었다. 아, 한국 출판업 얘기하면서 정작 예시가 둘 다 해외 저자 아니냐는 태클은 사양한다.) 출판업계가 “구조개혁”과 “정부지원”이라는 공허한 구호만 부르짖지 말고 실질적 대책을 찾기를 바란다. 한국 시장은 작다. 이 사실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도서정가제 개정 전 부작용을 경고한 KDI 보고서:
조성익(2014), 유통기업의 가격설정능력과 전자상거래의 효과: 도서유통시장 사례를 중심으로.

도서정가제 개정 후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KDI 보고서:
조성익(2015), 도서정가제의 경제적 효과.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후배님들에게 (김승섭)

고려대학교 김승섭 교수님이 박사과정에게 하는 조언 10가지. 교수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다.
원제는 <미국에서 보건학 석/박사 과정을 시작하는 후배님들에게 드리는 10가지 이야기>다. 역시 학문 일반에 적용할 수 있어 담아 둔다.


어느 순간부터 제 자신을 챙기기도 많이 부족한 제가, 제 경험들을 공유하면서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박사를 시작하던 때, 알았으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은 이야기 10개를 골라봤습니다.

1. 모든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세요.

영어가 익숙치 않았던 첫 학기에 수업 중에 질문을 해본 적이 총 5번이 안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족한 영어로 인해 망신당할까봐 걱정이 되고, 궁금한게 있어도 나중에 찾아봐야지 하고 혹은 쉬는 시간에 교수님께 여쭈어봐야지 하고 참았어요. 어느 순간 깨달았던 게, 쉬는 시간에 일대 일로 하는 질문과 수업 중에 학생들 전체 앞에서 하는 질문에 대해 교수님들의 설명과 답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또 무엇보다 질문을 한번이라도 한 수업과 아닌 수업에서 제가 배우는 게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는 것 자체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과도기였던 두번째 학기를 거치고, 세번째 학기부터는 수업 내용을 미리 review를 하고서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 공부를 했어요. 여러 논문들을 읽고서 그 분야에 대해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되는 질문을 영어 문장으로 만들어 준비를 하고, 수업전에 몇 번씩 자연스럽게 말하기 위한 연습을 했어요. 최소한 두 문장짜리 좋은 질문을 해보자. 그게 당시 목표였습니다.

2. 교과서를 읽으세요.

제가 했던 큰 착각 중에 하나가 수업 내용을 듣고 그게 대략 이해가 되면, 그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부분부분 내용들을 알고 있을지언정, 그 내용이 전체 맥락속에서 어디즈음에 위치하고 있고 다른 내용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수업만으로 얻기 힘듭니다. 지식의 integration과 관계된 insight를 갖는 것은 학생 개개인의 몫이예요. 그러니, 적어도 본인 전공과 밀접히 관련된 내용은 꼭 기초 레벨의 교과서를 완독하기 바랍니다. Advanced level의두꺼운 교과서를 처음 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는 건 처음에 쉽지 않으니, introduction레벨의 책을 먼저 읽고 시작을 하세요. Introduction 수준의 교과서 이기 때문에, 70%의 내용은 아마 익숙할 거예요. 공부를 해볼수록,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좀 더 큰 맥락속에서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역학과 통계가 제 기본 분야였구요, 방학 때 한달 정도 시간을 정하고 기초 교과서들을 읽는데 집중하면서 제 분야의 기본 개념들의 definition을 영어로 암기하기 위한 노력을 같이 했었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3. Tool에 최대한 빨리 익숙해지세요.

저는 역학과 통계가 public health라고 하는 도시를 연결하는 metro라고 생각합니다. 역학과 통계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어디로든 가기가 참 어려워지는 거지요. (물론 좋은 metro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이론적인 back ground도 중요하지만, 통계의 경우 특히나 빨리 자신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합니다. SAS, STATA, SPSS, R, METLAB 등등의 프로그램 중 자신이 앞으로 사용해야 하는 통계 프로그램을 하나 고르고 최대한 빨리 그 프로그램과 친숙해지세요. 자신이 원하는 data management와 data analysis를 실제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그 경험이 중요해요. 나중에 논문을 쓰게 될 때, 데이터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야와 상상력이 실은 자신이 통계 프로그램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많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알게 될거예요.

4. 함께 일하고 싶은 존경하는 교수님이 나타나면, 놓치지 말아요.

자신의 분야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존경하는 교수님을 만날 기회는 있지만, 생각보다 그 분들과 함께 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너무 바쁘시니까요. 많이들 그래서 실은 포기를 하곤 하는데요, 그렇지 말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절박하게 그 분들의 손이든 발이든 붙잡고 놓지 마세요. 제 경우는 박사과정 중에 7편의 논문을lead author로 썼는데, 그 중 6편의 senior author가 다른 과의 교수님이셨습니다. 관심사가 비슷하고 제가 너무 함께 일하고 싶은데, required coursework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들이 있어서 그 분들 수업을 들을 수는 없는데 그 분들과 함께 일하면 관점과 내용면에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게 분명했거든요. 6편 논문의 senior author인 3분의 교수님들과 함께 일하게 되는 과정이 달랐어요. 한 분은 너무 바쁘셔서 이메일로는 시간 약속을 잡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첫 만남 이후로 계속 그자리에서 다음 약속을 잡아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우연히 약속이 취소되고 미팅이 계속 미뤄지자,수업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는 교수님을 따라가며 미팅을 잡아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허허’ 하는 웃음을 지으시더니, 그러자고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게 1년뒤 저희 과 소속도, 박사논문 committee의 member도 아닌 교수님과 2편의 논문을 출판하게 된 시작이었습니다.

또 다른 교수님은 주기적으로 만나기 위해 independent study를 신청을 하고, 그 교수님의 프로젝트 들어가있는 연구원과의 만남에서 현재 프로젝트에서 어떤 게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 연구원의 말이 프로젝트에서 사용하는 중요한 설문지가 있는데, 그 설문지에 대해 다들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교수님을 만나 제 학점으로 하는 independent study를 하면서, 제가 그 설문지의 역사와 사용 사례에대한 review 리포트를 쓰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시작을 해서, 교수님들과 연구원들로 이루어진 프로젝트에 유일한 박사과정 학생으로 참여를 할 수 있었어요. 실은 그 report를 열심히 만들고도 , 제가 잘 쓴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요. 두 가지 일 때문에, 그 report로 인해 제가 프로젝트에 들어가 그 데이터로 3편의 논문을 publish할 수 있었던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첫번째는, 몇 달뒤 그 프로젝트 팀의 박사후과정 연구원이 연락이 와서 제가 만든 report에 대해서 사람들이 칭찬하는 것을 들었다며 받아볼 수 있냐고 했던 거구요, 둘째는 그 프로젝트의 다른 교수님께서 그 리포트를 보고서 제게 비슷한 일을 시키기 위해 저를 고용하고 싶다면서 연락이 왔던 것입니다. 그 일이 제가 미국에서 처음 돈을 받고 일해본 제 job 이었습니다.

5. 미팅을 빈 손으로 가지 마세요.

제 경우에는 항상 미팅 페이퍼를 hardcopy로 준비해서 들고 갔습니다. 처음에는 부족한 영어로 인해 중요한 이야기가 전달이 안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또 함께 연구를 하고 싶은 교수님을 처음 만날 때는, 노트북에 혼자서 powerpoint presentation을 준비해서 들고가 시키지도 않은 발표를 하기도 했어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또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귀한 시간을 미팅으로 쓰게 된 만큼 그 시간들에 대해 그만큼 appreciation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제 나름의 방법이었습니다. 항상 이게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meeting paper를 작성하며 적어도 미팅에서 무엇을 논해야 하는지 스스로 정리하고 말하는 것을 연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버드에서 박사를 마칠무렵, 다른 학교 학과장으로 가게 된 교수님 한 분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박사가 끝나고 어디로 갈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자, 그 분이 제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를 연구원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데, 조건이 뭐니?” 결국 그 분과 함께 너무 감사한 조건으로 박사후 과정을 하게 되었는데, 박사논문 자격시험 심사위원이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제가 그 분 수업을 들은 적도 없고, 제 박사논문 committee member 도 아니셨던 그 분이 어떻게 저에 대한 신뢰가 있으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언제인가 흘리듯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RA로 일하며 리뷰 리포트를 썼던 내용에 대해 궁금하셔서 저와 미팅을 했을 때 제가 노트북을 들고와 교수님 사무실에서 발표를 했던 것과 박사논문 자격시험에서 발표 슬라이드가 40장인데, 질문에 대비한 백업 슬라이드를 80장가량 만들어갔던 걸 말씀하시더라구요. 인상적이었다구요.

6. Citation manager를 최대한 많이 사용하세요.

EndNote이나 Refwork 같은 citation manager를 최대한 많이 활용하세요. 논문을 찾게 되면, 반드시 자신의 citation manager에 적절한 folder를 만들어서 그 안에 저장을 하고 가능하면 pdf 파일을 함께 attach 하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양의 논문들을 읽게 되는데, 그런 지식들을 구조적으로 잘 저장하는 게 점점 중요해집니다. 그렇게 저장되지 않은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알고 있는게 아니라고 저는 스스로 생각합니다. 지식을 어떻게 축적하고 organize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가장 좋은 답은 citation manager를 잘 활용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어요.
제 경우에는 EndNote를 쓰는데 논문들 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찾은 좋은 강의 슬라이드나 다른 학교의 lab document 같은 것들도 citation을 짧게라도 만들어 EndNote에 저장을 합니다. 그래야 훗날 필요할 때 찾을 수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citation manager에 저장하지 않은 모든 논문은 제가 읽은 적이 없는 거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7. 전공과 당장 직접적으로 닿아있지는 않는 논문들을 읽는데 시간을 배당하세요.

모두들 학제간 연구의 시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끼리Collaboration 중요하다고 하지요. 그게 가능해질려면, 다른 분야의 언어, 적어도 그 분야의 핵심 아이디어에 대해 익숙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분야를 따로 공부할 시간은 없는 거지요.
제 경우에는 수업을 듣다가 스쳐가듯 인용되는 흥미로운 논문이 있으면, 메모를 하고 citation manager에 great paper라는 폴더를 만들고 그 안에 저자별로 정리를 따로 해서 pdf 파일을 attach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논문 같아서 시간나면 읽어보려고 별다른 의동벗이 시작했는데, 언제인가부터 그게 힘이 되는 순간이 오더라구요. 다른 과의 누군가랑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그 분야의 landmark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면 대화가 훨씬 생산적으로 흘러가고, 거기서 collaboration이 시작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짬짬이 한 시간 정도는 그런 논문들을 읽는데 썼었는데, 그 논문들은 대체로 제가 흥미가 있어 고른 논문들인 만큼, 재미있는게 많아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8. 자신이 주도한 첫 논문을 최대한 빨리 써보세요.

많은 분들이 논문을 기계적으로 찍어낸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그게 어느 정도는 사실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논문을 쓰는 일은 좋은 시나 수필을 쓰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결국은 다 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보니, 새로워야 하고, 이해가 쉬워야 하고, 간결해야 하고, 읽고나서 감흥이 있어야 하구요.
첫번째 논문을 publish하기 전까지는, 연구가설을 설정하고, 데이터를 찾고 (혹은 수집하고), 기존 논문을 검토하고, 데이터를 분석/해석하고, 그 결과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논문을 쓰는 일인 줄 알았어요. Final이라는 이름의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내용의 문서가 한 30개즈음 (끝인 줄 알았는데, 뭐가 더 있는 거지요. 항상 그랬어요.) 쌓여 이제 submit할 수 있다 싶을 때, 이제 첫번째 단계가 끝난 것 뿐이었습니다. 거기서부터 journal의 format에 맞게 논문을 수정하고 submission에 필요한 문서들을 작성하고 reject을 당하면 다시 시작하고 review를 받을 경우에는 comment로 온 의견들에 대해 하나하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서로 설득하고 수정해야 하구요, 실제 논문이 accept되고 나서는 journal에서 요구한proof reading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typo를 수정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었습니다.

첫 논문의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첫 논문을 자신의 힘으로 쓰고나면 다른 사람들이 쓴 논문을 읽는 눈이 훨씬 밝아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논문을 시작할 때, 훨씬 더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쉬워지구요.

9. 통시적인 관점에서 지식를 축적하고 문제를 접근하는 습관을 기르세요.

Public health에서 어떤 연구 주제가 있으면, 그 주제 대해 통시적으로 해서 정리를 해보세요. 예를 들어 제 연구 주제 중 하나인 작업장의 safety climate이라는 topic이 있자면, safety climate이라는 개념의 역사에 대해 정리하고 그 개념을 처음 도입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게 어떻게 지난 30여년동안 발전해왔는지 정리하는게 통시적인 관점에서 정리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당장은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친구들이 역학의 많은 개념들이 역사속에서 형성되어 온 것이고 또 변화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교수님들은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는 최선의 레벨에서 명확히 개념들을 설명해주시려고 강의를 하시기 때문에,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할 수 있는 개념의 역사적 형성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쉽사리 보이지 않는 학파들이 있어서 기초적인 연구에 대해 의견을 달리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핀란드 출신의 역학자 Olli Miettinen같은 이는case-control study자체가 confounding과 관련된 오류로 인해 사용하지 말아야 할 디자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역학자들 사이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 역학이 individual level의 risk factor를 밝혀내는데 초점을 맞춰지는 것에 trend 대한, Kenneth Rothman, Neil Pearce, Melvin Susser등의 훌륭한 역학자들 사이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논쟁이 있습니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에서 특히나 중요한 causality에 대한 이론도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에 시작한 Bradford Hill criteria와 1980년대의 Rothman의 Sufficient Component Cause model에 이어서 Counterfactual, marginal structural model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거구요. 수업시간에 이런 이야기들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깊게 다뤄지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Epidemiology(Journal)에서 역사적인 역학자들과의 interview를 계속해서 제공하고 있는데, 그 내용들을 읽고 있으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읽은 수업시간에 배운 확고한 것처럼 보이는 지식들이 실은 변화해왔고 변화해갈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10. 건강을 챙기세요.

20대 초 중반이면 아직 못 느끼실 수도 있지만, 체력이 실력인 순간이 곧 옵니다.
제가 박사과정을 미국에서 시작하던 때, 제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 10개를 정리해봤습니다. 실은 저는 지금도 이 10가지 내용 모두에서 하루하루가 도전과 실패의 연속입니다. 후배님들의 건투를 빕니다.

2016년 읽은 책

작년에는 총 30권(시리즈물은 1권으로)의 책을 읽었습니다. 개인사와 학위논문이 겹쳐 책을 많이 읽지 못했네요. 앞으로도 주로 전공서나 논문을 읽을 것 같아서 단행본 독서량은 줄어들 듯… ㅠㅠ 어쨌든 읽은 책을 별점과 함께 소개해 봅니다.
* 5점 만점이지만 인플레를 막으려고 점수를 짜게 매기는 편이라, 사실상 4점 만점으로 보시면 됩니다. 별 4개 반-5개는 최소 “올해의 책”인 것이지요.

 

2016년 읽은 책 (분야, 별점(5점 만점) 순)

I. 교양(인문, 자연)

  1.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언 모리스 ★★★★☆
  2.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김시덕 ★★★★
  3.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
  4.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 아툴 가완디 ★★★★
  5.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박훈 ★★★☆
  6. 노벨상과 수리공, 권오상 ★★★☆
  7. 번역의 탄생 이희재 ★★★☆
  8. 갈등하는 번역, 윤영삼 ★★★☆
  9. 틀리지 않는 법, 조던 엘렌버그 ★★★
  10. 자유를 위한 탄생: 미국 여성의 역사, 사라 에번스 ★★★
  11. 플루토크라트,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
  12. 글쓰기 달인이 되려면 잘못된 문장부터 고쳐라, 박찬영 ☆

 

II. 경제

  1. 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 Goldin & Katz ★★★★★
  2. 환율의 미래, 홍춘욱 ★★★★
  3. 파생금융 사용설명서, 권오상 ★★★★
  4. 기아와 기적의 기원, 차명수 ★★★☆
  5.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 유리 그니지 & 존 리스트 ★★★☆
  6.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아비지트 배너지 & 에스테르 듀플로 ★★★☆
  7. 기업은 투자자의 장난감이 아니다, 권오상 ★★★☆
  8. 부동산은 끝났다, 김수현 ★★★☆

 

III. 소설

  1. 이반 일리치의 죽음, 톨스토이 ★★★★☆
  2. 채식주의자, 한강 ★★★★
  3.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더글러스 애덤스 ★★★☆

 

IV. 종교

  1.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게르트 타이센 ★★★★
  2. 떠나보낸 하느님, 돈 큐피트 ★★★☆
  3. 세속도시, 하비 J. 콕스 ★★★
  4. 종교의 세속화: 사회학적 관점, 이원규 ★★☆
  5.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 톰 라이트 ★☆

 

덧. 2016년 경제학 학술논문 (practical issues) Best 3

  1. Autor (2015), “Why Are There Still So Many Jobs? The History and Future of Workplace Automation”,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 Gentzkow & Shapiro (2014), “Competition and Ideological Diversity: Historical Evidence from US Newspapers”,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3. Gentzkow & Shapiro (2006), “Media Bias and Reputation”,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Autor(2015) 아주 쉽고 분량도 30페이지가 채 안 됩니다. 수식도 하나 없고요. 장담하는데 제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잡서 100권보다 나을 겁니다. 이쪽 관심 있으신 분들 읽어 보세요. Gentzkow & Shapiro(2014)는 저것보단 좀 어려운데 반지성주의와 정치적 양극화 시대의 미디어 산업, 특히 이념적 다양성을 이론적/실증적으로 다루는 멋진 논문입니다.

주님의 기업 이랜드, “임금꺾기”로 세상과 구별되다

이랜드가 “임금 꺾기” 꼼수를 활용해서 지급하지 않은 임금총액이 83억, 피해자 4만 명이라는 기사가 떴다.

기사에서 소개된 “임금 꺾기”는 이랜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랜드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가령 커피 프랜차이즈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댓글에 달아 둘 텐데,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커피전문점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조사한 바 있다. 대략 비슷하다.

“노동시장에 저숙련노동자가 초과공급된 상태에서, 균형임금보다 최저임금이 높아 이런 변칙이 발생한다.” 그러지 말라고 최저임금법 제정한 거다. 그리고 한국 최저임금은 지난 10-15년간 가파르게 인상되었는데 (그 전에는 너무 낮았다), 이랜드는 10년 전에도 이랬다. 그 때도 최저임금이 너무 높았다고? 오바마의 대답을 들려주겠다. “Go, and try it.”

저숙련 노동이라고 해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 역시 생산에 기여한다. 생산에 기여한 만큼 – 그러니까 부가가치 – 받아가는 게 미시경제학의 기본이다. “임금은 한계생산물가치와 같다.” 누가 더 하라고 했나.

그게 아까워서 인건비 아끼고 싶으면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한다. 아마존이 창고 인력 줄이려고 로봇 개발한 것처럼. 그건 물류업체고 우린 유통뿐 아니라 요식업도 한다고? 맥도널드는 전자주문 도입했다. 패스트푸드와 우리는 다르다고? 고급화 전략을 취할거면 그거 만드는 인력에게도 그만한 대접을 해 주어야 한다. 임금은 한계생산물가치랑 같다니까.

그게 어디 쉽냐고 묻는다면, 그런 걸 해내는 걸 기업가 정신이라고 한다. 기술진보가 바로 같은 노동량 투입해서 더 많은 생산을 하는 것, “생산성 혁신”을 말하는 것이다. 경영자, 임원에게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 건 혁신을 포함한 경영상의 결정을 잘 하라는 것이다. 못하겠으면 제 값 치르고 사람 써야지. 아니면 직접 나와서 만들던가. 그게 싫으니 만만한 사람 후려치기 하는건데. 할 줄 아는게 문어발식 사업확장 & 알바 후려치기 뿐인가?

헌금할 돈으로 임금지불이나 제대로 제 때 하기 바란다.